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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강 (제10장) 예배에서의 음악
이드보라  2018-07-21 09:25:36, 조회 : 157, 추천 : 59

제 10 장
예배에서의 음악


예배 안에서의 음악에 대한 논의는 오늘날 논쟁되고 있는 하나의 큰 주제이다.


- 왜 음악을?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말할 뿐만 아니라, 노래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대상 16:9, 시 33:2-3, 골 3:16) 따라서 음악은 예배의 중요한 부분이다. 음악은 발음되어진 단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인간의 언어는 일종의 음악적 성격을 띈다. 리듬과 음질, 그리고 높고 낮음은 음악적인 언어들에 뿐만 아니라 언어소통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언어들은 음악적이다. 자연적인 음악을 잘 다듬어진 멜로디와 화음들, 그리고 악기들로 보강시켜 주면, 우리의 말은 종종 새로운 종류의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모든 언어적 의사소통을 ‘넓은 의미’에서 음악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멜로디와 화음, 리듬의 사용들로 보강된 언어들은 ‘좁은 의미’에서 음악이라 할 것이다. 그러한 좁은 의미에서 멜로디, 화음, 그리고 리듬은 분명히 의미의 전달매체가 된다. 이번 장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좁은 의미’에서의 음악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읽혀지고 선포될 때, 그 말씀은 음악적인 특징을 지닌다. 하나님은 때때로 그것을 좁은 의미의 음악으로 고양시키라고 명하신다. 많은 성경의 시들, 특히 시편의 시들은 원래부터 불려지기 위해서 기록된 것들이다. 시와 음악적 형태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고양시켜 준다. 특히 시적, 음악적 형태들은 하나님의 말씀들에 생생함과 기억성을 증대시켜 준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말씀을 집어 넣어주고, 우리로 하여금 찬양과 순종으로 나아가게 한다.


성경의 초기의 시들은 창 1:27에서 인간의 창조에서 나타난다. 또한 결혼제도(창 2:23)에서도, 저주와 구속의 약속들을 줄 때에도(창 2:14-18), 라멕의 교만한 살인의 태도에서(창 4:23-24), 하나님께서 노아와(창 8:22, 9:6, 25-27), 아브라함과(창 12:2-3), 그리고 하갈과(창 16:11-12) 맺은 언약에서, 이삭이 야곱을 축복할 때(창 27:27-29)와 에서를 축복할 때, 그리고 야곱이 그의 아들들을 축복할 때(창 49장)에 나타나고 있다. 출애굽 할 때에 모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역사에 대한 산문적 내용을 노래로 표현했다(출 15장). 후에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한 노래를 주시는데, 그 노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통해서 받은 언약을 파기했을 때(신 32장), 그들에 대한 그의 증거였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구속의 노래의 긴 역사는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들 속의 음악의 사용은 현대의 음악과 매우 다르다. 오늘날의 시대에는 음악을 주로 오락을 위한 차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중대하고 지속적인 중요성을 띈 일들이 발생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전형적으로 시적으로 표현된다. 어떤 제도의 확립이나 언약의 약속들, 축복과 저주들, 그리고 예언들까지..고대의 근동사회는 기록된 문서들의 보급이 적고 문맹율이 높았기 때문에 글보다는 시와 음악을 통하여 더욱 사람들에게 쉽게 기억되게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예배 안에서의 노래가 문서보다 덜 중요하다고 결론지어서는 안된다. 인쇄술과 매체들이 보급됨으로서, 노래의 중요성이 약회되었을 수 있으나, 노래가 지니는 생생함과 기억성의 중요성은 여전히 그 의의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심어주기를 원하신다(시 1편, 119:11, 34. 36, 69, 골 3:16). 음악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생생하고도 기억될 수 있도록 만들어줌으로서, 그의 말씀을 더욱 강화시켜 준다. 성경에서 음악에 대한 많은 언급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교회 역사 속에서도 부흥은 항상 교회를 위한 음악의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냈다.


구원과 찬양은 함께 간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입술을 정결케 해주며, 우리의 입술을 열어 그 분을 찬양하게 해주는 것이다(시 51:14-15, 12장, 사 6장, 습 3:9-13). 또한 우리는 음악의 중요성을 그것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만 제한해서는 안된다. 분명히 예배에는 수평적인 차원이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덕을 세우기 위해서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수직적인 차원은 더욱 두드러진 측면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예배하는 우리들은 음악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기쁘게 한다. 성경이 음악에 대해 말하는 가장 놀라운 사실중 하나는, 우리가 찬양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찬양하신다는 사실이다(시 22:22, 습 3:17, 롬 15:9). 우리의 하나님은 찬양하시는 주님이시며, 우리와 함께 우리를 승리의 찬양속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음악은 무슨 역할을 하나?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기능의 범위 안에서, 음악은 시편과 바울의 서신들 속에서 보아 알듯이 많은 구체적인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 찬양, 감사, 간구, 죄의 고백, 믿음의 고백, 애도, 축복의 선언, 그리고 가르침의 내용들이다. 음악은 예배속에서 다른 요소들과 구별되는 하나의 요소가 아니다. 음악이라는 강력한 도구는 어떤 주의력과 섬세한 감각을 가지고 사용되어져야 한다.


- 왜 오늘날 그렇게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는가?


현대의 교회들 속에서 왜 그렇게 음악이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는가? 한 가지 이유는 단순이 음악이 예배의 기본적인 측면이기 때문이다. 만약 넓은 의미의 음악이 예배 가운데 배어 있으며, 좁은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 속에 심어 주시려고 그것을 제공했다면, 음악이 잘못될 때 어떤 중요한 것이 상실되고 만다. 음악이 하나님과 우리들의 마음 사이에 관계맺어진 그 연관성의 관점에서 볼 때, 특히 그러하다. 음악이 그 관계를 증진시키는 대신에 우리를 혼란케 할 때, 핵심적인 부분이 상실되고 마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논쟁은 교회 역사 속에 존재했다. 간혹 찬송의 가사들이 논쟁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찬송의 가사는 교회의 신학적 논쟁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또 어떨 때는 찬송의 곡조에 대해서 논쟁하기도 했고, 악기나 성가대와 독창자들에 대해서도 논쟁했다. 현대 미국 장로교회에서 음악에 대한 논쟁들은 전통적인 기독교회의 대중적인 예배에 대한 불확실한 태도, 음악적 성질에 대한 심미적인 관심, 세대차이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방식, 그리고 부흥에 대한 전통적인 장로교회의 불확실한 태도등을 반영해준다.


부흥의 시기에 교회는 언제나 찬송가 연구에 있어서 새로운 발전을 이루었다. 개신교회의 종교개혁은 루터파 진영에서 새로운 찬송을 만들게 했고, 칼빈주의 진영에서는 새로운 시편곡들의 편곡작업을 가능케 했다. 두 진영 모두 그들의 음악적 스타일과 때로는 세속적인 자료들로부터 빌려오기도 했다. 라틴어보다는 자국어들에서 가사를 전택했다. Louis Bourgeois의 시편곡들은 그 리듬의 성격 때문에 때로는 ‘제네바의 지그(빠르고 활발한 무곡)’라고 비난받기도 했다. 우리는 개신교의 종교개혁이 예배 안에 좀 더 대중적인 음악의 방식의 도입을 가져오게 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개혁자들에게 있어서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뿐 아니라, 예배자들에게 의미있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개혁운동 밖에 있던 이들은 때로 그러한 새로운 음악을 부적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700년대에 웨슬리 형제들과 윗필드에 의해서 주도되었던 복음적 부흥운동은 새로운 음악들을 쏟아냈다. 시편에서도 개인적인 구원의 경험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만, 새로운 찬송가들에서 옛 찬송가보다 더욱 두드러지게 이러한 것을 드러냈다. 어떤 장로교인들은 새로운 음악들에 대해서 반대하고, 시편만을 예배에 적합한 것으로 본다. 그들은 그러한 찬송들이 너무 주관적이며, 대중적이고, 교리적으로도 신뢰할만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19세기 말에도 복음적 음악들의 범람에 대한 논쟁들이 전개되었는데,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의 전환된 음악과 대중적인 음악적 스타일의 전환 등에 대해서 비판을 했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Youth for Christ와 Young Life 와 같이 젊은 이들을 복음화하려는 새로운 조직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당시의 젊은이들의 언어를 사용하여 노래를 만들었고 기성세대들은 당황해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1960년대에 반문화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되었다. 그 운동도 그 시대의 대중적인 음악적 방식들로서 ‘성경 찬송’, ‘합창곡’ 등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의음악도 본질적으로 같은 비판을 받았고 오늘까지 이러한 비판들은 계속되고 있다. 역사 속에서 부흥이 일어날 때마다 그 세대의 음악이 유입되고, 또 다시 기성세대의 반감이 일어나는 것은 반복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반응은 최근에 와서 더욱 자주 발생한다. 변화의 발걸음은 현대적 통신수단에 의해서 더욱 빨라지는 듯 하다. 음악의 영역에서의 변화등에 대해 몇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1. 교회 음악 속에서의 발전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예배란 이해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따라서 일상적인 자국어이며 또 대중적인 것이어야 한다는(고전 14장) 성경적이고 종교개혁적 원리를 적법하게 반영해준다. 교회가 이러한 원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교회는 새로운 세대들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하여 음악적 스타일과 언어에 있어서 변화를 격려하게 될 것이다.

2.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어떤 이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해도를 증진시킬 수 있겠으나, 구 세대들은 상실감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이의 찬송은 예배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대화의 언어이기 때문에 그가 불러왔던 찬송을 내버리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닐 것이다. 젊은 세대들은 기성 세대들의 상실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자신들의 욕구를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된 이들의 영적 필요에 맞춰드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의 음악적 변화를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그들또한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이해될 수 있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의 형태이며, 그 형태들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게 될 것이다. 이점에서 양자들은 모두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서로에게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

3. 찬송에 있어서 주관성은 그 자체로서는 잘못이 아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배에는 수직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수평적인 차원도 있다. 예배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부름을 받았으며, 동시에 서로서로 덕을 세우라는 부름도 받은 것이다. 음악의 중심적인 기능들 중에 하나는 마음의 종교성을 격려하는 일이다. 그리고 실로, 개인적인 구원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종교개혁 이후로 개신교 예배에 중심적인 것이 되어왔다. 그러나 그러한 관점이 하나님에게 영광돌리는 것에 대한 우리의 일차적인 초점을 흐리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4. 신학적 정통성에 대한 관심은 전적으로 정당한 것이다. 예배의 찬송은 그 내용에 있어서 성경적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새로운 스타일의 찬송들의 내용이 신학적 기준들에서 벗어날 때, 적절한 반응은 그 새로운 스타일을 내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찬송들을 성경적으로 건전한 방식으로 만들어 편집하는 것이다. 우리는 찬송의 신학적 내용을 평가함에 있어서 합리적이고 공정한 태도를 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1) 찬송은 시이며 산문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시가 교리들을 완전히 문자적 방식으로 진술해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2) 시가 어떤 특별한 주제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잘못이다. 성경 자체도 각각의 구절만으로는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5. 신학적인 ‘풍부함’에 대한 관심은 더욱 애매하다. 찬송가의 새로운 운동들은 처음에는 단순화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더욱 발전한 후에는 더욱 복잡한 시와 음악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음악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찬송의 오래된 방식이 새로운 방식의 찬송보다 더욱 풍부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예배 안에서는 복잡한 찬송과 단순한 찬송 모두가 있어야 하는 정당성이 주어진다. 시편 68, 69, 119편의 내용들을 시편 23, 117, 131, 133편의 내용들과 비교해 보라. 더 나아가 예배자들의 이해도를 위해서, 회중의 지적, 영적 성숙도를 감안하여 복잡성의 차원을 조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6. 음악의 질에 대한 논의도 주의 깊은 사려가 요구된다. 바하의 B단조 미사곡은 객관적으로 ‘주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의 찬송가보다 더 나은 음악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음악의 질은 음악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유일한 잣대는 아니다. 우리는 또한 그 본문의 적절성을 고려하여, 본문과 곡조와의 관계 그리고 예배자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 음악적 언어들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적 찬양곡들과 합창곡들이 음악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것들이라고 지적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획일적으로 일반화시킨 평가이다. 최근의 노래들 중의 어떤 것들은 과거의 전통적인 어떤 찬송들과도 동등한 음악의 질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물론 이와 같은 고려는 시적인 자질과 문학적인 자질에도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7. 예배에 있어서, 경외심과 기쁨에 관한 관심도 성경적으로 적절한 부분이다. 젊은 세대들의 음악이 언제나 구세대들에 의해서 부적절한 것으로 비판받는 경향이 있고, 반면에 구세대들의 찬송은 젊은 세대들에 의해서 기쁨과 생명력이 결여된 것으로 비판받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세대간의 차이는 세속적인 음악의 범주 안에서도 유사한 모습을 띄게 된다. 이러한 방식의 구조가 반복되는 것은, 우리들의 불평들 중의 어떤 것들은 하나님께 대한 적절한 열심과는 다른 요소들에 기초되어 있는 것일수도 있음을 암시해 준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내용은, 인간의 언어들도 같은 의미들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다를 수 있는 것과 같이, 음악적 언어들에 있어서도 차이점들이 있다. 어떤 전통에서는 기쁨을 주로 장조와 빠른 곡으로 표현하지만, 다른 전통에서는 그렇지 않다. 어떤 전통에서는 경외심을 오직 느린 박자에서만 표현하지만, 다른 전통에서는 그렇게 제한하지만은 않는다.


예배에서의 음악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우리들의 마음에 심어주시는데 사용되는 가장 좋은 도구들 중의 하나이다. 신비로운 방법으로, 우리가 예배 찬송에 대해 우리 자신의 결정을 내리는 것도 중요하다. 하나님은 음악에 대한 그 분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가 그러한 결정들을 내리기를 원하시며,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의 형제 예배자들의 심령에 주어질 수 있는 언어들을 말하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들에 더욱 동정적이 될 수 있고,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기꺼이 섬기려는 자세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찬송은 서로에 대한 성숙한 사랑으르 표현하는 것이 될것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게 될 것이다.



(제 10장 연구문제)

1. 찬송가의 역사에 있어서, 세대 간의 격차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에 대해 설명하라.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찬송가는 언제나 교리적으로 정통적이며 신학적으로 풍부한 것이어야 하는가? 또는 음악적으로 시적으로 최고의 자질을 갖춘 것이어야 하는가? 생각을 말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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