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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 봄학기 신약신학 제 8 강 종합보험
임 바울  2013-04-28 20:05:34, 조회 : 1,935, 추천 : 357

                                                      제 7 장
                                                     종합보험


사 36:17


1. 하나님은 만족한다.
        내가 처음 운전할 때에 내차는 상대편 책임보험만을 가지고 있었다. 종합보험이 내게는 너무 부담이 되었다. 그리고 내차는 오래된 차이기에 종합 보험을 들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느 날  Taxi가 내 차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Taxi회사로부터 비용을 청구하기 위해서 많은 고생을 하였다. 상대편 보험회사는 내 차 뒤의 신호등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지불을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사고로 신호등이 깨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전혀 증명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나는 나이가 들었고, 고급차를 갖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종합보험을 들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사고가 났을 때에 처음 200LB는 커버가 되지 않는다. 만약에 내가 조그맣게 기록된 그들을 다 읽었다면, 더 많은 예외조항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종합보험은 말은 그럴듯하지만, 모든 것을 커버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보험으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인지를 확실히 알지 않고서는 불안해서 운전을 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나의 모든 죄를 책임지지 않는다면, 나에게 어떤 책임도 부과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살 수 없다. 나의 죄 중에서 오직 1%만 커버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나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심판 날에 하나님이 나를 불의한 사람으로 간주할 것은 1%의 죄가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 만큼 충분하며, 나를 그의 면전에서 쫒아낼 것만큼 가증한 것이다. 심지어 1%의 죄라고 할지라도 그는 눈감아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약 2:10

하나님의 법은 그의 거룩한 본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실패한다면 그의 인격에 모독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속성을 부인할 수 없다.


        나의 죄에 대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하나님이시기에 100% 커버가 되어야만 하나님은 만족하게 된다. 이것은 그의 법에 대항해서 행해졌던 모든 것이 커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의 명령으로 주어진 것을 나는 모두 행해야 한다. 내가 알고 지은 죄와 알지 못하는 죄까지도 모두가 커버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나의 과거의 죄, 나의 미래의 죄, 생각으로 지은 죄까지도 포함된 모든 죄를 의미한다. 어떤 것도 빠질 수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할 수 있는가를 물어본다. 어떻게 하나님은 나를 완전한 의인으로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의롭다함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법을 무시할 수 없다.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사랑의 경이로움과 거룩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 속으로 인도한다. 커다란 사랑 속에서 그의 아들 주 예수그리스도의 인격 속에서, 모든 우리의 죄의 형벌을 지불하였고, 그의 용서는 그의 의와 완전히 일치를 이룬다. 우리의 빚이 무시되지 않았다. 미결정의 서류함에 들어가서 대기상태에 있지 않다. 완전히 지불 마감의 스탬프가 찍어졌다. 공약이 완전히 이루어졌다. 바로 이것이 사도 요한이 하나님이 신실하시고 의롭다고 말한 이유이다.

요일 1:19

        그는 용서하시겠다는 그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켰으며, 동시에 그는 자신의 의로움을 전혀 손상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기 바로 전에 “다 이루었다”(요 19:30)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그가 의도한 것은 이 완전한 구속 사역이었다. 세 단어를 끝이 났다, '성취하였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한 단어(텔레오)를 번역한 것이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일이 행해졌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럼으로써 우리를 대신해서 그의 생명을 줄 수 있었다. 하나님 의의 요구는 완전하게 만족되었다. 믿는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평안함을 느끼지만, 우리를 위해서 죽은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은 쉽지가 않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 9 장을 보라). 하나님은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인격 속에서, 그는 세상의 죄를 위해서 희생물로 그 자신을 주었다. 자기의 사랑을 준 사람들은 완전히 공짜로 용서를 받았다. 찰스 웨슬리의 찬송가 중에 하나는 이런 식으로 성육신을 말한다: ‘ 우리 하나님이 손바닥 크기로 작아졌다. 어떤 사람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바로 이 분이 우리들을 위해서 죽으셨다.’


        바울이 ‘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서 그리스도가 죽으셨다’라고 말했을 때에, 그 당시에 그의 동료 신자들의 죄만이 아니라 전 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그들이 언제 살았던 지간에 그리스도에 속한 모든 사라들의 죄가 커버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의 타락과 그리스도의 죽음사이에 살았던 사람들의 죄도 커버가 되었고, 그리스도 시대부터 현재까지 살았던 사람들의 죄도 커버가 되었다. 또한 아직 태어나지 않은 하나님 자녀들의 죄도 커버가 되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라고 하였다.


        인간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피는 그들의 인종과 상관없이, 그들이 행한 것과 상관없이, 그들이 언제 어디에서 살았던 것과 상관없이 그에게 오는 모든 사람의 죄를 커버하기에 충분하다. 그들이 너무 나쁘고, 너무 늦고, 그들이 배도한 것에 대해서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시 103:17

요 6:37

겔 18:31-32

귀한 어린양이 죽었다!
당신의 소중한 피는 능력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몸값을 치른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 때까지,
어떤 죄도 더 이상 찾지 못할 때까지.

                (William Cowper 1731-1800)



2. 아브라함의 자녀들은 의롭다함을 받았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죄 사함을  받은 가장 훌륭한 예는 아브라함이다. 구약 희생제도가 세워지기 전 약 3-400년 전에 살았지만, 그가 예수의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았다. 창 15:6절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주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서 여겼다면, 이것은 누구의 의인가? 이것은 아브라함의 의가 될 수 없다. 그의 의가 완전하였다면 그 자신의 의로움 때문에 아브라함을 받아들였을 것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의를 제외하고 그것이 누구의 의가 될 수 있는가?(빌 3:9).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의는 그의 사랑하는 아들 안에서 세상에 나타난 그 자신의 의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에게 전가된 다음에, 하나님은 그가 완전히 의로운 것처럼 받아들인다. 이런 근거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다.(출 33;11, 약 2:23). 그리고 그의 삶은 바뀌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도 바울은 먼저 복음이 아브라함에게 전달되었다고 말한 것이다(갈 3:8).

빌 3:9

출 33;11,

약 2:23

갈 3:8

          아브라함은 특별한 경우인가? 불의한 사람을 그의 본토에서 하나님이 불렀다(창 12:1); 믿음에 의해서 의로운 것처럼 그를 받아들였고, 이것을 근거로 그리스도 죽음의 모든 혜택의 수여자로 그를 만들었다는 것은 확실히 예외적인 어떤 것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아브라함은 유대인 족장 중에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특별나다. 구속 계획 속에 특별한 역할을 위해서 뽑혔다. 그러나 그는 결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우리도 똑같은 사랑의 대상이다. 같은 하나님에 의해서 부름을 받았고, 같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의롭다함을 받았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죄인이고 우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의 모든 혜택을 받아왔다. 아브라함이 누리는 모든 영적 특혜가 우리들의 것이다.


        바울이 우리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한 것은 아브라함과 친근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즉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의롭다함을 받는 똑같은 값진 믿음을 주었다. 오래전에 아브라함에 했던 약속들을 우리들에게 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로 옷을 입었고, 하나님 친구가 되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기업으로 받았다(히 11:10).

갈 3:29

히 11:10



3. 도덕 폐기론 주의( Antinomianism)
        우리의 모든 죄를 커버하기에 충분한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주제를 도덕폐기론을 부추긴다는 진부한 비난에 답을 하지 않고는 끝낼 수가 없다( 도덕폐기론주의는 믿는 사람은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다는 주장이다. 기독교인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으면, 하나님의 법을 지킬 것인가 아닌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못된 논리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 하나님의 우리 모든 죄를 용서할 것이라면, 왜 나는 계속해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가? 그리스도가 모든 형벌을 지불한 이상, 나는 거짓말을 할 수 있고, 내 이웃의 아내와 간음할 수 있고, 세금 보고를 속일 수 있고, 나의 부모를 모욕할 수 있다’고 한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은혜를 더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 있느뇨.’ 우리가 지금까지 살았던 것처럼 살아감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확대해야 하지 않는가? 계속해서 죄를 지음으로서 하나님의 은혜가 더 나타나도록 우리가 하나님을 도와주어야 하지 않는가? 사도 바울은 자기가 던진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한다: ‘그럴 수 없느니라!’( 이 번역은 사도 바울의 혐오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다. KJV 번역판은 제대로 설명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 하나님이 금하신다.)


        그리고 나서 매우 심각하게 오해되어 왔던 또 다른 질문을 제시한다:‘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 ‘죄에 대해서 죽었다’라는 이 말이 참된 성도는 죄에 대해서 무감각함을 의미한다고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마치 죽은 시체가 어떤 시험을 받지 않는 것과 같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성경을 대조해서 보면- 항상 우리는 이런 식으로 성경을 보아야 한다- 이것은 바울이 의도했던 것이 아님을 금새 알게 된다. 몇 구절 더 내려가다 보면 우리의 죽을 몸에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우리를 권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롬 6:12). 우리가 전적으로 죄에 대해서 무감각하다면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 이런 해석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 경험과도 모순된다. 그는 롬 7장에서도 이 문제를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다.


롬 6:1-2

롬 6:12

롬 7:7-25

        바울은 기독교인의 삶에서 가장 위대한 복중에 하나를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합해졌을 때에, 매우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우리는 죄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 이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 내가 기독교인이 되었을 때에 나의 더러운 언어생활이 즉시로 멈추었다. 내가 맹세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들으면, 특별히 신성모독적인 표현들을 들으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더 이상 맹세를 하지 않는다. 죄 된 삶을 살기 위해서 죄의 용서를 위해서 그리스도에게로 어떤 사람도 오지 않는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용서해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계속해서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일정도로 모순이다. 기독교인들이 죄에 빠질 수 있다.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에,  우리는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대언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습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죄를 짓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다.


요일 2:1

        그리스도가 죽었기 때문에 죄는 이제 심각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의 심각성을 우리들에게 날카롭게 부각시켰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유일한 아들을 주어야 했고, 매우 비싼 값을 지불해야 했다. 따라서 죄는 어떤 사람이 상상하는 것보다 하나님에게 훨씬 큰 죄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왜 죄의 심각성이 복음주의 진영에서 이렇게 경시되고 있는가? 바울이 이런 비난에 반증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비평가들은 죄를 경시하는 것은 칭의 교리에 대한 우리 믿음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음주의 교회에서 이 주제를 가르치는 것이 희귀하기 때문에 이런 비난은 더 효과가 없다. 어쩌면 죄에 대한 현재 우리의 느슨한 태도는 이 영광스러운 교리를 경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말로 하면,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서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 자신의 아들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비용을 평가하는 일에 실패가 하나님 앞에서 죄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을 둔하게 하였다. 우리의 높은 도덕 기준이 불신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대신에, 불신자들이 갖고 있는 도덕적 해이함이 우리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에 약간의 진리가 있을 수 있다. 이런 말에 맞다 고할지라도, 칭의 교리의 진리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약하게 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일생동안 부도덕한 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극적으로 바뀌었다. 2차 세계대전 전에, 내가 열 살 정도 되었을 때에, 내가 속한 교회 크리켓 클럽( cricket club)의 회원 중에 한 사람이 여자를 임신시켰다. 소식이 전해지자, 클럽 위원회의 긴급모임이 있었고 죄를 지은 회원의 이름이 엄숙하게 제명되었다. 그는 더 이상 팀에서 게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해에, 내가 잘 알고 있는 교회에서, 청년부의 지도자였던 젊은 청년들이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목회자가 이 소식을 들었을 때에 이 일에 대해서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결정했다. 즉각적으로 교회의 몇 명의 회원의 지원을 받은 부부는 사생활을 침범하였다고 목회자를 비난하였다!



        이런 태도 때문에 교회의 증인역할에 주어질 수 있는 피해는 계산을 할 수가 없다. 그의 사랑이 그를 받아들였다는 생각을 이용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에 대한 압도적인 주장을 거절하는 것은 그의 이름에 심각한 반항을 하는 것이다. 그의 명령을 경멸하는 것이고 그의 아들의 죽음에 모욕을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지불한 값을 인자함으로 바꾸려는 시도이다. 회개의 필요성을 없애버린다. 하나님은 항상 사랑으로 행동을 하지 결코 공의롭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회개를 하였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진심에 어린 삶이 변화되는 변화가 아니라, 일종의 사과에 불과하다.


        본론에서 잠깐만 벗어나보자. 인간 죄의 심각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려는 우리들의 마음이 하나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는 것과 그것을 형벌하시는 그의 결정에 대해서 우리가 침묵한다면, 그의 사랑은 시시한 사랑 이상의 어떤 것이 될 수 없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적개심이 모든 것이 허용되는 사회에 불쾌감을 준다는 가정 하에 입을 다물어 버리면,  우리는 비겁한 죄를 짓게 된다. 첫째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도록 세상 사람들에게 의뢰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로 세상 사람들이 모든 죄를 경미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적 부도덕의 죄들에 대해서 상당히 관용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많은 일들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Myra Hindley-'Moors Murderers'로서 잘 알려진 Ian Brady와 함께 있었던 -1960년 중반에 세 명의 아이들을 고문하고 살인한 것 때문에 36년의 형무소 생활 중에 번민을 하였다. 그 후에 두 사람을 더 살인한 것을 고백하였다. 2002년 11월에  그녀의 죽음이 방송되었고,  방송해설자는 그녀를 “영국에서 가장 가증한 여인”이라고 언급하였다. ‘죽음을 당한 여인의 부모와 친척 중에 어떤 사람도 그녀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가 없었다. 죽음의 순간에서도 용서를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이런 죽음은 그녀에게 충분하지 않다고까지 논평하였다. 강간, 협박, 강도, 음주운전에 대한 느슨한 형량에 대해서 대중들은 불만족을 나타냈다. 고위층의 사기에 대해서 계속되는 불만이 터지고 있다. 그런데 왜 하나님 앞에서 죄의 중대성을 대중들에게 알려주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소심해야 하는가?


        하나님 사랑의 깊이를 재기 위해서 우리는 십자가의 발아래 가야만 한다. 십자가의 의미를 숙고하면 할수록, 비록 우리의 본성이 그에게 깊이 모욕적이지만, 죄를 경시하면서까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른다. 죄를 진부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진부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진부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을 진부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연구문제>

a. 세상이 갖고 있는 종합보험은 무엇인가?

b. 그리스도의 죄사함의 보험은 어떠한 보험인가?

c. 1%를 커버하지 않았을 때에 일어나는 사건을 설명하라
d. 그리스도 죄사함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시간적으로 설명하라

f. 고전 15:3절에서 죄사함의 대상은 누구인가?

g. 창 15:6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의는 누구의 것인가?

h. 아브라함의 칭의는 특별한 것인가? 갈 3:29절을 참조해서 설명하라

I. 칭의와 도덕 페기론주의와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하라

j.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지어서는 안되는가? 롬 6:1-2절의 말씀을 가지고 이 말이 의미한 바와 의미하지 않는 바를 분류해서 설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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