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

Column of Theology

Home About Us Academic Program Admissions News &
Event
Gallery Contact Us
LOGIN

 



위로의 하나님(D. A. 카슨) 제1부 제1장: 첫 걸음
이드보라  2018-09-12 16:01:23, 조회 : 51, 추천 : 9

<위로의 하나님> by D.A. 카슨



제 1 부
고난과 악에 대해 생각하기



제 1 장
첫 걸음


1. 힘든 상황들

세상에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탄식의 소리들이 많다. 불의의 사고와 병마의 유혹 앞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가?’하고 한숨을 뱉어낸다.

자신의 차를 후진하다가 쪼그려 놀고 있던 18개월짜리 아들을 치어버린 엄마의 이야기, 신혼 초기에 들려온 남편의 뇌암판정, 여섯 자녀 중에 네 명을 혈우병과 에이즈로 세상을 떠나보낸 사람의 이야기...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꾸며낸 이야기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뉴욕 맨하탄 중심의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펜타곤을 돌진하여 3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는 어떠한가? 그들의 모습이 TV 에 비쳐질 때 우리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염을 피하기 위해서 95층에서 뛰어내리고 100층이 넘는 건물들이 사람들 위에 무너져 내렸다. 인도네시아의 아체 연안의 바닷속 지각 변동으로 인한 쓰나미는 약 30만명의 생명을 빼앗았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간다. 우리 자신도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다. 나이를 먹으면서 온갖 상실감도 늘어난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오히려 안정된 사회에서 흔히 발생하는 고난이다. 전쟁과 인종차별, 종족학살, 끝없는 가난과 기아를 상상해 보라. 우리는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신음소리를 다 알지 못한다.

600만명의 유대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홀로코스트, 오늘날의 현실속에도 이러한 일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전 세계 4천만명이 에이즈에 감염되었고 매년 5백만명식 늘어난다. 중국의 마오쩌뚱 치하에서 2천~5천만 명이 죽었고 캄보디아의 폴 포트에게 수 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다.

자연 재해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까? 해마다 수십만 명이 기아와 영양실조로 고통받으며 죽어간다. 지진으로 인해 멕시코시티의 25만명이 죽었으며 중국의 20만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비극들 속에서, 이 모든 고통 속에서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이 질문은 성경에서도 찾을 수 있다.

렘 12:1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욥 21:7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



2. 힘든 생각

‘만일 하나님께서 전능하기도 하시고 완전히 선하시다면 어떻게 그런 악을 허용하신단 말인가?’
‘만일 하나님께서 고난을 막고자 하시지만 하실 수 없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전능하지 않으시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고난을 막으실 수 있지만 그리 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선하지 않으시다’

이러한 질문과 의문들은 ‘악의 존재와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아니, 단순히 악의 존재 뿐만 아니라 ‘악의 창궐’에 관한 의문이다. 혹자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반역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는 전제 하에, 인간사에 존재하는 악이 전혀 신앙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연재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람들과 상관이 없는 고난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C. S. 루이스는 이러한 지적 질문에 대해서 깊은 통찰을 가지고 <고통의 문제>라는 책을 썼다. 또한 루이스가 아내의 죽음 당시에 쓴 간증 성격의 <헤아려본 슬픔>이라는 책도 있다. 최근에는 기독교 신앙이 악한 세상 속에서도 얼마나 합리적인지를 변증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대중에게 큰 신임을 얻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다른 면에 초점을 맞추어 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많은 신자들이 일상적인 삶 속에서 문제가 있지 않다고 느끼고 있으며, 또한 그들은 고난의 문제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한 신학적 답변들을 이미 알고 있다. 즉 고난은 죄의 결과이고, 자유의지란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죄를 지을 것을 허락하셨으며, 천국과 지옥이 그 모든 것들을 바로잡을 것이라는 사실 등이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의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거나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알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런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실제적인 고통을 경험하는 때가 온다. 부모님이 돌아가신다거나 자녀가 불치병에 걸린다거나 배우자의 불륜을 알게 되거나 인생의 소망을 걸었던 일이 망가지거나 하는 일들 말이다. 복음을 전파하나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친구와 동료들로부터 적대를 받는 일, 그리고 집과 재산을 모두 잃어버리는 일도 있다. 그런 일을 당하면 고난에 대한 문제가 실감이 난다.

사실, 고난과 악에 대한 깊은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존(John)이 확실하게 믿는 것, S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존이 믿는 S라는 믿음 위에 S와 일치하지 않는 R을 첨가한다. 그리고 존은 이제 S+R=진실(S0)이라고 믿게 된다. 새롭게 진실로 믿게 된 S0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 그는 새롭게 첨가한 R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예전처럼 S의 신념체계로 돌아가던지, 아니면 S안에 있던 몇 가지 요소들을 바꾸거나 포기하더라도 R 을 유지해야 한다. 만약 원래 믿던 바인 S의 요소 중에 몇 가지를 포기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의 신념 체계였던 S는 더 이상 S가 아니라 S1이 되고 만다.

어려운 예를 이 공식에 넣어서 풀어보자. 존이 정통 그리스도인으로써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믿는 신념 체계인 S를 가졌다고 가정하자. 그런 존이 평생 처음으로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인간이 겪고 있는 엄청난 고통을 목격했다. 그는 점점 R을 자기 신념 체계에 첨가한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이라는 신념체계와 일치하지 않는(조화될 수 없는) 것들을 첨가하면서 근심과 걱정이 생기게 된다. 심사숙고 끝에, 그는 R이 무익하다고 판단하여 그것을 포기하거나, 또는 R의 무게에 못이겨 S중에서 몇 가지 요소를 변경하여 새로이 S1의 신념체계를 만들 것이다. 이런 경우에 그는 하나님의 존재와 선하심에 대해서는 믿으나, 그의 전능하심에 대해서는 믿지 못하는 결론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이 예는 지나치게 사변적이고 이론적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고난과 악의 문제 앞에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압박감을 마주한다. 기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거나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와 신뢰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영적 전쟁 앞에서 우울증을 겪을지도 모른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R이다. 원래 가지고 있던 신념 체계 중에 어딘가가 틀린 부분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생긴다는 말이다. 고로 우리는 개인적인 비극이나 생소한 인생 경험 앞에서 고통스럽게 R과 싸울 상황을 만나기 전에,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가능한 한 안정된 신앙체계를 가져야 한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당신이 R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즉 당신의 신앙체계가 모순되지 않다고 스스로 확신한다고 해서, 내가 S라고 부르는 신념 체계가 어떻게 정확하게 조화를 이루는지 당신이 아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당신은 S의 신념 체계가 정확히 어떻게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는지 모른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채, 그저 논리적 모순이 없다고 믿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저 신비라는 말로 가리운 채...

둘째, S라는 신념 체계가 돌발 상황인 R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S 자체가 우리에게 반드시 큰 위로를 주는 것은 아니다. 돌발 상황 R이 생겨날 때 우리는 부가적인 고통을 겪게 된다. 또 반면에 돌발 상황이 없다 해서 우리에게 부가적인 위로를 주는 것은 아니다. 맹목적인 믿음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악에 대해 위로를 해주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의 경험에서 볼 때, 고난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신앙이 변치 않는다는 확신 이상의 무언가를 원한다. 오직 살아계신 주님으로부터,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새로운 이해, 즉 경험적인 이해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 체계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기독교 신앙이 진실되고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덧붙여, 그리스도인들은 그 신앙에서 위로를 얻기 위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기독교 신앙은 창고에 저장해 두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체계는 잘 세워져 있되, 그 신앙을 잘 다루어 인생의 도전들과 제자도에 적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 신앙은 위로와 안정, 경건과 용기, 겸손과 기쁨, 거룩함과 믿음을 가져다 줄 수 없다.

분별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고난과 악이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을 대 성경의 많은 강조점들이 어떻게 위로의 성벽이 되어줄지를 생각해야 하고, 맹목적인 피난처들이 전혀 안정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경고로 삼아야 한다.




* 질문들

1. 당신 안에 있는 고난은 무엇인가? 그 고난이 당신을 괴롭혔는가?
2. 현재 이해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심은 세상의 악과 고통의 문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3. 하나님의 사랑이나 능력에 대해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지며 견딘 시간이 있는가? 무엇 때문에 그 상황에 빠졌으며 그 기간을 이겨내는 데 가장 크게 도움이 된 것은 무엇인가?
4.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으로부터 깊은 위로를 얻는가?




임 바울
2,3,4 번의 문제를 한꺼번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천지 창조를 통해서 자신이 전능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들을 다스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또는 다스릴 수 없는 것을 창조했다면, 얼마나 책임이 없는 분인지 모른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을 또한 통치하신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왜 고통과 악이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고통과 악이 우리가 죄를 지음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해버린다. 그렇다면 천재지변등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분명히 천재지변도 하나님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고, 적어도 하나님이 허락하심으로서 일어나는 현상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진리속에는 고통과 악이 존재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고통 때문에 본래 갖고 있던 진리를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또한 고통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리로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우리가 고통과 악을 직면한다고 할지라도, SO가 S1으로 바뀌지 않을 수 있을까?

적어도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불안전의 상태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아우슈비츠를 겪었던 유대인중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신학을 변경했던, 또는 버렸던 사람들이 쓴 글이 있다.

무명 랍비인 헤롤드 큐슈너( Harold Kushner)가 쓴 “ When bad yhings happen to good people( 나쁜 일이 착한 사람들에게 일어날 때”이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의 혼란은 카슨이 제기한 질문과 같았다, “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무서운 고통과 악을 세상에 허락하실 수 있는가? ”

그는 이런 질문 앞에서 “ 나는 대학살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는 차라리 이런 악을 제거할 능력이 없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더 쉽다”라고 하면서 SI으로 간 자신의 간증을 한다. 이해할 수는 없고, 그리고 하나님은 믿어야 하기 때문에 , SI의 신앙과 신학을 가지는 처절함을 충분히 동감한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잉 세상에 있는 고통과 악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잔 블랭카드도 “ 9/11때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라는 책을 썼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 그리고 이 땅에 고통과 악이 있다. 이 지구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생각때문이 아닐까?

기독교 신앙과 신학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를 모순없이 이해를 해야 하고,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제를 하기 때문이다. 비기독교인들은 우리들이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어야만 기독교 신앙과 신학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진리들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할지라도, 충분히 기독교에 대한 신앙과 신학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통합해서 이해를 하고, 답변을 해야만 “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신학”을 바르게 가질 수 있다고 요구하지도 않으신다. 이런 일들을 기독교 신앙과 신학을 가진 사람들이 이해를 하고, 답변을 할 수 있어야만 참된 신앙과 신학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그들이 던진 질문에 답을 해야 할 부담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지만, 고통과 악을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만 기독교 신앙과 신학을 바르게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답변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답변을 할 수 있을 때에, 그리고 우리가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였을 때에, 그리고 난 후에만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는 바른 신앙과 신학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하나님은 어디에서도 기독교인들이 이런 것을 알아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 특히 칼빈주의자들이 고난을 당할 때에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구절들은 성경에 가득찼다. 그 중에 하나를 소개를 하면, 요즘 기도 훈련 때문에 읽은 시편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 [시 89:19-37] (19)그 때에 주께서 환상 중에 주의 성도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능력 있는 용사에게는 돕는 힘을 더하며 백성 중에서 택함 받은 자를 높였으되 (20)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 나의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도다 (21)내 손이 그와 함께 하여 견고하게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 있게 하리로다 (22)원수가 그에게서 강탈하지 못하며 악한 자가 그를 곤고하게 못하리로다 (23)내가 그의 앞에서 그 대적들을 박멸하며 그를 미워하는 자들을 치려니와 (24)나의 성실함과 인자함이 그와 함께 하리니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의 뿔이 높아지리로다 (25)내가 또 그의 손을 바다 위에 놓으며 오른손을 강들 위에 놓으리니 (26)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27)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28)그를 위하여 나의 인자함을 영원히 지키고 그와 맺은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며 (29)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30)만일 그의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규례대로 행하지 아니하며 (31)내 율례를 깨뜨리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32)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 (33)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는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34)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 (35)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 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말을 하지 아니할 것이라 (36)그의 후손이 장구하고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37)또 궁창의 확실한 증인인 달 같이 영원히 견고하게 되리라 하셨도다 (셀라)”

우리가 선택받았다는 것만 확실하다면, 우리는 어디에 있어도 , 어떤 환난이 와도 든든할 수가 있다. 하나님이 선택된 자들에게 주신 거룩한 언약은 하나님이 지키시기 때문이다.
2018-09-13
23:50:39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283  위로의 하나님(D. A. 카슨) 제1부 제5장: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난    이드보라 2018/10/19 2 12
282  위로의 하나님(D. A. 카슨) 제1부 제4장: 사회적인 악, 가난, 전쟁, 자연재해    이드보라 2018/10/09 2 19
281  위로의 하나님(D. A. 카슨) 제1부 제3장: 죄의 대가    이드보라 2018/10/01 5 33
280  위로의 하나님(D. A. 카슨) 제1부 제2장: 잘못된 행보    이드보라 2018/09/18 11 57
 위로의 하나님(D. A. 카슨) 제1부 제1장: 첫 걸음  [1]  이드보라 2018/09/12 9 51
278  제 13 -14 장 육신이 된 말씀의 영광    임 바울 2018/09/07 16 71
277  제 12 장 크리스마스는 무엇을 축하하는 것인가?    임 바울 2018/08/28 14 77
276  제 11 장 크리스마스는 무엇을 멸하려고 왔는가?    임 바울 2018/08/14 40 96
275  제 10 장 왜 인자인가?    임 바울 2018/07/19 53 135
274  제 9 장.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다.    임 바울 2018/02/12 95 421
273  제 8 장 그는 우리를 복주시려고 왔다    임 바울 2018/01/28 103 461
272  제 7 장 성탄절에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열정을 배우자    임 바울 2018/01/11 110 492
271  제 6 강 성탄절이 왜 일어났는가?    임 바울 2018/01/05 84 439
270  제 5 강 예수님의 강림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임 바울 2018/01/02 85 453
269  제 4강 구원자에게 가까이 가자    편 집 자 2017/12/28 74 311
268  제 3 강 찾고 구하는 전도    편 집 자 2017/12/23 74 311
267  제 2 강 성탄절에 충만함을 위한 기도    편 집 자 2017/12/18 82 328
266  파괴할 수 없는 기쁨의 시작 by John Piper- 목차 및 제 1 강 서론    편 집 자 2017/12/11 106 427
265  파괴할 수 없는 기쁨의 시작 by John Piper - Bookcover    편 집 자 2017/12/11 78 340
264  가족으로서 교회 - 제 8장, 결론 by Vern Sheridan Poythres    김 에스더 2017/12/04 88 427

    목록보기   다음페이지 1 [2][3][4][5][6][7][8][9][10]..[15]   [다음 10개]
       

 
www.hendersonny.org // email: info@hendersonny.org

Copyright © 2018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
NY : 40-36/38 78th Street, Elmhurst, NY 11373
General and Admission Office of NY & NJ 718.810.3248 or 646.338.7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