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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강 대사의 직분 (Ambassadorship)
김 에스더  (Homepage) 2018-04-15 08:10:45, 조회 : 189, 추천 : 62

15. 대사의 직분 (Ambassadorship)


        몇 년 전, “멀티 미디어”가 화려한 슬라이드 쇼를 의미할 때, 나의 동역자, 빌 크리스텐센은 대학의 주간 모임에서 커다란 전자 장치를 무겁게 들고 왔었다. 그 “포켓 스타(Pocket Star)”는 두 개의 컴퓨터가 필요했다. 그의 전체 화면의 프로젝터와 녹음기는 단단한 가방 안에 있었다. 녹음기는 각 슬라이드에 따라 소리를 내며 원시적인 컴퓨터는 소리없이 지시사항을 보여주었다. 컴퓨터가 슬라이드 쇼를 시작하고 슬라이드를 앞으로 돌려주며 이미지를 진하게 혹은 흐리게 조절하였다.


        빌은 포켓스타를 우리가 학생회관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에 놓았다. 쇼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뒤쪽에 잠시 동안 편안하게 쉴 때가 있었다.


        쇼는 제자도, 선교 그리고 전도에 관한 것들이었다. 실제적인 내용은 지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포켓스타의 재미있었던 점은 슬라이드가 프로젝터에 걸렸을 때였다. 빌이 화난 모습을 보이면서 올 때에도 녹음기는 계속 돌아갔다. 그는 슬라이드를 빼내기 위해 프로젝터를 흔들었고 슬라이드가 녹음기와 맞도록 손으로 돌렸었다.


        그때 슬라이드는 꼭 한 두 개 정도 늦어졌다. 그러면 이상한 상황이 등장하였다. 사무엘 에스코바가 엘리자베스 엘리어트의 목소리로 말하거나 제트기 소리가 국제 학생의 입으로부터 나오기도 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주간 모임에서 포켓스타를 (그리고 빌) 볼 것을 기대하였다.


        초기의 결함 많은 멀티미디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하나의 작품이 기억났다. 그 쇼는 “유능한 대사 (The Effective Ambassador)”라고 불리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폴 리틀의 이야기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 쇼는 폴 리틀이 고린도후서 5:18, 20을 인용하는 목소리로 시작하였다.

고후 5:18


        첫 번째 장면 : 전형적인 “학생 존”은 그의 대학교 기숙사에 있는 그의 책상에 앉아 있다. 낭독한 말에 대해 그는 어리둥절한 표현으로 “누구요? 저요?” 라고 반응한다.


        배경처럼 폴 리틀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20절을 읽고 있다. (드럼이 울린다)

고후 5:20


        다음 장면 : 다시 학생 존이 요술처럼 턱시도와 붉은 허리띠, 훈장과 하얀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바뀐다. : 그는 대사처럼 새롭게 입은 그의 모습에 놀라고 있다. 그는 나폴레옹처럼 씩씩한 발걸음으로 나아간다.


        폴 리틀의 목소리는 다음의 구절로 끝을 맺는다.

“당신이 누군가와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에 대한 중대한 주제를 이야기할 때, 그리고 당신이 그들을 구세주에게로 초대할 때, 당신은 하나님의 바로 그 보좌로부터 뻗어 나온 고리의 마지막 부분에 연결된 사람이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실제로 그 사람을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폴 리틀이 사용한 대사(ambassador)라는 이미지는 완전했다. 대사라는 이미지는 사도 바울이 화목이라는 그의 주제를 그가 가는 곳마다 심어놓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실제의 삶으로부터 적용할 수 있는 본보기로서 고린도에 있는 어린 교회에 보여주기 위해 사용했다. 기독교인과 대사의 사이에 있는 풍부한 유사성을 생각해보라.


        바울은 그의 양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기독교를 향해 자라고 있는 적대감에 대해 반응할 것을 알았다. 우리가 주목했던 것처럼, 그와 같은 종류의 선택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직면해 있다: 거룩의 혼잡함, 날카로운 분쟁, 혹은 단순하게 (세상)문화 속으로의 동화. 그러나 바울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극단적인 것들을 피하고 그들 주변에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원했다.



1. 저요? 대사(an ambassador)요?


        바울의 시대에서 대사는 왕에 의해 선택되었고 그 나라의 가장 높은 권력을  위임받아서 메시지를 들고 완전한 명예와 함께 보내어졌다.


        바울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하고 있다: 선택되었고 위임받았고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것이 좋든지 안 좋든지 - 우리가 그것을 알고 있든지 모르고 있든지 - 우리는 삶을 통해서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대사들이다. 바울이 그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문제는 “제가 대사가 되어야만 하는가”가 아니라 “내가 더 나은 대사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여기에 대사와 대사로서의 기독교인의 모습 사이에 몇 가지의 공통점들이 있다.


1) 대사는 공인이다.

        그들은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전할 메시지를 의심받게 할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신임을 주기 위한 행동을 하고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무게를 싣는다.


        우리도 또한 공인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비밀스러운 요원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믿음이 사적으로 그리고 공적으로 삶에서 나타나야 한다고 말씀한다. 행동은 말하는 것이다.


        4년 전 여름에, 리안과 나는 렉싱턴에 집을 샀다. 우리는 새로운 집에 대해 너무 흥분되어 있었다. 단 한 가지만 제외한다면. 우리는 서류에 사인을 한 후에, 바로 그날 케냐에 있는 단기 선교를 인도하기 위해 바로 떠나야 했다. 우리는 아파트에 있는 가구들을 옮길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데이빗과 앤지 맥닐이라는 친구 두 명이 우리가 떠나있는 두 달 동안 짐을 옮겨주겠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는 사랑의 섬김이었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내 여동생 린다에게는 대사 직분(ambassadorship)으로서 보여준 행동이기도 했다.


        린다는 데이빗과 앤지가 우리의 짐을 옮기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궁금했다.

‘왜지?’ 그녀는 생각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은 심지어 더 큰 문제로 커져나갔다.

‘나를 그만큼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결국 그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향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진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때 성령하나님은 그녀의 마음속에 말씀해주셨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것은 마치 그녀의 생각인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하나님이셨다. 그 생각은 나의 동생에게 중요한 고리가 되었다.: 일 년이 지나기도 전에 린다는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데이빗과 앤지는 그들의 기독교적인 사랑과 믿음을 열려져있는 공식적인 방법으로 삶에서 나타냄으로서 대사로서 그리스도와 내 동생 사이에 나타났다. 그들의 공식적인 행동은 그들의 메시지에 신뢰감을 주었다.


2) 대사들은 자격미달의 사유를 피한다.


        어떤 일들은 대사로서 자격미달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사들은 만약 그가 혹은 그녀가 외국의 시민이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 (대사의) 지위를 위해서는 자격미달이 될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 대사는 조국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기독교인들은 우선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들이고 두 번째로는 이 땅의 시민들이다. 문화에 동화되는 것은 자격미달이다.


        대사로서 자격미달이 되는 다른 몇 가지가 있다. : 전해야 할 그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메시지의 내용을 바꾸는 것이다. 왕과 대사의 우정은 메시지를 바꾸는데 핑계가 될 수 없다. 사실, 때로 대사는 밑에 깔려있는 목적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왕과 메시지의 전략을 모를 수도 있다. 그들의 역할은 나라를 위해 전략을 짜거나 강한 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메시지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가끔 나는 메시지를 바꾸려고 하는 유혹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곤란한 부분을 빼고 부드럽게 만들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유혹에 완전히 굴복하기도 한다.


        최근에 우리 지역에 있는 주요 교파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그림을 보여주는 전면광고를 냈다. 광고는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우리 교회에 있다면 당신은 형벌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해하라. 나는 어떤 이들이 지옥에 대해서 즐거운 듯이 말하는 것을 혐오한다. 그리고 타당한 기독교에서 열심히 일하고 싶지만 기독교를 팔지는 않는다. 그 전면광고는 기독교를 파는 광고였다. 나는 교회의 회원을 늘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다른 교회를 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광고에서 가장 슬픈 것은 그들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을 가르치기는 커녕 그들도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심판은 현실이다.


        메시지를 바꾸는 것은 자격미달이다. 우리는 아마도 그 메시지의 많은 부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그 메시지를 주신 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궁극적인 목적과 계획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메시지를 변경할 자유가 없다.


3) 모든 대사는 견고한 말씀을 전해야만 한다 : 경고의 주제, 행동에 대한 변호, 이해를 시키는 것.


        그는 혹은 그녀는 그 메시지를 변경할 수도 없고 전하는 것을 거부할 수도 없다.


        대사들은 사람들에게 거친 말로 충돌하기 보다는 호소하기를 원한다. 단어의 뜻에 의하면 대사는 두 권력사이에서 중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대사들은 사람들이 어려운 진리를 듣는 것 뿐만 아니라 동의하기를 원한다. 대사들은 권력들이 잘 지낼 수 있도록 즉 그들이 화목할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한다. 그들은 단지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언만을 하지 않는다. 진실하고 호소력이 있는 것은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조작하기도 한다. 조작하는 것이 때때로 대사(그리고 복음전도자)의 질병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대답은 조작이 아니다. 그 답은 외교술(diplomacy)이다.



2. 외교술(diplomacy)의 필요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어려운 방법으로 어렵게 말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항상 좋은 방법으로 좋은 것들만 말한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외교관들이다. 즉 좋은 방법으로 어려운 것들을 말하는 기술이 있는 사람들(대사들)이다. 그 사람들은 화려한 파티에서 미소를 띄우며 “당신은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타협을 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불친절함이 아닌 화목이 있어야 한다. 외교술은 세상 사이에 있는 분쟁을 화해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복음에 외교술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앞 장에서 예수님의 본보기에서 보았던 기술이다. 대사의 기술은 (복음을) 수용하는 문화를 아는 것을 필요로 한다. 즉 우리가 보냄을 받은 외국 문화에 대한 언어와 관습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성경의 말씀을, 성령하나님을 겸허하게 들어야 한다. 우리는 어려운 것들에 대한 합당한 해답을 준비해야 한다. 만약 필요하다면, 우리는 심지어 사과도 해야 한다.


        나는 기독교인의 외교술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도움이 될 만한 한 가지 규칙을 발견한 적이 있다. 만약 사람들이 우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심지어 우리가 겉치례적이고 사소해보다는 것조차도.


        리안과 나는 켄터키 주에 있는 대학들과 기독교인의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 켄터키 주로 이사를 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았다고 느꼈다. 우리는 열정에 차 있었고 높은 기대를 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훌륭한 것들을 생각만 해도 기뻤다.


        그러나 켄터키 대학에서 우리의 첫 번째 전도집회는 비참하게 실패했다. 학교 개강 첫 번째 주간동안 열렸던 우리의 기독교 연주회에 12명의 사람들만 참석했는데 그들은 사역자들의 가족들이었다.


        우리는 더 나은 외교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더 많은 질문들을 할 필요가 있었고 (대학)문화에 대해 더 배울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싸우기보다는 문화의 언어를 사용하기를 원했다. 우리는 우리의 메시지를 말하기를 원했고 들려지기를 원했다. 우리는 켄터키 대학 학생들이 이것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주기를 원했다.


        몇 가지의 주의 깊은 조사를 한 후에 우리는 켄터키 주립대학 전체에 있는 하나의 공유된 가치를 발견했다. 그것은 모든 사회와 경제적 경계선을 넘어, 대학이라는 거대한 동아리 안에 압도적으로 깊이 스며져 있었다. 그것은 인종과 계급을 초월했다. 그것은 나이를 초월했다. 그것은 전공을 넘어서고 심지어 종교의 분쟁까지도 만장일치를 가져오는 시스템이었다. 그것은 다원주의라는 바다에 있는 “독립된 섬”이었다. 그것은 농구였다.


        여기서 외교술의 한 면을 보았다. 한편으로 우리는 반칙을 선언하는 “기독교인의 심판”으로서 경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농구는 단지 게임일 뿐이에요. 그것은 당신의 가장 깊은 열망을 만나게 하지 못해요.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메시지였다.


        그래서 봄에 우리는 또 다른 행사를 준비했다. 우리는 한 주 동안의 단막극과 강연회와 음악회를 준비하였다. 우리의 목적은 대학교에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 때 NCAA 농구대회가 있었다. 우리의 외교적 해결점은 농구파티를 여는 것이었다.


        우리는 대학 기숙사에 두 개의 TV를 설치해서 뉴 올리언즈에서 열리는 (농구대회의)준 결승전을 보여주기로 계획했다(우리는 단지 켄터키 주립대학이 준결승에 출전하게 될 것이라고 추측했을 뿐이다). 우리는 학생들을 초청했다. 우리는 수 백개의 의자를 준비했다. 우리는 기도했다. 공짜 팝콘을 만들었다. 기독교인 학생들은 중간 광고시간을 위해 단막극을 준비했다. 우리는 시합의 중간휴식 시간에 공연할 연극을 준비했다. 즉 복음을 위해 적절하고 재미있는 것으로.


        좌석이 꽉 들어찼다. 학생들은 켄터키 주립대가 웨이크 포레스트를 이기자 환호했다. 그리고 광고시간에는 기독교 학생들은 “삶의 의미”라는 여섯 부분의 짧은 연극을 공연했다.


        그날 밤, 지역의 두 개의  TV 방송사에서 우리 그룹을 취재했다. CBS 계열의 27번 채널은 그들의 밤 뉴스 시간에 생중계로 우리가 준비한 것을 내보냈다. 잘 다듬어진 목소리로 리포터가 말했다.

“샘, 이 그룹은 오늘밤 농구를 시청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여기서 기독교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우리의 1학년 학생 중의 하나인 제레미와 인터뷰했다.

“오, 주여” 나는 기도했다. 그녀가 그의 얼굴에 마이크를 대었다.

“무조건 예수님이 최고라고 그가 말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러나 제레미는 훌륭한 대사였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웃으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대학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농구처럼 큰 이슈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합니다.”


        대사다운 일격이었다. 제레미는 모든 사람이 이해하기를 원하는 바를 요약해주었다. 농구는 단지 게임이었다. 예수님이 농구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농구는 재미있다. 그러나 진리는 아니다. 그것은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것을 해 주실 수 있다. 그것이 진리이다.


        대사는 왕의 왕으로부터 선택을 받았고 위임받은 대표이다. 대사는 메시지가 주어졌고 보냄을 받았다. 대사는 신뢰를 줄 수 있는 모양과 그들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무게감을 주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들은 자격미달을 피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외교술을 연습한다. 그것이 기독교의 대사이다.



<토의를 위한 문제>

1. 폴 리틀이 제시한 고린도후서 5:20을 읽어보라. 당신은 천국의 외교대사로서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있다면, 당신의 어떤 면이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능력으로 나타나는가?
        
2. 전도할 때, 복음의 메시지를 빼거나 완화시키고 싶은 유혹을 받은 부분이 있었는가?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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