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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강 아버지의 구출
김 에스더  (Homepage) 2018-01-19 20:43:43, 조회 : 171, 추천 : 42

제 3장 아버지의 구출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며 헌신한 이 후로, 복음전도를 위한 우리의 개인적인 장애물이 있다는 것과 그것들을 없애기 위한 어떤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문제를 실제 상황과 같은 비유로 접근해보려고 한다.


        나는 오하이오 강에 있는 서부의 작은 켄터키 도시에서 자라났다. 인디아나 해변에서 켄터키 해변까지의 거리는 일 마일정도였다. 강의 움직임은 거대했지만 조용했다. 가끔은 강이 아니라 육지가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물론 그것은 환상이었다. 물과 강에 떠있는 쓰레기는 놀랄만한 속력으로 미끄러져 갔다.


        우리 도시로부터 일 마일 아래에, 댐에 있는 물은 방수로를 따라 좁게 흐르고 있었다. 거기서 강은 죽음의 통로가 되었다. 진흙투성이인 오하이오 강이 이런 돌연적인 방해물을 폭포 밑으로 떨어뜨리는 것처럼, 나는 공중에 던져진 나무가 침수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때때로 Messenger & Inquirer 의 기사는 배를 탄 운이 나쁜 사람이나 낚시꾼이 그 댐으로 가다가 익사한 사건을 싣기도 했다.


        강은 조심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안전했다. 여름동안, 그곳은 우리의 놀이터였다. 우리는 그곳을 호수처럼 다루었다. 우리는 댐으로부터 떨어진 상류에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 가족은 두 개의 보트가 있었다. 돛배는 아버지가 손으로 직접 만드셨다. 또 하나는 다용도로 쓰이는 소형 발동기선이었다. 아버지는 소형 발동기선이 모든 것에는 유용하지만, 완전하지 않다고 말씀했다. 우리는 섬과 모래톱(조류로 인해 생긴)을 탐험하는데 주말을 보냈다. 바람이 잘 맞을 때는 돛배를 탔고, 그렇지 않을 때는 소형 발동기선을 탔다.


        해마다 봄에, 아버지는 창고에서 두 보트를 꺼내다가 움직일 수 있도록 손을 보셨다. 아버지와 나는 팀이었다. 아버지는 트레일러가 달린 차로 발동기선과 돛배를 물 안에 넣으셨고 나는 엔진을 회전시키며 보트를 물에 띄웠다.


        어느 한 봄날에 아버지는 보트를 물에 띄우셨다. 오래된 두 개의 엔진은 심한 소음을 내었고 그 해에 처음으로 작동했다. 나는 오하이오 강에 보트를 띄웠다. 보트가 돌아가면서 선착장으로 배를 돌리기 전에, 나는 경솔하게 강 안쪽으로 돌았다. 그리고 중간쯤에서 엔진이 꺼져버렸다.


        그때 나는 비로서 강의 빠른 속도를 느꼈다. 봄의 물은 힘이 있었다. 기류는 힘없는 보트를 잡고 원형을 그리며 나아갔다. 동시에 강한 바람은 보트를 하류로 몰고 갔다. 나는 키를 잡고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겨울의 동면으로 인해 약해진 배터리는 빠르게 힘을 잃어버렸다. 그때 나는 댐으로부터 들려오는 큰 물결의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강둑을 따라 보트와 같은 속력을 유지하려고 달려오고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볼 만큼 충분히 가깝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의 움직임에서 두려움을 알 수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당신이 위험한 상황에서 꼭 같이 있고 싶은 그런 냉정하고 아주 명석한 분이다. 그가 겁을 먹은 모습을 보면서 나의 두려움은 증가되었다. 나무뿌리와 돌에 걸려 비틀거리면서, 아버지는 손을 입에 대고 나에게 지시사항을 소리쳤다. 그러나 그 말은 바람에 날아갔다.


        나는 엔진 커버를 벗겼다. “아마도 내가 손으로 엔진을 걸 수 있지도 몰라”. 그러나 나는 힘이 너무 부족했다.


        강은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댐 입구에는 대문자로 다음과 같이 써있었다. “위험! 이 시점을 절대 넘어가지 마시오!” 나는 겁에 질렸다. 노를 찾을 수 없게 되자, 나는 수상스키를 집어 들고 물을 저었다. 그러나 강의 힘 앞에서 나의 노력은 소용이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보트에 부딪히는 엄청난 소음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당장은 알 수 없었다. 한 보트가 다른 보트에 부딪히는 그 소리를 알고는 있었지만, 그때 나는 두려움 때문에 장애자처럼 엉터리로 노를 계속 젓고만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밧줄걸이에 줄을 매면서 안심의 미소를 지었고 우리의 망가진 선박은 선착장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선착장에 있던 작고 냄새나는 낚시 보트하나를 가져왔던 것이다.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데에 꽤 시간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나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너무 무서웠어요” 내가 말했다.
“이제 괜찮아”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그의 목소리가 쉬어있음을 알았다. “닻을 내려라!” 그는 목이 쉬도록 소리쳤던 것이다.


        나는 닻을 내리는 것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너무 바보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가끔 삶은 그런 식으로 나아간다. 가끔 우리는 구제가 필요하지만, 지시대로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나를 구해주셨고 나는 나의 아버지에 의해 구출되었다.


        성경적 역사의 흐름은 사랑의 아버지(Father)가 재앙에서 그의 잃어버린 자녀들을 구하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구원은 창세기에서 사단이 그의 머리가 하와의 자손에 의해서 상할 것이라고 들었을 때, 시작되었다. 모세의 법은 구원을 위한 우리의 필요를 보여준다. 선지자들은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재앙을 경고하고 지적하여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해변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구원은 예수님이 도착하심으로서 실현되었다. 하나님 아버지가 말씀하신 그대로를 행하신 예수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속전으로 내놓으셨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구원하셨다. 잠간 멈추고 생각해보자. 당신이 하나님의 마음과 역사에 관련되어 있는 당신의 믿음을 나눌 때, 당신은 신적구원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와 함께 안전하게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실 때까지 놀라운 여정-비록 그것이 그분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지라도-을 가실 것이다.  


1. 복음전도의 잘못된 시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음전도자들과 복음전도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나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새신자로서 처음으로 말씀을 주목했을 때를 나는 기억한다. 그것은 나의 커다란 킹제임스 성경이었다. 나는 “복음전도자 성도 요한에 의한 복음서”라는 제목의 요한복음을 읽고 있었다. 나는 나 혼자서, ‘웃기다, 요한은 좋은 사람이었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역자 주. 저자는 사도요한을 복음전도자라고는 부르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복음전도자’라는 단어는 기독교의 전문 용어를 의미해왔다. 즉 선교사, 목사, 전도사 등. 이런 직분은 회심한 사람들이 많음을 보여준다.


        만약 우리가 모두 빌리 그래함처럼 되어야 한다면, 압박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빌리 그래함은 놀라운 사람이다. 한 세기에 한번 나올만한 선행과 성공의 모범이었다. 빌리 그래함으로 인해 주님께 감사한다. 우리가 빌리처럼 되기를 원치 않으신 주님께 또한 감사드린다. 주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방법으로, 우리가 속한 세상에서 충성하기를 원하신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하나님이 나의 믿음을 나누기 위해 나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이전에 신학교 학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나를 당황하게 하였다.

        
        복음전도와 복음전도자에 대한 이런 부정적이고 과장된 시선들은 내가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그것들은 “복음전도는 단지 나의 은사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정당화시켰다. (그것은 마치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나의 은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아마 당신도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정말로 당신의 믿음을 나누기 위한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할지 모름으로서, 죄책감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면, 당신은 절망적으로 두 손 모두 들고, 그것을 전문가들에게 남겨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이나 그분이 바라는 복음전도가 아니다. 복음전도는 배운 사람들, 유명한 사람들 혹은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구원 사역에서 평범한 영웅을 바라고 계신다. 복음 전도에 있어서 우리의 문제 가운데 한 부분은 직분의 개념-즉 성령하나님과 함께하는 우리의 것-에 대한 혼란이다.


2. 당신의 직분의 개념을 올바르게 가져라


        내가 처음 복음전도에 참여했을 때, 말솜씨에 대한 나의 은사가 갖추어졌고, 죄책감에 의한 동기도 부여되었으며 여러 가지 전도의 부끄러움으로 시작하였다.
        
“만약 사람들이 주변에 없으면, 맥이 앞장서” 한 친구가 복받쳐서 말하였다. 그때 나는 올바른 기술과 결과의 기능으로 복음전도를 보았다. 나는 오직 나에게 주어진 구원의 부담을 보았다. 나는 단지 사람들이 회심하기 위한 방법으로 복음을 보여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누구도 회심하지 않는다면, 전도는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무언가가 빠져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복음전도인가? 나는 의심스러웠다.


        나는 한 동료 학생과 함께 빌리 그래함의 영화를 위한 상담자로서 등록하였다. 우리의 역할은 영화가 끝이 났을 때, 호명되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비록 상담자이지만, 우리는 처음으로 훈련을 받았다.


        우리를 훈련시킨 사람은 그레이 형제였다. 그레이 형제는 준비 없이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우리가 아니라, 성령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에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해.”


        잃어버린 조각이 제 자리에 들어가 내 손에서 맞추어졌다. 의심할 여지없이, 나는 큰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이제 나는 성령하나님의 사역의 개념을 적용시킬 수 있었다.


        J. I. 패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복음적 사역은 하나님이 구원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시는 방편이다. 그러나 구원하시는 능력은 방편에 있지 않다. 그것은 방편을 사용하시는 그분의 손에 달려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만약 복음이 선포되었을 때, 하나님의 특권이  그 결과를 이루신다는 것을 우리가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우리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복음전도를 위한 우리의 접근은 실용적이고 계산적이 될 것이다.”


        성령하나님은 구원을 위해 시작하시고 이루시며 거듭남을 주신다. 내가 아닌, 성령하나님이 하신다. 바른 신학의 간단한 이런 부분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를 확인시켜주고 그리스도로 인도하고 그들의 마음에 믿음이 필요하다고 강요해야 하는(사람으로서는 실제로 불가능한 사역) 충동을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성령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개념과는 다르게, 우리의 것은 비교적 단순하다. 첫째, 우리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따르게 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선포한다. 듣는 이들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서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나는 능란한 질문들로 사람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기술이 필요 없었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웠고 내 언어로, 내가 가진 경험으로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아닌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그분의 계획대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위로였음을 당신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남겨둔다. 복음전도의 확장된 비유로서 강에서의 나의 구제를 생각해보자.


3. 가능한 일


        아버지는 그 재앙을 멈추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일은 닻을 내리는 일이 전부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만약 그가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면, 나는 구조되었을까? 아니다. 나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물가에서는 올바른 방법을 소리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신에 아버지는 어떤 장애물을 끌고 와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위험에 던짐으로서 나를 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복음전도에서 우리에게 같은 것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시사항을 소리치는 것(어쨌든, 그들은 우리가 처음에 말하는 것을 종종 이해할 수도 없다) 대신에 사람들에게 가능한 것을 우리에게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그들의 삶에 개입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보트를 훔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일반적인 범위를 넘어설 것을 우리에게 요구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가진 진리로 다른 사람들의 세상에 뛰어들기 위해 우리의 안전에 위험을 무릅쓴다면, 우리는 세상에 있는 모든 설명서보다 더 강한 능력의 증인들이 될 것이다.


4. 갖추어야 할 장비


        강에서 나를 구하기 위해 고급스런 요트가 필요했을까? 사용 가능한 낚시 배로도 충분했다.


        강에서 구출하기 위해 훈련되지 않았던, 그리고 호화스런 보트의 선택할 여지도 없었던 나의 아버지는 해야 할 일을 하셨다. 그는 그의 지혜와 상식을 사용했다. 그는 손으로 장비를 사용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그의 구원을 위한 메시지를 나누기 위해 우리가 준비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가진 것을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당신은 당신의 믿음을 나누기 위해 전문적으로 훈련된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나눈다면, 그 기회가 왔을 때, 하나님은 당신을 사용하실 것이다. 이것은 신학교의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다.


5. 주어진 동기


        물가에서 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나의 아버지가 하신 방법대로 반응을 하였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마땅한 장비도 없어요. 그것은 우리의 은사가 아니에요.”


        그러나 그것은 나의 아버지를 또한 묘사한다. 강가에서 나를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은 나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는 비록 누군가가 “그것은 너무 위험해요”라고 말했을 지라도, 그의 사랑은 그의 아들을 장애물과 위험으로부터 구해야만 했던 동기가 되었다. 그것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아버지는 나를 구하신 것이다. 그는 나를 사랑했고 내가 구원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올바른 방법으로 동기를 가지기를 원하신다. 죄책감의 움직임에 의해서가 아니라 혹은 이를 갈거나 분노로 인해서가 아닌 사랑에 의해서 하기를 원하신다. 나의 아버지가 가진 그런 사랑은 둑에서 소리를 지르게 한다.


6. 평범한 영웅


        아버지는 평범한 영웅이었다. 그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나를 구할 수 있었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장비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의 사랑이 동기가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나누도록 우리를 부르셨을 때, 그분은 우리의 자격증이나 우리의 화려해 보이는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으시다. 그분은 우리가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지르는가도 상관치 않으신다. 그분은 심지어 우리의 은사가 있는지 없는지도 관심이 없으시다. 그분은 단지 우리가 주변에서 필요할 때 그것을 깨닫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으로 반응하기를 원하신다.


        수 년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아왔다. 어떤 이들은 한 분야에서 전문가들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처참하게 실패를 하곤 했다. 예를 들면, 어떤 이들은 믿음에 대해 위대한 변증가들이었지만, 어느 한 사람의 비기독교인들도 알지 못했다. 다른 이들은 비기독교인들과 교류가 있었지만, 영적인 주제들에 대해 무엇을 말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였다. 그 외의 사람들은 관심조차도 없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분야를 모두 합쳐 놓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변호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또한 비기독교인들과 아주 편안한 관계에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복음전도의 평범한 영웅들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마음을 끄는 사람들(engagers)”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그리스도께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사람들이다. - 집단으로가 아닌, 생활의 방편을 따라 개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복음전도의 은사를 받은 것처럼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한다. 그러나 당신이 “마음을 끄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열심에 대해 말을 한다면, 그들은 보통 “아니요, 저는 단지 순종할 뿐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들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다.


        나는 그리스도의 충성스런 증인이 되기 위해 복음전도의 은사가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세 분야(마음이 준비되고 잘 갖추어져 있으며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 비그리스도인에게 갈 수 있는 사람)는 복음전도를 위한 중요한 관계이며 복음전도를 위한 나의 이해를 위해 기초적인 뼈대를 이룬다. 실제적인 삶에서 복음전도를 위한 우리의 사역적 특징은 잘 준비되고 유용하며 동기가 부여되는 것이다.


        내가 주변을 돌아보면, 기독교의 메시지를 들어야 할 절망적인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댐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구출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우선 성령하나님과 함께 하는 당신의 사역에 대한 개념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 주변에서 “마음을 끄는 사람(engager)”이 되기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아라. 스스로 가능하고 준비되며 동기를 가진 사람이 되어라. 우리는 다음 장에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살펴볼 것이다.



<숙고와 토론을 위한 문제들>

1. 죄인을 향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구원은 강에서 구출된 맥의 경우와 얼마나 유사한가?

2. 맥은 자신의 사역에 대한 개념에 어떤 혼란이 있었나? 복음전도의 사역에 대해서 당신도 그런 혼란이 있었는가?

3. “마음을 끄는 사람(혹은 평범한 영웅)”은 어떤 사람인가? 당신도 그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하는가?


* 교재 "Speaking of Jesus"의 "3. A Father's Rescue"을 번역하였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의역한 부분도 있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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