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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받고 그리고 나서, 성령 세례를 받는가?
편 집 자  2018-08-25 15:42:48, 조회 : 131, 추천 : 55

                             성령을 받고, 성령세례를 받고, 그리고 은사를 받는가?
                                         ( 오순절의 주장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by Georgr W. Knight 3세


                   개혁주의 신학과, 오순절 그리고 카리스마틱 운동이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은 사도 행전이 특별한 은사를 위한 우리들의 안내서이고 , 사도행전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성령의 세례가 성령이 거듭나게 한 이 후에 일어나게 하는 특별한 행위로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오순절 계통의 운동자들의 믿음이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성령과 성령세례를 동일한 것으로 보고나, 또는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본다. 이때에 성령께서는 성령의 뜻대로 교회에 유익을 주기 위해서, 성령을 받은 성도들에게 적어도 한가지 이상의 은사( gift)를 부여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인용한다; 오순절( 행 2:1-41), 그리고 사마리아에 일어난 사건들( 행 8:14-25), 고넬료( 행 10:1- 11:18), 그리고 에베소에 있는 요한의 제자들( 행 19:1-7). 이런 구절을 통해서 성령세례를 받기 전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사람들은 이미 제자로 간주된 사람이다( 즉 성령을 받은 사람이다). 오순절에 이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함으로서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패턴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모델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제자들의 경우에는 성령이 두 단계로 임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시 반복될 수 없는 특수한 세대에 일어난 특이한 사건이지, 오늘날에 성도들에게도 반복해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구절들은 오늘날 우리가 따라야 하는 일반적인 모델을 제공하고, 두단계 또는 세단계 또는 그 이상의 단계에서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오순절 계통의 주장은 비 성경적이다.



1. 오순절( 행 2 장)

        오순절 경험 그 자체는 그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서” 아버지의 약속을 그들을 받을 것이라는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면 권능을 받을 것이고, 긜고 그들은 세상 끝날까지 그의 증인이 될 것” 이라는 ( 행 1:4, 5,8) 약속의 성취이다. 이 능력은 온 집을 가득채운 “ 하늘부터 나오는 급하고 강한 바람과 같은 소리”와 “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 각자에게 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함으로서 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임하였다( 행 2:2-4). 이것은 성령으로 충만케 된 것이고, 아버지와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약속했던 것을 주신 승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올 수 있는 권능의 부여였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성령 세례를 체험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후에 살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약속이 주어지기 전에 그들은 이미 성령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내렸던 바람과 불과 같은 극적인 현상이 그 후로는 다시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후에 방언을 말하는 일도 오순절 만큼이나 중대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때에는 각 사람이 그 자신의 언어로 들을 수가 있었다( 행 2;6,11).

        11명과 함께 있었던 베드로는 듣고 있는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여기서 듣고 있는 사람들은 믿지를 않는 사람이라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베드로는 복음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행 2:38-39]   (38)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여기에서 사도들이 두 단계로( 죄의 용서와 성령의 은사) 받았던 것을 동시에, 그리고 온전한 것으로 한 번에 베드로는 청중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에 살고 있는 성도들을 위한 모델이다. 사도들의 특이한 경험이 오늘날 체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의 청중들은 기다리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기다리라는 말을 분명히 하셨다. 오히려 그들은 성령을 통해서 믿는 일과 성령의 은사를 함께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즉각적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가 되는 반응을 보였다( 행 2:41). 그들은 사도들이 받았던 극적인 표적들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외국어로 말했다는 것도 물론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대신에 성경은 다음 구절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고 있다. 믿는 신자들이 “ 사도들의 가르침과 , 떡을 떼고 기도를 하는 교제에 힘을 썼다‘(행 2:42)고 하였다. 오직 사도들에게만 많은 기적과 표적들이 나타났다”고 사도 행전은 말한다( 행 2:43).  



2. 사마리안 인( 행 8:14-25)


        두 번째 기사는 행 8:14-25절의 문맥에서 찾을 수 있다. “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하니”라는 말을 함으로서 기사를 시작한다. 이것에 대한 응답은 다음과 같은 말로서 주어지고 있다; “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말하는 것을 따르더라( 행 8:6).” 결과는 12절에 있다; “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을 드었다. 그러나 성령이 그들중에 어떤 사람에게도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라고 하였다. 그들이 이것을 들었을 때에, ” 그들은 베드로와 사도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냈다. 그들은 내려가서 그들을 위해서 성령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였다( 행 8:14-16). “ 그때에 그들에게 안수하매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행 8:17).


        사마리아인은 믿는 사람이 되었고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사도들의 손이 그들에게 안수하기까지 그들은 성령을 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 구절을 통해서 “이 순서가 고넬료의 경우와 유사한 것을 보면 주님께서 정하신 것임에 틀림이 없다”라고 추론할 수 있다.( 고넬로 가정은 믿는 가정이었고 그리고나서 성령을 받았다. 사마리안 인들도 믿는 사람이 되었고 그리고 나서 성령을 받았다) 고넬료와 그의 가정은 성령을 먼저 받았다 그리고나서 세례를 받았다. 고넬료의 사건에서, 이것은 베드로와 동행했던 할례받은 유대인 신자들을 확신시켰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 그들은 이방인들을 동료 신자로서 받았고 환영하였다. 이 사건에서, 사마리아 인과 유대인들을 하나로 묶었다.


        사마리아 인들은 성령을 받기 위해서 유대인 사도들의 안수에 의존하였음을 보여준다. 유대인( 사도들을 대표해서)들은 한 분 성령으로 인해서 믿는 형제, 사마리안들을 한 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안수를 통해서). 베드로와 요한은 “ 주님의 말씀”을 사마리아에 있는 믿는 자들에게 게속해서 말씀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중에 복음을 사마리아에 있는 많은 마을에 전했다( 행 8:25).      



3. 이방인 고넬료( 행 10:11-18).

사도 행전에서 세 번째 기사는 10장과 11장에서 나온다. 거기에서, 하나님에 의해서 설득을 당한 베르고가 가이사랴에 있는 이방인 고벨료와 그의 권속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하였다. 고넬료는 이탈리아 백부장으로 알려졌다. “ [행 10:1-2]   (1)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 고넬료와 그의 권속들에게 복음을 전한 후에,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맺었다; “ [행 10:44-46]   (44)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다시 한번, 사도행전에 2장에서 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죄의 용서, 그리고 성령의 임재에 대한 복음 메시지가 함께 묶여져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성령 세례가 이방인들에게 임함으로서 할례받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이방인들이 실제로 구원을 받았고 그리고 하나님 백성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알게 하였다. 성령의 이런 행위는 베드로와 동반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에게도 인정이 되었다;


[행 11:15-18]   (15)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7)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18)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이 사건에서 몇가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넬료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지만, “너와 너의 가족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복음의 메시지를 고넬료에 선포하도록 인도를 받았다”는 점이다( 행 11:14).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의 권속들이 받은 성령을 “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경험했던 것”과 똑같다고 하였다.


        베드로는 그들이 받은 은사를 예수님을 믿었을 때에 사도들이 받았던 것으로 말하고 있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승천 후에, 그에 대한 믿음이 있은 뒤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 은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 관점은 예수님이 요 7:39절에서 성령의 약속을 제시하셨던 것이다. “ [요 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그러므로 베드로가 오순절 무리들에게 선포하고 약속했던 대로 고네료와 고넬료 가정에서 성령 세례( the Baptism with the Holy Spirit)가 임했다. 단지 예외가 있다면, 성령 세례가 물세례보다 먼저 일어났다는 점이다. 베드로를 동행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던 사람들의 증언처럼, 그들이 물 세례를 받기 전에 성령이 그들이 임했다( 행 11:15-18). 첫 번째로 이방인 신자에게 구원이 베풀어졌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적으로서 방언 말함이 있었다.



4. 세례요한의 제자들( 행 119:1-7)

        네 번째 기사는 행 19:1-7절에 나온다. 바울은 에베소에 갔다. 바울은 “ 너희들이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몇 명의 제자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대답하기를, “ 성령이 있다는 것도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하였다. “ 그렇다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바울은 물었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응답하였다( 행 19:1-3). 그러자 바울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행 19:4-6]   (4)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세례요한처럼 그들은 확실히 신자였다. 그러나 그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았지만 , 성령이 있다는 것조차 들어본 적이 없은 제자들이었다. 바울로부터 좋은 소식을 들은 ,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러자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했다, “ [행 19:6]   (6)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이 사건도 매우 특이한 경험이다. 이 사람들은 세례요한에게서 온 어떤 사람이 제시한 메시지를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의 죄를 깨닫고, 그들은 회개를 하였고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않았다. 요한이 그들의 죄를 회개할 것을 요청하였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오실 분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였다는 바울의 말을 듣자, 그들은 예수님을 믿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도 받았다. 그들에게 세례를 준 다음에, 바울은 자신의 손을 그들에게 두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했다. 이 성령 세례는 “ 방언과 예언을 함으로서( 행 19:6)” 그들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에게도 중요한 것이었다.  



5. 4개의 기사를 통해서 배울 교훈


        이 네 개의 기사는 교회가 따라야 할 모델을 구성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관적이고 동일한 패턴을 갖고 있지 않다. 첫 번째 기사 (오순절 사건, 행 2장) 와 네 번째 기사( 요한의 제자들 행 19장)은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거기에도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사도 중에 어떤 사람은 세례요한의 제자였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키는 그의 메시지를 들었고, 참된 믿음으로 그에게 돌아섰다. 그리고 승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보낼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에베소에 있는 제자들은 사도와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회개에 대한 메시지를 듣고 응답을 하였다. 그들은 오실 분을 믿는 일에 대해서 조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전달하는 사람들도 이런 상황에 있지 않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사마리아 인이 아니며, 또한 우리는 사마리아 인이 혐오하는 사람도 아니다. 유대인 사도들의 안수를 통해서만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다. 사도들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또한 우리들에게 안수할 사람을 기다릴 이유도 없다. 우리는 고넬료와 그의 권속들처럼 이방인이다. 그리고 우리가 참된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유대인 신자들에게 확인시키기 위해서 방언을 말할 필요는 없다.


        이런 특별하고 과도기 상황 밖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오순절 사건 후에 베드로가 복음을 선포했던 사람과 동일한 위치에 있다; “ [행 2:38]   (38)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


        신자들의 영혼과 삶에 유익을 주고, 그들을 권면하려는 이 연구가 지금까지 보여주려고한 것이 무엇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좀 더 낫거나 또는 좀더 고상한 어떤 것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성령의 세례와 같은 것을 말한다. 사마리아인과 이방인, 그들이 유대인 신자들과 사도들과 하나라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교회에 가르쳐주고자 하는 신약에 나타난 몇가지 예를 보면, 신약은 반복해서 사람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에 그들이 그 안에서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그러므로, 모든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고 그리고 성령에 의해서 거주하고 있다는 활력을 가진다. 많은 다른 은사들과 하나님의 은혜처럼, 기독교인들은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고, 성령과 동행하고, 그리고 그들이 한번 믿고, 한번 회개하고, 그리고 성령에 의해서 한번 세례를 받은 것에 만족한 채로 머무지 말라고 사도 바울은 권면을 한다.



6. 오순절 계통의 사람들과 교류하기

        우리는 오순절 계통의 동료 기독교인들과 어떻게 교류를 해야 하는가? 기회가 적당할 때에, 우리는 적절한 방식으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초자연적 특별 은사들은 끝났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었던 임무를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카리스마틱 사고에 대한 긍정적인 증거로서 그들 자신의 삶을 말할 때에, 그들이 경험을 이해하는 다른 방식을 그들에게 지적해주어야 한다. 실제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그들이 이름만 기독교인인가 ? 그리고나서 에베소 제자들처럼,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성령세례를 받게 되는가? 또는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미 받은 성령으로 그들을 충만케 하심으로서, 생동감이 없는 신앙생활에서 돌아서게 한 실제로 믿는 신자인가?


        우리는 카리스마틱 형제들의 오류로서 기독교 형제들을 보호하기 위한 열정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 동시에 이런 오류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주 안에서 형제 자매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갖고 있는 오류에서 벗어날 길을 찾아야 한다.


        개혁주의 신학의 생동감은 성령 세례로 즉각적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이 중생하는 사역으로서 증가가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령이 계속되는 충만함의 확실한 증거가 된다. 이런 하나님의 일은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특별한 은사를 가지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위에 사도시대의 교회를 세웠다는 것을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터위에서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더 이상 주지 않고서도, 그리고 하나님이 지금도 주시는 통상적인( 특별 은사가 아니다) 영적 은사에 의해서, 계속해서 세워나갈 것을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이러한 이해를 가지고, 개혁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카리스마틱 운동과 또 다른 기독교 신앙의 정도에서 벗어난 다른 많은 운동들의 도전을 받아들일 수 있게 있게 해줄 것이다.



P.S. 이 글의 원문은 다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류를 지적해주시면 기꺼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https://www.opc.org/nh.html?issue_id=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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