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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류의 조상은 아담인가?
편 집 자  2018-09-14 19:14:20, 조회 : 117, 추천 : 28

“ 모든 인류는 , 아담으로부터 내려왔다....”


        많은 독자들이 아는 것처럼, 위의 제목은 웨스트 민스터 소교리 문답 16의 답이다. 그리고 대교리 문답 22번의 답이다. 성경 중심에 있는 진리를 말한 것이고 그리고 아담에 대한 교회의 보편적인 고백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왜 물음표를 붙인 것인가? 오랫 동안 많은 비 기독교인들이 했던 것처럼, 이 진리를 거절하기 때문이 아니다. 더욱 최근에 과학자에 의해서, 성경학자에 의해서, 긜고 그들 자신을 복음주의자 또는 심지어 개혁주의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진리에 대한 그들의 의심이 그들의 기독교 헌신과 양립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설득을 당하였다.  


        성경의 권위에 진실로 복종하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런 최근의 정세에 경계를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이런 의심과 부인의 결과에 대해서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그들의 의도가 아무리 선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복음을 부지중에 무너트리고 있으며, 궁극적인 패배를 당할 것이다. 모든 인류가 아담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면,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전체 구속의 역사는 쓸모없게 될 것이다. 결과는 믿을만한 전체 구속역사는 없게 될 것이고, 그리고 의미있는 전체 구속 역사는 손상을 당할 것이다.



        인류 기원과 유래에 대한 교회의 역사적 고백에 의심이 생기게 된 이유는 두 종류에서 나왔다; 하나는 과학에서 나왔고 다른 하나는 주석적인 연구에서 나온 것이다. 여러 가지 분야에서 특히 고생물학, 고고학, 인류학, 그리고 특별히 과거 몇 십년동안 발전되어온 유전학에서 쌓인 결과들이 모든 인류는 한 쌍의 부부에 의해서 내려온 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하였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동일한 부모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이런 과학적인 발견물들은 성경의 재고를 촉진하였다. 특별히 창 2-4장의 내용을 다시 검토하게 하였다. 과학은 우리로 하여금 , 문자적인 해석에 의해서 나타나는 세부 내용중에서 어떤 부분들은, 모든 인류는 아담과 후손으로부터 내려왔다는 견해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우리를 강요한다. 예를 들면, 아담의 아들들의 부인들은 어디에서 나왔는가에 대해서 오랫동안 의문시 되었던 문제들이 언급되었다.  


        이 글의 나머지는 이런 과학적인 주장들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들과 연관된 성경적인 그리고 신학적인 견해들을 다룰 것이다. 성경을 해석하면서 얻게 되는 함축적인 의미와 결론들이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이런 영구를 통해서 이런 주장들이 쉽게 해결된다거나 또는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책임있는 방법으로 이런 의문들을 검토하는 것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에게도 해당이 되겠지만, 우리들의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과학  분야에서 일을 하는 지식이 있고 전문적인 사람들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전과는 달리, 이런 저런 분야에서 일을 하는 전문적인 기독교인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1. 성경과 과학과의 관계


        여기에서 짧게 서술되는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고찰들은 인류의 기원과 같은 문제 대해서 건설적인 기독교인의 관심일 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연구를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지금 고찰하는 의심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과학자들과 필수적인 성경 교리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유용한 과학적 증거들을 정직하게 고찰하는 신학자들 사이에 협력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이것은 칭찬받을 만한 목적이다. 그러나 이런 협력이 신학자들에게 어떤 모습일까를 내 자신에게 물었을 때에, 내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곳을 정정함으로서 뒤에 따라오는 논평에 단호한 입장을 취함으로서 최고의 그리고 필요한 답을 제공할 책임을 가진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기원에 대한 대진화 모델을 적어도 재고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를 이런 과학자들에게 물어야 한다.


        아담은 모든 인류가 나온 첫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견해는 적어도 두가지 면에서 성경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을 의심토록 만든다. 이 두 견해는 성경의 명확성에 반대를 한다. 첫째로, 과학적인 발견들은 기본적이고 성경적인 가르침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확신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의 거절과 그 결과로 인한 재해석의 필요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선권이 부여되어지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 갈릴레오 때”를 직면하고 있다고 가정해서는 안된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생각을 조절할 필요가 있으며 과학을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우리의 환경과 주로 우주의 물리적인 운영의 가변적 이해의 국면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기본적이고, 영구적이고, 불변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에 수반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확실히,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타고, 우리를 위하여 충분하게 그리고 권위있게 기록된 하나님의 구원 계시는 그 자체로 이해될 수없으며, 자연속에 나타난 그의 계시와 동떨어져서 해석될 수 없다. “가장 아름다운 책”인( 벨직 신앙고백서, 제 2항) 자연과 성경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살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책들을 평가하는 상호 관계와 그들의 연구는 50대 50으로 균형이 잡혀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이 아닌 성경은 항상 그 안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냈다는 , 벨직 신앙고백서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신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에 “더 분명하게 그리고 더 공공연하게 ” 나타났다는 점에서 우선권을 부여해야 한다.  
  

칼빈이 말한 것처럼, “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피조된 세계를  그리고 인간들을 바르게 읽을 수 있는 안경을 제공한다”고 하였다. 그때에 일반적인 법칙으로서, 일반계시를 연구하는 인간의 과학적인 학문은 기록된 특별계시에 결정을 맡겨야 한다. 성경이 모든 인류의 후손들은 아담으로 왔다고 가르친다고 우리가 더 이상 고백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견해는 이런 규칙을 사실상 뒤집는다. 성경을 과학에 발언권을 양보하도록 만든 것이다.


        두 번째로, 성경이 인간의 기원과 후손에 대해서 분명하지 않고 확실하지 않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 견해는 문제가 있는 의견이다. 무엇보다 창 2-4장에 있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성경은 자체를 해석할 능력을 갖고 있다. 다른 구절과 마찬가지로 이 구절들도 전체적으로 성경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어려운 구절은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는 다른 구절을 가지고 해석되어져야 한다. 이것은 성경 해석방법이다(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1 장 9항)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을 이룬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역사와  완전한 정경으로 교회를 위해서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는, 일반적인 법칙으로서 구약은 신약을 가지고 이해되어져야 한다. 모든 구절들은 마지막 날에 그의 아들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여기에 바탕으로 두어 설명되어야 한다( 히 1:2). 명확하게, 성경 계시의 전체적인 윤곽으로서, 우리가 지금 고찰하는 문제와 분명하고도 결정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인간 기원에 대해서 말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사도 바울에게 주어졌다. 특별히 두 곳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롬 5:12-19절과 고전 15:21-22, 45-49절이다.


2. 첫 번째 사람으로서 아담, 그리고 두 번째 아담으로서 그리스도


         이 두 구절의 중심 대상은 명백히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다. 동등하게 양 구절에서 명백한 것은 (1)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적 조망과 그가 성취한 구원이며 그리고 (2) 이런 역사적 조망과 기본적인 틀안에서 아담과의 대조이다. 고전 15:44-49절에서, 이 관점은 시작부터 끝날까지, 최초의 창조부터 절정까지 전체 인간 역사를 보여주는, 가장 보편적인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에 알맞게, 45절에서, 그의 창조 그리고 타락전의 모습으로서의 아담은 부활 때문에 마지막 아담으로서 그리스도와 대조된다. 롬 5장과 고전 15장에서, 역사적 개요의 범위는 보편적이다; 한편으로, 아담은 죄인으로서 타락 후의 모습이다( 창 3장에서 아담). 바울에게, 구속 역사는 아담과 함께 분명하고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시작한 것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분명하고 총체적인 끝을 맺는다.


        이 두 구절에서, 아담과 그리스도는 개인적인 사람으로서 보고 있다. 그러나 개인으로서 그들은 개인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가진다. 그들은 각각 다른 사람으로 대표하는 것으로서 대조된다. 그들은 그들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대표하는 머리이다. 이런 연합에 기초한 대조는,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가르치는 성경 언약 신학의 뿌리가 되는 대표원리 또는 연방원리를 보여준다. 이 가르침은 이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불순종으로서 아담은 그 자신과 그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선하게 창조된 것에 죄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순종에 의해서 그리스도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죄로부터의 구원과 그에 따르는 모든 결과를 가지고 왔다.


        대조에 의해서 밝혀진 용어의 중요성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의 구원사역에서 그리스도는 둘째이다. 아담은 첫째이다( 고전 15:45,47). 구속의 역사가 펼쳐지면서 각 사람이 가지는 독특한 위치는 어떤 사람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연합에 의한 대표로서 오직 아담은 앞으로 올 사람의 예표이다( 롬 5:14). 그리스도가 구속 역사의 마지막이라는 위치를 차지한 것처럼, 아담은 시작의 위치를 갖고 있다.


        이런 구절들은 강조하여 설명되어야 한다. 죄인을 구속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필수적인 것은 죄를 제외하고, 그들과 완전한 결속을 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 아담이다. 전체적으로 구속 역사의 완전함과 일관성은 이런 대조에 달려있다. 어떤 사람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담이 첫사람이든 또는 첫사람이 아니든, 우리가 적어도 이런 분명한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면, 복음은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도 이 점을 분명히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 최후 심판 그리고 모든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요청하는 것은 하나님이 한 사람에 의해서 모든 인류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의해서 좌우된다( 행 17:26-30).


3. 아담에 대한 다른 해석들

든 사람이 아담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부인하면서 그러나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권위에 순종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런 구절에서 보여진 아담에 대한 언급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눅 3:38, 딤전 2;13-14, 유 1:14). 두가지 접근법이 취해지고 있다; 한 가지는 아담의 역사성을 부인한다; 다른 편은 그의 역사성을 인정하지만, 그가 첫 번째 사람이고 모든 인류의 아버지임을 부인한다.


        전자의 견해에 의하면, 다른 신약의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바울은 아담은 실제적으로 역사적 인물로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그의 가르침과는 관계가 없었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과 신앙에 어떤 손해가 없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담”은 일반적으로 인류에 대한 인격화이거나 또는 모든 인류를 위한 나라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인격화이다. 아담은 모든 사람에 대한 대명사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아담은  인간 죄성에 대한 보편성을 강조하기 위한 “ 교수법”으로서 바울의 목적에 기여를 한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 많은 사람 또는 모든 사람의 죄”와 구별된 한 사람의 죄로서 아담의 죄에 대한 로마서 5장에서 보여지는 일관된 강조와 모순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담의 역사성은 바울과 관계가 없다고 결론을 짓는 것은 책임이 있는 주석을 엉뚱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또 다른 견해는 아담의 역사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첫 번째 사람이라는 것을 부인한다. 적어도 이런 견해를 갖는 사람들은 인류 역사에서 하나님은 그가 시작했던 인류를 다루기 위해서 이미 존재하는 많은 인류중에서 그를 대표자로서 분류하였다는 점에서 그는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이겨내기 힘든 어려움을 직면한다; 아담은 첫 번째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과 관련해서“ 첫 번째 사람”이다( 고전 15:49). 나머지 사람들이 아담전에 존재했다면 또는 그 결과로서 아담으로부터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담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로서 설명될 수 없다. 아담은 그로부터 태어나서, 그와 연합된 모든 사람의 대표이다. 그는 그들만 대표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아담의 역사성만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것은 적은 일이 아니다. 바울은 롬 5:49절에서 분명히 하였다. 신자가 아담의 지상 형상, 죄에 의해서 더럽혀진 하나님의 본래의 형상을 가졌던 것처럼, 신자는 그리스도의 하늘 형상을 갖게 될 것이다. 아담의 형상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가질 것이라고 가장하는 것은, 위에서 본 일반적인 개요를 감안한다면, 매우 이상하다. 일반적인 출생에 의해서 아담의 형상을 갖지 않는 죄인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없어진다. 그리스도는 그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을 구속할 수 없다. 그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담의 형상을 갖고 있는 사람의 본성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적으로 후손으로서 아담의 형상을 갖고 있다.



4. 아담의 우선성을 부인이 담고 있는 의미들아담의 우선성을 부인이 담고 있는 의미들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모든 인류가 나왔음을 의심하거나 또는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 믿음을 위해서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죄에 대한 이해를 변경한다. 특별히 인간 타락의 기원과 본질에 대하여, 죄책에 대한 어떤 의미있는 개념과 상응하는 내용들을 버리게 된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룩한 진노를 화해하는 대속으로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거나 또는 심지어 부인함으로 특별히 구원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를 변경시킨다. 그리고 그의 인성을 신성을 최소화시키거나 또는 부인하고, 그의 인성과 사역을 하나의 본보기로 제시함으로서 구원자에 대한 이해를 철저하게 바꾼다.


        이런 함축적인 의미들을 여기에서 상세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대신에 이런 문제들을 다룸으로서 우리들에게 특별히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신학자들을 추천하고자 한다;  Is Adam a “Teaching Model” in the New Testament? by J. P. Versteeg; Robert B. Strimple’s chapter, “Was Adam Historical?” in Confident of Better Things; and Michael Reeves’s chapter, “Adam and Eve,” in Should Christians Embrace Evolution? 그리고 나는 Versteeg의 글을 인용함으로서 정리를 하고자 한다;


        “ 첫 번째 역사적 인물로서 그리고 인류의 대표로서, 아담은 신약에서 지나가는 말로 언급되지 않았다. 아담과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적인 상관관계는, 특별히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시도의 구속 사역이 차지하는 틀을 결정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틀에서 벗어난다면, 이런 구속 사역은 성경의 주장에 따라서 더 이상 고백될 수 없다. 구속 사역을 성경에서 말하는 틀로부터 별거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성경의 말씀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표준으로 작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유혹보다 더 큰 유혹은 신학에 없을 것이다. 이런 위험보다 더 두려워할 위험은 신학에는 없다.”




5. 과학자들의 주장 평가하기
                                                                                                 byVern S. Poythress

뉴스 매체들이 인간 기원에 대해서 확신에 찬 주장들을 보고한다. 말하자면, 과학은 인류가 점차적, 진화적 기원을 가졌다고 말한다. 단 하나의 조상아니라고 말한다. 아담이 조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이런 주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우리 주위에 있는 세상은 주로 인간의 자율을 받아들인다. “ 너 자신을 위해서 생각하라”는 것이 그들의 표어이다. 그들은 성경을 원시적인 사상들이 담겨져 있는 고대의, 인간의 작품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그때에, 타락에 대한 성경의 말씀에서 기술된 자율적 사고를 발견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뱀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심을 준다( “ 너는 정녕 죽지 않는다,” 창 3:4). 그리고 하나님의 교훈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정하라고 선전한다. 창 3장은 자율적으로 이루어진 아담과 하와의 선택이 , 처음에는 영적으로 그리고 나서 육체적인 죽음으로 인도하였음을 보여준다. 위험이 너무 높다.


        구약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요 10:35, 마 5:17-18, 19:4-5). 우리가 그를 따르려면, 우리는 세상이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것을 가져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성경은 여러 곳에서 아담과 인간 기원에 대해서 성경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추가적으로, 우리 기독교의 세계관은 과학을 향해서 좀더 넒은 관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과학인 인간의 노력이다. 긜고 인류는 죄인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업적으로 존경하고 가치있게 여겨야 한다. 그러나 죄는 인간의 생각을 왜곡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해서 이런 왜곡들을 이겨나가게 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공급에는 성경에 있는 말씀도 포함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다. 긜고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생각과 거룩한 행동의 길로 나아가도록 인도한다( 시 119:105)


6. 과학적인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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