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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하나님(D. A. 카슨) 제1부 제3장: 죄의 대가
이드보라  2018-10-01 12:13:19, 조회 : 104, 추천 : 22

제 3 장

죄의 대가



1. 성경의 ‘줄거리’


종종 우리는 어떤 물체에 너무 가까이 다가서는 바람에 그것을 잘 보지 못할 때가 있다. 나무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 발 뒤로 물러서야 한다. 나무껍질이나 나뭇잎에 대한 사소한 관찰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관찰한 것이 그게 전부라면 나무에 대해 모를 것이라는 뜻이다.

성경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의 ‘맥’, 곧 줄거리를 놓친 채 한 구절 혹은 한 권에 몰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기사를 시작으로 한다. 그가 만드신 모든 것에 대해 ‘매우 좋다’고 반복해서 평가하신다. 죄도 없고 고난도 없던 에덴동산은 첫 사람 아담의 반역 후에 고난과 수고, 고통과 죽음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단 두 장만에 ‘죽었더라...죽었더라...’라는 후렴구가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마지막은 궁극적인 승리와 회복, 즉 ‘의가 있는 곳’,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말씀하며 맺어진다.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다시는 사망과 애통이나 곡하는 것 그리고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는 때,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가는 때(계 21:3-4)가 ‘고난의 끝’이라면 이는 또한 ‘죄의 끝’이라고도 하겠다.

성경의 시작과 마지막의 사이에는 악과 고난이 존재한다. 성경의 큰 줄거리의 관점에서 이 두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다. 악은 고난의 주요한 원인이고 반역은 고통의 뿌리이며 죄는 죽음의 근원이라고 말씀한다. 선지자 이사야가 한없는 축복의 시대를 내다볼 때, 그 때는 한 없는 순결의 시대이며 하나님에 대한 깊은 지식의 시대이다.

사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이 말씀은 더 큰 그림과 연결된다.

사 2:2-3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성경의 풍성하고 신비한 모든 줄거리들은 이 틀 안에 들어있다. 홍수심판과 노아와의 언약,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의 이름을 두고 맺으신 언약, 이스라엘 국가의 건설과 시내산의 계시,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죽으심, 부활, 승천 등은 모두 인간의 반역과 그로 인한 비참의 결과로 말미암은 문제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분하는 도덕적인 악과 자연적인 악의 차이를 면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에서 볼 때, 두 종류의 악과 그로 인한 고난은 모두 죄의 결과이며, 반역의 결과이며, 따라서 도덕적 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 악 중의 악


세상에는 분명 악이 존재한다. 그로 인한 결과는 매우 비참하다. 이러한 악에 대한 인식이 점점 뚜렷해지면서 어떤 사람들은 ‘악의 뿌리가 우리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악에 대해서 정확한 성경적 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악에 대해 정의를 하지 않겠다면서 연구한 사람들도, 저술활동을 편 다수의 사람들은 제도적인 차원에서 행해지는 폭력과 탐욕, 정욕 등이 모두 근본적으로 인간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악 중의 악에 대해서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은 바로 성경이다. 성경의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죄의 가증함에 대해서 일관되게 말씀한다. 악은 미워해야 한다(롬 12:9). 그러나 악이 우리를 뒤덮고 있다. 바울은 곳곳에서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큰지, 하나님과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강조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악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조치는 그의 무서운 심판이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이는 우리에게 전혀 희망이 없다고 선포하고 있다.

악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기 때문에 악이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행하지 않거나, 하나님께서 금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 모두 악이다. 마음과 의지와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큰 악이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악이며, 다른 이의 소유나 아내를 탐하는 것도 악이다.

악의 여러 모양들은 하나님의 여러 속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악의 추악함은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의하여 결정되고 악의 더러움은 하나님의 순결하심에 의해 결정되며, 악의 이기심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악이라는 단어를 말 그대로 본질적이고 도덕적인 의미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이 때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라는 의미이다. 반면에 이 단어를 모든 고통과 고난으로, 첫 번째 의미인 본질적이고 도덕적인 의미에서의 악의 결과에 해당하는 모든 불행에 대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서 말하는 악은 인간의 반역에 대한 형벌의 일부분이다.

그 형벌 자체는 도덕적 의미에서 악인가? 성경적인 관점에서 그 대답은 ‘이중적이다’라고 말하겠다. 그 재앙들은 인간이 경험하는 악한 일들이라고 하겠다. 죽음과 전쟁과 박해, 기근과 약탈, 자연재해 등은 성경이 큰 고통과 큰 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것들은 반역의 행위는 아니다. 이것들은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악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것들은 형벌로 주어지는 것이고 공의를 세우는 것들이므로 선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관점에서, 도덕적으로 악한 것들조차도 선한 결과를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의도에서는 악할지라도 하나님의 의도에서는 선할 수도 있다. 십자가 사건이나 요셉의 겪은 고초등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요셉은 형들의 원한으로 노예로 팔려갔다. 악한 형들의 의도와 행위는 요셉을 고통스럽게 했지만, 요셉은 형들의 악한 의도대로 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창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사람의 분노가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면(시 76:10) 그것은 인간의 분노가 원래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악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시기 때문이다.

성경은 전체적으로 악과 고난을 매우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도덕적인 악과 고난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이다. 그러나 고난 자체는 타락한 질서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고난도 악과 같이 생각되고 악과 같이 경험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다양한 악들에 대해서 그의 주권을 어떻게 행사하시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하나님의 선하심


성경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명백하게 가르친다. 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없고 그의 모든 길은 완전하고 정의로우며 진실하고 거짓이 없다고 말씀한다(신 32:4).

성경의 기본적인 줄거리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완전한 선하심에 대해서 가르친다. 그러나 인간은 반역하였고 고난의 삶을 살기에 이르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맞이한 끔찍한 결과들과 그 근원인 죄악된 상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하시는지, 그리고 신자의 소망이 죄와 슬픔이 더 이상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4. 몇 가지 적용점들


커쉬너의 유명한 <선한 사람들에게 악한 일들이 일어날 때>라는 저서는 제목부터 심각한 오류를 드러낸다. 세상이 선한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전제는 성경과는 전적으로 부딪히는 오류이며 헛된 가정이다. 성경의 줄거리는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

인간의 죄악된 상태를 말함으로 인해서 ‘당신은 죄에 대한 마땅한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만 불평하세요’라는 충고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도 마땅히 고통을 받아야 할 만큼 극도로 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죄의 대가를 묵상해야만 한다. 자기의 권리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사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권리들이 우리의 죄로 인해서 희생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만일 실제로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에 합당하다고 믿는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인간의 반역의 결과인 모든 경험할 때 하나님을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완전한 평안과 위로의 삶을 기대할만한 근본적인 권리가 우리에게 없다는 사실을 즉시 깨닫게 될 것이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소멸되지 않는 것은 오직 주님의 자비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든 고난 하나하나가 특정한 죄의 즉각적인 결과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가져다주는 위험한 이단 사상이다. 이 세상에서 고난을 겪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명백히 거짓이다.

특정한 죄와 특정한 질병 사이의 몇 가지 연결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이번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특정한 죄와 특정한 고난이 필연적으로 연관성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면에서는 아무도 의롭지 않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멸망이 찾아올 때, 고통을 받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직접적인 죄 때문에 예루살렘에 끔찍한 형벌을 초래한 사람들도 포함되고, 이스라엘의 멸망을 초래할 만한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들도 포함된다. 전쟁과 재난, 선천적인 불구와 수많은 고통들이 이와 같다. 즉 그것들은 그다지 차별이 없다. 만일 우리가 그것들을 구체적인 죄들과 연관시켜 생각한다면, 그러한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죄를 범한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받는 것을 볼 때 매우 혼란스럽게 될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근본적으로 그러한 고난을 타락의 부산물이요 결과이며 우리가 종종 빠지게 되는 악의 결과라고 믿는다면 고난을 받을 때에 아무리 슬퍼한다 할지라도 큰 충격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 저자들이 사악한 자들의 만연함이나 그들 때문에 발생하는 고난에 충격을 받지 않은 이유이다. 물론 욥의 경우에서와 같이 훨씬 더 악한 사람들은 고통중에 있지 않은데 왜 어떤 개인이나 민족이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의 저자들은 전체적으로 형벌 때문에 충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오래 참으심과 인내 앞에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다 차기까지 그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으셨다(창 15:16). 성경은 주님은 오래 참으시고, 화내기를 더디 하시고, 매우 자비롭다는 말을 강조한다. 니느웨에서 회개를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요나는 니느웨 도시가 멸망당하기를 원하며 도망을 갔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축복은 하나님의 인내와 오래 참으심의 증거들이다. 사도바울도 매우 문학적인 표현으로 이런 질문을 했다.

롬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계 6:10에서 순교자들은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라고 부르짖으나 주님께서는 침묵하신다.

우리가 이러한 신학적 진리들을 살아내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하는 진리들을 깊이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신조는 내가 비참한 죄인이라고 가르치고 있음에도,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 하며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며 나는 고난을 면할만한 자격이 없다고 고백하면서도, 정작 고난이 닥쳐오면 그 고난이 부당하다고 느끼고 있다.

내 자신의 죄책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정말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실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때는, 가만히 앉아서 나의 죄를 묵상하는 때가 아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해서 좀 더 묵상할 때이다. 욥의 마음을 진정시켜 준 것은 하나님께서 누구신지에 대한 계시가 있었을 때였다.

우리가 성경의 줄거리에서 어디쯤 해당되는지, 하나님게서 우리의 죄를 어떻게 보시는지, 우리의 반역에 대한 마땅한 대가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조금더 생각해 본다면, 비록 악과 고난에 대한 모든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없다고 할지라도, 고난의 시간을 마주할 때, 그렇지 않을 때보다 조금 덜 원망하고, 덜 분노하며, 오히려 더 감사하고 더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 질문들

1. 성경의 줄거리를 몇 문장으로 적어보라.

2. 이 줄거리는 악과 고난의 문제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3.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받아야 할 것을 이미 받았는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을 받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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