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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강 이민
김 에스더  (Homepage) 2018-04-21 08:46:33, 조회 : 215, 추천 : 63

16. 이민


        존 캉가와 나는 케냐의 느공 언덕의 남쪽 끝을 덜거덕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그의 차가 마지막 비탈을 헐떡거리며 넘어섰을 때 리프트 계곡의 아름다움이 고생스런 여행길에 대한 모든 생각을 사라지게 했다. 거대한 아카시아 나무가 함께 모여 만든 넓고 평평한 산 꼭대기가 녹색의 카펫처럼 우리 아래에 있었다. 존의 차가 계곡으로 내려갈 때, 그의 엔진은 중력에 도움 없이는 결코 움직일 수 없는 속력으로 달렸다.


        존은 그의 차를 기적의 차라고 불렀고 나는 동의했다. 그 차가 아프리카의 길을 따라 계속 달리는 것은 정말로 기적이었다. 수 십 년동안 그 차는 셀 수 없는 마을과 교회없는 부락을 향해 달렸다.


        존은 수의과 대학의 교수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에 대해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그래서 매번 그는 그의 기타와 함께 기적의 차를 몰면서 학교의 기독교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여행을 다녔다. 그 모임은 그리스도인의 연합(Christian Unions, 이하 CU)이었다.


        우리는 마가디로 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지역 고등학교에서 설교를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종종 케냐의 청년 모임에서 설교를 해왔다. 그러나 그곳은 나에게 처음이었다. 요한은 그곳이 어려운 곳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가는 동안, 나는 그날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굉장한 큰 느낌을 받았다. 나는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느꼈다.


        아카시아 나무들은 가늘었다. 우리의 이마에는 계곡의 더위로 인해 땀방울이 흘렀다. 길은 더 이상 덜컹거리지 않았다. 아스팔트 도로는 단지 길을 지시할 뿐이었다. 우리 주변의 모든 평지도 도로처럼 평탄하였다.


        몇 마일 후에 나는 수평선 위로 마가디라는 곳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마을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건물은 공무원들을 위해 지어진 높고 메마른 콘크리트 주택들이었다. 존은 그 마을이 소금을 얻기 위해서 존재했다고 말했다. 나는 길 양쪽 모두에 소금 구멍들이 펼쳐진 것을 보았다. - 더러운 핑크색의 소금이 열기에 구워져서 만들어진 호수였다. 그것들은 마을의 끝을 둘러 울타리를 만들었다.


        도시 중앙에는 현대와 전통의 이상한 조화의 모습이 비추어졌다. - 마사이 유목민들이 높은 콘크리트 건물에 기대어서 콜라를 마시고 있었다. 그곳은 지저분한 곳이었지만 나의 기를 꺽지는 못했다. 하나님은 무언가를 준비하고 계셨다.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1. 놀라운 결과


        우리는 학교가 끝날 때 마을에 들어섰다. CU의 학생들은 그들이 데리고 올 수 있는 모든 학생들을 데리고 왔다. 25명을 위해 지어진 그 방에는 200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바닥에는 있는 아이들, 친구 무릎에 앉은 아이들, 창문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아이들. 그들은 존과 노래하기를 원했고 미국으로부터 온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요한의 기타 케이스는 그의 여행의 흔적들로 가득했지만 그의 기타는 광이 났고 기름이 칠해져 있었다. 그가 그것을 꺼냈을 때, 그것은 빛을 내었고 학생들은 그들의 방문에 환호성을 질렀다. 존이 그의 기타를 연주했을 때, 그는 항상 나에게 “Buddy Holly” 생각나게 했다. 그는 훌륭했다.


        잠시 후, 존은 설교자로서 나를 영광스럽게 소개해 주었다.

“힘있는 설교를 부탁해요. 형제님.”


        그는 앉기 전에 나에게 속삭였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했다. 학생들은 모든 말씀을 열심히 들었다.


        설교 끝에 나는 말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오늘 밤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을 하신다면, 미루지 마세요. 그리스도께 오세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자 하는 사람은 여기서, 지금, 나오세요. 그러면 저는 여러분에게 어떻게 할지를 말해줄 것입니다.”


        존은 기타를 조용히 연주했다. 나는 몰려나올 아이들로 인해 긴장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평범하지 않다. 우리가 일어나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으키시기를 원하는 것과 항상 다르다. 우리가 생각하는 능력은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능력과 항상 다르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 사람도! 나는 반복했다; 나는 앞뒤로 왔다갔다 하며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청중을 둘러본 후에 존은 누구든지 나에게나 혹은 그와 함께 그리스도께 가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에게 나아오라고 다시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군중을 해산시켰다. 나는 어리벙벙했다.


        학생들이 사라졌을 때, 존은 나에게 와서 CU의 리더가 어떤 조직적인 일에 대해서 그와 함께 이야기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떠나기 전에 잠시동안 그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가다가 돌아서서, 나의 팔꿈치를 쳤다.

“참 어려운 곳이죠. 맥” 그는 말했다.


        나는 학교 옆의 정원으로 갔다. 단단하게 쌓여있는 오렌지색의 진흙은 흙을 발로차기에 좋은 장소였다. 나는 기도했다; 그것은 좋은 기도가 아니었다.

“하나님. 저는 가장 큰 바보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그 아이들이 이해할 만한 어느 하나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아니라, 존이 오늘 설교를 했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왜 저를 이 길로 보내셨습니까...”


        그러나 그때, 나는 누군가가 내 옆에 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하나님에게 투덜거리는 것을 누군가가 들었을까봐 당황하면서 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젊은 청년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대답했다. 나는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가 나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저의 이름은 로버트에요.” 그는 흙을 내려다보았다.

“당신이 거기서 말했던 것을... 저는 그것을 하고 싶어요.”

“좋아요. 로버트. 함께 이야기 합시다.” 나는 말했다.


        로버트는 조용하고 사색적인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늘 하던대로 말해주었다: 하나님, 사람들, 그리스도, 응답, (죄에 대한)대가. 나는 심지어 그가 대가에 대해서 이해를 했는지에 대해 그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지금도 그 때를 부끄럽게 생각한다.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로버트가 이전에 복음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당신은 이제 그리스도를 영접하겠습니까?” 내가 물었다.

“네” 그는 조용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물었다.

“로버트.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거의 알고 있어 보이는데, 왜 당신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에 뒤로 물러서 있었나요?”


        로버트는 진흙을 내려다 보았다. 그는 그의 발로 진흙에 서클을 만들고 있었다.

“만약 제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저를 때릴 거라고 아버지가 말했어요. 오늘 밤... 저는 피를 흘리게 될 거에요.”


        나는 나의 손을 그의 어깨에 올렸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때린 것 같았다. 나는 나의 투덜거리던 기도보다 나의 다음의 생각 때문에 더 부끄러웠다.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러면.. 우리는 기다릴 수 있어요. 당신도 나중에 하면 되죠... 그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죠.”


        내가 나의 손을 그의 어깨에서 내려놓기도 전에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귀로 들은 음성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선명했다.

“맥, 내가 이 젊은이를 내게로 올 수 있도록 했던 일들을 잊지 말라.”

“네. 주님” 나는 말했다.


        나는 로버트와 간단한 기도를 했다. 나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에 대해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의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했다. 존의 모임이 끝나고 나서 나는 다른 CU 리더에게 로버트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리고 존과 나는 그곳을 떠났다. 나는 그 이후로 다시는 로버트를 본 적이 없었다.


        느공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아프리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 로버트와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해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의 전 인생에서 내가 가졌던 것보다 더 큰 용기를 가졌고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던 한 젊은이를 만났던 것이다. 나는 로버트에 의해 겸허해졌다. 나는 그를 만난 것이 영광스러웠다.



2. 선을 넘어서는 것


        주님은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하리라고 생각했던 그 방법대로 하지 않으셨다. 내가 바랬던 것처럼 마가디에서는 부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젊은이가 그리스도께 돌아서겠다고 강하고 용기있는 결단을 내렸다. 내 마음에서 일어난 그 일도 강한 것이었다. - 내가 누군가에게 선을 넘어서라고 요구할 수 있을 만큼 나는 과연 헌신적이었는가?


        아주 인기없는 것을 이야기해보자. 바울이 예수님에 대해 마을사람들에게 이야기하였을 때, 그의 목적은 그들을 돌이키는 것(convert)이었다. 더 나가서, 만약 당신이 한 친구와 함께 당신의 믿음을 나누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또한 그나 혹은 그녀의 회심을 가져오기위해 헌신을 해야 한다.


        물론 나도 안다. 그것은 누군가의 마음을 이끄시고 역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당신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며 심지어 그리스도께 나오도록 믿음을 주시는 분은 성령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바울 스스로가 누구도 회심시킬 수 없다고 그래서 분명히 우리도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맞다. 우리는 누구도 회심시킬 수 없다. 그것은 성령하나님의 사역이다. 나는 3장에서 내가 한 말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돌리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그들이 회심하게 하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바울이 회심(convert) 혹은 돌이킴(turn, NIV)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그는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그것은 성령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자신이 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바울이 사슬에 매인 채, 아그립바 왕 앞에 섰을 때 했던 그의 말을 들어보라. 그는 그리스도가 그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셨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행 26:17-18


        복음전도는 사람들의 눈을 열어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J. I. 패커의 말을 인용해 보자.

“전도하는 것은 우리가 가르친 진리에 대한 그 사람의 응답을 끌어내는 노력도 포함된다. 그것은 회심이라는 관점에서의 대화이다. 그것은 단지 정보를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초청이다. 그것은 얻기 위해, 이기기 위해, 그리고 낚아채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어떤 선을 넘어서도록 요구해야만 한다. 그렇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해야 하는 하나의 임무이다. - 그것은 이민의 사역이다.


        회심(convert)라는 단어는 죄라는 단어처럼 부정적인 의미가 가득하다. - 이교도를 무기로 위협해서 개종시키는 것 등. 회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돌이킴(turn)이라는 같은 의미의 단어를 사용해보자.


        정말 더 깊은 문제는 단어가 아니라 문화적인 기대이다. 우리는 다원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로 대중적인 종교관을 가져다주는 것과 같은 세계관이다.

“모든 종교는 같은 곳으로 인도한다.”

“당신에게 진리인 것은 나에게 진리가 아닐 수 있다.”


        다원주의는 다른 사람들의 다른 믿음에 대해 관용적이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 자신의 믿음의 완화를 요구한다. 그것은 종교적으로, 인종적으로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의 문제 -종교적인 진리-에 이르면, 이것은 재앙이다. 사람들의 받아들임은 중요하지만, 관용은 성경적으로 아주 낮은 가치이다. 우리는 관용적이고 불공정하며 비진리적인 것을 위해 부름받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분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누구도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다. 그것은 분명하게 관용의 관점은 아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진리인 것이 진리가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한 것이 진리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을 회심의 길로 초대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이 단지 바울에게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모든 사람에게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회심을 위한 요청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분, 즉 예수님을 받아들이도록 반드시 요청해야함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회심의 목적은 우리를 문화에 대항하도록 만든 다원주의를 향한 정면 도전이다.


        다원주의는 그리스도께 돌아서라고 사람들에게 요청하기에는 강한 도전이 된다. 그러나 로버트와의 만남에서 나에게 상기시켜 주었던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이 사람들을 그분에게 이끌기 위해 하셨던 일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메시지의 진리 위에 우리의 삶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진리라면 그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 돌아서라고 사람들을 부르는 일은 조작하거나 혹은 무례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저 단순하게 우리는 사람들에게 응답을 요청해야만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민감하게, 겸손하게 사랑을 가지고 요구할 필요가 있다.



3. 플래시백(Flashback, 과거의 회상 장면으로의 전환)


        지난 해, 나는 단기 선교 프로그램의 연회에 참석했다. 당시 케냐 프로그램의 지휘자인 지니 뮤지크는 연설을 하기 위해 일어섰다. 내가 케냐에 다녀온 지 2년이 지났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소식을 들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녀의 연설의 결론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우리가 지난 여러 해 동안 해왔던 단기 선교 프로그램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 하나의 이야기를 말함으로서 저의 연설을 마치려고 합니다. 지난 여름 저는 리프트 계곡 중간에 위치한 마가디라는 작은 마을에 있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저는 그곳의 기독교 모임에서 연설을 했어요. 그리고 나서 한 젊은 청년이 저에게 다가와서 물어보더군요. 혹시 맥이라고도 하고 스타일즈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남자를 알고 있느냐고요.”


        사람들은 미국사람의 이름을 말하는 아프리카의 방식에 미소를 지으며 웅성거렸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목구멍까지 차고 올랐다.

“네. 저는 맥을 아주 잘 알아요” 지니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 젊은 청년은 제게 그의 이름이 로버트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말했죠. ‘2년전에 맥 스타일즈가 우리들과 함께 했어요. 그분은 주님에 대해서 우리에게 설교해주었죠. 그리고 그분은 저를 그리스도께 이끌어 주었어요. 그분께 저의 인사를 전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분께 저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걷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지니는 계속 해서 말했다.

“이 젊은이는 현재 그의 학교에 있는 CU에서 리더로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증거하고 있죠...”


        많은 사람들이 나의 눈물을 보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지니를 포함해서, 왜 내가 눈물을 흘리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케냐에서 그리스도께 오는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다. 그러나 마가디에서는 오직 한 청년뿐이었다. 나에게 용기와 믿음과 헌신을 가르쳐준 바로 그 젊은 청년이었다. 주님은 한 젊은 청년을 통해서 선을 넘어서라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에 대한 대가와 가치를 나에게 되새겨 주셨다.



<토의를 위한 문제>

1. 로버트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선을 넘어서서 그리스도께 나아오라고 요청할 때 따르는 위험부담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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