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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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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강 - 제 4장 교회의 회심에 관한 견해
김 에스더  (Homepage) 2014-08-11 10:37:44, 조회 : 2,391, 추천 : 323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 데이빗 F. 웰스 저, 홍 기영 박사 옮김

제 4장 교회의 회심에 관한 견해


        회심은 변화, 즉 죄로부터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임을 교회의 삶을 통해 증거 되어 왔다. 또한 이것은 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나는 것인가에 대하여 토론되어져 왔다. 과연 이것은 세례, 신앙의 고백, 혹은 사제로 인한 사면 때문에 일어나는가? 현대에 와서는 이것이 결심을 강요받을 때에 일어나는 것인가?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역과 중생시키시는 성령의 사역은 이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리스도는 단순히 그의 은혜를 교회의 성례 혹은 사제적 기능을 통해 가능하게 하시는가 아니면 그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해만 일어나는가? 새롭게 변화시키시는 성령의 역사는 믿음 전에 일어나는가 혹은 믿음 후에 일어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다양한 답변들에 대한 해석은 회심에 대한 이해의 관점을 바꾸어 놓기 때문에, 사실 구별이 가능하거나 통일된 형태는 없다.


        이번 장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은 성경적 모델로부터의 이탈보다는 복음주의적 이해 안에서 보여지는 다양성이다. 우리는 어거스틴으로부터 이것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루터와 루터의 반대자들 모두의 기초가 어거스틴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두 모델들에 대한 이해들 -믿음을 통한 은혜에 의한 회심과 교회에서 베풀어진 회심 - 은 어거스틴의 사상에 연관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과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졌다. 이것을 알아야 우리는 어거스틴이 신약을 통해서 처음으로 형성되었던 그 사상, 즉 종교 개혁에서는 힘 있게 표현되었고, 정통의 시간을 통해 세련되어진, 그리고 현대에 와서 점점 축소되어진 복음주의적 사상을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1. 어거스틴


        어거스틴은 사도 시대 이후로 회심을 처음으로 생각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회심을 경험한 최초의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회심 경험을 통해 비범한 분석능력과  깊은 이해, 그리고 우리의 논의를 위한 출발점을 만들어준 폭넓은 신학적 지식을 우리에게 조명해 주었다.


        사실, 우리는 어거스틴의 삶 속에서 3가지의 "회심"의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특징은 지적이고, 도덕적이고, 교회적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거스틴의 삶을 밝히는 것의 일부이다. 어거스틴은 사실 이교도에서 자라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교도였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리스도인이었고 그에게 지배적인 종교적 영향을 주었다. 사춘기 시절에, 그는 지적인 면에서 그리고 도덕적인 면에서 기독교를 떠나 방황하였다. 지적으로 그는 카톨릭교의 단순성을 거절한 반면, 키케로의 섬세함과 마니교의 엘리트 의식 속에 빠져 있었다. 도덕적으로 그는 방탕하여 첩과 살았다. 그의 “참회록Confessions)”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아오게 하신 과정을 기록한다. 그는 마니교 이원론의 환멸에서부터 회의주의까지의 지적 순례에 관하여 말한다. 그는 플라톤주의를 통해 그리고 밀란의 주교와 암브로스의 설교의 영향으로 기독교에 새로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때문에 회의주의로부터 빠져 나왔다. 어거스틴은 플라톤 주의와 암브로스를 통해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고백했다. 그의 지적인 회심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어거스틴에게는 여전히 도덕적 문제가 남아 있었다. “평화의 땅을 보는 것은 하나의 일이요 ‥‥그 곳으로 인도하는 길을 붙잡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7.21)”. “나의 욕망은 당신을 더 이상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 지속적으로 있는 것이다(8.1)”. 그는 진리를 받아들였지만, 육적인 습관을 향한 잘못된 의지로 인하여 그것의 노예가 되어있는 것을 느꼈다. “죄의 법은 습관의 강력한 힘이다. 그 힘에 의해 마음이 끌리고, 그 마음이 의지에 역행하고, 그 마음이 습관적으로 고집스럽게 빠져들어 갔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8.5)”.


        어거스틴은 그의 성적 욕망을 극복할 능력 부족에 대한 좌절의 느낌을 경험했다. 어느 날 그는 담장이 쳐진 정원에서 책을 읽고 명상에 잠기었다. 그는 어린아이의 음성을 들었다. 그 음성은 "책을 들고 읽어라, 책을 들고 읽어라"는 음성이었다. 그는 성경을 잡고 로마서 13:13을 읽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말라(8.12)”. 이러한 극적 경험은 그의 도덕적 회심을 특징지어 주었으며, 커다란 기쁨의 사건이었다. “당신의 선물로 나는 전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려고 왔나이다(9.1)”.


        이 도덕적 회심은 어거스틴으로 하여금 금욕적인 기독교와 도덕적인 종교를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그의 회심 바로 전에, 어거스틴은 애굽의 은둔자인 성 안토니(Anthony)의 삶을 읽고 있었다. 어거스틴은 그 자신의 변화에 대해 기록하였다. "당신이 나로 하여금 이제 더 이상 아내나 세상의 약속을 추구하지 않도록 나를 당신에게로 회심시켰나이다"(8.12). 순수한 도덕적 회심들은 어거스틴과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금욕적 생활을 하도록 인도하였다. 특히 콘스탄틴의 회심 후인 4 세기까지, 금욕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형식주의와 유명주의에 심각한 반응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그의 회심이 완전하지 않다고 믿었다. "그렇게 깊이 나는 당신 뜻의 행동을 인식하였고 믿음 가운데 기뻐하면서 나는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였나이다. 그러나 당신의 세례가 그들을 면제하지 않았기에 이 믿음은 나의 과거 죄들에 관하여 안전하게 느끼지 못하게 하였나이다"(9.4). 주후 387년 4월 24일 부활절 전 저녁에, 암브로스는 어거스틴과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어거스틴은 회상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우리의 과거의 삶에 관한 모든 불안은 사라졌다"'(9.6). 이것은 그의 교회적 회심이었다.


        “참회록”은 또한 어거스틴의 회심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추구하시는 은혜에 대한 증거로 이 책을 썼다.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그의 확신과 인간의 자유의지의 역할에 관한 그의 거절은 펠라기우스 논쟁에서 강화되었다. 펠라기우스에 대한 어거스틴의 승리는 어거스틴을 선으로, 펠라기우스는 악으로 드러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어거스틴의 예정과 은혜에 관한 성숙한 입장은 교회에서 항상 주장되지 않았다. 놀랍고 섬세한 문장으로, 워필드(B. B. Warfield)는 개신교 종교개혁은 어거스틴이 그의 교회의 교리를 그의 은혜의 교리로 대신한 것으로 보았다. 그것은 특히 개혁측의 입장에서 성례전을 통한 은혜의 관점을 반대하는 항거요, 모든 개혁측 표현에서처럼 예정이 교회법령의 좁은 틈을 통해 새나갔다는 관점에 반대하는 항거이다. 반대로 그것은 인간의 상실, 어둡고 잘못된 것의 노예, 은혜의 필수불가결성, 복음이 형태를 취하도록 한 예수로 인한 복음의 영광에 대한 어거스틴의 이해를 긍정한 것이다. 그와 같이 우리는 이러한 길들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회심은 교회 때문에 점점 교회를 통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이해되었다. 한편 회심은 하나님의 주권과 직접적인 개입으로 인하여 은혜와 믿음을 통해 일어나는 것으로 보였다.




2. 교회를 통한 회심


        처음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점점 교회가 은혜의 섭리를 관리하고 통제하였던 점이다. 이것은 처음에 구속의 은혜가 성례전을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보여 질 때 일어났다. 그래서 회심되는 것은 세례 받을 때에 교회에 속하는 것과 일치하게 되었다. 그 때 사람들의 관심은 세례 후의 참회를 통한 죄의 소멸로 옮겨졌다. 세례 후, 회심자는 지은 죄들에 대해 하나님과 셈을 청산해야만 했다. 이것은 훈련, 굴종, 궁핍, 채찍(심한 경우 육신이 생각대로 정복되도록) 등을 통해 일어났다. 그의 두 논문들 가운데, 터툴리안은 3세기에 보편화되었던 관습을 위한 이론을 제시하였다. 터툴리안의 설명은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죄는 빚을 만드는데, 선행을 통해서 죄들을 없앨만한 자산이 이 세상에서 혹은 연옥에서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둘째, 참회를 통해서 죄들에 대한 영벌이 현재 임시적 형태로 감해지며 그런 식으로 셈은 청산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안셀름의 성육론(Cur Deus Homo)의 틀을 제공하였는데, 그 이론에서 그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엄청난 양의 공적을 쌓았다. 그리스도는 이 공적 중 어느 하나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공적은 죄가 일시적인 빚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 자신을 위해 공적을 쌓을 수 없는 죄인들에게 나누어질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안셀름의 이론이 터툴리안의 신학보다 위대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 후에, 참회(고해성사)는 면죄부 형태로 상품화되었다. 루터를 화나게 한 것이 바로 이러한 남용이었다. 한 면죄부 행상(루터는 그를 '허풍선' 이라고 불렀다)은 다음과 같은 자주 반복되는 약속을 가지고 면죄부를 팔러 다녔다. "돈궤에 동전이 울리는 순간, 연옥에서 한 영혼이 뛰어 오른다."


        다시 말해서 회심은 더 이상 어거스틴의 참회록에 나오는 영혼의 고통, 하나님을 찾음, 은혜, 회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을 향한 순종을 포함하지 않는다. 회심이라는 단어는 지금과 많이 다르게 교회 중심으로 쓰였다. 6세기와 7세기에 회심은 수도원에 합류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12세기에, 피터 롬발드는 성찬 요소에서 초자연적 변화를 묘사하기 위해 회심을 사용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나님의 뜻의 모든 사역"에 대해 그것을 사용하였다. 그는 세 가지의 회심에 관해 연달아 설명했다. 은혜로 하나님께 죄인들을 인도함, 그 죄인을 은혜 속으로 인도하심, 은혜 가운데 삶의 습관이 그것들이다. 물론 각각의 단계는 교회에 의해서, 교회를 통해 성취된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회심의 지적인 요소는 교회의 가르침의 수용이다. 믿음은 진리에 대한 동의이다. 그것은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다. 믿음은 영혼 안에 있는 은혜의 습관이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미숙한 신앙이다. 영혼이 없는 몸은 시체일 뿐이다. 형태가 없는 신앙은 죽은 것이다. 신앙의 형태는 사랑이다. 사랑은 믿음을 활기 있게 만들며 구속적인 신앙으로 만든다. 사랑은 은혜의 습관을 하나님께 가치 있고 열납하실 만하게 만든다. 신앙과 사랑은 칭의와 성화를 가져오는 은혜의 주입이다. 이 신학은 로마 카톨릭 신앙을 특징 짓는 칭의와 성화의 실질적 일치를 보인다. 회심은 용서 뿐만 아니라 도덕적 개선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람을 하나님께 열납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은혜의 주입은 성례를 통해 현저하게 일어난다. 기본적인 성례는 세례인데, 세례를 통해 영적 ‘태어남’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것이 ‘하늘의 문을 연다’고 말했다. 그리고 세례 후의 죄들은 참회를 통해 참작되어졌다. 중세신학에서, 성례전에의 강조는 구원하는 신앙의 객관성에 대한 강조로서 의도되었다. 적어도 6세기 이후, 어거스틴의 심오한 죄의 성격과 결과에 대한 이해는 본질적으로 사라졌다. 그 대신에 죄들을 단순히 규칙들을 범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얄팍한 도덕주의가 들어 왔다. 죄는 선행의 보상하는 중량에 의해 제거될 수 있었다. 이 도덕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그의 주권적인 구속적 사역 밖에서 하나님을 찾고, 사랑하고, 섬기도록 우리의 신앙을 절름발이로 만든 반펠라기우스 주의였다. 이러한 반펠라기우스주의와 도덕주의의 조합은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주어지는지에 대한 오해와 더불어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지는 의(義)가 아닌, 사는 동안에 생산되는 의(義)로서 오해되는 결과로 불러왔다. 그 때문에, 그것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협조와 사랑의 선행을 통해 세례 속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은혜를 활기 있게 하라고 요구하였다. 하나님과 죄인이 함께 밧줄을 끌어야 하는 이러한 견해는 후에 벨라르민(Bellarmine)에 의해 "합력주의"(congruism)로 설명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협력주의 (synergism)라고 부른다. 그것은 루터가 은혜의 유일주의를 보호하려는 관심 속에서 주장한견해에 반대 되는 것이었다.



3. 종교개혁의 전통


        95개조 반박문을 토론하자고 초청한 그의 유명한 대항전에서 조차 루터는 ‘교부주의 신학에 대항하는 논의(Disputation Against Scholastic Theology)’라는 논문에서 당대의 구원에 대한 주장을 강하게 공격했다. 그는 구원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협력적인 행동으로 서서히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과정이라는 관점을 명백하게 반대했다. 루터는 죄인의 입장에서 악한 의지 외에 하나님의 은총에 선행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 악한 의지가 전인격을 사로잡고 침투하여 죄인은 하나님 자신이 죄인을 해방시켜 주시기까지는 죄인 스스로는 하나님을 향하여 걸음을 옮길 수 없다. 후에 루터는 '의지의 자유에 관하여 (On the Freedom of the Will)'에서 에라스무스에 대하여 이러한 입장을 방어했다. 에라스무스는 그 자신과 루터가 줄곧 심리학의 결정론(determinism)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즉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이 그의 인형들을 움직이듯이 하나님은 죄인들을 통해 그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이었다. 루터는 심리학이 아니라 구원론에 관해 토의하였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협조 속에서 우리의 구원에 기여하는가를 묻고 있다. 그는 놀랄 것도 없이 우리는 기여 할 수 없기 때문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루터는 어거스틴의 구원관과 다르지 않은 방법으로 구원관에 도달했다. 젊은 수도사로서 루터는 하나님의 의의 사상과 하나님께서 그에게 요구하시는 것에 의해 무너졌다. 진실로 그는 그분이(그의 심판관이) 그리스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감동했으며 창백하게 되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는 성경 연구에서 바울의 "하나님의 의"(롬 1:17)에 관해서 썼을 때, 바울이 말한 것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의에 관해서 언급하였음을 깨달았다. 이와 같은 깨달음은 그의 회심을 불러왔다. 그는 "여기서 나는 내가 전적으로 다시 태어났으며 열려진 문을 통해 낙원에 들어온 것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는 회심을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감동하고 죽어야하며," "버려지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고 계속해서 말했다. 오직 그 때만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준비가 된다. 어떤 죄인도 자신을 위해 이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만이 그의 아들 안에서 이것을 이루실 수 있다. 그리스도의 ‘위로하는 마음’은 "떨리는 죄인들"에게 주어진 믿음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여기서 어거스틴의 죄에 대한 이해는 그 이후에 바울과 신약의 복음이 선포될 때 회복되고 적용되었다. 여기에는 죄인이 내부로부터는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으며 전적으로 의인(justification)을 위한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사역에 의존하는 것을 깨달은 죄인의 고통이 있다.


        그러나 회심 그 자체는 루터에게 있어서 그렇게 지배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초점은 주관적이기보다는 객관적이고, 어떻게 우리가 거듭남을 경험했느냐보다는 우리를 의롭게 함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하신 일이 무엇인가에,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어떻게 결정하느냐 보다는 그리스도를 얻는 믿음에, 우리 자신보다는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회심에 관해 말하였다. 그는 세 가지 측면에서 회심이라는 단어를 썼다. 즉 첫째는 세례에 관하여, 둘째는 반복되어야 할 회개와 통회함에 관하여 (루터는 아직도 ‘매일 회심’에 관해 말한다), 셋째는 그리스도를 통해 그에게 열렸던 하늘 문을 느꼈을 때의 그 자신의 솟아오르는 체험에서와 같은 극적인 개인적 변화의 순간에 관해 말했다.


        개혁주의 측면에서, 우리는 루터의 관점과 본질적인 일치를 발견한다. 그러나 그것으로부터 약간 다른 관점도 발견한다. 칼빈 역시 그리스도 중심의 사상가였다. 이 점에서 그는 두 가지 중요한 점들을 지적했다. 첫째, 그리스도인의 평생동안 회개를 이루는(죄와 자신으로부터 하나님과 의로 돌아오는) 계속적 회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며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시며 새롭게 지키시는, 죄로 가득찬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들이 선하다는 정도의 우리의 "선행"은 우리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둘째,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역사 하시는 하나님에게로의 능동적 회심은 믿음의 열매이다. 즉 그 믿음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과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와 자신에게 적용되는 진리로서의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강조점들은 가치 있는 선행의 개념을 논박한 '의지의 자유에 관하여(On the Freedom of the Will)'라는 루터의 논문에 나타난 그의 개념들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칼빈 자신의 회심은 그것에 관해 별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숙고해야 할 주제가 된다. 어느 날,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가라앉히시더니 그를 가르침을 잘 듣는 자로 만드셨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회심은 그의 신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였다. 그는 회심이란 단어를 회개와 성화와 동일한 언어로 사용하였다 ‘기독교 강요(Institutes)’에서, 칼빈은 믿음의 교리를 논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한 이유에서, 복음 전체는 회개와 죄의 용서로 구성되어 있다. 삶의 새로움과 값없이 주신 화해 -회개와 죄의 용서- 는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졌고 그 두 가지는 칭의와 성화를 통해 우리에 의해 성취되어진다.” 그에게 있어서 회개와 회심은 성화와 거의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회개는 항상 믿음이 따를 뿐만 아니라 그것은 믿음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논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3.3.1)”. 이러한 용어들로 칼빈은 회심을 도덕적 변화와 분명히 동일시 하였다. 그러나 그는 예리하게 그것을 칭의로부터 구별하였다. 세례는 교회 안에 들어감의 표시이자 확인이었다. 그러나 세례가 회심 시작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회심을 이해하려는 칼빈의 접근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1563)에서 반영되었다. 그 교리문답은 세부분으로 구분된다. 즉 (1) 죄와 참담함, (2) 죄로부터의 구원, 그리고 (3) 구원에 대한 감사가 그것들이다. 세 번째 부분의 처음 부분에서 88번 문답은 이렇게 질문한다. “진정한 회개 혹은 회심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가?” 그 대답은 “두 가지이다. 즉 옛 자신은 죽고 새 자신이 생명을 얻는다.” 칼빈에 따르면, 여기서 회심은 회개와 동일하며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전체적인 성화의 과정을 언급한다. 물론 그 과정은 반드시 시작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에서 회심의 사용은 회심의 평생 과정에 비해 시작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었다. 초기의 개혁전통에 있는 칼빈과 신학자들은 그들 자신이 복음의 공식적 정의에 관해서 루터의 전통과는 약간 다르다고 표현했다. 루터파에게 복음은 순전히 약속이며 믿음의 반응을 요구한다. 칼빈주의에게 복음은 용서와 새로움의 약속이며 믿음과 회개를 요구한다. 그러나 루터파와 칼빈주의는 둘 다 그리스도를 통해 부여된 칭의와 받아들이는 것을 함께 이해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는 판단 받고 그리스도로부터 의가 믿음에 의해 주어진다. 루터와 칼빈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약속을 의지하는 신앙이 강조되었다. 그 약속은 그리스도인의 삶속에 기쁨과 확신을 가져왔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통한, 값없이 주신 칭의가 종교개혁의 핵심이었다.


        칭의에 대한 공식적 헌신은 발전하는 개혁전통에 있어서 분명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신학자들은 칭의를 기독교 신학과 경험의 중심에서부터 옮김으로서 새로운 강조점들을 주장했다. 예를 들면, 몇몇 청교도 신학자들은 칼빈의 접근을 다른 관점에서 가르쳤다. 가장 분명한 예는 확신에 관한 교리이다. 분명히 칼빈은 아주 열정적으로 확신이 믿음의 정수라고 가르쳤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는 한 확신되어진다. 몇몇 청교도 신학자들은 확신이 믿음의 정수가 아니라 믿음의 목적이라고 가르쳤다. 그들은 확신의 근거로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신자를 성결케 하는 은혜의 경험(실제적 논법)으로 주의를 돌렸다. 그들은 확신에 대한 그들의 접근이 신자들을 위한 확신을 촉진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인 것 같았다. 확신은 점점 갈등이 되었다. 경험은 점점 중요하게 되었다.

    
        경험에 대한 강조와 기독교회의 형식주의에 대한 고민은 청교도들 사이에서 회심에 대한 강조로 이어졌다. 그들은 아직도 회심을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갱신으로 이해하였다. 그 고민은 죠셉 알레인(Joseph Allein)의 '회심치 않은 죄인들에 대한 경고(Alarm  to Unconverted Sinners, 1671)'와 리차드 박스터 (Richard Baxter)의 '회심에 관한 논의 (Treatise on Conversion, 1657)'와 같은 저서들에서 보여진다. 이 두 사람 모두에게 있어서 회심은 기본적으로 도덕적 문제를 남겼고 곧 문제시 되었다. 그러나 이 두 청교도들 안에는 회심이 어렵다는 의미가 있었다. 분명히 그들이 의미하는 바, 은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주제넘게 측정해서는 안 되며 결국 파멸로 이끄는 넓은 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민은 많은 청교도들로 하여금 준비에 대한 필요를 강조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구원이 주권적으로 역사하는 동안, 죄에 대한 충분한 반성이 일어나고 그 죄인이 그 자신에게 어떤 희망도 가져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만이 삶의 길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구원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다. 때때로 이러한 관심은 약속하신 용서를 붙잡는 것의 중요성을 보지 못하게 하는 죄인의 수동적인 모습을 결과로 가져왔다. 그러나 죄가 이해되어지고 믿음의 역사를 위한 조건으로 없어진다는 관심은 회심에 대한 공통된 복음주의 입장에서 더욱 선호되는 것 같다. 공통된 복음주의 입장에서 회심은 잃은 죄인이 죽음에서 삶으로 옮겨진 신적으로 야기된 심리학적 사건으로 간주된다. 루터와 칼빈이 가르친 것과 전혀 모순되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견해는 회개와 믿음에 대한 개혁자들의 가르침이나 복음의 중심이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없어지지 말아야 할 것을 주장하는 청교도적 관심보다는 더욱 인간 중심적이고, 경험 지향적이고, 복음주의적이다.



4. 부흥회와 선교


        19세기에 개혁신학, 청교도의 영성, 그리고 경건주의자들의 물결이 미국의 동부 해안가와 유럽의 많은 지역을 자극시켰던 대각성 운동으로 알려진 부흥운동으로 흘러들어 갔다. 다시 한 번, 복음주의 신앙은 다른 방법들로 하나님을 찾아왔던 사람들의 투쟁과 후속 사역들을 통해 특히 정교화 되었다. 조지 워필드와 존 웨슬리는 교역자들이였으며, 그들은 교회와 교회의 성례들에 관해 익숙했다. 그러나 둘 다 회심될 필요가 있었고 회심되었다. 워필드는 1735년에, 웨슬리는 1738년에 칭의가 설명되어진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은 후 회심했다. 두 사람 모두 그들의 신앙과 회심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설교하기 시작했다. 많은 교역자들은 그들의 메시지가 충격적이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들에게 설교권을 주지 않았다. 워필드는 영국에서 옥외설교의 길을 걸었고, 웨슬리도 그를 따랐다.


        어떤 점들에서 그들의 신학은 달랐다. 웨슬리는 알미니안이 되었고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가르쳤다. 사실 그는 그의 회심 전에도 "죄 없는 완전"의 가능성을 믿었으며, 그 경험은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웨슬리의 확신을 견고하게 해준 것 같았다. 워필드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신학은 죄인들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을 보호하기 위한 관심과 더불어 종교개혁의 주제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을 청교도 조상들로부터 구별시키는 두 가지 면에 있어서 연합하였다. 첫째, 그들은 둘 다 지체 없는 회심을 요구했다. 그들은 많은 청교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회심 전에 죄에 대한 절망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둘째, 그들은 확신이 회심 후에 추구될 목표가 아니라 믿음 안에 고유한 것이라고 가르쳤던 것 같다.


        워필드, 웨슬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설교는 영국과 미국에 불러왔던 부흥 때문에 놀라운 것이었다. 그들은 교회들에 의해 대부분 접촉되지 못했던 사회 구석구석까지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종교개혁 기간에 일어나지 않았던 방법으로 새로이 거듭남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칭의의 교리는 유보없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강조점은 새로 거듭남에 더욱 주어졌다.


        이미 이러한 발전 속에는 현대적으로 복음을 축소하는 씨앗들이 뿌려져 있었다. 여기에는 진실로 경건한 사람들까지 유혹 할 수 있는 두 가지 위험성들이 있다. 만약 회심이란 용어가 전체적인 도덕적인 영적 변화에 관해 넓게 쓰여지는 그런 개혁적 입장이 유지된다면, 믿음은 쉽게 도덕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믿음은 그것의 역동성과 경험적 성격을 상실할 수 있으며 단순히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들로 되고 말 것이다. 한편, 회심이 믿음의 초기 기독교적 경험만을 언급하게 되면, 그 위험은 기독교의 도덕적 요소(교리적 요소는 물론)가 최소한도의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교회의 성례전적 사역도 회심과 무관한 것으로 보여질 것이다. 웨슬리와 워필드가 언젠가 느꼈던 것처럼, 적당한 균형이 믿음과 회개에 관한 설교를 가지고 있는 종교개혁에서 보여졌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오늘날 복음주의적 실제에서 보는 균형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적 사역을 아는 것을 포함한 좁은 관점에서의 변화는 즉시 일어나지 않았고, 오늘날 복음주의 세계에서도 예외 없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 많은 부분의 전통 신학은 충분히 유지되었다. 예를 들면, 19세기의 비범한 선교사역에도 적용된다. 라토렛은 7권으로 된 그의 책 ‘기독교 확장의 역사(A History of the Expansion of Christianity)’에서 19세기에 관하여 세 권을 할애하였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항상 이교도의 회심을 그들의 선교활동의 주요 목표로 간주하여 왔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과는 대조적으로 그것을 복음주의 선교의 개념과 실제의 특징이라고 여겼다. 은혜의 성례전적 이해 때문에 카톨릭 선교사들은 종종 대중적으로 서둘러 세례를 주고 그들의 깊은 신앙으로의 안내는 교회 정회원으로서 차후 목회적 교육의 단계에 맡긴다. 미국 해외 선교 위원회의 총무였으며 초기 개신교 선교학자였던 루프스 앤더슨(Rufus Anderson)은 예수교 선교사인 프란시스 사비에르(Francis Xavier)가 피상적인 방법을 사용했으며 그의 노력으로부터 지속적인 추수를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앤더슨은 개신교 선교사들이 단단한 기초를 놓음으로써 이러한 실수를 피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전략은 이교도들의 참된 회심과 그들을 처음부터 그들의 높은 영적 자질로 인한 자립, 자치, 자전하는 토착화 교회로 인도했어야 했다. 그 유명한 "삼자공식" (three-self-formula)은 곧 토착화 교회의 설립을 목표로 하는 개신교 선교 전략의 채택된 슬로건이 되었다.


        이러한 선교 방법론의 창시자들인 앤더슨과 헨리 벤(Henry Venn)에 의하면, 선교의 성공과 실패는 전적으로 가장 중요한 조건을 지키느냐에 달려있다. 그 가장 중요한 조건은 교회 핵심들의 진정한 회심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후에 로랜드 알렌 (Roland Allen)의 저서들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되었으며 급진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는 그들의 문화가 어떠하건, 그들의 교육수준이 어떠하건 회심자들 속에 거하는 성령의 능력있는 효과의 뚜렷한 개념을 더했다.


        회심은 그와 같이 19세기 20세기에 있어서 신학적이고 전략적으로 앵글로 색슨 선교학의 주요 개념이었다. 그것은 고전적 부흥운동의 복음주의적 유산으로부터 나와서 해외 선교현장에 다소 변형되지 않고 적용되었다. 복음주의적 선교본부는 최근 국내 경험에서 놀랄 정도로 효과적이었던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서의 영적원리들은 성경에서 계시되었으며 그래서 어느 때나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었다고 믿었다.


        만약 변화가 있었다면,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데, 그것은 미국에서 제 2의 대각성운동의 결과로써 일어났다. 그 부흥운동은 분명히 1792년에 코네티거트 리버 벨리의 마을들에서 시작되었으며 1830년대와 1840년대에 절정에 달했다가 20세기 초반 빌리 선데이(Billy Sunday)의 집회에서 최절정에 이르기까지 간헐적으로 일어났다. 회심에 대한 이해의 변화는 몇 단계를 가진다. 첫째, 전도는(웨슬리와 워필드의 경우에서와 같이) 교회가 비우호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운동이었기에 교회 밖으로 움직였다. 둘째, 강조점이 죄인들의 무능력과 은혜의 주권에 관한 관심에서 도움 없이 그리스도께 나갈 수 있는 죄인의 능력에 관한 새로운 관심으로 옮겼다. 셋째, 좀 더 개인적인 전도로부터 대중을 목표로 한 전도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새로운 신학(후에는 텔레비전에 의해)이 쉽게 이루어졌으며 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변화와 쉽게 관련된 두 사람은 물론 찰스 피니 (CharlesFinney)와 무디(D. L. Moody)이다. 특별히 무디의 경우에서 그것이 어디에서나 일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지리적으로 한 사람이 멀리까지 가서 많은 지역에서 행하기 때문에 우리는 전도가 점점 국제적으로 변하는 것을 본다. 무디의 캠페인은 세 단계로 수행되었다. 그리고 그 캠페인을 위해 거대한 집회용 건물이 지어졌다. 그 세 단계는 준비, 메시지의 전달, 그리고 결신을 요구하는 것이다. 준비기간 동안에 특히 유명한 복음성가 가수인 이라 생키 (Ira Sankey)같은 동역자들 만이 무대 위에 나타나며 사람들은 그들의 주 설교자에 대한 기대가 절정에 달할 때까지 대중적인 노래와 함께 평범한 메시지로 달구어져있다. 무디 자신의 설교는 사정없이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의 용서하는 선언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하는 극적인 제시에 의해 특징지어졌다. 비록 무디가 가장 격렬한 용어로 지옥으로 들어가는 저주의 위험에 대해 설명해도 사람들은 절망이나 냉소로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을 향한 설교자의 열정적인 사랑과 그를 울도록 만든 그들을 위한 구원의 극진하고 순수한 걱정 때문이었다.


        피니와 같이 무디는 그의 청중들 앞에서 그들에게 즉각적인 결정을 요구했다. 이러한 호소가 진행되는 동안 보통 많은 청취자들이 반응을 나타냈다. 이러한 결과들은 역시 아직도 안정적인 것으로 특징지어졌다. 즉 제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자들의 비율이 20세기 계승자들의 수치에 비하여 비교적 낮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조차도, 이러한 접근의 고유한 약점들 중 몇 개는 분명하게 되었다. 회심은 경험으로 축소되며 사실 유도될 수 있는 경험으로 축소되는 시점에서, 그것이 당연히 자리 잡을 곳에 있어야 하는 믿음의 체계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진리는 경험에 의해 대치되고,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가 이루신 것(객관적인 것)은 그리스도가 죄인들 속에서 이루신 것(주관적인 것)이 되며, 칭의는 물러가고 중생만이 홀로 복음이 된다. 회심의 객관적 수단이 크게 사라지고 복음전도자들은 주관적인 것을 이용한다. 그 결과는 복음전도자들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근원으로 겸손하고 통회하는 죄인들을 인도하기보다는 결심을 추수하는 것을 목표하는 것이다. 이것은 피니와 무디에 의해 개척된 접근의 자연적 부산물이다. 그 중 누구도 전도자의 설득력 있는 설교의 압력 혹은 유혹에 의해 충분히 "부서지는"(피니의 말)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마음을 다한 회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는 도덕적 권고가 회심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전부라는 17세기의 알미니안 견해의 부흥을 다시 본다. 이것은 어거스틴주의자들과 종교개혁 및 청교도 전통에 있는 자들이 부인하는 명제이다. 그들은 로마서 8:7-11, 9:14-24 과 에베소서 2:1-10 그리고 요한복음 6:43-45에 호소하면서 그 명제를 부인한다. 이러한 확신과 더불어 , 복음전도자들은 "그물로 건지며" "수학을 거두기" 위해 각각의 전도 집회의 마지막에 가서 강렬한 압력을 종종 가한다. 그러나 만약 "결심"과 "헌신"이 회개와 믿음을 의미한다면, 그리고 믿음과 회개가 오직 하나님의 확신케 하는 영이 능동적이고 내부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때 일어난다면, 그리고 성령의 역사가 우리가 조정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어떤 남용과 어떤 비현실성과 어떤 잘못된 방향이 있다. 그것은 마치 상담을 위해 앞으로 나오는 것 혹은 무슨 다른 제스처가 요구되어지건 간에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 지금 여기서 개인의 회심 문제를 영원히 결정지을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고 무대로부터 말해지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다른 이야기를 말하는 듯하다.


        공중 앞에서의 믿음의 고백은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과거로부터 결정적으로 결별하도록 도와왔다. 그것은 하나님의 깨닫게 하는 모든 일이 머리로 오고 그리스도께서 믿음을 통해 내적으로 느껴졌던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유일한 답으로서 이해되어질 그 순간으로 역사해 왔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믿어지고 있는 것이 어떤 종류의 복음이냐를 묻는 것이다. 결정 과정이 공적이던 사적이던 그 본질과 요구하는 것은 성경적 기준으로서는 인식될 수 없을 정도로 축소되어진 복음 위에 세워질 수 있으며 사실 오늘 날 보통 있는 일이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해진 회심에 관한 편협한 설교가 교회에서 항상 그 복음 사역을 해왔던 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전 기독교적 삶에서 회심이라는 용어 사용이 믿음이라는 최초 행동의 중요성을 소홀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법 앞에 너무 오래 번민하다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염려할 수도 있다. 우리는 세계 인구의 증가지수에 너무 놀란 나머지 믿는 것을 아주 쉽게 만들어 우리 세대 안에 전 세계를 향한 복음의 선포를 가능하도록 만드는 우리만의 ‘새로운 방법’을 도입 할 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러한 염려 때문에 우리가 신자로부터 적은 것을 요구하고, 적게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에 적게 공급하며, 자의식의 뚜렷한 느낌에 불과한 믿음을 만들고, 우리 시대의 커다란 문제들과 도전에 아무 관련도 없는 복음으로 끝을 낸다면, 우리는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이 더 이상 성경적 복음이 아니라고 확실히 말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본 내용은 데이빗 F. 웰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홍기영 박사 옮김)"의 제 4장 내용을 본 강의에 맞추어 편집하여 올린 것입니다.



* admin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4-08-22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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