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

예수 전하기 (Speaking of Jesus)

Home About Us Academic Program Admissions News &
Event
Gallery Contact Us
LOGIN

 



제 8장 장벽 허물기
김 에스더  (Homepage) 2018-02-25 07:06:48, 조회 : 300, 추천 : 92


8. 장벽 허물기


요 4:9


“당신은 어떻게 제게 물을 달라 하실 수 있나요?”


        우물가의 여인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외면당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예수님의 단 하나의 요청으로 네 가지의 장벽이 무너졌다는 것을 알았다.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외면당한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인종의 선을 넘어 접근하셨다. 그분은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오염된 물을 요구하셨다. 그리스도는 한마디의 간단한 질문으로 사회적 장벽의 모든 것을 넘으셨다.


        사회적 장벽은 우리를 편안하게 만든다. 그것들이 제 자리에 있는 한, 우리에게 불편함을 주는 사람들을 우리는 상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 충격적인 소식이 있다. 우리의 편안함은 성경적으로 아주 낮은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편안함에 대해 그리 많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만약 관심이 있는 어떤 것이 있었다면, 예수님의 부르심은 편안함을 포기하라는 것일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불편한 사람들을 아는 것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외면된 사람들과 친구가 되심으로 인해 그분의 제자들의 편안함을 깨뜨리시는 예들을 보게 된다. 그분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하신다.


        나는 예수님이 일으키신 스캔들을 진실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적대감은 역사 속에서 사라져갔다. 우리는 그 단어를 단지 “선한 사마리아인 병원”과 같은 병원이름으로 사용할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과 같은 사람들은 많이 있다. 오늘날의 유대인들과 아랍인들 사이의 마찰을 생각해보라. 남아프리카의 우익계 백인과 흑인들의 마찰, 그리고 울스터 선교구의 개신교와 천주교의 마찰. 그러나 우리들 중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런 관계들이 멀리 있는 일처럼 느낀다.


        대학교 신문에서 기독교인을 향해 자신의 미움을 토해내는 호전적인 동성애자는 어떤가? 백인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는 게슴츠레한 눈을 가진 도시의 건달은 어떠한가? 예수님이 이런 사람들을 방문하실까? 예수님은 그들의 이름을 알고 그들의 파티에 가셔서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실까? 그분은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충격을 받을 것이다.

“당신은 예수님이 어제 밤에 교회에 가지 않으시고 동성애자들의 모임에 가신 것을 들었습니까?”


        우리는 말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분은 무엇을 하시는 걸까요? 그분은 자신이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계시지 않은가요?”


        우리가 매일 가까운 사람들과 접촉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우리와 완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도 피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장벽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예수님은 몇 가지의 질문을 하시면서 시작하셨다. 그것은 일이 진행되도록 만들었다.



1. 오토바이족의 시도


        나의 행정 비서인 샬리는 아주 깔끔하게 사무실을 유지한다. 그녀는 자신의 정숙한 옷들을 만들었고 10년 동안 같은 차를 몰았다. 당신은 샬리가 오토바이족 건달과 사귀기 시작했다고 내게 말을 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엄격하게 정신적인 연애일 뿐이에요”


        그녀는 나를 안심시켰다.

“시드는 단지 친구일 뿐이에요”


        그러면서 그녀는 그들이 함께 식품 쇼핑을 했고 (데이트가 아닌) 영화관도 같이 갔었다고 말했다. 내가 안심할 수 있는가? 그것은 결혼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인 것처럼 들렸다.


        샬리는 시드를 이미 그녀의 엄마에게 소개시켰다. 나는 결혼 피로연을 상상해 보았다. 가죽에 끈이 많이 달려있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 술잔에 머리를 박고 있는 사람들, 연로하신 고모의 엉덩이를 쿡쿡 찌르는 사람들. 이것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 나는 시드에게 사라지라고, 샬리를 내버려 두라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나는 심지어 오토바이 건달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나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내 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오토바이’라는 단어조차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를 우선 만나보자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샬리에게 말했다.

“제가 Harley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고 시드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나서 그 주에, 나는 거리 저 편에서 낮게 부르릉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점점 폭음으로 커져 갔다. 내 사무실의 창문이 막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그 소리는 멈추었다. 잠시 후에 시드가 어슬렁거리며 들어왔다.


        짧고 기름기 있는 뒤로 묶인 머리는 힘없이 그의 목에 걸려 있었다. 그는 셔츠대신 단추가 풀어진 가죽조끼를 입고 있었고 그의 드러나 있는 배는 넓은 가죽 벨트가 걸려 있었다. 그의 두툼한 가죽지갑은 금속체인에 매달려 그의 청바지 벨트에 달려 있었다. 그것은 그가 오른 발을 바닥에 디딜 때마다 돼지의 걸음걸이와 같은 템포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를 내었다. 그의 빨강, 보라, 그리고 파랑색의 단도 문신은 현대판 해적과 같은 그의 옷차림에 액센트를 주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그의 모든 것은 샬리의 엄마가 사위로서 원했던 것이었다.


        그는 두 개의 헬멧을 들고 있었다.



2. 맥이 오토바이족으로?


“안녕하세요?” 나는 말했다.

“당신이 Harley 오토바이를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그는 말했다. 그의 놀랄만한 높은 톤의 목소리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나의 책장에 기독교 서적으로 가득한 것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럼요” 나는 말했다.


        그는 나에게 헬멧을 건내 주었다. 나는 허둥대며 그것을 받았다.

“타러 갑시다.” 그는 명령조로 말했다.

“물론이죠” 나는 내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지 의아해 하며 말했다.


        그의 오토바이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것은 개조한 Harley 였다. 개조된 오토바이는 앞 바퀴가 보통 위치보다 더 앞으로 나아가 있었다. 가끔은 바퀴살이 오토바이의 길이보다 더 앞으로 뻗어있기도 한데, 시드의 것은 좀 더 짧은, 그래서 더 모양이 좋은 것이었다.


        오토바이의 엔진은 내 차의 것보다 더 크게 들렸다. 가솔린 탱크 위에는 야자수 아래에 누드 그림이 멋스럽게 에어브러시로 그려져 있었다.


        뒷 자석은 왕좌의 모양이었다. 그것은 바닥에서 단 몇 인치만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운전석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위치에 있었다. 뒷자석에는 커다란 “안전대”가 있었는데 세 개의 십자가가 함께 용접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이 어떤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것들은 단지 탑승자 자리에서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것이었다. 나의 등 뒤에 있는 안전대를 붙잡고 가면서, 나는 시드의 벌거벗은 배를 내 팔로 안고 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 날에 나의 가장 큰 후회는 사진 찍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진에서 잘못된 것 찾기” 놀이를 내 아이들과 할 수 있었을 텐데..


        오토바이 운전자는 좋아보였다.


        개조된 Harley 오토바이도 좋아보였다.


        폴로셔츠에 반바지, 테니스 운동화에 나찌의 문장이 세겨진 헬멧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전혀 거기서 한 부분으로 보이지 않았다)


        시드는 엔진을 켜기 위해 발을 찼다.

“어디에 가고 싶으세요?” 그는 소음 너머로 소리를 질렀다.


        주저함 없이 나도 소리를 질렀다.

“학교 캠퍼스로 가요. 모든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마치 어제 일어났던 것만큼 생생하게 나의 마음에 새겨진 몇 개의 순간들이 있다. 시드와 캠퍼스를 돌았던 그 때가 그것들 중의 하나였다. 나는 비디오를 보듯이 그 때를 아주 분명하게 본다. 그러나 그것은 비디오보다 더 낫다. 배기가스 냄새가 나고 오토바이의 흔들림으로부터 오는 떨림도 느껴진다. 오토바이에 함께 했던 시드와 나의 부조화도 느껴진다...


        둥지와 같은 뒷좌석에서, 나는 마치 내가 작은 마을의 퍼레이드의 미(美)의 여왕처럼, 캠퍼스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시드는 나의 기쁨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신호등에서 그의 엔진을 회전시켰다.


        사실, 사람들은 우리가 잠시 멎었을 때, 그들의 창문을 올리고 문을 잠궜다. 우리를 바라본 유일한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머리를 뒤로 젖히고 웃었다. 일부분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른 아이들은 우리를 보여주기 위해 뒷자석에서 그들의 부모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어른들은 보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주목하지 않으려고 혹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려고 운전대를 꼭 쥐어잡고 눈은 깜빡 거리지 않고 앞을 향하였다.


        그들의 두려움은 나에게 이상하였다. 나는 그들을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저에요. 기독교 학생들을 위해 일하는 맥이에요. 저는 당신들을 해치지 않을 거예요”


        나는 그들에게 시드는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만약 그들이 원한다면 그는 그들의 아이들도 태워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두려움은 침대 밑에 무엇인가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의 두려움만큼이나 그들에게도 생생한 것이었다.

“당신은 얼마나 자주 오토바이를 타나요?” 나는 시드에게 소리를 질렀다.

“글쎄요. 나는 다른 사람들 없이 혼자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왜 그렇죠?” 나는 물었다.

“혼자 타면, 경찰이 존 웨인처럼 나를 멈추게 해요” 그가 말했다.

“존 웨인처럼요?” 내가 물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시비를 걸어요. 그것이 그들을 대단한 것처럼 만드니까요.” 갑자기 시드가 더욱더 현실로 느껴졌다.

“오, 시드. 미안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는 말했다.


        감사함이 나에게 가득 매워졌다. 시드는 단지 나를 태워주기 위해서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왔던 것이다.


        시드는 그가 동물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는 테네시의 시골에 그가 소유하고 있는 농장으로 낚시하러 오라고 나를 초대했다. 그의 삶과 과거에서 어려운 일이 있었음을 알기 위해 유능한 과학자가 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시드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소망과 두려움과 꿈이 있었다. 시드는 멋진 사람이었다.


        갑자기, 시드는 진실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그리스도와 진정한 관계를 원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녀에 대한 그의 사랑의 깊은 느낌을 나의 가슴속에 채워주셨다. 심지어 오토바이 건달에게도. 아마도 그의 농장에서의 결혼 피로연이라면, 어쨌든 그리 나쁠 것 같지 않았다. 만약 그의 친구들이 시드의 절반만큼이나 좋은 사람들이라면, 그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시드는 내게 가치있는 교훈을 가르쳐주었다. 질문하는 것은 장벽을 넘어서는 것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나에게 시드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이었다. 처음에 그는 거북한 사람이었다. 나는 차의 창문을 올리고 문을 잠그던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오토바이족 건달과 같은 사람들에게 편견이 있었다.


        만약 내가 시드를 밀치면서 말했다면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내가 거칠게 행동하면서 그에게 그의 방법대로 살아가라고 말을 했다면, 사실 나는 미국의 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지막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결혼에 대한 나의 걱정은 어리석은 것이었다. 샬리는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시작하였고 결국 그와 결혼하였다. 샬리보다 정신적 사랑에 대해 관심이 덜했던 시드는 그의 오토바이와 하께 떠났다. 그와의 연락은 끊어졌다.


        이 이야기는 질문을 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그리스도의 눈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으로서 어떤 장애물을 무너뜨리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성공한 이야기는 아니다. - 시드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그렇게 하기를 바랬다. 나는 현재 그의 인생에서 얼마간의 장애물을 뛰어넘어선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다.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그와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아마도 내가 떠난 자리에서 누군가가 그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당신이?


        나는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안다. 당신은 자신에게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맞아. 이 일에 대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우리가 주의깊게 보호되었고 안전하고 이론적인 입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나의 지적을 입증할 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제자들도 그랬다. (아마도 그들은 사마리아에 먹을 것을 사는 것 조차도 지나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다르게 생각하셨다. 그의 이야기는 그분과 함께 먹기 위해 안으로 들어오는 바깥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분은 멸시당하고 거부당하던 사람들이 ‘먼저’ 된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분은 올바르지 않은 종류의 사람들로 가득찬 잔치와 결혼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의 행동은 그분의 말씀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그는 오토바이족과 함께 하셨다. 사실 그분은 같은 식탁에서(혹은 같은 우물에서) 먹고 마시는 일을 복음을 통해 사회적으로 추방된 사람들과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예수님은 소외된 자들을 위해 그의 마음에 특별한 자리가 있었다. 그것은 그분이 누구였는지를 보여준다. 예수님 자신도 소외된 자로서 사셨다. 그분은 멸시 당하였고 거부당했으며 오해받았고 혼자이셨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가능성을 버리는 것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위험스러운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분이 소외된 자들과 화해하신 것이다. 우리는 한때, 모두 버림받은 자들이었다.

엡 2:12


        그래서 우리가 버림받은 자들에게 다가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바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무시하는 것이다.



3. 버림받은 사람들도 사람이다.


        만약 내가 시드를 만난다면, 혹은 당신이 소외된 누구라도 만난다면, 우물가의 여인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다가가서 몇 가지의 질문으로 시작하라. 그것이 복음을 나누기 위한 예수님의 전주곡이었다. 우리도 또한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 버림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는 친구이다. 당신의 삶속에서 버림받은 자들을 확인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사회적 장애 때문에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라. 거룩한 약속의 가능성이 보일 때, 당신은 그것의 유익함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기에 약간의 장벽을 넘어서는데 우리에게 도움을 줄만한 단계들이 있다.

1) 그들의 삶에 당신이 관심이 있다고 말하라.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내가 시드에게 했던 대로 해보라. 그들의 삶에 당신이 관심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말하라. 물어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가죽옷을 입고 문신이 있는 사람들도 좋은 사람들이다.

2) 질문을 함으로서 사회적 장애물을 뛰어넘어라. 그들의 삶을 연구하라. 내가 개조된 오토바이에 대해서 어떻게 알았으며 애완용 늑대(정말 살아있는 늑대)를 가지는 것이 어떨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들을 알아보라.

3) 당신 스스로 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을 하기 위해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예수님은 우물가의 여인에게 부탁을 하셨다. 마실 물을. 나는 Harley 오토바이를 타기를 요청하였다. 나는 오토바이가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위험을 감수하자. 시드는 기독교인이 자신의 세계에 관심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그렇게 많은 시간을 종교적인 행사와 먹고 마시는 일 그리고 모임에 보내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는 관심가질 시간이 거의 없는 것과 같다.

        내 친구중 하나는 직장에서 유대인 친구를 사귀고 싶어했다. 그는 그의 동료에게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삶이 그에게 어떤지 질문을 함으로서 시작했다. 어쨌든, 미국 유대의 문화는 수 백년 동안 이루어져 왔지만, 기독교인들은 이제 막 시작한 셈이다. 중요한 영역에서 진정한 충고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아주 좋은 시작이다,

4) 그들의 고통을 발견하라. 두려움, 고통, 슬픔 등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필요를 위해 우리를 어떻게 만나 주실 것인지에 대해 나누는 절호의 기회이다. 경찰이 존 웨인처럼 시드에게 생각되는 것은 관계의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5) 영적인 주제로 대화를 바꾸라. 누군가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만약 기회가 된다면, 영적인 주제를 끄집어 낼 준비를 하라. 혹은 만약 적절하다면 영적인 질문을 해보라.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성령하나님이 그분의 때에 역사하실 것이다.


        폴 리틀이 대화를 바꾸기 위해 사용했던 몇 가지의 질문이 여기에 있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영적인 것에 당신은 관심이 있으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답을 할 것이다.


        그의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여기서 그들의 대답이 비슷하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어떤 이는 선한 삶을 사는 것으로, 어떤 이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다음의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그래요. 분명히 그것들은 기독교인들이 하는 일이지요. 그러나 그것들이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지요.”


        질문과 함께 사회적 장벽을 넘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세계를 넓혀준다. 거룩한 장애물을 없애고 진정으로 관심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것은 우리를 더욱 용감하게 만든다. 당신이 궤도 밖에 있는 사람들과 일단 관계를 가졌다면, 안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토의를 위한 문제>


1.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 하셨을 때, 그분이 넘은 사회적 장벽은 무엇이었는가? 그분이 위험을 감수했을 때, 어떤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2. 당신의 주변에 버림받은 사람들이 있는가? 있다면, 당신이 직면한 사회적 장벽은 무엇인가?

3. 사회적 장벽을 넘기 위해 저자가 권면한 사항이 도움이 되었는가? 그 외에 도움이 될 만한 사항이 있다면 적어보라.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9  제 17장 (천국의)거주자로서의 확립    김 에스더 2018/04/24 67 206
18  제 16강 이민    김 에스더 2018/04/21 66 243
17  제 15강 대사의 직분 (Ambassadorship)    김 에스더 2018/04/15 77 257
16  제 14장 큰 그림    김 에스더 2018/04/08 94 265
15  제 13장 어떻게 간증할 것인가?    김 에스더 2018/03/31 73 264
14  제 12강 대답들    김 에스더 2018/03/26 84 231
13  제 11강 질문들    김 에스더 2018/03/18 95 266
12  제 10강의 : 우물가의 매춘부    김 에스더 2018/03/10 91 268
11  제 9강 긍정적인 전도의 능력    김 에스더 2018/03/03 94 289
 제 8장 장벽 허물기    김 에스더 2018/02/25 92 300
9  제 7강 예수님이 가지셨던 겸손    김 에스더 2018/02/17 95 291
8  제 6강 하나님의 약속    김 에스더 2018/02/10 80 293
7  제 5강 예수님 전하기    김 에스더 2018/02/03 86 280
6  제 4강 : 봄 방학 때 생긴 일    김 에스더 2018/01/27 81 304
5  제 3강 아버지의 구출    김 에스더 2018/01/19 94 301
4  제 2강 : 전도의 첫 단계    김 에스더 2018/01/06 81 295
3  제 1강 :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기회    김 에스더 2018/01/05 77 295
2  강의 소개 및 감사의 글    김 에스더 2018/01/05 83 278
1  The Book Cover    김 에스더 2018/01/05 77 214

    목록보기 1
       

 
www.hendersonny.org // email: info@hendersonny.org

Copyright © 2018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
NY : 40-36/38 78th Street, Elmhurst, NY 11373
General and Admission Office of NY & NJ 718.810.3248 or 646.338.7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