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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강 ; 제 3 장 단지 예수님을 좋아한다고 해서 기독교인인 것은 아니다
임 바울  2018-08-28 14:37:12, 조회 : 75, 추천 : 25


제 3 장

단지 예수님을 좋아한다고 해서 여러분이 기독교인인 것은 아니다


1996년, 존 레논은 하늘을 찌르는 인기행보에 ‘예수님보다 비틀즈가 더 인기 있었다’라고 자랑해 물의를 일으켰다. 당시에 유례가 없을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던 존 레논의 생명과 경력은 고작 50년 후에 호기심의 쓰레기통에 던져졌고, 나이키 광고의 사운드 트랙에나 나올 정도로 추락했다.


그가 비교했던 예수님은 어떠한가? 2천년 동안 예수님에 대해 말해 온 것은 둘째치고, 해가 갈수록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주간 뉴스 잡지에 예수님이 나오고, 영화 제작자들은 예수님에 관련된 영화가 종종 박스 오피스에서 좋은 순위를 기록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님의 이름은 사람들을 현금 등록기로 끌어들여 전체 사업을 주도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예수는 무엇을 먹었을까?’ 다이어트 상품으로 14.99달러만 있으면 메시야의 다이어트 비법을 찾을 수 있다. 1세기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먹었던, 감람나무 열매와 물고기, 무화과 나무 열매와 떡, 붉은 감초등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문구를 바닥에 새겨넣은 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해변가에서 발자국에 새겨진 메시지를 보고 즐거워한다. ‘예수님은 나를 으뜸으로 삼으신다’, ‘예수님은 내 강아지의 그릇을 채우신다’는 문구의 강아지 셔츠도 인기를 끌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은 인기가 많다. 티벳 불교의 핵심 지도자인 14대 달라이 라마는 예수님을 ‘해탈한 사람’이라 불렀고, 그를 대스승으로 선전했다. 힌두교 지도자인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님에 대해 ‘인내심이 강하고 친절하며 매우 사랑이 많고 용서의 마음으로 가득찬 온화한 성품으로 말미암아 그를 따르는 자들이 학대하고 때릴 때 보복 대신에 다른 쪽 뺨을 돌려댔는데, 그의 행동은 완전한 사람의 아름다운 본보기이다’라고 말했다. 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도 ‘나는 유대인이지만 나사렛 사람의 빛나는 성품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예수의 실제 임재를 느끼지 않고 복음서를 읽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예수의 인격이 모든 말 속에 고동치고 있다. 신화로는 절대 이런 삶을 채우지 못한다’고 했다. 심지어 코란도 예수님을 선지자와 하나님의 사자로 언급한다.


이것을 어떻게 간주해야 하는가? 예수님을 좋아하는 것이 여러분을 기독교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불교, 힌두교, 무슬림과 불신자가 예수님을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복음서의 기사를 보면, 예수님은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을 돌려세우며, 그들은 자기 제자가 아니며, 그들에게 뭔가가 빠져 있다고 말씀하신다(요 3장, 눅 9:57-62, 18:18-22).



- 여러분은 믿어야 한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그 분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이 말하는 것을 상고해 보자. 신앙과 믿음의 필연성을 가르치는 몇 가지 본문을 소개한다.


요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 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6:28-29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롬 3:21-25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참 기독교인이 되는 데 본질적이라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속죄와 죽음의 유익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온다고 말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말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참된 자녀와 단순히 예수님을 좋아하는 자들을 분리시킨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기독교인이 아니다.


성경은 믿음이라는 말을 어떤 뜻으로 사용하는가? 우리가 묘사하는 방법과 다르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어떤 주식이 이익금을 많이 가져다줄지, 구원투수가 9회말에 승리를 가져다 줄 것에 대한 믿음을 사용할 때도 이 단어를 쓴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분명한 사고와 합리적인 생각에 정 반대되는 것으로 믿음을 묘사한다. 모순된 증거에도 불구하고 확신하는 어리석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인의 믿음은 이런 것이 아니다. 영생과 영벌을 갈라 놓고, 객관적 내용과 진심어린 신뢰라는 두 가지 본질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 믿음이다.



- 객관적 내용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예수님에 대한 어떤 사실, 곧 그가 행하신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믿음은 객관적 내용위에 세워진다는 말이다. 구원하는 믿음은 대상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우리가 믿어야 할 믿음의 대상을 가르쳐준다. 사도 바울은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살후 2:13). 사람들이 참된 기독교인이 되고자 한다면 그들이 듣고, 이해하고, 인정해야 하는 믿음의 가지들인 어떤 교리들이 있다.


(1) 여러분은 죄인이다

우리가 믿어야 할 첫 번째 진리, 즉 객관적 내용의 첫 번째 항목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자들만 받아들이신다. 누가복음 5장에는 레위라는 이름의 세리를 자신의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이 기록되었다. 그는 가장 악한 죄인이었고 동포들에게는 매국노로 낙인찍힌 자였다. 정한 것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자기 호주머니에 착복하는 도둑놈이자 사기꾼이었다. 그런 그가 잔치를 벌여 예수님을 초대하였고 함께 앉아 먹고 마셨다. 이 모습에 경악한 바리새인들은 그들을 비방하며 물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놀랍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1-32).


예수님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 의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에게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기독교인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과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영은 가난해야 하고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요청에 응해야 한다. 예수님은 죄를 회개하고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를 누구나 받아들이고 고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영적으로 건강하다고 여기는 자는 위대하신 의사에게 고침을 받지 못할 것이다.


(2) 예수님은 온전히 하나님이신 동시에 온전히 사람이시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리가 믿어야 할 객관적 진리이다. 그는 온전히 하나님이시면서 온전히 사람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롬 10:9-10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말씀한다. 바울의 강조점은 단순한 고백의 양식이 아닌, 고백의 내용에 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라는 것을 인정하고, 믿고, 고백하고, 선포해야 한다.


‘예수는 주’라는 것은 그의 신성, 곧 신적 본성에 대한 고백이다. 의심쟁이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고 고백했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이심을 고백했다. 신약 학자인 래리 허타도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여호와 경배에 대한 표현’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다. 그의 신성은 오직 무한하고 죄가 없으신 인격이 우리의 죄의 무거운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본질적인 기독교 교리 중에 하나이다.

동시에 우리는 그가 온전히 사람이라는 사실 역시 믿어야 한다. 초대 교회 당시에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던 자들은 ‘하나님이 예수님의 인격을 통해 자기들에게 오셨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온전한 인간의 육체를 취하고, 인간 존재로 이 땅에 살고, 인간으로 고난을 겪고 죽을 수 있었던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렇게 자기를 낮추실 수 있단 말인가? 이런 혼란을 제거하기 위해서 사도 요한은 이에 대해 명확히 진술하여 교회에 제공했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2-3). 예수님이 온전히 하나님이셔야만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온전히 인간이어야만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 오직 인간만이 다른 인간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인류의 한 구성원이라야만 아담이 우리에게 가져온 저주를 풀 수 있다(롬 5:12-21). 기독교인은 예수님의 온전한 신성과 온전한 인상을 함께 고백하는 사람이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이 믿음을 거부하는 자를 기독교인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3) 신인(神人)이신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하신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행하신 일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를 신인(神人)으로 믿을 뿐 아니라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려고 오신 것을 믿어야 한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죄와 죽음의 저주를 받으셨다(갈 3:13). 그가 대신 받으신 형벌과 죄책 때문에 우리에게 남아있는 정죄함은 절대로 없다(고후 5:21, 롬 8:1).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으로 선포했다. 바울은 심지어 기독교 전체 메시지를 ‘십자가의 도’라고 지칭할 정도이다(고전 1:18). 이것은 객관적 사실이며, 그리스도를 진실로 따르는 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자기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데 충분하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의 진리를 인정해야 한다.


(4) 예수님은 죽은 자에게서 육체로 부활하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이 가지고 있는 관심의 여분이 아니다. 부활을 믿는 것은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의 중심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구원에 본질적 요소이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믿음도 헛것이다(고전 15:14).


왜 그리스도의 부활이 본질적인가? 부활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우리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서명’이다. 배달 온 물건을 받을 때 배달이 확실히 이루어졌으며 그에 대해 만족한다는 서명과 같이, 하나님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과 고난에 대해 자신이 만족하신 것을 보여주신다(행 2:22-36).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자신이 그런 분이라는 것과 자신이 와서 이루고자 한 구원을 확실히 이루셨음을 증명한다. 만일 하나님이 죽은 자에게서 예수님을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는다면, 여러분은 구원받게 될 것이다.


(5) 예수님은 주시다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 믿어야 할 또 하나의 중대한 항목은 예수님이 유일하게 정당하신 주님이라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이시며 창조주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나아가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최고 권세자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그 발 아래 복종하였고, 성부께서는 성자를 높이셨다. 바울의 인성과 신성, 고난과 부활, 그리고 권세에 대한 가르침은 빌 2:8-11에서 정확히 가르치고 있다.


빌 2:8-11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주님은 교회의 머리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은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세주’라는 사실이다.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의 진술이 모두 참이라는 데 동의하는가?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위의 교리들을 거부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없다.



- 그러나 의심은 어떻게 되는가

기독교인의 참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슬프게도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때때로 격한 믿음의 싸움을 벌일 때에 스스로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러야 하는가? 진실한 신자라도 의심과 싸울 수 있다. 많은 기독교인이 의심을 가지고 있고, 또 의심한다.


* 아브라함은 늙은 나이에 하나님이 자녀를 주시리라는 약속을을 믿었지만(창 15:6) 이후에 의심했다(창 17:17).

* 기드온은 믿음의 챔피언으로 제시되지만(히 11:32) 주님이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자 믿음을 갖기 전에 두 번씩이나 이적을 통한 확증을 요구했다.

*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메시야임을 알고 있었지만(요 1:29) 옥에 갇혀 있는 동안 자신이 잘못 판단한 것은 아닌지 의심했고, 예수님에게 악을 행하는 자들을 타도하는 일을 별로 행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눅 7:19-20).

* 베드로는 풍랑이 거세게 일 때까지 바다 위를 걸었다. 그러나 의심 때문에 자신을 물 위로 걷게 해주실 것이라는 주님의 권능을 믿는 베드로의 믿음이 사라졌다(마 14:28-31).


성경의 인물들 외에도 믿음의 많은 선진들이 각기 다른 시기와 규모에 따라 두려움과 의심으로 갈등을 겪었다. 때로 우리도 모든 사실이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여서 냉철함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우리가 지역 교회의 다른 형제와 자매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 있다. 우리의 시야가 잠시 흐려질 때, 의심이 들 때 우리를 돕기 위해 더 분명히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믿음의 교인들은 갈등이 있을 때, 단순히 믿음의 교리를 던져 버리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서로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를 신뢰하도록 격려하고, 예수님에게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라고 외친 사람처럼 부르짖어야 한다.


참 기독교인에 속한 성경의 가르침과 이를 객관적으로 체계화시킨 교리를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믿음이나 자기가 만들어낸 믿음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 자와 교제를 끊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따르는 자들과 교제를 하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 진심 어린 신뢰

참 기독교인은 어떤 명제들의 실제적인 진리성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성경적 믿음 또는 신앙이 일단의 진리 명제에 대한 지적 동의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하고자 했다. 성경적 믿음 또는 신앙은 사람 속에 있는 인격적이고 진심 어린 신뢰다. 진심 어린 신뢰는 어떤 것인가?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나에게 따를 것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그대로 할 것이다. 행복한 복종을 할 것이다.

사단과 귀신도 진리 명제에 대한 지적 동의를 한다(약 2:19). 귀신들도 ‘역사적 신앙’이라고 부르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도 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진리를 싫어하고 반대한다. 이 사실을 손상시키기 위해서 온갖 악을 저지른다. 반면에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행함으로 보여준다(약 2:22-23).


결함이 있는 믿음, 신뢰가 없는 지적 동의만을 가진 자들은 귀신들 뿐이 아니다. 사람들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의 이적을 보고 그를 믿는 무리들이 있을 때, 요한은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요 2:24-25). 무리는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온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헌신과 신뢰가 결여되어 있었다. 예수님도 그들의 마음의 실상을 알고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을 좋아한다고 해서 기독교인인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에 대한 사실적 진리를 믿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주를 필요로 하고, 예수님이 바로 그 유일하신 구주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의 신뢰를 이전에 일어난 일에만 두어서는 안 되고, 그 일을 이루신 인격에도 두어야 한다.



<연 구 문 제 >

1. 여러분은 참된 기독교가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일단의 종교적 교리 체계가 아닌 오히려 예수님이 그러신 것처럼 온화하고, 사랑을 베풀며, 자비롭게 되라는 요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2. 여러분은 이번 장에서 다룬 다섯 가지 교리들의 각각의 역사적 진리성을 인정하는가? 만약 인정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참 기독교인인지 여부에 대해 말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3. 여러분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구원과 용서에 대해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는가? 여러분이 신뢰해 온 거짓 ‘신들’은 무엇인가?


4. 요한복음 6:40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한다. 여러분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가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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