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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13강 제 10 장 생명보호 : 여러가지 문제들(1-2)
임 바울  2016-11-14 11:18:17, 조회 : 827, 추천 : 171

                            제 10 장 생명 보호 : 여러 가지 다른 문제들(1)


A. 안락사 (Euthanasia)


1. 문제


        “Euthanasia”라는 단어는 헬라어 eu (good= 좋은, 선한)"와 thanatos (death=죽음)이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그래서 때때로 사람들은 이것을 “좋은 죽음, 선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것은 용어의 의미를 오해하도록 만든다. 때때로 이런 절차를 Mercy Killing(안락사술, 자비의 죽음)이라고 불리운다. 이런 절차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오해를 일으키는 용어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노인이나 또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의미한다.  안락사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 의도적으로 노인이나 또는 죽어가고 있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정부는 제정해야 하는가?”


        종종, 이 문제는 장기간의 고통을 겪는 불치병의 환자나 또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소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또한 혼수상태 또는 심한 치매 (dementia)때문에 정신적인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과 심한 상해, 질병 때문에 회복할 소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환자의 경우에 일어나는 문제들이다. 이런 경우에 법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2. 관련된 성경의 가르침


a. 살인을 반대하는 명령


        이 사항에 대해서, 주요 성경적 가르침은 십계명에서 발견된다;

[출 20:13] 살인하지 말지니라


        마 18:19, 롬 13:9절에서 단언된, 이 명령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이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는다, “살인하지 말라. 그러나 80살 또는 90살 이상 먹은 사람은 예외이다. 또는 불치병을 걸린 사람이 죽기를 원할 때에는 예외이다.”


        살인을 반대하는 명령은 태아 때에 낙태를 금지하는 것처럼, 인생 마지막 단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의도적으로 빼앗는 것 또한 금지한다.


        출 20:13절에서 “살인”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계획된, 고의적인 살인’을 포함한다.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의 죽음을 야기하는 것도 포함한다. 이 용어는 항상 사람에게만 적용이 되는 것이지, 동물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성경적 명령은 다른 사람의 생명, 즉 노인이든, 불치병에 걸렸든, 또는 심한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을 막론하고 금지한다.


        특별히 의미심장한 또 다른 성경구절은 삼하 1;1-16절의 말씀이다. 사울 왕이 전쟁에서 죽음으로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다. 사울 죽고 며칠이 지난 다음에, 한 사람이 다윗에게 와서 사울이 심하게 부상하였고, 사울 왕이 자기를 죽여 달라고 간구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사울 왕을 죽였다고 설명을 하였다. 여러 면에서 이것은 “안락사”의 행위와 유사하다. 그러나 다윗의 반응은 이것을 했다고 주장한 그 사람을 사형에 처했다.

삼하 1:1-16


        이 상황은 사람들이 안락사가 정당하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예와 매우 유사하다;

        (1) 환자(사울)는 불치병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회복할 근거가 전혀 없다. 그는 자살을 시도하기 위해서 그의 칼에 엎어졌기 때문이다( 삼상 31:4-5).

        (2) 환자는 심한 고통 중에 있다. 그리고 죽지 않는다면, 더 큰 고통을 당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3) 환자는 분명하게 요청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 자신을 죽여주기를 빌기까지 하였다.

        (4) 이 요청은 또한 그 당시에 정부의 최고지도자인 왕 사울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보여졌던 (삼상 13:14, 행 13:22) 다윗은 이 일을 한 사람은 사형에 해당하다고 판결을 내렸다. 다른 말로 하면, 안락사를 실행한 사람은 살인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대한 세 가지 반대가 예상된다;

        (a) 사울을 죽였다는 아말렉인에 대한 이야기는 사울의 죽임이 보도된 삼상 31:3-6절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아말렉인은 다윗의 적인 사울을 죽였다고 다윗에게 보이기 위해서 말을 꾸민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이라 할지라도 이 담화(이야기)의 뜻을 무효화시키지 않는다. 이야기가 가짜라고 하여도, 다윗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였고, 이 이야기에 기초해서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다윗은 그 사람이 했던 말에 죄를 정한 것이다. 성경 담화는 현명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다윗의 사형 결정이 안락사를 실행한 사람에게 적당하며 도덕적으로 바른 판단으로 돌리고 있다. 추가적으로, 아말렉인은 실제로 사울 왕이 입었던 왕관과 팔찌를 갖고 있었다. 사울이 그 자신의 칼에 엎드려져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울이 죽어가고 있을 때에 사울 주위에 있었던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아말렉인의 말은 참일 가능성이 높다. 단지 삼상 31장에서는 그 만큼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삼상 31:4절은 사울이 스스로 죽었다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렇게 하려고 했다는 말만 있다: “[삼상 31:4] 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다음 구절은 후에 병기든 자가 사울이 죽었음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아말렉인이 그 전에 사울왕의 죽음을 빼앗은 것으로 충분히 해석이 가능하다. 어떤 경우이든, 이 사건은 전쟁 중에 일어난 것이다.


        (b) 또 다른 반대는 사울이 왕이었다는 점이다. 다윗은 그를 “기름부음 받은 자”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경우는 안락사가 잘못되었다는 지지구절로서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단지 왕을 죽인 것을 잘못된 것으로 보고 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 반대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살인의 부당함은 신분 또는 희생자의 계급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인은 하나님이 반대를 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더 상세히 말하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생명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창 9:6). 왕이라고 해서 평민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동등하다. 그러므로 그것을 요청한 불치병이 걸린 왕을 죽이는 것이 잘못이라면, 그때에  그것을 요청하는 사람을 죽이는 모든 일들은 잘못된 것이다.


        (c) 최종적인 반대는 아말렉인의 죄는 살인이 아니라, 기름부음 받은 왕을 반역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실제적인 문맥과 다르다. 다윗은 반역 때문에 그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왕(사람)을 죽였다는 것으로 사형에 처하게 된 것이다. 아말렉인은 왕을 대적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는 왕이 내린 명령에 순종을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그의 죄는 살인이다. 다윗은 그것에 따라서 아말렉인을 처벌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담화는 “살인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안락사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함을 확인시켜준다.


        결론은 출 20;13절과 삼하 1:1-16절이 불치병에 걸린 사람의 생명을 적극적으로 빼앗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다.


b. 살인하는 것과 죽도록 버려두는 것(Killing versus Letting Die)


        “죽이는 것과 죽도록 버려두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죽이는 것은 사람의 죽음을 재촉하거나 또는 일으키는 어떤 일을 적극적으로 환자에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죽도록 버려두는 것은 다른 원인으로부터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그 과정에서 간섭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내버려두는 것이다(또는 허용하는 것이다). 살인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취해지는 행동이다.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죽음의 원인이 이미 죽어가고 있는 그 사람에게 일어나고 있는 질병, 상처, 또는 나이이다. 성경은 적극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반대하지만, 어떤 사람을 죽어가도록 내버려두는 경우에 대해서는 그 결정이 매우 복잡하다.


        우리는 간섭을 해서 회복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회복의 합리적인 소망이 보일 때에 그리고 도와줄 수 있을 때에 죽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순종하는 것이다, “ [마 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그리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더군다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심하게 상처를 입은 사람을 도와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한 제사장과 레위인을 심하게 책망하고 있다(눅 10:30-37).


        한편, 회복의 소망이 없고, 그리고 죽도록 허용되는 것이 환자의 소망이고, 그리고 (혹은 또는) 우리가 도와줄 수 없는 경우에(예를 들면 불타는 차안에 사람이 갇혀있을 때에, 또는 복잡한 의학 처방의 비싼 비용의 여유가 없는 경우에), 그때에 죽도록 허용하는 것은 옳은 것일 수 있다. 이것은 적극적으로 어떤 사람을 죽이는 것과 도덕적으로 구별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죽도록 허용하는 것은 산소 호흡기를 작동하지 않거나 또는 제공하지 않는 것을 포함한다. 때때로, 성경에서 그들의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인식하는 예를 볼 수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 자신의 삶을 맡긴다(눅 23:46, 행 7:59, 창 49:33, 히 2:15, 고전 15:55-57).


         추가적으로, 현대 의학은 불치병 환자의 고통을 격감시키는 일에 사용되어져야 한다(마 7:12, 22:38). 오늘날 대부분의 경우에, 몰핀이나 오피오이드(OPIOID)와 같은 약들은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에 계속되는 고통이나 심한 고통에서 사람을 보호해줄 수 있다.


3. 성경이외의 이성이나 증거에 의한 논증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노인이나 불치병 환자를 죽이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일반적인 확신을 특별한 사건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노소, 강한 자나 약한 자, 좋은 건강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나쁜 건강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닌가?  이런 사항 중에 어떤 것도 인간으로서의 신분을 바꾸어서는 안된다.


             일단 시작하면 막을 수가 없다는 비탈 경사면(slippery slope)의 관점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안락사가 고통을 당하는 어떤 환자에게 허용이 되면, 그때에 고통을 당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게 된다. 노인이나 불치병 환자를 치료하는 비싼 의료비로 인해서, 그들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설득하는 일들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사실, “의사가 도와주는 자살”을 허용하는 나라들은 그 사회구성원들이 노인이 ‘죽을 권리를 허용하는 것’에서 ‘죽어야 한다’는 의무로 빠르게 바뀌는 것을 보게 된다. 특히 많은 재원들을 사회로부터 소모하는 불치병이 걸린 사람들로 하여금 죽도록 압력을 가하는 여론이 조성되는 것을 본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노인들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죽게 될 가능성도 일어나게 된다.


        네덜란드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악명이 자자하다. 이 나라에서 많은 노인들이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죽은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네덜란드 성인 안락사 심사 위원회에 의하면, 매년 약 2000명의 노인들이 진정제와 죽음을 초래하는 약의 투입으로 안락사가 되고 있다고 한다. 국제 안락사 반대 변호인 Wesley Smith는 그 숫자는 실제로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수 십 년 동안 수집된 증거에 의하면, 본의 아닌 안락사가 성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락사 법제정을 거절했던 1997년의 판결에서, 미국 대법원은 1991년 독일 정부의 연구조사를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990년에 의사들은 분명한 요청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000건 이상의 안락사를 실행하였으며, 환자의 분명한 허락도 없이 과도한 모르핀의 투여를 한 사건이 4941건이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130,000명중에서 약 6000명의 사람이 본의 아니게 안락사를 한 것이 된다. 약 4%에 해당이 된다. 선택이란 항상 그런 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안락사 옹호자인 필립 니스키는 소위 자살을 유도하는 “평화로운 약”을 개발하였다. 그는 또한 어떻게 하면 자살을 할 것인가라는 강의하기도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살 권리가 있는 것처럼, 원할 때에 죽을 권리도 사람들이 가져야 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만나서 토의를 했던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생명이 거룩하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에게 속하였고, 자신의 삶을 중단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죄를 짓는 것임을 믿는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 나의 생각에 동의를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 자기가 죽을 때에 겪게 될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사람들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구속적인 고통을 통해서 천국의 문을 조금 더 열려고 한다면, 그것이 그들의 믿음이라고 한다면, 언제든지 환영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를 가지도록 나를 강요하는 일에는 강하게 반대한다. 나도 그들처럼 믿음을 갖고 있다. 나는 생명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비탈 경사면은 또한 유아 안락사까지 확대된다. 2005년 9월에, 독일 정부는 부모의 동의하에 아이들의 생명을 멈추게 하는 안락사 정책을 확대하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심한 고통을 겪는 불치병을 갖고 있는 아이라고 판정이 났을 때에 “Gronican Prootocal”의 법령 하에서, 안락사가 허용이 될 것이다. “우생학 강의”라는 책의 저자인 크리스틴 로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덜란드의 안락사 승낙이 이제는 어떤 생명은 살 가치가 없다는 쪽으로 점차적으로 나아가는 것을 본다. 사실 유럽은 이런 방향으로 행해지고 있다. AP 연합통신에 의하면, 프랑스 의사의 73%가 유아 생명을 멈추게 하는 약을 사용하는 것을 인정하였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그리고 스웨덴에 있는 약 2-4%의 의사들이 똑같은 의견을 발표하였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마지막 논증은 불치병에 걸리거나 죽음에 이라는 부상을 판결을 받았다가 살아난 사람, 그리고 행복한 삶과 생산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간증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에 대한 최근의 예는 아리조나 Mesa에 살고 있는 제시 라메르즈이다. 그때에 그는 36살이었으며, 그와 그녀가 말다툼을 하고 있는 중에 무서운 교통사고가 났다. 사고 후 10일이 지난 다음에, 부인의 요청에 의해서 음식, 물, 항생제의 공급이 제거되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 죽을 때까지 보낼 호스피스로 이송이 되었다. 제시 누나의 끈질긴 요청으로, 법원은 음식, 물, 치료를 다시 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은 7일이 지난 다음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나서 제시는 놀랍게도 회복이 되었고, 2007년 10월에 병원에서 스스로 걸어 나와서 집에서 회복을 하였다. 2008년에 아리조나 주는 “제시 법령”을 통과시켰다. 의료 치료에 대한 본인의 소원을 전달할 수 없는 환자를 위해서, 결정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오류들을 막기 위한 법령이었다.


4. 반대들


        여기에서 요약된 입장에 대한 주요 반대는 다음과 같다 : (1) 인간의 자유, 심지어 자신의 생명을 끝내겠다고 선택한 개인적인 선택이라고 할지라도 보호될 가치가 있다, 그리고 (2) 불치병 환자에 의해서 겪는 고통과 좌절감을 완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것에 대한 응답으로, 다른 사람을 적극적으로 살인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면, 어떤 사람이 살인을 당할 것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이런 도덕적인 논증을 무효화시킬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삶에 좌절감을 느끼고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때에 우리는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옳다고 말해야 하는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면, 그때에 살인당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도덕적으로 옳은 것을 바꿀 수 없다. 여전히 사람의 생명을 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사람의 권리는 살기를 원하는 사람 그 자신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통과 좌절감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런 것들은 살인을 반대하는 도덕적 금지를 물리치기에 충분한 이유가 아니다.


        최종적인 논증은 다음과 같다 : (3) 돈과 의학적인 자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노인이나 불치병 환자를 죽여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그들은 돈과 의학적인 자원을 허비하지 않게 된다. 물론 이것은 젊은 사람이나 필요한 사람들에게 장기 이양을 하는 것을 포기시키는 것은 아니다. 노인이나 불치병 환자가 많은 의학적 치료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논증이다.


        이런 논증을 다르게 표현하면, 본질적으로 비용이 너무 드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돈이 많으면 더 많은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논증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이나 불치병 환자를 돌볼 만한 충분한 돈을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정당화하는가? 이것은 “살인하지 말라”라는 명령을 다음과 같이 바꾸는 것이다, “다른 곳에 돈을 쓸 필요가 없다면 살인하지 말라.” 이런 반대는 도덕적인 근거에 의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세 가지 반대는 기독교 세계관과 모순되는 관점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세 가지 반대는 인간의 생명의 존엄한,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의 도덕적 의미에 충분한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5. 정치적인 정책을 위한 추천하는 말

a. 살인을 반대하는 정부의 법은 안락사에도 적용이 되어야 한다.


        미국의 대부분의 주에서, 안락사는 여전히 금지되어 있으며, 살인에 대한 금지법을 그것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오레곤(Oregon State)주는 “존엄사의 법령”이 제정되어 있다. 이것은 의사가 도와주는 자살로서 1994년에 제정되었다. 이것은 1997년 제 9 순회 법정에서도 지지되었다.


        US 대법원도 이 법에 대한 재심청구를 거절하였다. 법원은 6:3으로 승인하였다. 2008년 워싱턴 시민들은 의사의 도움을 받는 자살을 합법화하였다. 한편, 1999년에, 미시건 의사인 잭 케보키안(Jack Kevorkian)은 어떤 사람이 자살을 하는 것을 도와준 것 때문에 기소를 당하였다. 미시건은 이 법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6. 이 문제의 중요성


        사회가 안락사에 대해서 취해야 하는 방향은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높게 보는가를 반영해준다.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얼마나 높게 보는가를 보여준다. 의사보조 살인이 합법화되면, 그 다음으로 인간 생명 보호의 의식이 약해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고령의 노인”들을 보고서 치료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노인에 대한 동정과 치료가 사라지게 된다. 노인들을 돌보는 일이 사회의 가치있는 회원으로서 보기 보다는 점점 부담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젊어서 죽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노인”이라는 소리를 언젠가는 듣게 될 것이다.


<<연구 문제 1 >> 모든 학생들이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1. 안락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2.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3. 안락사와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4. " 비탈 경사면"이란 무엇인가?



<<연구 문제 2>>

* 발표하는 방법
1. 이 글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합니다.
2. 이글의 내용을 평가합니다. 평가에서 저자의 틀린 점을 지적할 수 있고, 저자의 옳은 점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3. 나의 의견을 진술합니다. 이때에 자기의 삶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예로서 드는 것도 좋습니다.
4. 결론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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