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

예수 전하기 (Speaking of Jesus)

Home About Us Academic Program Admissions News &
Event
Gallery Contact Us
LOGIN

 



제 4강 : 봄 방학 때 생긴 일
김 에스더  (Homepage) 2018-01-27 10:02:57, 조회 : 287, 추천 : 80

제 4장 봄방학 때 생긴 일 : 갖춘 자가 되려면


        리앤과 나는 대학 마지막 학기에 결혼을 하였다. 우리 학교의 기독교 모임인 Inter-Varsity(이하 I-V)에서 활동하던 학생의 리더로서, 우리는 그들이 개최하는 대부분의 캠프나 집회에 참석하였다. 그해 4월 봄방학 때, 우리는 그들이 개최한 Lauderdale 해변에서의 행사에 참석하였다.


        우리의 여행은 일반 학생들이 봄에 즐기는 그런 것(맥주파티, 일광욕, 수상스키  등)이 아니었다. 이것은 기독교의 전도 집회였다. 전도는 일반 대화의 주제 그 이상이었다. 사실상 I-V는 우리가 전도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복음을 나누기를 ... 해변에서... 흥청망청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친 것이 아닌가?


        그곳에서 내게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전도의 이런 방법이 예수님을 증거하는데 훌륭한 방법이기 때문이 아니고(낯선 사람에게 믿음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서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내가 그곳에서 전도를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도 아니며(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태도는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심지어 우리가 받았던 훌륭한 전도훈련 때문도 아니었다(이것은 그런 종류의 행사를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이유이다). 내가 놀랐던 것은 하나님이 그 한 자리에서 가능하고 준비되며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 보여주셨기 때문이었다. - 플로리다의 해변에서. 그 집회 전체는 내가 계획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그 중요한 날들을 전도하기 위한 나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한 주간으로 보았다. 이를 악 물고 해변으로 가자. 그 외에도, 나는 우리의 사역자들이 훌륭한 강사를 약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리앤과 나는 우리가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 모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남쪽으로 향하였다.


1. 가능한 것


        우리의 호텔은 해변의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고 맞은편에는 가장 유명한 술집이 있었다. 로비에서 나오는 음식 토한 냄새와 맥주 흘린 냄새는 그곳에서 많은 파티가 있었음을 알려 주었다. 내가 만난 어떤 술취한 사람은 나에게 말했다. “이 호텔은 파티의 중심지에요”. I-V의 사역자는 호텔에서 우리를 만나 인사를 했지만, 긴장되어 보였다.


        그 해변은 마치 동물원 같았다. 모든 사람들은 거의 벌거벗었으며 근육질의 남자들이 걸어 다니고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은 일광욕을 즐기고 오일을 바르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곳곳에 틀어놓은 음악소리는 파도의 소리가 잠기기에 충분했으며, 해변가를 따라 걸어가는 것은 마치 거대한 라디오의 FM 주파수를 따라 달리는 것과 같았다.


        광고들이 곳곳에 있었다. 형광의 원형선반은 Camel 담배를 사라고 권했으며, 롤러 스케이트를 탄 사람들은 샌드위치 가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낮게 나는 비행기들은 하늘에 술집과 T-Shirt 대회의 광고배너를 날리고 있었다. 심지어 바다도 상품화되었다. 불이 켜진 광고용 간판을 실은 배들은 파도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나의 정신이 현란해지는 것이 뜨거운 태양 때문인지 아니면 신경과민 때문인지 확실치 않았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이런 사람들과 복음을 나누어야만 하는가!”


        그것은 마치 물총을 가지고 돛단배를 저으며 노르만디를 침략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해변으로 나를 이끌어오는데 도움이 되었던 나의 용기는 증발되었다. 나는 기가 죽었고 어지러웠다. 그 순간 나는 냄새나는 로비에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 가능한 것에 대해 내가 배운 것들


        가능한 것-마음과 몸-은 전도복음의 첫 단계이다. 기독교인들은 마음과 몸으로 세상에 나갈 필요가 있다. 아프리카든, 직장의 불신자의 모임에서든, 국회에서든, 식당의 흡연 구역이든, 심지어 플로리다의 해변에서도.


        ‘가능한 것’은 효과가 있는 곳으로 간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세상의 현실은 위협적이다. 이것이 우리를 더 안전한 지역으로 가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기독교의 장애의 한 부분, 즉 고립이 될 것이다. 만약 우리의 문화가 계속해서 후기 기독교에서 반기독교적인 사회로 옮겨진다면, 기독교의 소문화권이 주는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은 점점 더해질 것이다. 그러나 배타적인 기독교인들의 교제는 절실하게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킨다. 물론 나도 유혹을 이해한다. 내가 그 호텔 로비에서 초조함을 달래고 있었을 때, 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었다.


        나의 두려움은 잡동사니를 던지는 곡예사처럼, 군중에게 거리를 유지하며 몇 마디 던지는 전도를 하도록 만들었다. ‘더 나은 방법이 있지. 내가 비행기를 빌려서 복음의 구절을 적은 깃발을 해변에서 날리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요 3:16은 T-Shirt 대회를 위한 광고보다 더 나은 것이었지만, 그곳의 사역자들이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눈속임은 우리가 실제의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방해한다. 하나님은 안전한 비행기 조종실에 앉아 해변 위를 날아 다니라고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해변에서 직접 만나라고 나를 부르신 것이다.


        가능한 것은 행동이 일어나고 있는 그곳에 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직장에서 불신자들과 매일 어깨를 부딪치며 살고 있지만, 그들의 신앙은 비밀로 한다. 그들은 마음적으로 고립되어있다. 아마도 당신은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는 행동으로 믿음을 증거한다”. 이것은 전도에서 핵심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소망을 절대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아닌, 우리를 위대하도록 생각하게 만든다. 가능하다는 것은 기회가 생기는 대로 우리의 믿음에 대해 알리고자 하는 마음의 결단이다.


        가능하다는 것은 젖어있는 비치 타올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도 재미있는 일들을 한다. 우리가 거대한 모래성도 쌓을 때, 사람들은 도와주어도 되는지 우리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우리는 배구시합도 개최했다. 심지어 우리는 호텔에서 우리만의 파티도 열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려고 그곳에 왔고 우리가 할 일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지만도 않았다. 물론 짜증나는 일도 있었지만, 만 명의 만취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데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사역자들은 예수님도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종종 소란스런 군중들과 어울리셨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시끄러운 군중들과 어울리셨을 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 9:12


        한 사역자 바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해변에 있는 사람들처럼 된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겠지요? 자기의 왕국으로 오는 왕이 말구유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요 20:21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핵심을 말하자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그렇게 했고 너희들도 그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도 내가 한 것처럼 하라”


        그러면 우리는 물을 것이다.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


        예수님은 우리의 세상으로 들어오셨다. 바비가 말한 것이 옳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말구유에서 시작하셨고 십자가에서 마치셨다.

빌 2:6-8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오셨다. 말 그대로, 그분은 고통을 느끼고 싶어서 혹은 고상하게 보이고 싶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필요가 그분 자신이 사람이 되어야만 가장 잘 채워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었다. 사랑 안에서 우리도 다른 사람들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 일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사역자들이 말한 ‘성육신 복음전도’의 기본 원리이다.


        위험을 감수하라. 즉 당신 자신을 행동할 수 있는 곳에 놓아라. 어떻게 당신이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더 알고 싶다면, Tony Campolo와 Gordon Aeshliman이 쓴 “전도하는 50가지 방법들”이라는 책을 읽어보라. 당신 주변에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우정을 맺는 일에 헌신하라.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 주변에는 내가 기도해 줄 수 있는, 그리스도를 전혀 알지 못하는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는가?”


3. 장비 갖추기(준비하기)


        해변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그들에게 복음의 개요를 전하는 방법이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 행사에 참가하면서, 하루 종일 ‘전도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사역자들은 우리가 입술로만이 아닌, 마음을 전적으로 사용하기를 기대하였다.


        아틀란타에서 온 사역자 스티브는 접는 탁자에 앉아 기타를 쳤다. 그는 나에게 조언을 해주면서 모래가 있는 발가락을 움직였다.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담대한 주장에 대해 반드시 질문을 할 거야”


        스티브는 손가락을 내리고 양쪽 손바닥을 내게 보이며, 올빼미 같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이 사람을 죽은 자들 중에서 부활했다고 주장하는 거죠. 그러면 맥, 당신은 뭐라고 답을 할래요?”


        나는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배키 피펫은 우리의 강사였다. 그녀는 우리가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복음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종교적인 주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녀가 물었다.

“우리는 여기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까요? 신학적인 토론이 아니라 파티하며 놀려고 온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번 전도행사를 대학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좋은 질문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는 좋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 또 나쁜 질문들에 대한 답들을 연구했다. 소그룹으로 나누어 연극도 해보았다. 우리는 복음전도에 대한 성경적인 기초의 책들, 사고적인 변증학 그리고 복음을 들고 세상에 뛰어드는 방법에 대한 책들도 연구하였다. 두려움이 우리로 하여금 여러가지를 준비하게 하는 것에 놀라웠다.


        우리는 기도했다. 우리는 그곳에 간지 둘째 날에 세 시간의 개인기도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해변가에서의 시간을 위해 소그룹으로 기도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 파트너를 위해 기도했다. 우리는 우리가 만날 사람들, 즉 학생들, 거리의 사람들, 더러운 노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우리는 우리의 정욕(나는 브라이언이 그가 기도하려고 고개를 숙일 때마다, 오직 비키니의 아래쪽만 생각했다고 고백했던 것이 기억난다)을 위해 기도했다. 우리는 구조대와 그곳의 날씨 그리고 호텔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두려움이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는 것에 놀라웠다.
        

        사역자들이 성경전체를 통해 전도를 위한 기초를 강의할 때, 우리는 성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신약성경에만 전도에 대한 통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사역자가 하나님의 전도 계획은 창세기부터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설명했을 때, 나는 매우 놀랐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서, 그 사역자는 매우 중요한 일을 했다. 아마도 그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전도를 나갔다. 그들은 실제로 해변가를 갔고 우리와 함께 하였다. 그들은 TV 전파나 설교단의 편안함에서 우리에게 강의만 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들과 함께 다른 사람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었다.


4. 장비를 갖추는 것(준비하는 것)에 대해 내가 배운 것들


        장비를 갖춘다는 것(준비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사용하는 것이다. 복음의 요약을 아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준비된다는 것은 복음의 개요를 외우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 그 이상의 것을 사용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가 가진 소망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대답해 줄 것을 요구한다.


        장비를 갖춘다는 것은 세속의 사고방식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대를 연구하라. 우리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성경이 무엇을 말할 것인지를 생각해보라. 우리가 세상에 무지하다면, 불신자들의 우리에 대한 신뢰는 작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장비를 갖춘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넘어서야 한다. 그것은 학구적인 것 그 이상이다. 장비를 갖추는 것은 행함으로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조앤과 나는 해변가에서 두 남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조앤은 뉴저지에서 사역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몸무게는 아마도 90 파운드였을 것이다. 대화는 재미있었지만, 그들은 나의 오래된 대적을 불쑥 꺼내었다.

“교회에는 위선자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교회를 안가요.”


‘콜로라도의 아스펜과 같으면, 안 되는데.. 처음부터 실패하는 건가’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조앤은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저도 알아요. 그건 정말 끔찍하죠. 오, 내 말은 만약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다면, 왜 그것을 거짓으로 꾸며 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요?”


        그들은 관심있게 물어왔다. 나는 입이 벌어졌다. “물론이죠. 당신들도 대학교에 위선자들이 많아서 대학 다니기 아주 힘들죠?” 라고 말하며 그녀는 웃었다. 그들도 웃었다.

“진실을 말해보세요. 당신들은 당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항상 행동으로 옮겼나요?” 그녀가 물었다.


        그녀는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정곡을 찔렀다.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대로 살기에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그녀가 말했다.

“맞아요. 위선자는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우리에게 아직은 희망이 있죠.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통해 우리를 위한 구원을 시작하셨어요.”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아주 진지하고도 친절하게 말하였다. 나는 혼자 몇 년 동안 배운 것보다도, 그때의 팀 전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장비를 갖추는 것은 기도와 관련되어 있다. 너무 단순하게 들리는가? 전도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고 기도를 잊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에 나는 놀라웠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자신에게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전도는 컴퓨터의 하나의 하드 드라이브에서 다른 하드 드라이브로 정보를 옮기는 것처럼, 어떤 정보를 옮기는 일이 아니다. 전도는 마음을 얻기 위한 영적 투쟁이다. 마음은 오직 성령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만 바뀐다. 우리는 전도에 있어서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더 필요하다. 전도의 실제적인 역사는 우리가 그 해변에서 드린 기도를 통해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역사는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당신의 친구를 위해서 당신이 기도하기 시작할 때 일어날 것이다. 이 책의 각 장의 마지막이 기도로 마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5. 장비를 갖추기


        장비를 갖춘다는 것은 우리의 머리를 사용하여 성경이 말하는 것(그리고 말하지 않는 것)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당신이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단계들이 있다.


1) 복음의 개요를 외우는 것으로 시작하라. 해변으로 가는 차 안에서 외운 그것은 몇 년 후에, 여동생 린다를 그리스도께 안내하기 위해 나누었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소위 그것은 ‘하나님께 가는 첫 단계’로 불리며, *부록(본문의 맨 아래 부분)을 참고하라.

2) 단지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복음을 공부하라. 복음에 대한 질문들을 만들어보라. 복음을 당신의 말로 이해하라. 그것을 삶속에서 살며 호흡하라. 복음의 핵심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깊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적 세계관을 발전시키고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짜여진 틀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성경을 공부하는 학생이 되라. 전도는 창세기에서 시작해서 성경의 각 책을 통해 넘쳐난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전도를 우리의 믿음의 더 중심으로 만들며, 더 자연스럽게 만든다.

3) 변증학을 공부하라. 좋은 질문들과 나쁜 질문들에 모두 답을 하라. 우리의 시대와 나이에 더 중요한 것은 어려운 질문 들 뒤에 숨어있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다.

4) 당신이 보는 신문을 공부하는 학생이 되라. 장비를 갖추는 것은 현 시대의 이슈들을 통해 기독교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포함한다.

5) 행동함으로 배우라. 열심히 믿음을 나누는 성숙한 기독교인을 한두 명 찾아서 그들의 지혜를 배우라. 그러나 더 좋은 방법은 그들과 함께 전도를 나가는 것이다.

6) 마지막으로, 당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라. 단지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기도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을 간구하라. 진정으로 하나님이 찾고 있는 자를 당신에게 보내달라고, 그리고 당신 안에 가지고 있는 소망에 대해 정확한 이유를 가지고 친절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답을 줄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


6. 동기를 가지기


        나는 순종과 어느 정도 덜 순수한 동기가 섞인 마음을 가지고 해변에 갔었다. 그곳은 시작하기에 나쁜 곳은 아니었다. 만약 당신이 복음전도를 위한 완전하게 순수한 동기를 기다린다면, 당신은 어떤 복음전도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전도는 순종보다 그 이상이다. 복음전도를 위한 올바른 동기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키워지고 성장하는 것이다.


        나에게 올바른 동기는 가능한 일을 하거나 장비를 갖추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 같았다. 나의 허세가 증발해버린 것은 해변에서의 압도적인 현란함의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그 모든 현란함은 나를 주눅들게 하였고 왜소하게 만들었다. 나는 순종하고 싶었다. - 단지 다른 방법의 순종(말하자면, 비치 타올을 두르고 하루 종일 큐티를 가지는 것처럼).


        가능한 것이나 장비를 갖추는 것은, 만약 당신이 기꺼이 하고자 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동기를 갖는 것은 어렵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가능하다는 것은 우리의 발을 옮기는 것이다. 장비를 갖춘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동기는 우리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동기를 가지라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은 마치 그에게 행복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런 말은 대부분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왜냐하면 동기를 가지는 것은 당신이 해야하는 어떤 일이 아니라 (행복처럼) 다른 무엇인가로부터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동기를 가지기 위한 세 가지의 요소는 간단하다. 적어도 글로 적기에 간단하다. 전도를 위한 올바른 동기는 사랑, 진리 그리고 소망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우리가 우리의 삶속에서 세워 나갈 수 있는 것들이다. 다음은 내가 해변가에서 이것들이 어떻게 적용되었는가를 본 것이다.


1) 사랑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때, 우리가 다른 깊은 관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분의 마음을 본다. 그분이 무엇을 사랑하시고 무엇을 미워하시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무엇이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를 알게 된다. 우리는 그분의 열정과 관심사를 느끼게 된다.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가? 말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마음 안에 있다.


        해변에서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주님의 마음을 저에게 주시옵소서. 주님의 눈으로 해변을 보게 하옵소서.”


        그것은 전도자가 될 사람에게는 위험한 기도였다. 왜냐하면 해변의 모든 사람들이 엄청난 사랑을 받은 자녀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해변에 있는 사람들을 적이 아닌 구원이 필요한 희생자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실제적인 상처와 문제들 그리고 꿈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고민하며 찾고 있었다. 나는 부모나 친구들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는지 궁금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그들이 알기를 원했다.


        나는 어떤 위대한 전도의 기술이나 다른 기독교인들과의 경쟁에서 점수를 얻기 위해 달아오른 전도의 마음, 혹은 단순한 순종을 더 이상 동기로 삼지 않았다. 하나님은 나에게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한 그분의 마음을 주셨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기를 강권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애쓴다고 말하였다.

고후 5:14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나누기를 원한다.


        때로는 우리가 전도를 고민하는 중간에, 우리가 사람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사랑스러운 일은 바로 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임을 잊어버린다. 나는 사람들의 굶주림을 외면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메시지 전함과 동시에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행동을 함께 행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만이 궁극적인 갈급함을 만족시킬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그와 같은 일을 배워야 한다.


2) 진리

“예수님은 단지 우리가 믿는 어떤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에요. ” 라고 한 사역자가 말했다.


        예수님을 내가 단지 믿는 분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그분을 작은 동네의 수호신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그분에 대해 말하고 싶은 열망을 빼앗아 버린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시대에, 모든 장소에서 유일한 진리이시다. 그 사역자는 우리에게 말했다.

“만약 예수님이 유일한 진리시라면, 그분은 세상의 모든 사상에서 우뚝 서 계시는 분이세요”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예수님은 해변에서만 진리일 수는 없었다. 그분이 진리이든지, 혹은 아니든지 둘 중 하나뿐이다. 거기에 중간지점은 없다. 예수님은 실제로 역사의 한 사실이다. 만약 해변의 현란함이 그를 덜 진리이게 만들 수 없었다면, 왜 그분이 해변에서는 덜 진리인 것처럼 (반대로) 교회에서는 더 진리인 것처럼 보여야 하는가? 나는 교회와 해변 사이의 이런 거리감에 당혹스러웠다.


        사회학자들은 나의 해변에 대한 개념을 ‘문화의 타당성 구조(Plausibility Structure of the Culture)의 효과’라 부른다. 말하자면,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는 복음이 더 혹은 덜 진리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까다로운 이웃이나 적대적인 교수, 코웃음 치는 직장동료 등 -우리의 세상에서의 해변-과 같은 ‘더 낮은 타당성(plausibility) 의 구조’에 직면했을 때, 예수님이 진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다. 우리는 우리의 메시지가 작고 보잘것없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해변의 현란함 만큼이나 거짓이다. 예수님은 모두 한통속으로 보이는 도시나 직장 혹은 대학보다도 단지 더 진리이실 뿐이다.


        해변에서 우리가 기도하고 말하고 성경에서 보았던 것과는 반대의 상황이 내 마음에서 일어났다. 나는 물어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하나님은 해변의 타당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나는 이 해변에서의 현란함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나는 그 현란함이 성병과 피부암 외에는 아무것도 제공해 주는 것이 없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나는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분이신 예수님에게는 그 해변이 매우 낮은 타당성의 구조를 가졌다고 생각하였다(그 해변은 예수님이 진리라는 사실이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실제적인 나의 믿음과 “해변”에서의 실제적인 나의 불신은 복음을 전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진리가 나의 현혹된 마음을 잡아주었다. 나는 사람들의 세상에 좋은 소식을 들고 들어가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복음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벧후 1:16


        오늘날 나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하나님이 단지 마을의 수호신 정도로 알고 행하는 것이 두렵다. 그것은 그들의 사적인 세계에서는 진리이지만, 세상 전체에서는 아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는 이런 작은 마음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옳은 동기를 준다.


3) 소망

        해변에서 삼일 째 되던 날에 신나는 일이 일어났다. 한 학생이 자기의 삶을 그리스도께 바친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랐다. 그는 Rudger 대학 출신이었다. 그는 행사의 세 번째 밤에 그의 긴 이야기를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나는 그의 흥분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다른 자세한 것은 잊었지만, 그 주의 마지막에 다른 새로운 신자들이 그와 함께 하였다. 나는 그것이 우리가 그곳에 온 이유임을 거의 잊어버렸다.


        사랑과 진리에 대한 두 가지 동기의 원리 다음으로 소망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그들의 삶을 드리게 될 것이다. 믿음을 나누는 것은 변화된 삶을 가져온다! 복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능력이 있다.

롬 1:16


        때로 우리는 이런 사건의 놀라움을 놓친다. 당신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 천국에서 특별히 주목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우리가 위대하고 영광스런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는 천국의 관심을 끄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그리스도께 돌아설 때, 그것은 다르다. 천국이 움직일 것이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중에는 하늘을 흔들어놓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일만은 천국을 흔들어 놓는다.

눅 15:7


        한 사람이 자기의 삶을 기쁨으로 그리스도께 돌아설 것이라는 우리의 소망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주목할 만한 가치있는 일이다.


        그 주의 마지막 쯤, 또 다른 사람이 바뀌었다. 그것은 나였다. 그것은 단 한 번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히 변화가 일어났다. 비록 우리의 메시지가 해변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조금은 우스워보였다 할지라도, 나는 Lauderdale 항구가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 보다 더 큰 것을 예수님이 주셨다는 것을 그 해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동기를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나를 변화시키셨다.


7. 당신이 속한 곳에서 ‘마음을 끄는 자(engagers)’ 되기


        그 주에 리앤과 나는 누구도 그리스도께 인도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많은 태양의 숭배자들(일광욕을 즐기던 사람들)은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하나님께서 그 대화를 통해 무엇을 역사하실지 누가 알겠는가? 리앤과 나는 일이년 동안 복음전도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이곳에서 마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해변에 도착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떠날 때에는 우리가 속한 세상에 어떻게 뛰어들 것인가에 대해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떠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다가갈 가능한 일, 준비를 하는 것, 그리고 동기를 가지는 그것이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부르심이다. 당신은 Lauderdale의 해변에서와 같은 극적인 장소에서 전도하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은 직장이나 기숙사 혹은 이웃의 한 사람을 만나 전도할 수도 있다. 당신이 가는 곳이 어디든지, 위험을 감수하고 세 가지의 요건을 가지고 당신이 속한 곳에 나아가라.


        나는 여전히 I-V 행사에 참여한다. 지금은 다른 도시의 다른 해변에서 열리고 있다. 그러나 군중은 여전히 소란스럽고 I-V에 참여한 학생들은 여전히 겁을 내지만, 해변은 더 이상 나를 겁주지 못한다. 이제 나의 두려움은 다른 곳에 있음을 알고 있다. 지난 해에 해변 행사에서 강의할 때, 나는 네 살난 나의 아들 데이빗을 데리고 갔다. 오토바이 경주가 거의 끝날 무렵, 데이빗이 함께 하는 그 때가 나에게는 그리스도를 나눌 절호의 기회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숙고와 토론을 위한 질문>

1. 비그리스도인이 다가올 수 있도록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비그리스도인을 알고 있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어떤 면에서 그러한가?

2. 장비를 갖춘다는 것은 단순히 복음의 핵심을 암기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어떤 면에서 그러한가?

3. 동기를 가지는 것은 전도를 해야겠다는  뜨거운 열정 그 이상을 의미한다. 어떤 면에서 그러한가?




* 부록


“하나님께 가는 첫 단계”


        다음은 I-V에서 학생들과 사역자들을 위해 연구, 요약해 놓은 기독교 복음의 개요이다.


1. 하나님

1)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요 3:16).
2) 하나님은 거룩하고 의로운 분이시다. 그는 악을 모두 벌하시며 그의 앞에서 멸하신다(롬 1:18).


2. 인간

1)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교제할 목적으로 자신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다(골 1:16).
2)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돌아섰다(사 53:6).
   그 결과 하나님과 분리되었고(사 59:2) 그의 형벌은 영원한 죽음이다(롬 6:23).


3. 그리스도

1) 하나님은 깨어진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을 입은 인간으로 이 땅에 보내셨다(골 1:19-20). 또한 그리스도는 완전한 삶을 사셨다(벧전 2:22).
2)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속해서 죽으셨고 우리가 받을 죽음의 형벌을 갚아주셨다(롬 5:8). 그는 다시 살아나셨고(고전 15:3-4)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가 현재 또 영원히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새 생명을 주신다(요 10:10).


4. 반응

1) 나는 하나님을 거역했기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마 4:17).
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새 생명을 주기 위해 죽으셨음을 믿어야 한다(요 1:12).
3) 나는 그리스도께 순종한다는 의미로 그분을 나의 구세주요 주님으로 영접해야 한다.


5. 대가

1) 하나님이 치르신 대가 (벧전 1:18-19)
2) 당신이 치른 대가는 없다. 오히려 당신은 구원을 얻었다9엡 2:8-9).
3) 당신이 치를 대가 : 제자로서의 대가 (눅 9:23-24)



* 교재 "Speaking of Jesus"의 "4. What I Did on My Spring Break : A Study of Engagement"를 번역하였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의역한 부분도 있습니다. 오류나 수정사항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9  제 17장 (천국의)거주자로서의 확립    김 에스더 2018/04/24 63 183
18  제 16강 이민    김 에스더 2018/04/21 63 214
17  제 15강 대사의 직분 (Ambassadorship)    김 에스더 2018/04/15 74 232
16  제 14장 큰 그림    김 에스더 2018/04/08 91 241
15  제 13장 어떻게 간증할 것인가?    김 에스더 2018/03/31 70 241
14  제 12강 대답들    김 에스더 2018/03/26 82 211
13  제 11강 질문들    김 에스더 2018/03/18 94 252
12  제 10강의 : 우물가의 매춘부    김 에스더 2018/03/10 90 253
11  제 9강 긍정적인 전도의 능력    김 에스더 2018/03/03 93 269
10  제 8장 장벽 허물기    김 에스더 2018/02/25 91 284
9  제 7강 예수님이 가지셨던 겸손    김 에스더 2018/02/17 94 277
8  제 6강 하나님의 약속    김 에스더 2018/02/10 78 278
7  제 5강 예수님 전하기    김 에스더 2018/02/03 85 266
 제 4강 : 봄 방학 때 생긴 일    김 에스더 2018/01/27 80 287
5  제 3강 아버지의 구출    김 에스더 2018/01/19 93 282
4  제 2강 : 전도의 첫 단계    김 에스더 2018/01/06 80 278
3  제 1강 :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기회    김 에스더 2018/01/05 76 279
2  강의 소개 및 감사의 글    김 에스더 2018/01/05 82 262
1  The Book Cover    김 에스더 2018/01/05 75 202

    목록보기 1
       

 
www.hendersonny.org // email: info@hendersonny.org

Copyright © 2018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
NY : 40-36/38 78th Street, Elmhurst, NY 11373
General and Admission Office of NY & NJ 718.810.3248 or 646.338.7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