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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14 장 육신이 된 말씀의 영광
임 바울  2018-09-07 16:54:27, 조회 : 122, 추천 : 27

제 13 장 육신이 된 말씀의 영광

[요 1:1]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두 말에 함축된 신비를 반대하는 종파가 항상 있었다 ; “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 말씀이 하나님이다.” 단지 인간의 개념에 붙잡혀 있는 그들은 양쪽을 다 가질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가 하나님이던가 또는 그가 하나님과 함께 있던가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면, 그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가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과 함께 있지 않았다.


        이 두 문장의 진리를 피하기 위해서, 때때로 그들은 번역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 구절이 가르치는 것은 , 그가 육신이 되기 전에 , 그리스도로 알려진 분이 하나님이었고, 그리고 아버지 또한 하나님이었다라는 것이다. 세분 복수로 있지만, 한 하나님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삼위일체로서 알고 있는 진리의 일부분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한다. 그리고 도마가 요 20:2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이유이다, “ [요 20:28]   (28)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왜 그는 “말씀”으로 불리웠는가? 이것에 대한 대답은 그가 무엇으로 불리워질 수 있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말씀과의 관계에서 왜 합당하지 않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그는 “행위”라고 불리워질 수 있었다. 행위와 말씀과의 차이점중에 하나는 행위는 훨씬 더 모호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말들이 때때로 분명하지 않음으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다면, 우리들의 행위는 훨씬 더 모호하고 애매하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우리들의 행위들을 말로서 설명하는 이유이다. 말은 행동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우리가 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담는다. 하나님은 위대한 일들을 역사에서 많이 하셨다. 그러나 말씀에 우선권을 주었다. 이유중에 하나는 명료함과 내용 전달에 훨씬 더 많은 가치를 두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는 요한이 그를 “ 생각”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태초에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과 말씀과의 차이점중에 하나는 말씀은 일반적으로 대화를 하기 위해서 생각하는 사람으로부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통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들과 교통하기 위해서 역사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으로서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하기를 사도 요한이 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예는 요한이 그 분을 “ 느낌”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태초에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느낌은 분명한 개념 또는 의도 또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행위처럼, 느낌도 모호하다. 그리고 말로서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 아들의 존재가 교통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는 요한의 방식이라고 생각이 든다. 첫째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는 존재한다. 그리고 항상 존재하였다. 아버지와 교통을 위해서 영원히 존재하신 분이다. 두 번째로,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들에게 신적 교통수단이 되었다는 점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예수님이 말씀이다라는 것은 “ 하나님이 자신을 표현했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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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성탄절은 역사를 두 토막 냈다.


[행 3:24]

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예언과 성취에 대하 성경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붙잡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는 종종 예언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것에 관한 것 또는 지금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과거가 된 것이 선지자들에게는 미래의 것이었음을 자주 망각한다.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 세상으로 예수님의 도래(到來)와 함께 , 모든 선지자들이 선포된 성취의 날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첫 번째 성탄절이래로,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중이다. 선지자들에 의해서 예언된 “ 마지막 날( The last Day)"는 21세기가 아니다. 마지막 날은 AD 1 세기에때 시작되었다.


        이것이 한결같은 신약의 증거이다. 고전 10:11절에서 구약의 사건들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바울에게는, 세대의 끝이 2천년이 지난 21세기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정말 아니다. 종말이 시작이 1세기에서 이미 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시야가 왔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 1:1-2)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세상으로 보냈을 때에, 마지막 날은 시작되었다.


        마지막 날에 산다는 것은 위대한 특혜이다. 요엘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 그 후에 ( 또는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모든 선지자들은 메시야,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이 오기를 고대하였다. 그 날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대한 축복이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그가 왔다. 그의 왕국이 개시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성취의 날에 살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즐기고 있었던 복들이 정점에 달하는 것이다. 약속들이 우리들의 삶에서 성취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성탄절은 역사를 두 세대로 나누었다; 약속의 세대와 성취의 세대. 그래서 베드로가 행 3:2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모든 선지자들이 이 때를 가르켜 말하였느니라.” 우리는 이 마지막 날이( 히 1:2)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하나님이 그때에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때이다. 첫 번째 성탄절부터 앞으로 올 완성의 날까지를 말한다.


        바로 우리는 이런 시간에 살고 있다. 이미 성취된 것들이 막대하다. 성육신, 십자가에서의 죽음, 속죄, 화목, 부활, 승천, 하늘에서의 통치, 중보, 성령의 부음, 세계 복음화, 모든 민족들의 모임, 교회, 신약 성경,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말할 수 없는 기쁨, 그리고 이미 확보한 구원의 확실성.


        그러나 실제적이고 멋진 것이 아직 오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재림, 죽은 자의 부활, 새롭고 영광스러운 몸, 죄의 영원한 종식(終熄), 영화, 모든 불신자의 심판, 보상,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 새로운 하늘과 땅, 그의 백성들과 함께 얼굴과 얼굴로 임재하시는 예수님. 비참함의 끝, 즐거움의 영원함등이 여전히 남아있다.


        성탄절은 역사를 분리했다. 미래에 대한 시식(試食)이 지금도 풍부하다. 우리를 위해서 그가 성취한 것을 마음껏 마셔라. 그리고 올 모든 것을 위한 소망으로 가득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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