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

Question & Answer

Home About Us Academic Program Admissions News &
Event
Gallery Contact Us
LOGIN

 



오순절과 참된 영성
편 집 자  2018-08-30 17:42:07, 조회 : 65, 추천 : 22

                                         오순절과 참된 영성


        영성이란 무엇인가? 참된 영성이란 무엇인가? 사람으로 하여금 진심으로 “ 영적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그런 사람을 아는가? 당신이 영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와 같은 질문들에 마음을 빼앗긴 시대에 살고 있다. Oprah Winfrey의 거대한 인기는 그녀가 참된 영성을 발견했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억합적인 기독교 교육에서 그녀 자신을 자유롭게 하였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를 나눌 준비가 되어있다고 대중들을 확신시켰다.


        영화배우 리차드 기어( Richare gere)과 달라이 라마에 속한 사람들은 티벳 국민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를 위한 관심보다 훨씬 더 깊이 들어간다. 달라이 라마가 성육신하였고 참된 영성의 길을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영적 지도자로서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나아간다.


        우리가 이와 같은 이 시대의 주장에 대한 특성을 조사할 때에, 주어지는 대답들이 매우 모호한 경향이 있다. 몇 가지는 아주 분명하게 전달될 것이다. 영서ㅇ( spirituality)는 인격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다. 나는 내 안에서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내 자신을 위해서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기독교인으로서, 그들의 구원자로서 그리고 주님으로서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영성 운동이 무엇이 잘못되었고, 근본적으로 무엇이 부족한 가를 지적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영적 상대주의와 영적 다원주의를 반영하고 있다. 영성에 대한 성경 가르침에 아주 분명한 혐오감을 보여준다.


        성경은 두 개의 근본적인 영적 실체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첫째로, 모든 인류는 죄인이다. 사실 소망이 전혀 없는 죄로 가득차고, 변명할 수 없는 죄를 갖고 있으며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타락한 존재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영적으로 죽어 있는 시체이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로 인해서, 우리들의 죄와 그 결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이다.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만 우리들을 영적으로 살릴 수 있다.


        수없이 출판되고 있은 많은 서적들이 지금도 끊임없은 혼란스러운 주장과 반박을 하고 있다. 그 결과로 이렇게 당황할 정도의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교회를 연합하기 위해서 주신 한 분 성령님으로 인해서, 교회 안에 긴장이 발생했고, 분리를 위한 발판이 되었다.


        이런 비참한 상황에 해결책이 무엇인가? 하나라도 있는 것인가? 하나가 있다. 내가 위에서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주목해보라. 성령이 그의 사역과 은사에 대해서 기독교인들 중에서 분열의 근원 또는 원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불일치의 근원은 다른 곳에 있다. 성령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곳에서 나타난다.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나는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 내가 듣고 있는 것이 성령이라는 것을 나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이런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은 성령에 대해서 또는 성령을 위해서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 또는 어떤 교회에서 나오지 않는다. 성령에 대한 나의 경험 또는 어떤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도 발견될 수 없다.


        오히려, 그 답은 그리고 유일한 답은 “ 성령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라는 주목할 만한 경구속에서 있다(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 제 1 장 10항). 성경만 오직 하나님의 감동이다. 과거에 유일하게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원한 것이므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서 기록된 말씀이다( 딤후 3:16). 성령과 그의 사역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을 포함해서, 기독교인의 실천과 믿음에 관계된 모든 문제에 대해서 오늘날 교회를 위한 성령의 유일하게 확실하고 무오하게 의지할 수 있는 목소리이다.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에 귀를 기울임으로서 성령에 대해서 배울 수 있고,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알 수가 있다( 고전 2:10-14).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으로 무장할 때에만, 우리들의 삶에서 성령의 사역이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다( 엡 6:17). 살아있고 움직이시는 찔러 쪼개시는 성령의 검이 우리 존재의 중심과 우리의 깊은 관심 사항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말할 때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히 4:12).


        그러나 성령의 기독교 경험은 어떤가? 그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값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험이나 그리고 여러분의 경험 그리고 다른 기독교인의 경험은 우리의 삶에서 성령 사역의 전망을 이해하고 결정하는 것에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없다. 우리 경험은 중요하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이 그것을 확증할 때에만 정당한 것이다.



1. 성령의 은사

           성령의 사역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간략하게 조사하는 일에 한가지 이상의 방법이 있음에 틀림이 없다. 첫 번째로 오늘날 오순절과 카리스마틱 진영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우리는 그 방법을 채택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접근법은 사도 행전에 집중되어 있다. 특별히 성령의 세례에 대한 기사들 그리고 방언, 예언, 기적 행함을 말하는 예들이다. 그리고 나서 이런 기사들은 오늘 기독교인들이 반복해서 경험되어야 하는 모델로서 제시된 것으로 읽혀지고 있다.

  
        이런 접근법은 사도행전의 주요 목적을 놓친 것이다. 이 목적이 1:8절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 [행 1:8]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8절에서 말하는 “ 너희가”는 사도들을 언급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있는 증인으로 구별된 사람들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부활 증거하기 위해서 세워진 사도들이다(20-26절).  따라서, 8절의 약속은 그들과 함께 일을 하는 교회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포함한 사도적 활동의 계획을 표현한 것이다.  그 나머지 사도 행전은 이 사도적 계획이 계속해서 실현되는 것과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다른 말로 하면, 사도 행전 전체의 목적은 사도들의 임무가 완성되어가고 있음을 증거로 제시하는 것이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파했다.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로마까지) 확장되었다. 사도 행전은 영역이 확장되는 것을 설명한다; 유대인으로부터 반 유대인( 사마리아) 그리고 비 유대인( 지구 전체에 퍼져있는 이방인)까지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으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활동은 하나님의 구원 목적이 보편적임을 알려준다. 그리스도안에 성취된 약속된 구원의 선포가 한 나라인 이스라엘에서부터 전 세계로 퍼져갔다.


사도들의 활동에 대한 이런 양상은 엡 2:19-22절에서 회화적으로 표현되었다. 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건축중에 있는 건물로서 말한다. 복음으로 일어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연합과 구원의 보편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는 엡 11-18절의 문맥에서, 모퉁이 돌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도와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기간동안에 하나님이 세우시고 있는 하나의 교회를 위한 기초를 이룬다.


        다른 말로 하면, 이 교회가 바로 역사적인 모델이다. 교회를 위한 사도와 선지자로 인한 기초를 놓는 것이 완성이 되었다. 지금까지 계속되어지는 활동이 아니다. 주기적으로 다시 놓아야 하는 기초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해서, 기초돌 즉 모퉁이돌은 완성이 되었다( 고전 3:11절을 보라). 반복될 수 없다. 계속 진행되어야 하는 일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사도들의 근본적인 역할이다. 단번에 완성된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과 그것의 의미에 대한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그리고 완성된 증언이다. 오늘날 교회는 후기 사도 시대에 있다. 바울이 말한 모델로 말하면, 그 위에 상부 구조물이 세워지고 있다.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활동이다. 완성이 되었고, 기초가 잘 놓여지고,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그리고 사도적인 기초위에 확고하게 건물을 세우는 일들이 계속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그때에 사도 행전은 오늘날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서 초대 교회의 역사에서 나타난 기사들을 막연하게 선택하여 제시할 수 있는 제한없는 연대기가 아니다. 사도 행전 28장을 보면 이야기가 완성된 채로 끝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서 한 장을 더하여 29장으로 만들 수 있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그가 글로서 보여주고자 했던 범 세계적인 사도들의 임무 완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누가가 의도한 곳에서 끝이 나야 한다. “ 이방인인의 사도로서 (롬 11:13) 그의 사역을 통하여, 복음이 ” 모든 세계에, “ ” 모든 피조물에“ (골 1:5-6, 23) 퍼져나가야 하는 것임을 바울은 알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2. 오순절의 중요한 의미

        그렇다면 오순절은 어떤가? 사도들의 경험과 그리고 행 2장에서 나타난 사도들과 함께 있었던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까지 그 후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삶에서 추구되어야 하고 되풀이 되어야 하는 모델이나 패턴을 제공되지 않는다면, 그때에 일어난 사건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도 행전 초기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오순절은 누가가 설명한 전체 역사의 절정에 있음에 틀림이 없다. 왜 그런가? 성령의 세례는( 행 1:5)- 또한 성령의 부어지심( 행 2:33) 또는 성령의 보내심( 눅 24:49)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단번에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을 완성하기 때문에 오순절은 이런 절정적으로 탁월성을 가진다. 오순절의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의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리고 우리 자신을 위한 모델로서 인정한다면, 그 경험이 얼마나 놀랍고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오순절의 요점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오순절은 그들이 겪었던 경험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때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상에서 한 그리스도의 사역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의 중요성은 누가복음과 사도 행전에서 나타난 관점을 가지고 접근할 때에 볼 수 있다. 행 1:5절에서, 예수님은 곧 오순절에 성취될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약속 즉 사도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그의 약속과 물세례로 두드러진 세례요한의 사역과 연결함으로서 앞으로 이루어질 일과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비교한다.


        누가복음 3장의 서론은 세례요한 사역의 중심에 있는 것과 그것을 전체적으로 정의함으로서 그의 사역을 요약한다. 15-17절은 그가 메시야인가에 대한 무리의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서 그가 예로 든 비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 비교에서, 세례는 요한의 세례와 오시는 메시야의 사역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을 보여주는 공동 분모이다. 그러나 왜 세례는 대조의 기초로서 역할을 하는가? 세례를 주는 행위는 각 사역의 기본적인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세례요한은 “ 자신이 메시야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 자신은 앞서 가는 사람이며, 다가올 메시야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나의 세례는 물을 가지고 준다. 이것은 표적, 가리키는 화살표이다. 이와 대조해서, 메시야의 세례, 즉 그의 사역의 지표는 성령과 불로서 주시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로서 세례를 주는 나의 사역이 지시하는 것이 실체가 바로 그 성령 세례이다.”


이 구절에서, 요한은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개관한다. 그리고 어떤 다른 것보다 핵심적인 것으로서, 중심에 성령 세례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가 구원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의 죄를 위한 속죄로서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룬 그의 지상 사역은 그들을 안전하게 보존하려는 한가지 주요 노력으로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리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었다. 오순절 날에 그의 백성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바로 이것이다. 오순절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보조적이거나 또는 이차적인 것은 없다. 이것은 단순한 두 번째 축복이 아니다. 그때에 일어난 성령 세례는 첫 번째, 그리고 주요한 축복이다. 그리스도가 성취하려고 오신 구원에 없어서는 안되는 축복이다. 이런 세례없이 그리고 이런 은사없이, 우리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은 완료될 수가 없다.


        예수님에 관한 세례요한의 계시에 대한 이런 회상은 오순절에 행해진 베드로의 설교에서 강화된다. 설교가 결론에 이르면서, 그는 절정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확증을 한다, “ [행 2:32-33]   (32)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네 개의 사건이 여기에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의 부활(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른 그의 메시야적 사역의 구원의 효력을 계시하는 것, 22-31), 그의 승천, 아버지로부터 성령의 받는 것,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이다.


        확실히 이런 사건들은 분리될 수 없다; 이미 발생했거나 또는 발생할 것이 기대되는 다른 사건과 연결되어서만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 부활, 승천, 승천때에 성령의 받음, 그리고 오순절은 하나의 다양한 사건을 이룬다. 오순절은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승천이 이런 반복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각 기독교 개인의 경험에서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널리 퍼진 오해에도 불구하고, 오순절은 성령의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나 또는 다른 경험을 초래하지 않았다. 구약의 신자와 신약의 기독교인 사이에 성령 경험에서 나타는 차이점은 실제적이며 중요하다. 그러나 다른 것이 아니다. 후자가 전자보다 풍성하거나 또는 더 많거나 또는 더 충만하다. 오순절에 성령의 부어주심의 새로움은 주로 두가지 관련된 고려사항에 담겨있다. 첫째로, 최종적으로 그리스도가 추구하신 구원사역이 완료가 되었기 때문에 성령이 임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오순절에 오신 성령은 지금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의 영이다( 성령이 아직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스도가 아직 영화롭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 7:39); 그는 종말론적인 성령이다. 두 번째로, 오순절에 오신 성령은 모든 육체에 부어질 영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지금 성령의 교제를 갖고 있다. 여기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포함된다. 모든 나라에서, 모든 종족과 모든 언어에서 온 사람들이다. 성령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보편적인 분이시다.


        오순절이 의미하는 것이 있다면, 성령은 영원토록 교회와 함께 여기에 머무를 것이다. 오순절 때문에, 신자는 성령이 그들을 버리지 않을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리스도가 여기에 신자들과 함께 있을 것이며 그들을 버리지 않을 것을 오순절이 의미하느 바라고 말할 수 있다. 요 14장에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 그가 아버지에게 간다. 그리고 보혜사로서 성령을 그들에게 보내달라고 아버지에게 요청하실 것이라고 그들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그는 즉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는다. 내가 다시 너에게 올 것이다( 18절과 23절을 보라). 이 성명은 임시적으로 부활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나 또는 끝날에 올 것이라는 말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령의 보냄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령이 오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다. 성령의 임재가 그리스도의 임재이기에 그들의 사역에서 이 두가지를 분리할 수 없다. 바울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지막 아담으로서, 부활로서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가 생명을 주는 성령이 된다( 고전 15:45). 그러므로, 그는 본질적으로 “ 주는 영이다”라고 했다( 고후 3:17).


        성령의 은사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을 요약하면, 오순절에 복음을 전파했던 베드로는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받을 것ㅇ라고 선포했다( 행 2:38). 적어도 첫 번째로, 베드로는 그들이 방금 목격했던 방언으로 말하는 은사, 또는 이런 문제들을 위해서 성령이 주시는 특별한 은사를 약속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것보다 훨씬 큰 것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아버지의 약속으로서 성령 그 자체를 받는 것을 생각했다( 행 1:4, 눅 24:49). 은사는 수여자 그 자신이다. 사실, 모든 신자들이 나누는 가장 큰 은사는 하나님 그 자신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하나님을 통한 하나님 아버지이다. 우리는 참된 영성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이런 완전하고, 삼위일체적인 관점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P.S. 이 글의 원문은 다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류를 지적해주시면 기꺼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https://www.opc.org/nh.html?issue_id=188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39  복음주의자들은 왜 일치를 할 수 없는가?    편 집 자 2018/10/19 4 10
38  과학이 종교에 대해서 말해도 되는가?    편 집 자 2018/10/15 8 14
37  부활에 대한 우리들의 반응은?    편 집 자 2018/10/12 0 31
36  모든 인류의 조상은 아담인가?    편 집 자 2018/09/14 16 54
35  성도와 정치와의 관계는?    편 집 자 2018/09/10 15 56
34  오늘날에도 카리스마틱 은사가 있는가?    편 집 자 2018/09/05 14 62
 오순절과 참된 영성    편 집 자 2018/08/30 22 65
32  성령을 받고 그리고 나서, 성령 세례를 받는가?    편 집 자 2018/08/25 49 81
31  우리의 신앙 변증을 위한 방법    편 집 자 2018/08/13 52 94
30  예수님을 전할 때에 우리들의 자세는 무엇인가?    임 바울 2018/08/10 54 106
29  기독교와 종교의 차이점; "오직"    편 집 자 2018/07/21 50 129
28  예수님은 동성애 결혼을 축하하는 케익을 만들 것인가?    편 집 자 2018/07/09 57 165
27  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임 바울 2018/06/23 63 166
26  은사주의자들은 마 12:22-31절을 사용할 수 있는가?    편 집 자 2017/12/15 113 540
25  베드로만 천국 열쇠를 갖고 있는가?    편 집 자 2017/11/06 118 606
24  마 16:13-19절은 베드로의 교황권을 지지하는가?    편 집 자 2017/10/30 124 554
23  고전 11:1-15: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하는가?    편 집 자 2017/10/24 152 652
22  롬 5:12-14절을 통해서 본 " 어려서 죽은 아이들의 구원관"은 무엇인가?    편 집 자 2017/09/28 149 611
21  일부 다처제는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편 집 자 2016/10/20 254 1772
20  우리는 유아에게 세례를 주어야 한다.    편 집 자 2016/02/15 356 2177

    목록보기   다음페이지 1 [2]
       

 
www.hendersonny.org // email: info@hendersonny.org

Copyright © 2018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
NY : 40-36/38 78th Street, Elmhurst, NY 11373
General and Admission Office of NY & NJ 718.810.3248 or 646.338.7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