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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임 바울  2018-01-06 16:27:36, 조회 : 81, 추천 : 7

                                                             제 4 장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보이지 않는 교회( Invisible church)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보이지 않는 교회에 대한 생각은 먼저 성 어거스틴에 의해서 깊이있게 발전되었다. 보이는 교회( visible Church 또는 유형교회 )와 보이지 않는 교회( Invisible Church 또는 무형교회)를 구분하였다. 어거스틴에 의한 구별은 종종 오해되어왔다. 유형교회라는 말에서 그가 의미했던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기관으로서 교회였다. 출석부에는 회원들의 목록을 갖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을 볼 수가 있다.


        우리가 무형교회를 살펴보기 전에,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 교회를 가야 하는가? 당신이 육체적으로 갈 수 있다면, 교회 출석은 천국에 가기 위한 요구사항인가? 매우 전문적인 용어로서, 그 대답은 “ No"이다. 그러나, 우리가 몇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함께 모이는 것을 폐하지 말라고 그의 백성들에게 명령했다( 히 10:25-27 ).


[히 10:25-27]   (25)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26)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세웠을 때에, 그들을 보이는 나라로 조직하였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 백성의 국가적 형태가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로 바뀌듯이, 하나님이 족장과 언약을 맺으시던 가족 형태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신약 교회로 바뀐다- 교회 by 에드먼드 클라우니, IVP, p 251).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단체적인 예배를 드리도록 거룩하고 순수한 의무를 그들에게 부과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그는 다른 성도와의 교제(코이노니아) 즉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른 하나님의 예배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다.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그리고 의도적으로 그들에게 참여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 사람이 진심으로 회심했는가에 대한 심각한 의심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 사람은 새로운 기독교인이기에 그런 입장을 취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럴 가망성은 거의 없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은 우리 자신의 회심에 대해서 자신을 속일 수 있다. 기독교인이라고 자칭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의 신부를 멸시할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고집스럽게 그리고 끈질기게 그가 우리로 하여금 참여하도록 명령한 곳에 즉 유형 교회에 나가지 않을 수 있는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마음으로 경고를 한다. 사실, 당신의 영혼 상태에 대해서 당신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무형교회는 때때로 보이는 교회와 정반대되는 어떤 것으로서 오해를 한다. 유형교회 밖에 있는 어떤 것 또는 유형교회에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서 그릇되게 알고 있다. 어거스틴은 이런 범주로서 생각하지 않았다. 어거스틴은 무형교회는 유형 교회안에서 본질적으로 발견된다고 말했다. 두 개의 동심원을 상상해보자. 첫 번째 동심원은  그 위에 유형교회라고 쓰여있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유형적이고, 인간의 눈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제도적인 교회이다. 또 다른 동심원으로서 무형교회는 유형 교회안에 본질적으로 존재한다. 보이는 교회의 회원이 아닌 몇몇의 사람들이 무형 교회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적은 숫자이다.


        왜 어거스틴은 무형교회에 대해서 언급을 했는가? 신약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신실하기 위해서 이렇게 했다. 교회는 섞인 몸( Corpus permixtum)이라고 가르쳤다. 무슨 뜻인가? Corpus는 몸이라는 뜻이다. Corpus Christi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Corporation라는 말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Corpus Permixtum은 교회는 섞인 몸이라는 뜻이다.


        제도적인 교회라는 보이는 영역안에서, 참된 신자가 있지만, 또한 유형 교회, 즉 제도적인 교회에는 불신자도 있다. 그들은 교회안에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지않다. 그들의 신앙고백은 거짓된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마 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스라엘 안에는 참된 성도가 아닌 사람들이 있다. 바울도 유사한 말을 하였다;


[롬 9:6]   (6)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그들은 예식을 드렸다. 그들은 유형 교회 공동체의 회원이다. 그들은 모든 교회 활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이방인이고 외국인이다.


        신약에서, 예수님이 이 점에 대해서 사용한 은유는 알곡과 가라지의 은유이다. 가라지는 잡초이다. 이 은유는 농경사회에서는 단순한 것이다. 밭에서 최고의 농작물을 수확하기 위해서, 농산물보다 더 쉽게 자라는 가라지를 최소한의 숫자로 줄여야 한다.


[마 13:24-30]   (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예수님은 교회에 경고를 하기 위해서 이런 은유를 사용하였다. 한편으로, 교회의 순수성을 파괴하는 이런 잡초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징계권을 사용하도록 요구하신다. 또한 그는 교회 징계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교회를 순수하게 하기 위한 열심 때문에 가라지와 함께 있는 알곡을 뽑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장을 보신다(렘 17:10). 나에게 보이지 않는 것은 사람의 영혼이다. 우리는 그들의 신앙고백을 들을 수 있다. 나는 그들의 삶을 목도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것에 있는 것들을 알지 못한다. 나는 영혼을 볼 수가 없다. 나는 마음을 읽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읽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의 상태가 그 당시에 어떤 지를 정확하게 안다. 나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에게는 보인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이 갖고 있는 제한된 인식과 다른 점이다.


[요 2:23-25]   (23)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누가 무형 교회안에 있는가? 어거스틴에 의하면, 참된 성도 모든 사람이 여기에 속한다. 물론, 어거스틴에 의하면, 모든 선택받은 자들은 참된 신앙을 가지기 때문에, 어거스틴은 선택된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참된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선택된 사람들의 숫자에 들어가 있다( 요 10:24-30). 따라서 무형교회에 대해서 그가 말할 때에, 그는 선택된 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이다.


[요 10:24-30]   (24)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2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잔 칼빈은 무형교회를 미지의 세계속에서 상상적인 어떤 것이나 삶으로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어거스틴을 따르던, 칼빈은 무형교회는 유형 교회안에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무형교회를 보이게 하는 것이 유형교회의 본질적인 임무라고 말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칼빈은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이 제시한 질문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그때에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 1:7-8)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이 진술은 기독교인들의 횡설수설 때문에 종종 오해되었다. 어떤 기독교인이 “ 증인이 되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주어지는 답은 “ 그리스도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말을 하라는 것이다”이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거짓이 아니다. 복음주의는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유일한 형태는 아니다. 증거하는 목적은 숨겨져 있는 어떤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왕국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임무라고 칼빈은 말했다. 먼저, 복음을 선포함으로서, 즉 전도를 함으로 이 일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왕국을 만듦으로서 이런 일을 하기도 하고, 세상에 공의를 보여줌으로서 이런 일을 한다. 또한 세상에 긍휼을 베품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이 왕국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세상에 보여줌으로서 이런 일을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영의 삶을 모든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선한 일을 나타냄으로서 이런 일을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하고, 그의 왕국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


        유형교회와 무형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에 위험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들이 무형 교회안에 있다면, 그들은 비밀스러운 기독교인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신약의 명령은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인이 되라는 것이다. 복음의 빛을 비추는 것이고, 그의 왕국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환경속에 있던지, 어떤 곳에 있던지, 어떤 세대에 속하던지 교회는 항상 가시적이며 믿을만 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그들의 등불을 잃어버릴 수 있으며, 교회가 되는 일을 멈출 수 있다. 교회도 배도할 수 있다. 교단도 배도할 수 있다. 전체 기독교가 무형교회를 떠날 수 있으며 더 이상 참된 교회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여러분은 무형 교회의 회원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무형교회는 항상 연합을 즐길 수 있는 교회이다. 무형 교회의 연합과 교회의 경계와 교단를 뛰어넘어 연합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접붙임 받을 때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무형 교회의 회원이다. 이런 연합은 이미 거기에 있으며 어떤 것도 그것을 파괴할 수 없다. 우리가 무형 교회의 연합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유형교회의 참된 연합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연 구 문 제 >>

1. 유형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2. “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3. 무형교회란 무엇인가?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4. 증인이 되는 목적은 “ 숨겨진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잔 칼빈은 믿었다. 무슨 뜻인가?

5. 무형교회와 유형교회의 관계를 동심원으로 그렸다. 이것을 나의 말로 설명해보라.

6. 왜 교회는 섞인 몸이라고 했는가?


p.s. 이 글은 R.C. Sproul의 " What is the Church " 제 4 장 " Visible and Invisible" Kindle edition를 번역한 것입니다. 오류나 수정사항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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