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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강 (제12장) 예배에서의 음악: 찬송가의 선택 문제
이드보라  2018-08-02 20:34:58, 조회 : 152, 추천 : 55

제 12 장
예배에서의 음악: 찬송가의 선택 문제


- 가사의 문제


찬송의 가사들은 성경적이면서도 동시에 회중이 애하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그러한 가사들만이 예배의 수직적이고도 수평적인 목적을 수행할 수 있다. 성경이 예배의 찬송으로 시편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의 예배를 위하여 시편의 사용을 무시할 수는 없다. 예배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또한 교리와 거룩한 감정의 위대한 보고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시편 안에는 경외심과 기쁨, 슬픔과 경축, 지성과 감정, 은혜와 심판 사이의 놀라운 균형이 발견되고 있다. 시편의 기자들이 이 땅에서의 고통과 슬픔과 곤고함에 대해 토로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놀라우신 행하심에 대해서 회상하고 더 나아가서는 앞으로 오실 메시야의 구원을 바라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함께 그의 집에서 영원토록 거하는 것에 대한 소망을 그린다.

시편 저자들은 또한 심판을 위하여 기도한다. 악한 무리들의 멸망을 기도하되, 자신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기도를 드린다. 그것은 개인적인 복수로서가 아니라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는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한다(롬 12:19). 공의의 수행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행하여 주시고 마침내 구원하실 그 날을 고대한다.

시편에서 우리는 또한 다윗의 위대한 자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것은 신약이 시편을 그의 입술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위대하신 왕으로서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버림을 당하셨으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사역을 인도하며,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성취하게 하실 것으로 믿었다. 예수님은 시편 속에서, 자신이 앞으로 악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며,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실 자로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사도들을 보내시어 모든 민족들을 그의 영원한 나라로 이끄실 것을 말씀하신다.

이러한 주제들이 현대의 찬송들 속에서 ‘항상’ 적절하게 반영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분명히 시편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우리는 시편으로부터 우리가 예배 가운데 사용할 수 있을 노래의 다양성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장단의 시편들이 있고, 교훈적이고 서정적인 것이 있으며, 단순하고 복잡한 시편들 그리고 어떤 시편들은 아크로스틱(각 행의 머릿자를 모으면 말이 되는 유희시)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성에 대한 이해는 여러 가지 찬송들에 대해서 덜 비판적이 되도록 해준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 속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찬송이 불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들을 표현하며 그것들을 역사적 상황(즉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 사이의 사이에 처한 현재 상황과 우리가 속한 시대와 장소, 문화만의 독특한 성격)에 적용시키기 위해서, 시편의 노래 이상의 찬송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처한 역사적 상황은 우리의 예배의 강조점에 있어서 시편과는 다른 점이 있다. 예수님의 이적적인 출생, 가르치시는 사역, 십자가의 못박히심, 그리고 부활에 관해서 신약에서 강조된 진리들이 시편 안에서는 단지 희미하게 예고되고 있다. 더 나아가 신약에는 많은 두드러진 가르침들이 존재한다. 믿음과 칭의, 성령님의 내주하심, 하나님의 자녀됨, 그리스도께서 중보자가 되심,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가르침 등은 시편에서 비교적 희미하게 제시된다.

역사 속에서 부활 후기에 있는 우리들의 입장은, 예배 속에서도 시편의 것과는 다른 성격을 띄도록 만든다. 시편의 고대함과 애통, 의문과 심판을 위한 간구들에 대한 대답을 그리스도 안에서 얻었다. 물론 우리도 죄와 고통의 최종적인 마침에 대해서 고대하고 있지만, 신약의 예배에서는 시편의 저자가 오직 미래에만 기대할 수 있었던 그 위대한 사건들을 축하할 수 있는 것이다. 구약의 시편보다 더욱 큰 차원의 기쁨이 있으며 고통과 애통함에 대한 강조는 약화되었다. 또한 시편의 기자들이 저주의 기도를 드린 것과 같은 두드러짐은 오늘날에 강조되지 않는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사이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 시기가 비록 고통의 시기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마침내 우리의 대적들을 멸하실 것 때문에 위로를 받게 된다.

이 말은 우리가 저주 기도의 적법성을 부인한다는 말이 아니다. 신약에서도 저주의 기도가 있다.(마 23, 26:23-24,고전 16:22, 갈 1:8, 5:12, 딤후 4:14) 세상의 악인들을 심판하실 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옳은 일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믿음을 부어주셨을 때, 그들의 대속자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심판을 치르실 것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시편의 저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현대 혹은 후 현대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명령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찬송 속에서 그의 약속과 위로들, 그의 도전들이 제시되는 현대적인 방법들을 사용함으로서, 우리의 예배가 회중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 예배가 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찬송은 시편을 포함해야 하며, 또한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시편과 다른 찬송들 모두를 포함해야 한다.


- 곡조의 문제


우리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예배 가운데 사용한 곡조들이 어떠했는지 알지 못한다. 수잔(Suzane Haik-Vantoura)은 시편의 히브리어 본문들 속에서의 어떤 표시들은 멜로디나 리듬을 나타내주는 음악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실일지라도, 그 표시들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혹시 그것들이 정말로 원본의 일부였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시편 속에서 악기들과 노래의 다른 측면들을 언급하고 있는 점들을 주목함으로서, 고대 음악의 성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해 볼 수 있다. 현대의 하프, 트럼펫, 플롯, 타악기 그리고 기타와 유사한 악기들이다. 이러한 악기들은 현대의 피아노나 오르간 보다는 현대의 기타나 타악기들과 더욱 유사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물론 성경에 언급된 악기들만 제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찬송을 음악과 연결하는데 있어서 성경의 기악 편성방법은 우리에게 어떠한 단서들을 제공해 준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있어서 춤과 박수치는 것, 외치는 것, 큰 소리나는 제금이나 악기들의 합당성에 대해서 지난 시간에 알아보았다. 고대의 음악은 종종 강렬하게 리듬이 있으며, 또 큰 소리가 나는 형태였다. 전통적인 찬송의 억제되고 장엄한 엄악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다소 귀에 거슬릴 수 있겠지만, 그것은 놀라운 일들이 아니다. 그러나 시편들 중에는 좀 더 조용한 분위기를 요구하는 것들도 있다.(시 23편, 46:10, 131:1-3) 문학적인 구조들에 있어서 매우 다양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음악적 배경도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

음악적 배경을 정할 때에는 말씀의 메시지를 더욱 강화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것의 초점이 분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음악과 가사를 함께 사용할 때, 서로 다른 편을 지원해 주는, 효과적인 일이 되어야 한다.

큰 소리와 리드미컬한 분위기의 노래는 승리적인 본문을 위하고, 조용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는 슬픔과 위로를 주는 찬송이라는 암묵적인 규칙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단순화 시키는 추론은 피해야 한다. 보통 장조음에서 기쁨이 표현되고 단조음에서 슬픔을 표현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이거나 세계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다. 유대인 그리스도교들은 근동지방에서 단조음을 기쁘고 빠르며 리드미컬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음악이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문화적 차이점들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실로 같은 문화 안에서조차도 서로 다른 음악적 언어와 형태들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가 ‘이해될 수 있는 예배’라는 성경적 목표(고전 14장)를 추구하려고 한다면, 모든 회중의 음악적 언어들을 말해 줄 수 있는 음악적 분위기를 확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사람의 취향을 만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교훈시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자신만의 음악, 전통적인 음악만을 사용하려는 이기적인 고집 대신에 다른 성도들의 취향앞에 기꺼이 희생하고, 다른 이들도 진리로 다가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음악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배우는 것을 기쁘게 여기며 서로를 섬기고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면서 성장해야 할 것이다.

예배 안에서 사용할 수 없는 곡조와 장르의 경계선을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헤비메탈과 같은 음악 장르는 우리 사회속에서 가장 저속한 요소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이유로 예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훗날에는 헤비 메탈 음악이 예배 음악에 가장 적합한 언어라고 간주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음악에 대한 문화적 함축적 의미들에 있어서 상당한 변화가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어떤 성도가 개인적인 취향 이상으로, 양심의 문제에 거리낌이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로마서 14장의 관점에서, 양심에 거리낌이 있는 자는 교회 앞에 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만약 교회가 그의 지적을 수용하지 않거나 혹은 그로 하여금 그것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려 한다면, 교회는 그를 ‘약한 양심을 지닌 신자’로 취급해야 한다. ‘약한 양심을 지닌 신자’도 주님을 사랑하는 자이지만, 그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없이 주어진 거리낌에 매여있는 것이다. 교회는 약한 신자의 잘못된 거리낌에 의해서 매일 수 없다. 교회는 그를 가르치도록 해야 한다. 만약 그가 교회의 바른 지도를 받지 않으려 한다면, 그도 교회를 설득할 수 없다면, 자신들의 양심을 어기지 않고 예배드릴 수 있는 서로 다른 회중을 찾도록 해야 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약한 양심조차도 거리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바울이 말하기 때문이다. 현대음악과 같은 다른 방식의 음악을 가지고서는 전혀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혹은 전통적인 음악이 지루하고 형식적인 인상을 주기에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을 때, 성경은 ‘더 약한 신자들’이라고 분류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논쟁 속에 있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서로 무시하지 말도록 권면한다. 그러나 때때로 이러한 논쟁들은 분리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러한 분리는 패배이지 승리가 아니다. 역사가 지향하는 목표가 많은 나라, 언어, 종족, 민족들이 함께 모여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회중을 이루는 것이기에 복음은 모든 장벽을 부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교회들 속에서, 예배 속에서 하나됨의 놀라운 발견을 기대한다.



(제 12장 연구 문제)

1. 당신의 교회의 음악은 어떠한 방식을 선호하는가? 당신은 그 방식을 이해하는가? 또 다른 방식들을 도입할 때에 이것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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