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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 봄학기 신약신학 제 9 강 포기하지 않는 사랑
임 바울  2013-05-08 14:01:36, 조회 : 1,830, 추천 : 367

                                                               제 8 장
                                                       포기하지 않는 사랑


사 54:10

1. 신뢰할 수 있는 사랑
        예배 후 어느 주일 아침에, 방심하지 않고 설교를 듣는 교회 회원들이 나와 개인적인 면담을 갖기 위해서 남아있었다. 내가 똑같은 남자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두 여자와의 결혼을 광고하였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고 살펴보았지만, 알려준 사람의 말처럼 똑같은 사람이었다. 문의 결과, 몇 주 만에 남자가 처음의 여자와 헤어지고 다른 여자와 결혼할 것을 결정했음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여자에 대한 그의 사랑이 첫 번째 여자보다 얼마나 오래갈지 의문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교감은 종종 감정의 교감일 때가 많다.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부부들을 볼 때에 남녀가 서로에 대해서 가지는 피상적인 사랑에 곤란을 느낄 때가 많이 있다. 사실 두려운 마음 때문에 관계된 예비부부들에게 나의 감정을 전달하고, 좀 더 알 수 있도록 결혼식을 연기할 마음이 있는지를 항상 제시해본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낭만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나서 그렇게 사랑했던 두 부부가 이혼법정에서 싸운다면, 이런 낭만적인 감정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남녀사이의 진정한 사랑도 계속해서 거절되었을 때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나는 한 여자를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강하게 사랑하였다. 어떤 것도 그 사랑을 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끊임없는 피해를 입고 수십 년 동안 불충성함을 겪고 난 다음에, 사랑의 불꽃은 점점 식어졌고 마침내 꺼져버렸다.


        그러나 성경은 가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남녀 간의 사랑을 인용할 때가 있다. 전 성경에서 우리의 가슴을 터지게 할 만한 이야 기중에 하나는 선지자 호세아의 책에서 나온다. 주님이 불충성한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경험할 수 있도록 불충성한 여인과의 결혼을 유지하도록 선지자 호세아를 불렀다. 사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불쌍한 인간관계의 비극 속에 빠졌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고멜이라고 불리는 창기와 결혼을 하도록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호 1;2). 이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시작에 불과했다. 이상한 주님의 명령은 많은 주석가로 하여금 이야기의 진정성에 의심을 던지게 하였다. 또는 이것을 단지 비유로서 해석을 하려고 하였다. 다른 주석가들은 이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 결혼하고 나서 얼마까지 자기 아내의 더러움에 대해서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확실히, 결혼 후에, 고멜은 첩이 되어서 다른 남자에게 갔다. 선지자는 깊이 상심하였지만, 주님은 그녀를 다시 데리고 와서 사랑을 하라고 명령하였다. 순종적인 호세아는 탈선한 아내를 찾았고, 그녀는 그와 화해를 하였다. 얼마동안 그들은 정상적인 관계를 가졌다.


        만약에 일반적인 남자들이 이런 여자와 결혼을 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극악한 부정을 저지른 여인을 누가 다시 데리고 살 것인가? 이런 여자를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남자가 있다면, 그들은 말할 수 없는 고생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것을 호세아로 겪게끔 부름을 받았다. 선지자는 그는 고통을 당하였지만 불충성한 고멜을 사랑해야만 했다. “ 비록 그들이 우상에게 마음을 돌렸지만, 주님은 이스라엘 자녀를 사랑한 것처럼”(호 3:1) 그녀를 사랑하도록 호세아는 부름을 받았다.( 그들의 사랑이 무시되었을 때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 것인가에 대한 것은 당사자 이외에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의 결렬한 고통을 통해서, 호세아는 하나님이 반복되는 그의 백성들의 불충성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 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구약에 나타난 많은 사건 중에서, 하나님의 틀림이 없는 사랑은 신적 심판의 음울한 구름 속에서도 섬광처럼 밝게 빗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의 전체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와는 달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전에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상세하게 알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신부는 그 신랑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같이 살기 전까지는 알기가 어렵다. 결혼에서, 신부와 신랑은 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많은 나쁜 점들을 점차적으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사랑을 우리들에게 전달한다. “ 전에 우리가 여전히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죽었다”(롬 5:8). 우리가 자신을 아는 것보다- 우리의 은밀한 죄, 악한 생각, 과거의 죄- 훨씬 더 하나님은 우리를 아신다.  그는 동일한 사랑을 우리들에게 여전히 주신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지는 것보다 산이 들려서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호세아의 예언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면 구약에서 우리는 가장 감동적인 구절을 만나게 된다. 다시 한 번 주님은 진노를 내려와 할지 긍휼을 베풀어야 할지 전혀 모르는 당황하는 사람으로 그 자신을 묘사함으로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불충성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을 하신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 11:8.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대에 멸망 받은 도시이다(신29:23)). 이런 불행한 상황이 인간관계에서는 빈번하다. 자녀들이 집을 떠나서 오만함과 배은망덕한 행동을 보일 때에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당황함을 면치 못하는가? 후회와 분노가 너무 깊어서 자녀들이 충격적인 행동들을 무시할 수가 없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들을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그럼으로써 이 말씀이 가르치고자 하는 교훈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사실 하나님은 잘못함을 인해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였다. 그는 무감각의 마음과 볼 수 없는 눈과 듣고 이해할 수 없는 귀를 주었다(롬 11:8). 그의 백성들을 버리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도  끊어질 수 있다는 강한 증거가 되지 않느냐고 반문을 한다. 표면적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의 충성도에 따라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골치를 썩이는 문제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목적이 결코 인간의 죄에 의해서 좌절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할 필요가 있다(엡 1;11). 하나님은 우리가 유대인보다 낫기 때문에 우리를 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에게처럼, 이방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불순종에 의해서 방해받을 수 없다.  그의 사랑은 인간의 노력이나 소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의존한다. “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롬 9:16-18). 항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점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랑을 받는 이유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 바울은 확고하다. 국가적인 배도가 일어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때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거짓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7천명을 남겨두었다고 하셨다.


롬 11:5-7

        우리 이방인 성도들도 또한 은혜에 의해서 선택이 되었고, 똑같은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 때때로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로 하여금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우리의 사랑이라는 생각은 반드시 멸망하게 된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보호를 받지 않으면(벧전 1:5) 이 땅에서 우리가 겪어야 하는 강한 시험과 쓰라린 고통으로 살아남지 못한다. 이런 시기 동안에 우리를 하나님에게 매달리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결정적이지만, 이런 시험동안에 우리가 느끼는 것은 신적 사랑의 능력에 표지가 아니다.


        바울은 도전장을 제출했다.

롬 8:35-39


2. 현재의 시식(試食)
        모든 좋은 것에는 “끝이 있다”라고 말한다. 유년시절이래로 이런 격언이 나의 마음에 잊혀지지 않는다. 2살 정도 되었을 때에 나의 부모는 인생이 즐거움으로 가득찬 것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기를 원한다는 말을 자주 나에게 했다. 내가 즐기는 것이- 특히 바닷가에서 휴일을 보내는 것- 끝이 다가왔을 때에 매번 우울해 했지만, 이때마다 부모님의 말들을 다시 새기곤 하였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위로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격언이 맞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이 세상에서 모든 좋은 것이 끝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다음날 이런 일들이 현실로 다가온다. 창문 문턱에 선인장이 하나 놓여 있었다. 특별한 것이 전혀 없이 수년 동안 물을 주는 일 이외에는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하였다. 어느 날 나와 아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세 개의 꽃들이 피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너무 놀란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자 꽃이 시들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수년 만에 한 번 핀 꽃이 빨리 시드는 것을 보고 허망함과 슬픔을 느꼈다.


        반대로 하나님의 사랑의 아름다움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성도들에게 이런 분명한 확신을 주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나이가 들면서 육체적인 힘이 떨어진다. 전에 우리가 즐겼던 수많은 일들을 수행할 힘이 떨어진다. 빠지는 이빨처럼, 옛 친구들이 하나씩 하나씩 이 땅에 떠나는 부고장이 날아온다. 이것을 경험한 야고보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 인생이 무엇인가?”

약 4:14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그 넓이와 길이와 그 높이와 깊이를(엡 3:18-19)” 더 확실히 알아지기에 점점 더 좋아진다.


        하나님의 사랑은 실패하지 않기에 우리는 많은 기쁨을 경험한다. 이 세상에서 시들어가는 즐거움과는 다르게, 그들 모두는 미래의 영광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천부의 사랑은 결코 피곤하지 않는 어떤 것이다. 그와 함께 있을 때에 가지는 평강, 교제와 경배의 달콤함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좋아질 것이다. 죽음은 이런 즐거움의 끝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더 증가시킴으로서 , 현재에 경험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현재의 즐거움은 미래에 주어질 영광에 대한 맛보기에 해당한다.



3. 영원한 언약

        ‘언약신학’은 오늘날 성도들에게 가장 알려지지 않은, 가장 서툰 분야이다. ‘ The Eclipse of the Gospel'이(Grace Publications)라는 나의 책 59페이지에, 나는 언약신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 언약은 두 당사간의 속박하는 계약이며, 약속과 책임이 담겨져 있다. 결혼은 아주 좋은 예이다. Tom과 Mary가 증인들 앞에서 서로에게 엄숙한 약속을 할 때에, 그들은 언약을 체결한 것이다. 신랑과 신부는 자기들에게 주어진 모든 의무를 수행할 것을 약속한 것이다. 이 경우에 언약은 두 동등한 당사자들이 체결을 하고, 어는 한 쪽이 불충실함으로서 계약을 어길 때에는 죽음으로 갚아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맺으시는 언약은 물론 동등한 당사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세우시는 분이고(창 6:18), 그는 조건을 제시하고, 그의 뜻에 따라서 약속을 하신다.


        몇 가지 언약들이 구약에서 언급되었지만, 이 모든 것들은 같은 것이다. 구속(救贖)에서 보인 계시에서 몇 가지 단계들이 있음을 본다. 계획은 영원하지만, 시간에 따라서 은혜언약은 아브라함과 맺어진 언약으로 시작을 한다. 마지막 장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은 엄숙하게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했고, 그를 통해서 지구의 모든 족속에게 복이 임할 것을 약속하였다(창 12:2). 이 약속들은 영원한 언약이라는 문맥 속에서 이루어졌다:


창 17:7

영원한 언약의 메아리가 구약 전체를 통해서 울려 퍼지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된다.


        언약의 조건들을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절을 당하였다는 사실은 (신 31:16-17) 우리의 궁극적인 구원이 우리에게 달렸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는다. 약소들은 아브라함의 영적 자녀들에게 주신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매우 분명하게 천명한다.

롬 9:8

(아브라함 아들 이스마엘은 그의 부인의 종 하갈과의 관계에서 태어났다. 약속된 자녀를 수년 동안 기다렸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강요하였지만, 성공하지를 못하였다). 정한 시간에 아이를 임신할 나이가 지난 사라는 하나님이 약속한 대로 이삭을 낳았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한다.


롬 9:7

        로마서 앞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똑같은 구별을 하였다.

롬 2L28

        그들의 배신으로 증명된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다.

        사도 요한은 그 당시에 교회를 떠난 거짓 선생들에게 이 원리를 적용한다.

요일 2:10

같은 원리가 언약에 적용이 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것의 영원한 속성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

시105:7-10

        물론, 은혜 언약이 결코 끝이 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렘 31:3

믿는 우리를 위한 그의 사랑은 우리가 그에게 갔을 때에 시작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우리를 사랑했다(엡 1:4,5). 결과적으로, 영원한 언약의 관 계속으로 사랑가운데서 우리들을 이끌었다. 게다가, 그가 선택한 모든 사람이 그의 아들의 완전한 모습으로 변화될 때까지 그의 사랑은 결코 만족하지를 않는다. 그의 피를 가지고 언약을 인친 사람과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결속을 하였음을 우리가 생각할 때에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고저 11:25). 이런 결속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끊어질 수 없고 그는 하나님 사랑의 중요한 대상이다.


        그때에 하나님의 사랑의 불변은 특별한 백성을 위한 특별한 사랑이다. 구약에서 형용사 “불변”이 명사에 자주 결합되어 사용되었다. 심지어 명사가 생략되었을 때에도 항상 우리는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한다. 선지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은 말로서 이것을 정리하였다:


사 54:10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사람이 바로 이런 것이다. 아무리 많은 세기가 지나가도 이것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우리는 주장한다. 그들은 점차적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서 그들의 출생 권리를 점차적으로 확신한다.


왕하 8:23


4. 확신의 근거
        ‘as much chance as a snowball in hell(지옥에 눈뭉치가 있는 것과 같은 기회.(전혀 성공할 가망이 없다는 표현)는 표현은 오늘날 자주 쓰인다. 소망이 없는 상황을 말할 때에 쓰이는 회화적인 표현이다. 그들 자신의 선함에 근거해서 하늘을 갈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의 ’기회‘를 표현하는 것에 잘 맞는 표현이다.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착각 중에서, 이것만큼 심각한 것은 없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자신 안에 어떤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만 전개된다. 하나님의 영속하는 사랑은 확신의 유일한 기초석이다. 그의 약속들이 우리 안에서 성취될 것이라는 유일한 보장만이 우리의 확신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영속하는 사랑의 증거는 그의 아들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의 죄있는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영속하는 사랑의 놀라운 증거이다(롬 5:8).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의 가장 위대한 선물을 주었기 때문에, 그 보다 못한 선물들을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매우 값비싼 그의 아들의 희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어떤 것도 막지 않는다는 강력한 증거 그 자체이다. 그는 우리들에게 한 모든 약속을 지킬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했기 때문에, 우리가 기업을 얻을 때까지 보증이 되신 성령으로 인을 쳤다는 것까지 더 나아가야 한다(엡 1:13,14). 그의 능력에 의해서 그는 우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드시고 우리가 위대한 기쁨을 가지고 그의 영광의 존재 앞에 흠이 없이 나타나는 일에 실패가 있을 수 없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상상할 수 없는 우리의 영광스러운 미래에 속한 모든 것들이 (고전 2:9) 그리스도의 선물과 함께 온다( ESV 인용구절).


        우리는 의심으로 고민할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했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경험한다: 우리의 죄성과 끊임없는 싸움에서 느끼는 좌절감은 썩어져가는 몸 때문에 견디어야 하는 고통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감소시킨다. 때때로 우리는 기드온과 같은 마음을 가진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말할 때가 있다. 이런 시기에, 하나님의 약속들을 묵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다. 예수는 한 문장으로 우리의 안전한 위치를 정리한다:


요 10:28

감사함이 항상 하나님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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