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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강 (제11장) 예배에서의 음악: 논쟁적인 주제들
이드보라  2018-07-26 22:51:37, 조회 : 110, 추천 : 46

제 11장
예배에서의 음악: 논쟁적인 주제들


- 시편 전용론(Exclusive Psalmody)


역사적으로 볼 때, 많은 장로교인들과 개혁교회들은 예배 안에서는 시편찬송 외에는 어떤 찬송도 사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미국 장로교회들 안에서 지배적인 견해가 되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소수에 의해서만 주장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논의는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도 가치가 있는 것이며, 규정의 원리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좋은 시범사례가 될 수 있으므로, 더욱 가치있는 논의가 된다.

시편 전용론의 주장은 단순하다: 모든 예배의 요소들은 성경에 의해서만 규정되어야 한다, 노래는 한 예배의 요소이다, 성경은 시편을 노래하라고 명한다, 그러나 예배 속에서 다른 노래들을 부를 것을 규정하지 않는다, 고로 예배 속에서의 노래는 시편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편 전용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거부한다.

1. 지난 시간에 예배의 요소들과 다양한 형식들과 종류들 사이의 전통적인 구별은 성경이 보장하지 않는 견해임을 밝혔다. 요소들은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것이므로, 우리는 노래가 한 요소라고 말할 수 없고, 따라서 그 내용을 규정하는 특별한 하나님의 명령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2. 예배를 각 요소들로 나누는 방식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노래를 예배의 한 요소로 보아, 다른 모든 요소들과 구별할 수 있는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이해되기 어렵다. 앞장에서 보았듯이, 노래는 하나의 독립된 요소가 아니다. 하나의 기도하는 방식이며, 가르치는 방식이며, 고백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규정하는 원리를 노래의 문제에 적용함에 있어서, 우리는 성경이 우리가 구체적으로 노래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명하는지에 대해 물어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르침과 기도, 고백 등을 함에 있어서 성경이 어떤 명령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봐야 할 것이다.

3. 만일 노래를 예배의 한 요소라고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시편전용론자들의 주장자들은 그들이 다른 요소들을 취급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노래를 취급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편 전용론을 입증하기 위하여 사용된 논증의 방식으로 우리는 성경에서 기록된 기도들과 설교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시편 전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예배에서 즉각적인 설교와 자유로운 기도방식을 모두 허용하고 있다.

4. 성경은 우리에게 시편의 모든 내용을 노래하라고 명하는가? 시편을 노래하라는 명령은 많이 있으나(대상 16:9, 시 95:2, 골 3:16, 엡 5:19) 시편이라는 단어는 예배에서 사용되는 노래들이라는 뜻에 대한 일반적인 용어로 쓰였다. 마 12:27에 나오는 ‘재판관’이라는 단어가 성경의 사사기 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것처럼, ‘시편’이라고 말하는 성경의 언급들은 반드시 정경의 한 부분으로서의 시편 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 119:54, 172절에서의 모세의 율법을 노래하라고 우리에게 명하셨다는 주장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5. 시편 전용론자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앙과 삶의 유일한 기준으로 성경의 말씀들을 주신 것과 같이, 그 분은 또한 모든 시대를 통하여 사용될 수 있는 찬송가로서 시편의 책을 주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시편을 그런 이유로 주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1) 시편보다 앞쪽의 내용들 속에서도, 그것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예배 찬송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출 15장, 민 21:17, 신 32장, 삿 5장) 이러한 노래들도 시편과 마찬가지로 공적 예배에 적합할만큼 영감으로 기록된 찬송들이기 때문에, 시편이 완성된 후에 이전 노래들이 부적합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역사속에서 하나님이 그러한 노래들을 금하셨다는 증거도 없다.
(2) 과거에는 시편을 ‘제 2성전의 찬송가’로 묘사하는 것이 학자들에게는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시편의 기록목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입장은 시편이 하나의 찬송가집으로서가 아니라, 묵상을 위한 책으로 수집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에 의해서, 최근에 도전받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많은 개개의 시편들은 공예배를 위한 노래로 불리도록 의도되었다. 그러나 시 1편과 같이 다른 목적과 기원을 지닌 시들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편을 찬송가로서-우리의 유일한 찬송가로서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주셨다고 단순히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3) 성경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행동들은 ‘새로운 노래들’을 요청한다(시 33:3,40:3, 133:9, 149:1, 사 42:10, 계 5:9, 14:3).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자, 그들은 새 노래를 불렀다(출 15장). 광야에서 물을 주시자, 그들은 노래했다(민 21:17). 언약을 갱신하시고, 그들은 신 32장의 노래로 암송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었을 때, 마리아는 그녀의 송가로서 응답했다(눅 1:46-55, 1:46-79, 2:14, 29-32 비교). 하나님이 놀라운 일들을 우리에게 행하시고 보여주실 때, 그 백성들은 외치며 찬송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역사들 중의 가장 위대한 역사인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새로운 찬송을 뿜어내서는 안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6. 시편은 신약의 그리스도인의 예배에 적합한가? 시편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리고 신약이 시편을 사용함에 있어서 그러한 것처럼, 시편은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그러나 시편은 그리스도를 ‘그림자’로서, 구약시대의 불완전한 계시의 빛 아래에서 제시한다. 우리의 찬양을 시편들로만 제한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의 완성은 전적으로 새로운 찬양을 요구한다.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에 대해서, 단번에 성취하신 그의 속죄하심에 대해서, 우리의 칭의를 위한 그의 부활, 그리고 하나님의 새 백성으로서 우리가 믿음으로 그와 연합한 것에 대해서 찬양한다. 시편에도 그러한 내용이 들어있으나, 그것은 성취와 완성의 언어를 요구한다. 그것이 신약의 믿음이 지니는 독특성이다. 성경에서 찬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정확히 하나님의 능하신 사역들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7. 시편 전용론의 입장은 규정하는 원리를 적용함에 있어서, 매우 엄격한 태도를 취하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엄격해지는 것도 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엄격하게 영감된 시편들에만 제한되고 있으므로, 영감되지 않은 이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번역 성경의 시편보다는 히브리어 원어의 시편을 노래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시편 전용론자들도 그 정도로 엄격하지는 않은 것이다. 시편 전용론자들은 그들이 규정하는 원리에 적용하는 엄격성과 일관성에 대해서 실제적인 제한을 가하고 있다.

8. 시편 전용론자들은, 예배에서 영감되지 않은 찬송의 사용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증명하라고 말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공예배에서 찬송을 부르라고 명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에 일치될 것을 요구하는 것 외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찬송을 부러야 할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문제에 관해서, 말씀의 일반적인 기준들에 따라서, 우리들의 결정을 내릴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찬송은 설교나 기도와 같다.

9. 어떤 이는, 우리가 훨씬 우월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영감되지 않은 찬송들을 필요로 하는가? 라고 물을 수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백하지만, 그 분은 가르치는 자들을 지명하여, 그들이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우리는 성경의 언어들을 우리의 상황, 우리의 시대와 장소에 적용하여서 가르친다. 첫째로는 그것을 부활 후의 시대에 적용하며 둘째로는 그것을 현 시대에 적용하여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에 있는 단어들과는 다른 언어들을 사용해야 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 악기들, 합창단, 그리고 독창자들


시편 전용론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동시에 예배에서 악기들, 성가대, 독창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한다. 표면적으로는, 이 두 번째의 문제가 규정하는 원리와 관계되지 않는 주제인 것처럼 보인다. 성경에는 악기들을 사용하라는 명령이 많이 있으며(시 68:24-25, 98:4-6, 149:3, 150:1-6), 성가대를 성전 예배의 일부로 제정하셨다(대상 15:16). 그러나 어떤 이들은 악기들과 성가대들은 구약의 성전의 독특한 예배방식의 일부였으나, 이제 그 성전 예배가 그리스도 안에서 지나가 버렸으므로, 정당성이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답변하려고 한다.

1. 악기들은 성전예배에서 사용되었고, 또한 다른 경우들에서도 사용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에, 그들은 출애굽기 15장의 노래를 부를 때에 미리암은 소고라는 악기와 함께 불렀다.(20절) 미리암은 소고치며 춤추며 그녀를 따르는 한 그룹의 여인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여기에서 악기들과 합창단, 그리고 독창자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성전이 세워지기 전의) 공적인 예배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그들의 찬양에 참여하기 위해서, 또한 듣기 위해서 모였다.

2. 성경은 성전 예배의 모든 부분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에 의해서 폐지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전은 서기 70년에 파괴되었다. 그리고 성전의 독특한 예배 방식들, 음식과 마시는 것들의 제물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최종성에 의해서 폐지되었다. 성전의 휘장은 예수님이 죽으실 때 둘로 갈라졌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존전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놓으셨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전에서 행했던 많은 일들을 우리는 여전히 행하고 있다. 성전은 단지 희생제사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기도의 장소였으며(왕상 8:28-53, 사 56:7, 마 21:13),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고백하며 맹세하는 것을 들으시는 장소였다(왕상 8:31-33). 그리고 그곳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르침이 이루어지는 중심지였다(눅 2:41-52). 먹고 마시는 제물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의 예배의 일부가 아니지만, 기도와 서약, 고백과 가르침등은 여전히 그리스도인의 예배로 남아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전의 전 예배가 폐지되었다고 일괄적으로 주장할 수 없다.

3. 성전 예배에 있어서, 희생제사를 드리는 동안에도 악기들의 목적은 단지 희생제사에 부속적인 도구로만 남지 않고, 찬양하는 이들을 인도한느 역할을 했다. 찬양이란 신약의 구조 속에서도 분명하게 계속된다. 그리고 악기들이란 성전 예배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그 보다도 악기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찬송을 위한 반주악기로 사용되었다. 성경에서 명백하게 반주없이 찬송만 드려지는 구절이 나타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없다.

4. 예수님의 때에 유대인의 회당에서는 악기들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이 때때로 지적된다. 왜 그들이 악기를 사용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에도 적용될 수 있는 신학적 이유로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 평가할 수 없다. 회당에서의 행위들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의 예배에 절대적인 규범으로 작용될 수 없다.

5. 악기를 거부하는 장로교회들도 회중들로 하여금 보통 음정을 잡아주는 일을 위하여 율관의 사용을 허락하는 경우가 있다. 만일 교회에서 첫 음정을 잡도록 하기 위해서 악기를 사용한다면, 왜 둘째음과 셋째음을 위해서는 안되는가? 소프라노 음정이 도움을 받는다면 왜 알토나 테너, 베이스의 음정은 도움을 받을 수 없는가? 악기들이 곡조와 화음을 인도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면, 왜 회중들이 적절한 박자와 리듬을 유지하도록 그것을 사용해서는 안되는가?

6. 성경은 모든 찬송이 모든 회중에 의해서 불려져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어떤 시편은 번갈아 부르는 방식 혹은 응답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도록 작성된 것 같다. 시편 136편이나 신 27:12-13과 수 8:30-35에서 축복과 저주가 번갈아 나타난다. 합창단과 독창자들은 단순히 예배의 사역이 분담된 것을 말해줄 뿐이다. 찬송하는 것은 좋은 일이며, 어떤 이들이 묵상하고 있는 동안, 다른 이들이 찬송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7. 왜 하나님께서는 악기와 합창단을 성전에서는 허락하시고 그리스도인의 예배에서는 금하셨겠는가? 하나님은 그러한 명령들을 임의로 아무 이유없이 아무렇게나 말씀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명령은 늘 덕을 세우는 방향으로 주어진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구약시대에 악기와 합창단을 포함한 복잡한 예배방식을 허용한 것이 그 백성들이 성숙하지 못하고 강퍅한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신약에서 합창단이 없이, 반주가 없이 찬송하게 하신 것은 그 방식이 더욱 단순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하여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반주있는 찬송과 없는 찬송의 가치를 비교하지 않는다. 어떤 분명한 목적이나 이유를 말할 수 없으므로, 배타주의자의 주장들은 훨씬 그 타당성이 희박하다.


- 가사가 없는 찬송(악기로 연주되는 음악)


그렇다면 가사가 없이 악기만 연주되는 찬송은 어떨까? 교회는 종종 악기로 전주와 간주, 봉헌송, 그리고 후주 등을 연주한다. 이것들은 적법한가?

1. 예배는 종종 소음과 잡담으로 산만해지기 쉽다. 이러한 때에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 특히 예배자들에게 복음을 생각나게 해주는 찬송곡들을 연주해 주는 것은 유익한 점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의 배경으로 무엇이 옳은지 말씀해 주지 않으셨고, 우리는 이러한 음악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2. 악기의 연주 자체가 하나의 예배행위가 될 수 있다. 시편 150편에서, 악기들은 단지 찬송을 반주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찬송의 수단이었다.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피조물들 중에 있다.

3.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이 때로 믿음을 키워주는 일을 감당할 수 있다. 반주자가 성도들에게 익숙한 찬송을 연주할 때, 성도들은 그 가사를 떠올린다. 예배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성경적 주제들과 연관하여 찬송을 지었다. 성경적 가사들이 악기의 연주 속에서도 전달될 수 있다. 가사가 없는 음악도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적법한 방법이 될 수 있다.


- 몸의 음악: 춤, 손을 듦, 그리고 박수


사람들은 말로만 의사전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언어를 가지고도 할 수 있다. 기록된 말씀뿐만 아니라 자연의 계시를 통해서 그의 뜻을 전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앉아있는 자세에서 조용하게 예배드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말과 함께 신체적 동작을 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흑인 영가 중에 ‘앉아 계십시오. 나는 나의 마음이 너무나 즐거워 그냥 앉아있을 수 없습니다’라는 곡이 있을 정도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때로 찬송 중에 춤을 출 수 있다.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하신다. 출 15:20, 삼상 21:1, 29:5, 삼하 6:14, 시 30:11, 149:3, 150:4, 렘 31:13등이다.

물론 회당에서 정기적인 예배나 회막이나 성전의 정기 예배 속에서 구체적으로 춤추는 것을 명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서 하나님이 춤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시 150:4은 우리들로 하여금 어떠한 역사적인 절기와 같은 때에만 춤추도록 제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예배드리면서 춤추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으로 모이는 때마다 그렇게 할 것을 원하시지는 않는 것이다. 그것은 예배의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때때로 예배의 풍성함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응답으로 ‘손뼉을 치라’는 명령(시 47:1, 시 98:8, 사 55:12)과 ‘손을 들라’는 명령(느 8:6, 시 28:2, 63:4, 134:2, 141:2, 143:6, 렘 2:19, 3:41, 딤전 2:8등)이 있다. 이것도 몸의 음악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 속에서 우리의 영혼 뿐만 아니라 손을 흔들며 박수치고 몸이 함께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물론, 어떠한 종류의 신체언어가 예배에 적합한가? 하는 물음이 생긴다. 우리의 현대 문화 속에서, 대중적인 춤과 고전 무용들은 모두 성적인 것들로 물들어 있으며, 왜곡된 애로티시즘이 함께 포함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성적으로 자극하는 옷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그와 함께 모든 예전적인 춤까지도 금지하려 한다. 그런 부분들은 염려되는 부분이기는 하다. 그러나 염려 때문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예배의 한 형태를 전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회에서의 ‘거룩한 춤’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자발적인 반응으로 나와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찬송에 따라 움직이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격려받아야 한다. 예배에서의 춤이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공유하는 거룩한 기쁨의 단순하고도 자연스러운 신체적 차원의 표현이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움직임까지 허락될 수 있는가? 작은 움직임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 더 큰 움직임도 정당화될 수 있다.

좀더 훈련되고, 정교하며, 기술적인 형태의 춤을 고려할 때, 교회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은 고려를 할 필요가 있다. 현존하는 춤의 형태를 그냥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진리와 감정을 분명하게 표출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한 시도를 함에 있어서 우리는 성적인 자극을 주는 현대 사회의 춤의 형태보다는 세계의 민속 무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하나님께 찬양드려지는 것으로서 춤의 의미는 결코 예배자의 상상이나 전문적인 음악 연구가의 판단에 맡겨서는 안될 것이다. 성경적인 주제들에 관해서 불려지는 찬송곡조에 극연기자들의 아름다운 춤이 더해질 때 점점 더 예배자가 되어지며, 예배에 대해서 덜 비판적이 되어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제 11장 연구문제)

1. 교회에서 시편만을 찬송하기로 결정했다면, 당신이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인가?

2. 예배 속에서의 악기와 춤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것은 성경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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