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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강 : 제 4 장 죄를 즐거워한다면 여러분은 기독교인이 아니다
편 집 자  2018-09-04 16:23:17, 조회 : 76, 추천 : 25


제 4 장

죄를 즐거워한다면 여러분은 기독교인이 아니다


레지 화이트는 테네시 대학에서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계속해서 신기록을 갱신하며 선수생활을 하던 중 필라델피아 이글스로 이적했고 지금까지 이글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떠나갔다. 1993년 내셔널 풋볼리그(NFL)에 의해 자유로운 이적을 허락받았을 때, 그는 이글스의 재계약 요청을 뿌리치고 엄청난 돈을 제시하는 그린베이 패커스로 이적하고 말았다. 어떤 이는 그가 올바른 결정을 했다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레지 화이트는 그린베이 패커스로 가서 슈퍼볼 우승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글스의 유니폼이 아닌, 패커스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을 티비에서 보았을 때 정나미가 떨어져 티비를 꺼버렸다. 거의 20년이 지난 후에 그 고통은 결국 사라졌다. 많은 세월이 이 상처들을 고쳐준다고 생각했다.

여러분은 어떤 유니폼을 입고 있는가? 이 문제가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사람의 인생의 죄에 대해 생각해 보는데 도움을 준다고 믿는다. 기독교인이라고 자신을 부르는 것은 팀을 바꾸었다는 것과 같다.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새로운 충성의 대상을 가지고 있음을 모든 이 앞에서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옛날 팀을 위해서 플레이하는 선수가 있다면 어떻겠는가? 그 행동은 우리가 죄를 범할 때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하고 있는 짓이다.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사람에게 있어 죄는 낯선 배반이다. 하나님 편이라고 말하면서 사단의 편이 되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라. 모든 기독교인은 계속해서 죄와 싸운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죄에 대해 무심하고 안일한 태도를 취하는 것에 합당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조용히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여러분은 진실로 누구를 위해 플레이하는가? 만일 다른 팀을 위해서 플레이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사실상 다른 팀의 명단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죄를 사랑하는 한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 사단의 자식과 구원의 자녀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장에서 팀 이미지 대신 가족 이미지를 사용해서 말씀한다.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식을 비교해서 말씀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속해 있는 가족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방법으로 삶의 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요일 3:1-10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죄는 마귀의 전공과목이다. 요한은 마귀가 하나님의 원수로 ‘처음부터 범죄한 자’라고 말한다. 에덴동산 사건으로부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전체에 죄를 파급시키는 데 분주했다. 아담 타락 사건과 그 이후의 인류의 행보를 살펴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피조물에서 하나님이 파멸시키기를 원하시는 피조물로 롤로코스터를 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사단의 권세를 멸하기 위해서(요일 3:8), 우리의 죄를 없애려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그는 완전하게 성공하셨다. 속죄의 죽음을 통해서 죄 문제를 처리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느 누구의 고소도 받지 않는다. 사단도 우리를 고소할 기초를 상실해 버렸다(요일 1:7, 계 12:10).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가족으로 입양되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이 바뀌었다. 더 이상 사단의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다. 우리가 전에는 진노의 자식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엡 2“3).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정체성의 근본적인 변화를 말한다.

- 여러분은 여러분의 존재에 따라 행한다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성경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사단의 종과 하나님의 종이다. 이 쪽 유니폼이냐 아니면 저 쪽 유니폼이냐의 문제이다. 그리고 입고 있는 유니폼이 어떤 쪽인지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들의 삶 속에서 죄가 맡고 있는 역할을 보는 것이다.

- 죄는 사단 자식의 특징이다

죄는 마귀의 자식을 구별하는 표지이다. 소에 낙인을 찍는 것처럼, 죄는 소유권을 표시한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였으며(요일 3:8) 의를 행하지 않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10절). 사단의 자식은 죄를 짓는 행동이 자기들의 아비인 마귀가 하는 짓이기 때문에 죄를 범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는 없다. 가족은 닮는 것이다. 예수님은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고 말씀한다.

-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죄의 권능은 파괴된다

기독교인에게는 이와 정반대의 사실이 해당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소속이 바뀌었을 때, 죄와 우리의 관계도 바뀐다. 이전에 우리는 죄의 종으로써 동기를 부여받고 통제를 당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영 때문에 죄는 우리에게 힘을 불어 넣거나 우리를 움직일 권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죄의 권능은 파괴되었다. 사도바울은 롬 6:6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한다. 우리의 삶은 죄가 지배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할 때, ‘너희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인 척 하라’고 하지 않고 ‘너희가 실제로 명단에 들어있는 팀을 위해 플레이 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묻는다(롬 6:2).

- 새로운 순종

기독교인이 새로이 얻은 지배원리는 더 이상 죄가 아니다. 토머스 슈라이너는 이를 ‘새로운 순종’이라고 불렀다. 이 새로운 순종에 따라서 구원받거나 의롭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인들의 구원은 이 새로운 순종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즉 열매를 맺는다. 소극적으로는 옛 죄를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갈 5:22-24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선포한다. 적극적으로는 새로운 순종의 지배원리대로 살아간다. 성령 하나님께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광 오래 참음 등을 우리에게 제공하시어 참 변화를 일으켜 주신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그리스도가 미워하고 멸하려는 것을 계속 사랑할 길이 없다. 마귀를 기쁘게 하는 죄를 계속 묵인할 길도 전혀 없다.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엡 5:5-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갈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바울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고 권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종종 변명을 바라고,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속일 때에, 이 본문들은 ‘절대로 이 길을 가지 마시오!’라는 빨간 불빛으로 번쩍거린다. 죄는 기독교인의 새로운 정체성과 양립하지 않는다.

요한은 순종 테스트를 제시한다. 홀로 또는 친구와 함께, 교회나 가정에서 이 테스트를 해 보라.

요일 2:5-6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단 한가지만 묻고 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고 그리스도가 걷고 행했던 길을 따라 살겠는가? 만일 아니라면 바울이 제시한 경고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지 않는가?

누구나 죄를 범하는데, 누가 과연 기독교인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상상할 수도 없는 온갖 죄와 매일 씨름을 한다. 사도 요한도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요일 1:8-10)라고 말씀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된 후에, 자기들은 죄가 없다고 주장한 거짓 선생들이 초대 교회에 있었다.

우리는 이 퍼즐 조각들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 성경은 한 편에서 기독교인들이 죄에 대해 죽었고, 죄의 권능에서 자유하다고 말한다. 또 한편에서는 자신이 범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자는 거짓말쟁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모순된가? 요한일서 3장이 실제로 말하는 바를 더 면밀하게 고찰해 보자.

*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한다(6절).
* 범죄하는 자는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다(6절).
*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해 있다(8절).
*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9절).
* 그가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이다(9절).
*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다(10절).

각각의 사례들에서 나오는 동사인 ‘거하다’, ‘범하다’, ‘죄를 짓다’ 등은 모두 현재 시제이다. 이 모든 동사는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행동을 말한다. 요한은 죄에 빠지는 기독교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죄가 특징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요한은 의식적으로 죄안에 거하고, 의도적으로 죄를 범하고, 편안하게 죄를 짓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일상적인 행위의 유형과 방향은 사단이 아닌 예수님이다. 기독교인의 삶의 방식의 특징은 죄가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순종이다.

- 여러분은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모두 날마다 죄를 범한다. 그리고 죄에서 멀어지기를 원하여 애를 쓴다. 죄를 집계해 보았을 때, 기독교인들이 땅에서 가장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없다. 비기독교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같은 날 기독교인보다 덜 이기적이고, 덜 화를 내고 덜 째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참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속이는 사람 간의 차이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눅 15:11-24에는 탕자의 비유가 나온다. 이 비유는 기독교인이 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생각해 볼 때 특히 유익하다. 죄인이었던 둘째아들은 아버지를 모욕하고 방탕한 삶을 통해 유산을 탕진한 채 시궁창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우리들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상황과 동일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 죄에 대한 탕자의 반응을 특징짓는 세 가지 사실이 있고, 이 사실들은 참된 신자들이라면 누구나 보여야 할 특징적인 반응들이다.

- 전환

탕자의 전환은 그가 자신의 죄의 실상을 분명히 보게 되었을 때에 시작되었다. 얼마나 큰 바보였는지, 얼마나 비열했는지, 아버지 집에서 누렸던 기쁨과 비교해 보았을 때 더욱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는 스스로 돌이켰다’. 곧 정신을 차린 것이다.

기독교인은 죄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에 대해 살았기 때문에, 죄를 범할 때에 죄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죄안에서 편안하게 거할 수 없다. 잠깐의 쾌락 때문에 죄에 빠질 수 있으나 이내 후회와 실망과 수치의 감정에 사로잡힌다. 예수님을 진실로 따르는 자는 결국 탕자가 자기의 죄를 미워하게 된 것과 같은 순간에 이르게 된다. 죄에 대한 사랑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죄를 미워하게 된다.

* 회개
탕자는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회개에 대한 얼마나 놀라운 그림인가! 진정한 회개는 우리의 허물을 느끼고 인정하는 것 그 이상이다. 죄책을 고백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키고 예수님께 순종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믿음으로 예수님에게로 돌아서는 것이다.

* 징계
참된 기독교인은 궁극적으로 죄 안에서 자라갈 수 없다. 주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죄에서 떠나도록 도우시고 환경과 기회와 어려움과 징계를 내리신다.

히 12:7-11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에서 떠나게 하기 위해서 징계하신다. 우리 모두 죄인이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현세에서 온전한 거룩함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속지 말자. 참된 기독교인은 지속적으로 죄의 궤도를 따라 살 수 없다. 참된 전환, 회개, 징계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 정확한 과학은 아니다

여러분은 기독교인인가? 아니면 거짓 고백자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과학은 없다. 짓는 죄와 그 숫자에 따라서 기독교인이냐 아니냐가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님의 용서를 확보하기 위해서 죄를 범한 후에 어떤 의식을 거치는 것도 아니다.

평가하기 훨씬 어려운 것들, 곧 마음의 태도와 영혼의 의도와 헌신들이다. 우리가 얼마나 이 일에 대해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지,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데도 자신의 죄에 대해 참된 탄식과 회개의 증거가 있다고 상상하기도 하고 온갖 약점과 실패를 자기들이 위선자이며 거짓 기독교인이라는 증거로 판단내리기도 한다.

앞 장에서도 계속 지역 교회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 바 있듯이, 우리의 형제 자매들은 우리의 가치와 측정을 하나님의 가치와 측정에 일치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말씀을 함께 들으면서 하나님이 거룩하게 여기는 것을 나의 거룩하게 여기는 것과 일치시켜 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과 기쁘시게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해준다. 또한 지역 교회의 필요성은, 다른 신자들의 본보기를 주의하게 되면, 죄가 통상적으로 인정되고 심지어 자랑거리가 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통상적으로 만들고, 또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른 기독교인들에게 우리를 알려 주면 그들에게 우리의 삶에 대해 말할 기회를 주게 된다. 이런 식으로 다른 기독교인들은 곤란한 죄의 습관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하거나 우리가 지나치게 갈등에 압도되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 때, 격려한다.

- 크신 구주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거룩하심과 놀라우신 자비 사이에서 성경적인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죄악된 삶의 방식 속에 있으면서 그리스도인이라 신앙고백하는 스스로 속이는 자들이 걱정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죄에 대해 씨름하면서 실패할 때 하나님의 거친 폭발과 재앙이 임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염려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엄위하심과 하나님의 자비로움을 모두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며 우리를 새롭게 하신 예수님에게 달려가야 한다. 죄에 빠져 헤매일 때 예수님께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5-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부를 때 그것은 기독교 유니폼을 입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러분이 실제로 그 팀을 위해 플레이할 팀은 어디인가? 자신의 팀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팀인가?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 동료 교인들은 뭐라고 말하는가?

< 연 구 문 제 >

1. 영적 정체성과 죄에 대한 태도 사이에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2. 만일 하나님이 자비롭고 용서하는 데 발이 빠르시다면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

3. 만일 어떤 사람이 기독교인을 자처하지만 죄를 물리치고 거룩함을 증진시키는 데는 아무 관심이 없다면 성경은 그 사람에게 뭐라고 말하는가?

4.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바라는 단순한 이유에서 어떤 일을 행하거나 어떤 일을 행하지 않은 마지막 때는 언제였는가?

5. 여러분은 삶 속에서 전환, 회개, 징계에 대한 증거를 본 적이 있는가?

6. 요한복음 3:16을 읽어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무엇인가? 설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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