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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기도는 탄원서다 : 중보사역으로서의 기도 - 조엘 비키
김 에스더  (Homepage) 2019-03-05 13:55:14, 조회 : 157, 추천 : 55

제 4장 기도는 탄원서다 : 중보사역으로서의 기도 - 조엘 비키


        성경시대에서의 이름을 짓는 일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이나 특별한 의미를 담은 이름을 지어 주었다. 때로 하나님의 속성을 뜻하는 이름을 아이에게 지어주어, 하나님이 그 아이의 삶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 주시기를 바라기도 했다.


        예를 들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이름에는 모두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 다니엘 : “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이시다”
* 하나냐 : “주님은 은혜로우시다”
* 미사엘 :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냐?”
* 아사랴 : “주님이 도우신다”

단 1:6


        사무엘상 25장에 나오는 아비가일의 남편 나발은 “미련한 자”를 의미한다. 그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었으며, 실제로 그의 가족과 재산을 위험에 처하도록 하였다.

삼상 25:25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고, 베드로는 반석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요한은 “주님은 은혜로우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삼상 13:14
마 16:18
눅 1:13


        하나님의 이름은 더욱더 큰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의 존재(본질), 온전한 속성, 그리고 사역과도 관계된다.

출 3:14
딤전 1:17
히 13:8
시 72:17


        또한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이 자기 백성의 보호자요 피난처이심을 나타낸다.

시 20:1
잠 18:10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이름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찬양한다.

시 69:36
말 4:2
습 3:9
시 100:4


        성경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신앙과 예배의 가장 근본적인 행위로 설명한다.

창 4:26
롬 10:11-13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계시하신 진리와 그분이 택하신 백성의 구원을 위해 행하신 모든 일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인정함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영광스런 하나님의 이름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시작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일에서부터 기도를 시작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모든 진실한 기도의 출발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1. 기도의 출발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버지되심,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 그분의 거룩한 이름, 그분의 영원한 나라, 그분의 의로우신 뜻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우리는 우리에게 당장 중요한 것들, 즉 질병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다양한 삶의 문제로부터 기도를 시작해서는 안된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기도제목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먼저 생각하시고 우리의 모든 환란에 동참하시며 우리를 아버지와 같이 사랑으로 돌보신다.

시 8:4
사 63:9
벧전 5:7
시 103:1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기도할 때 우리는 반드시 이점을 기억하며 출발하여야 한다.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의 첫 번째 간구를 통해, 우리의 기도는 인간중심적일 때가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기중심적인 기도를 드리면, 우리의 필요가 채워질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만족감은 채울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실제로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널리 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첫 구절의 간구를 통해서, 우리가 기도를 시작할 때,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온전하심을 우리의 마음 깊이 의식하고 깨달아야 함을 가르쳐 주셨다.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예) 시 145편



2. 단순한 기도가 아닌 탄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이지이다”


        이런 구절은 하나님의 행위를 촉구하는 일종의 탄원서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종들이 충성어린 마음으로 그분께 간곡히 탄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사의 형태가 모두 수동태인 이유는 우리가 무엇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친히 행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요 15:5


        그러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무엇을 탄원하는 것인가?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엇보다도 주님을 올바르게 알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권능과 지혜와 선하심과 정의와 긍휼과 진리를 밝히 드러내는 주님의 모든 사역 안에서 주님을 거룩하게 여기고 영화롭게 하고 찬양하게 하소서. 또한 우리의 모든 삶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인도하시어 주님의 이름이 우리 때문에 모독 받지 않고 영광과 찬양을 받게 하옵소서(122문)”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세 가지의 탄원을 구할 수 있다.


첫째, 주님을 올바르게 알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고
둘째, 주님을 거룩하게 여기고 영화롭게 하고 찬양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구하는 것이며
셋째, 우리의 모든 삶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필요한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탄원은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온 인류에게 알게 하시어 사람들이 그 이름을 공경할 수 있게 해주시고, 사람들을 가르쳐 삶의 모든 것을 통해 그 이름을 기리고 찬양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3. 아버지여, 주님을 올바르게 알게 하소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려면, 먼저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올바르게 알 수 있는가?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서]는 “주님의 권능과 지혜와 선하심과 정의와 긍휼과 진리를 밝히 드러내는 주님의 모든 사역 안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성경은 곳곳에서 하나님의 사역이 그분의 권능과 선하심을 드러내고 있음을 증거한다.

시 19:1
롬 1:20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권능과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찬양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불의로 진리를 억압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고 그분께 감사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피조물을 경배한다.

롬 1:21-25


        하지만, 다른 한편에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선택받은 자들로서, 성령하나님으로부터 마음과 생각이 새로워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연만물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찬양과 경배를 드린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사역이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탄원은 예수님의 기도에서도 볼 수 있다.

요 12:28
요 17:1-3
요 17:11, 25
요 17:17,19


        성부는 성자를 영화롭게 함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다.

요 17:1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영광스런 중보사역을 하셨는데,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이미 영원 전에 약속된 것이었다.

요 17:5, 24
빌 2:9-11


        결국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탄원은 거룩하신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시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와 세상 만민에게 밝히 드러나기를 바라는 기도이다.


        또한 아들을 영화롭게 해달라는 그리스도의 기도에는 그분의 고난과 죽으심도 포함되어 있다.

요 13:31


        예수님이 십자가로 걸어가시는 동안 받으신 모든 고난과 고통과 죽음은 그분의 영광을 찬란한 빛으로 드러내었으며, 죄의 징벌로서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정의를 드러내셨고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성부하나님은 성자의 희생을 통해 자신의 모든 속성을 아름답고도 적절하게 조화시키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과 수치 그리고 위대함과 영광을 동시에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것은 무한한 선과 무한한 정의가 함께 조화를 이루었으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히 성취되었다.

시 85:10


        우리는 온 세상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탄원해야 한다. 또한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복음이 만민에게 전파되어 모든 나라와 족속이 주님 앞에 예배하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시 22:27


        그리스도는 그렇게 모인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심으로써 그들에게 성부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요 17:2,3


        결국 성부하나님이 성자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성자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에 성자하나님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비롯된다.


        선택받은 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하나님의 사랑과 의를 알게 되고 그분의 위엄과 긍휼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의 영광을 죄인들을 구원하는 성자의 사역과 영원히 하나로 만드셨기 때문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복음전도와 선교를 위한 탄원의 기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의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의 영광을 비는 기도가 아니다. 이 기도를 올바르게 하려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 기도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대로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하시고 그 영광스러운 이름이 중심이 되게 하옵소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 11:27


        기독교의 배타성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날의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런 다원주의 사상에 굴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이름과 명령이 배타적인 성격이 있음을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구원의 방법을 인정하기도 한다. 그들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없다”는 복음의 핵심진리를 외면하고 있다.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를 하면서, 우리는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셔야 하는 그 ”이름”이 사람들이 제멋대로 상상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에서 보여주는 그대로의 하나님이요 그분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본문 이해를 위한 문제>

1. 우리의 간구를 중심으로 기도를 드리게 되면, “우리의 기도가 채워질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만족감은 채울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 그런가? 설명해보라.

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의 구절은 “하나님의 행위를 촉구하는 기도문”이라고 본문은 설명한다. 하나님의 어떤 행위를 촉구하는 것인가?

3. 당신의 기도제목 중 하나를 선택하여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간구하는 의미를 담아 기도문을 써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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