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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강 : 전도의 첫 단계
김 에스더  (Homepage) 2018-01-06 21:12:00, 조회 : 224, 추천 : 51

제 2 장 전도의 첫 단계


        전도의 첫 단계는 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는 안된다. 내가 스키를 타면서 겪은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배웠다. 내 삶에서 그리스도의 요구를 굳게 붙잡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소위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주권이 변증을 위한 어떤 변호보다도 전도를 위한 가장 강한 도구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스펜(Aspen)에서 전도를 실패한 후에, 영적 활동을 종합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적극적인 교회 청년 모임에 참석했다. 그들은 나에게 생소했지만 거룩한 승무원이었다. 환상적인 종교적 말을 지껄였으며 말이 많은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사랑했고 내가 성장하는 일에 도움을 주었다. 삶에서 우리들의 신앙을 합리적으로 만들어 가는 일에 함께 애를 썼다.


         나는 그들이 전도에 참여를 할 것인지가 궁금하였다. 결국 그들은 그림이 그려진 작은 소책자로 전도에 참여하였다. 이런 소책차에 나는 불만족스러웠고 하찮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최악의 것은 그들에게 화가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전도라는 거야?” 나는 의아했다.


        나는 성경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지역 기독교 서점을 찾았다. 복음에 대한 책이 진열된 곳을 훑어보면서 어떤 책을 사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한참동안 서 있었다. 내가 새롭게 찾은 청년부 그룹이 자기들이 갖고 있는 믿음을 나눌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나는 책들을 검토하였다.


        “영혼의 승리자(The Soul Winner)”와 같은 제목에 마음이 끌렸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살펴보았다. 다른 책을 보기 위해서 몸을 돌렸을 때, 나의 눈을 사로잡는 책 제목이 있었다; “당신의 믿음을 어떻게 거저 줄 수 있는가?”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 영혼을 잡는 내용이 아니라, 일반적인 제안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설명하는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샀다. 그리고 그 선반에 있는 가장 두꺼운 성경을 샀다. 성경 지도가 있었고, 관련구절이 있고, 재림에 대한 알기 어려운 휴거설이 도표로 그려져 있다.



1. 질서 있게 배열하기


        놀랍게도, 저자는 전도가 모든 신자들을 위한 소명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인의 삶에서 조건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Paul Little은 우리가 믿음을 나누기 전에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에 대해서 말했다. 효과적으로 전도를 하기 위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팔려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샀던 두꺼운 성경도 읽기 시작했다. 하나님과 폴 리틀은 일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벧전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이것만큼 분명한 말씀은 없을 것이다. 이 구절은 전도에서 주권과 연결되어 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주인으로 세워야 한다. 그리고 이성과 온유와 존경심을 가지고 그에 대해서 말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내가 이 책을 끝내기 전에, 나는 머리를 숙였고, 하나님에게 나의 교만을 고백했으며 그를 나의 삶의 주님으로 섬기겠다고 결심했다. 특히 전도에 있어서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마음을 먹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에 대답할 필요가 없다.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아가고 있었다; 요한, 나의 스키 친구인 형, 헨리였다.



2. 무신론자 요한


        고등학교 때에 나는 요한을 우러러 보았다. 그는 록큰롤의 회원이었다. 그는 스키를 잘 탔다. 요한은 자신이 무신론자라는 명함을 가지고 다녔다. 이런 주장은 그의 지성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반항심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이름패를 어깨에 달고 다녔다.


        우리 문화에는 의심이 신앙보다 더 정직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무신론자들이 모든 사람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에 있는 친구들도 요한을 지성인이라고 보았다.


        요한과 나는 고급 영어반에 1년 동안 함께 있었다. “우등생”이라는 것은 조금 과장된 말이다.


        종교는 우리가 읽어야 하는 도서 목록의 일반적인 주제였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많은 토론이 있었다. 공평을 위해서 헤르만 헤셋의 싯다르타를 읽었다. 무신론자들은 한 편에 앉았고, 내 그룹에 속한 톰은 다른 편에 앉았다. 나는 중간에서 몸을 도사리고 있었다.


        뜨거운 논쟁이 오고 가면서, 엘렌이라는 학생이 발표를 하였다. “나는 하나님에게 내 앞에 나타나도록 3분을 주겠다. 나타나지 않으면, 나는 그를 믿지 않겠다.” 엘렌은 그의 팔을 쳐들고 시계를 쳐다보았다.


        나는 엘렌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삼상 6:20절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삼상 6:20]   (20)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그러나 하나님은 임재하였고 톰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나이에 맞지 않는 지혜를 갖고 있었던, 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그가 나를 통해서 너에게 말을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그때에 나는 너무 당황해서, 엘렌이 어떻게 반응을 하였는가를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요한이 능글맞게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요한이 테네시 멤피스에 있는, Rhode College 문과대학에 입학하겠다고 했을 때에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첫 해가 지난 후에, 요한이 나를 찾아왔고 나로 하여금 Rhode에 입학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것은 나에게 놀라운 것이었다.


        나는 콜로라도 대학에 입학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스키에 대한 꿈이 내 머리에 있었다. 그러나 요한의 권면으로, Rhode에 입학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받아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만약에 입학이 된다면, 그곳에 가겠다고 하나님에게 언약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입학원서가 날아왔고 스키를 통해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나의 꿈은 평평한 테네시 멤피스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변경되었다.


        Rhode 대학교에서 요한의 첫해는 자신의 무신론적인 신념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Rhode가 특별히 기독교 학교였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어떤 교수들은 수업 중에 성경 문서 비평을 가지고 기독교인들을 조각조각 내었다. 요한의 무신론은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그의 첫 번째 수업은 확장된 서구 시민 과정이었다. 이 수업의 일부분은 성경을 읽는 것이었다. 무신론자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책이었다. 성경의 증거는 그의 무신론에 대한 요한의 의심을 증가시켰다. 그러나 실제로 그를 도전했던 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찾아다닌다는 느낌이 점점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요한은 후에 하나님이 “하늘의 사냥개”라는 시인 프란시스 톰슨의 개념을 언급했다.



3. 가망 없는 만남


        요한은 그의 여자 친구를 보기 위해서 주말에 지나가는 차를 편승하였다. 때때로 무임승차가 어려울 때가 많았다. 9월 어느 더운 날, 요한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차를 탔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 사람은 약 70세는 되어 보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살던 시대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동일한 문화적 분위기를 갖고 있었고, 그 시대의 유행하던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목 주위에 있는 가죽고리로부터 커다란 나무십자가가 달려 있었다. 그들의 눈은 동일하게 자유롭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약으로 인한 열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인한 흥분 때문이었다.


        예수님을 믿는 그 사람도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그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의 주인이었다. 그는 요한에게 말했다, “예수님이 나를 헤로인 중독에서 고쳐주셨다는 것을 자네한테 말하고 싶네.” 그 사람의 팔은 헤로인 주사 바늘로 여러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의 얼굴은 예수님이 허락하신 자유로부터 얻은 기쁨을 담고 있었다. 그는 장시간 동안 무신론자의 귀를 매우 불편하게 하였지만, 참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요한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그의 신앙의 진동이었다.


        요한은 그 주말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는 하늘의 사냥개가 전속도로 자신을 좇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불편한 심정을 주말의 성관계로 완화하였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몇 주가 지난 다음에 하나님이 자신을 추적한다는 의심스러운 생각이 두려움으로 고조되었다. 요한은 다시 52번 고속도로에서 편승을 하려고 하였다. 결국, 앞좌석에 두 남자가 탄 차가 섰다. 요한은 그의 가방을 뒷좌석에 던지면서 승차를 하였다.


        놀랍게도, 운전석에는 전에 보았던 예수님을 믿는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런 우연은 무신론자인 요한을 놀라게 하였다. 예수님을 믿는 그 바보는 앞좌석에 팔을 걸치고 요한을 슬쩍 보았다. 그리고 분명하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하나님이 자네를 찾아다니네.”


        운전을 하면서, 옆에 있었던 아프리칸 미국인이 요한에게 지역 감옥에서 방금 출소를 하였다고 요한에게 말했다. 알지도 못하는 예수님을 믿는 바보가 감옥에 나타나서 그를 보석금을 주고 감옥에서 나오게 하였다고 하였다. 지금 예수님을 믿는 바보가 그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요한에게 돌아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네가 알다시피, 백인들은 흑인들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네. 나는 이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가 가진 것을 나도 갖고 싶다네”라고 말했다.


        요한은 밀실공포증이 밀려왔다. “제발 나를 내려주세요”라고 간청했다.


        예수님을 믿는 바보는 말하기를, “지금 우리는 옥수수 밭에 둘러 쌓여 있네, 여기서 내리면 갈 곳이 없을 거야.”


        이것은 육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맞는 말이었다. 이것은 요한을 더 답답하게 하였다. “안돼!”라고 소리치면서 그는 반항을 하였다. “저는 지금 당장 내려야 해요!”라고 요한은 소리쳤다.



4. 하늘의 사냥개에게 추적을 당하다.


        차가 다음 언덕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요한은 멍하니 길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가방을 매고 옥수수 밭 사이로 마구 달렸다. 얼마 지나서 넘어졌다. 지쳤다. 눈을 들어서 요한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그는 소리쳤다. 그리고 두려운 목소리로, “저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아마도 요한은 눈치 채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남아있던 무신론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뇌에 찬 그의 기도는 정직하였고 곧 응답을 받았다.


        내가 그의 응답이었다. 고등학교 때에 친구였던 톰이 옳았다. 하나님은 오류가 있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그 사람을 통해서 복음을 보이신다.


        우리가 Rhode에서 만났을 때에, 요한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했다. 이 무신론자가 갑자기 왜 말투를 바꾸는지 의아해 했다. 내가 개발한 놀랄만한 전도 기술 때문인가? 아니다. 그때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늦은 오후 그리고 밤에 요한과 함께 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Rhode는 멤피스 동물원 건너편에 있었다. 때때로 늦은 밤에 원숭이, 공작, 그리고 표범과 같은 큰 동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의 기억이 이렇게 생생한지도 모른다. 또는 성령이 역사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요한, 네가 정말로 하나님을 따르기 원한다면, 마약을 멈추고 여자 친구와 같이 자는 것을 멈춰야 해”라고 나는 말했다.
        “ 왜”라고 요한이 말했다.
        “ 이런 일을 하면서 예수님을 따를 수는 없어.”
        “ 알았어”라고 그는 말했다.
        “ 너의 삶을 예수님에게 드려야 해. 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아. 너는 기도를 할 필요가 있어. 그에게 너의 전체 삶을 바쳐야 해”라고 나는 말했다.
        “ 알았어, 그렇게 할께”라고 요한은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했다.


        사실, 우리가 Rhode에 학생으로 있는 동안, 요한이 나에게 주었던 옛날 성경을 나는 여전히 갖고 있었다.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나의 형제이자 친구 맥 스타일즈에게, 그는 나에게 말씀을 전함으로서 하나님의 경륜을 받아들이도록 삶을 바꾸어주었다. 그의 19번째 생일을 축하하면서 요한이.”


        요한을 바꾸게 한 것이 무엇인가? 나의 전도 기술인가? 아니다. 나는 지금도 애를 먹고 있다. 나는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헌신을 하였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요한에게 나눌 사람이 되었던 것이고,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셨다. 그러나 요한을 그리스도에게 바꾸는 일에 사용된 주요 도구는 내가 아니라 고속도로 52번에 있었던 무명의 예수님을 믿는 바보였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시작했던 그 사람이 바로 우리 모두가 시작해야 하는 출발점이다. 전도에서 가장 효과적인 행위는 깊고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권으로 시작을 해야 한다. 복음의 개요 또는 전도 방법이나 기술이 아니다. 전도의 첫 번째 단계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항복을 하는 것이다.


        주권은 첫 계명을 말하는 또 다른 표현이다,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우리가 그를 사랑한다면 그가 말한 것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한다. 이것은 매우 이상한 변화일 수 있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매우 이상한 사업이고, 경이감으로 가득 찬 것이다. 예수님이 취한 방향에 대해서 제자들이 당황해 했던 것처럼,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한 내 모습을 종종 본다. 그는 가버나움에서 가질 수 있는 인기를 피하였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로 달려갔다. 그의 길은 항상 우리에게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이해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길은 우리와 같은 길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하다. 그의 길은 항상 나은 길이다.


        오늘날, 요한과 내가 대학교 교정에서 걸었던 일을 추억할 때에, “요한, 이제 그만두어야 해...”라고 말한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한다. 본질적으로, “요한, 네가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한다면, 그의 길을 가겠다고 동의해야해”라고 말한 것이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따를 때에 취해야 할 4가지 단계가 있다.(이것에 대해서는 제 7 장에서 좀 더 자세하게 말할 것이다).


        a. 영적 훈련을 하라  

        영적 훈련은 우리 영적 생명력의 열쇠이다. 다른 것들 중에서, 영적 훈련은 기도, 성경 읽기, 묵상, 자선, 침묵, 홀로 있기, 금식 그리고 죄에 대한 고백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 주님에 의해서 실천된 영적 건강을 위한 것이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두꺼운 성경을 읽는 것은 내가 했던 가장 중요한 일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 일을 나는 하고 있다.


        b. 성도의 교제에 힘을 쓰라

        교회에 참석하라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성도들을 위해서 나를 바치라는 것이다. 내가 참여했던 청년들은 흠이 있다. 완전했다면 내가 참석한 순간에 흠이 생겼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지체이고, 그들은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들을 사랑한다. 만화가 그려진 팜플렛을 갖고 있는 것보다 또는 팜플렛을 갖고 있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였다.

“[요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세상에서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증거는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가지는 교제의 모습이다.


        c. 믿음을 나누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맡아야 할 분야가 있다. Paul Little이 말한 것처럼, ‘전도는 영적 건강에 중요한 열쇠 중에 하나'이다. 전도에 대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의 기초는 다음 장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d. 위험을 무릅쓰라

        우리들은 한 단계 한 단계를 밟아가면서 위험을 더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라. 예수님은 위험스러운 존재이다. 우리가 그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을 때에, 그는 우리들의 생명을 내려놓으라고 요청을 하신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우리들의 신앙을 생명력 있게 유지하는 확실한 길은 당신의 생명을 거는 것이다. 시간과 지위와 자부심과 돈의 위험을 감수하라. 복음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위험을 감수하라. 멈추지 말라.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절대로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자라나가는 것을 멈추지 말라. 그는 아주 큰 존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우리들의 삶을 바치는 것이 바로 믿음의 모든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력 있게 만든다.


        요한과 나는 오늘날 예수님을 믿었던 그 바보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한다. 길가에 요한을 남겨두었을 때에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비 기독교인을 화나게 한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꼈을까? 복음의 모든 진리를 요한에게 말할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서 후회를 하고 있을까? 하나님이 요한을 좇아가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였지만, 그가 이 일을 망쳤을까봐 걱정을 하였을까? 그의 전도기술을 좀 더 개발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물론 그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오늘날 여기 있다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사용했던 단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요한에게 전달했던 하나님에 대한 살아있는 사랑입니다. 얼마나 정확하게 당신이 가졌던 복음을 전달하였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사랑의 행위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분명하게 헌신하는 당신의 모습입니다.”



<< 연 구 문 제 >>


1. 어떤 과정을 통해서 요한이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갔는가?

2. 여러분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밟았던 과정은 무엇인가?

3. 그리스도의 주권은 요한의 회심에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주권에 대한 맥 스타일즈와 예수님을 믿는 바보는 어떻게 연합이 되었는가?



* 교재 "Speaking of Jesus"의 "2. First Step"을 번역하였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의역한 부분도 있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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