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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동성애 결혼을 축하하는 케익을 만들 것인가?
편 집 자  2018-07-09 18:35:13, 조회 : 157, 추천 : 57

                   예수님은 케익을 만들까? ( Would Jesus Bakes the Cake?)

                                                                                                           by Steven Ingino


“ masterpiece Cakeshop 사건에서 정부가 제빵업자의 종교를 향해서 적의를 보였다면 동성애 결혼 축하 케익을 만들기를 거절한 것으로 제빵업자를 처벌할 수 없다고 최근 대법원은 결정을 내렸다. 기업을 소유하고 죄를 축하하지 않는 기독교의 권리를 철저하게 방어할 수 없다면, 제빵업자를 반대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찾는 것이 나을 것이다.


        LGBTQ 운동을 받아들이라는 대중의 욕구를 수용할 것인가 또는 반대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이런 종류의 사건은 기독교인들에게 긴장감을 주고 있다. 동성애 결혼식에 음식과 서비스의 제공을 거절하는 것은 차별의 책임을 일으킨다. 동일한 제빵업자들이 일반적으로 동성애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 그들의 양심과 반대되는 동성애 결혼을 인정하는 어떤 것들을 하는 것을 반대할 뿐이다. 동성애 결혼에 찬성표를 던졌던 Kennedy 법관이 동성애 결혼을 위한 결혼 케익을 만드는 것은 제빵업자 Jack Phillips가 진실하게 믿고 있는 것에 반대하는 축하에 참석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는 최근 판결문을 지지하는 이유이다.
  

        예술가들도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보내는 메시지를 반대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통상적으로 동성애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죄를 담고 있는 메시지 또는 그들의 종교적 확신을 범하는 메시지에 동의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이런 기업인들은 ( 제빵업자, 꽃가게, 사진가 등) 수 없이 많은 다른 기업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동성애자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기독교인의 태도를 부끄럽게 함으로서 기업의 문을 닫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사례를 만들어서 법정에 갈 수 있는 사건으로 유발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법정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편에 설 것이라는 아주 잘 알고 있다.


A. 입장 전환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보자. 기독교인이 동성애 제빵업자에게 가서 “ 우리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케익을 요청했다고 해보자. 고소를 당할 위협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에게 있다. 관용과 표현의 자유는 LGBT에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종교적인 확신보다는 LGBT "진보주의“를 소중히 여기는 잘못된 사법체계가 진행중이다. 서구 문명의 기초가 되어온 근본적인 진리 또는 대부분의 기록된 인류 역사보다 LGBT에 힘을 실어주는 잘못되어 가고 있는 사법체계인 것처럼 보인다.


        뉴 멕시코 소송에서, 사진가 Elaine Huguenin은 동성애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녀의 성경적인 신앙을 범하는 것에 그녀의 예술적인 재능이 사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동성애 여자는 그들의 결혼식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만방에 알리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들은 관용을 말하면서 이런 일에 대해서 그들 자신은 전혀 관용을 보이지 않고 있다. 뉴 멕시코 인간 권리 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하였다. 위원회는 “ 성적 성향에 대한 차별”에 대하여 Elaine이 죄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거의 $7,000의 돈을 여자 동성애자들에게 지불하라고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기업에 명령을 내렸다.  


        “ 뉴 멕시코 주정부 대법원의 판사중에 한 사람은 ‘ 엘렌은 그들의 삶에 귀한 동기를 부여했던 종교적인 신념을 타협하도록 법에 의해서 지금 강요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판사는 이런 강제는 시민권자가 지불해야 하는 값이다라고 선포했다” 그러나 입장이 바뀌었을 때에, 뉴 멕시코 인간 권리 위원히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Antonio Darden이라고 불리우는 동성애 미용사는 주지사 Susan Martinez의 머리를 자르는 것을 거절했다. 그녀는 동성애 결혼을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사건은 서비스를 거절한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자는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입장이 바뀌었을 때에, 기독교인들은 벌금을 물어야 했다. 방송매체는 미용사를 영웅으로 치장하였다. 그러나 입장이 바뀌었을 때에, 기독교인들은 동등한 대우를 반대하는 편협한 사람, 옹졸한 사람, 증오에 찬 사람, 차별주의자, 2급 시민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방송매체는 미용사 Darden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하지를 않았다. 낙태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서비스 제공을 반대한 동성애 커피 가게에도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잔인하고 의도적인 이중 잣대 그리고 위선으로 가득찬 글들이 여기 저기에서 발견된다.


        제임스 해밀톤이 아가서에 대한 그의 주석을 다음과 같이 달았다;


        “ 우리 시대는 중대한 성적 혼란, 왜곡, 변태가 성행하고 있다. 포르노는 널리 퍼져있다. 간음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유명하다. 이혼의 병폐는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동성애 결혼에 대한 의제는 합법화되었다. 입법부의 승인을 통해서 부도덕한 것들이 도덕적인 것이 되도록 사탄은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런 전복된 도덕 사회에서, 창조주가 의도한 대로 성경과 같은 도덕을 옹호하는 사람은 편협한 사람 또는 더 나쁜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성적 혼란에 빠진 문화가 우리의 성경적인 기준을 내려놓으라고 요청을 할 때에 놀라지 말라. 이런 일이 여러분들에게 일어난다 할지라도, 절대로 타협을 하지 말라.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한번 해보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일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 예수님이 제빵업자라면, 동성애를 축하하기 위한 케익을 만들라고 요청을 받는다면, 그가 케익을 만들었을까? 여러 연애인과, 저널리스트와 정치 전문가들은 예수님께서 케익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

        1. 예수님은 성경의 진실성을 증명했다. 성경은 이성의 결혼 밖에 있는 어떤 성적 관계를 한결같이 사형선고를 내리고 있다.

        동성애는 간음, 간통, 매춘 그리고 근친상간과 같은 성적 죄이다. 이 모든 것들은 예수님에 의해서 저주를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케익을 만들고 그 위에 “ 즐거운 간음의 날”이라고 쓸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그리고 동일한 방식으로 그는 동성애( 뿌리) 그리고 동성애 결혼( 열매)의 죄를 승인하는 케익을 결코 만들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이 케익을 만들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님과 성경을 모르는 것이다.


예를 들면 , 예수님은 막 7:21-2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막 7:21-22]   (21)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 음란 ( SEXUAL IMMORALITY)로 번역이 된 단어는 매우 광범위한 단어이다. 헬라어 사전을 찾아보면, 포르네이아( 음란)은 어떤 성적인 죄도 의미하는 것으로 말한다. 매춘, 간음, 근친상간, 동성애 행위 또는 다른 성적인 죄들을 말할 수 있다.


        물론 예수님은 모든 가능한 성적인 죄를 언급할 필요는 없다. 결혼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성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포르네이아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그 사실은 틀림없이 헬라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23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동성애는 죄이며 악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구약의 도덕을 전제하였다. 그래서 히브리 성경이 동성애를 포함해서 근친 상간, 수간( 짐승과의 관계) 또는 다른 종류의 죄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반복해서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이 용어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모든 성적인 죄들을 통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동성애를 저주하지 않았고 또는 인정하지 않았다는 신화를 믿지 말라. 그것은 성경에 예수님의 입으로 직접 아내를 때리는 것은 죄라고 말하는 특별한 구절이 없기에 괜잖다는 신화를 믿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롭게 일반적인 원리를 제공한다. 특별한 사건을 언급하느 것보다 더 많은 개요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을 하였다. 예수님은 모든 남용을 싫어하신다. 그것이 육적인 것이 되었건, 그것인 말로 되었건 또는 감정적인 것이 되었건간에 싫어하신다. 결혼과 성은 남편과 아내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가르침에서 ( 마 19장), 예수님은 모든 남용 특히 동성애를 배제하였다. 사실, 성경에는 10개의 주요 구절들이 있다. 동일하게 동성애를 죄로서 저주를 한다. 예수님이 무엇을 요구하시는가라는 카이저 박사의 책에 이 구절에 대한 주석이 담겨져 있으니 참조하기를 바란다.


        기독교인은 간음과 매춘을 인정할 수 없는 것처럼 동성애와 동성애와 관련된 것들, 그리고 동성 결혼을 인정하거나 축하할 수 없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출산과 연관된 관계 밖의 어떤 성적 관계도 부도덕한 것이며 또한 우리들의 생물학적 구조와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말씀과도 배치된다. 예수님은 성경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였다. 모든 성경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다( 딤후 3장). 이런 이유로 , 그는 성경이 죄라고 불리우는 것과 같은 일들을 증진하는 어떤 일들을 할 수가 없다. 동성애를 축하하거나 인정하는 케익을 굽는 일들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고전 6장).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신정 정치를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시민법과 의식법들을 폐지하셨다. 그러나 신약에 있는 교회를 위하여 구약에서 언급한 도덕법을 폐지시키지 않았다.  


                ⓐ 신약에서, 예수님은 구약에서 말하는 결혼의 정의를 지지하였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 성생활과 결혼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지지함으로서 동성애를 묵인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바리새인이 예수님에게 이혼이라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질문을 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선하고, 원초적이고, 거룩한 계획이 기록되어 있는 창세기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였다. 이것이 왜 결정적인 말씀인지를 알아보자


이 말씀이 마 19장에 기록이 되어 있다;


        “ [마 19:4-6]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


      이런 가르침을 가지고, 예수님은 결혼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단언하였다. 예수님ㅇ는 하나님이 구약에서 영감을 주신 것을 되풀이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계획은 간단하다; 결혼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결혼 밖에서 행해지는 것들은 즉 혼전 성관계, 간음, 동성애, 강간 또는 어떤 남용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눈에 죄이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피해야 하지, 정상적인 것으로 격려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비록 그것이 법으로 제정된다고 할지라도 축하해서는 더욱 안된다.


        예수님은 수간, 근친상간, 소아애, 시체 성애, 미성년자와의 성관계, 또는 다른 많은 성적 탈선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 그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왜? 인간 성관계를 위한 하나님의 원초적 계획을 단언하였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는
이런 기준에서 벗어나는 어떤 성관계도 비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동성애를 실행가능한 대안으로 보지 않는다. 세상은 동성애를 정상적인 것으로, 자연적인 것으로 또는 건강한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참된 것이 아니다.  성경적 결혼에 대한 예수님의 확고한 입장 때문에, 결혼과 그것의 제정에 대한 자신의 계시를 허무는 케익을 결코 만들지 않을 것이다(골 1, 요 1)


                ⓑ 예수님은 죄인들을 회개하라고 요청하신다; 예수님은 그들이 짓는 죄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들의 죄를 부추키지 않았다. 그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죄를 지지하지 않았고 함께 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의 죄를 축하하지 않았다. 회개를 통해서 그들의 죄에서 돌아설 것을 요청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서 죄에서 돌아서고 그의 구원얻는 은혜와 변화시키는 능력의 결과로서 예수님을 따를 것을 촉구하였다.

        우물가에 있었던 여자이던지( 요 4장), 니고데모( 요 3장), 부자 청년( 막 10장), 삭개오(눅 19장), 또는 바울( 행 9장)이든지,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였다( 마 11:19, 눅 7:34). 그러나 죄의 친구는 아니다. 구원하기 위해서, 구속하기 위해서, 변화시키기 위해서 이런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 항상 그는 그들을로 하여금 죄된 생활에서 벗어나서 예수님을 따를 것을 요구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병든 영혼을 고치로 오신 위대한 의사였다( 막 2:15-17). 그들의 지금 하고 있는 삶에 머물라고 말하신 적이 없다. 그 죄가 탐욕, 우상 숭배, 성적 부도덕이든지 간에, 그는 항상 회개를 할 것을 요구하였고, 죄에서 멀어질 것을 촉구하였다. 사랑은 불의를 거절하기 때문에 바로 이것이 일종의 사랑이다( 고전 13장). 사랑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에서 멀어지게 한다(( 요 8장, 요일 3장, 계 1:5). 그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죄를 지으라고 용기를 주지 않는다.

        전형적으로, 예수님이 케익을 만들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 즉 예수님이 동성애의 죄를 받아주고  그리고 그의 복음서에서 설명한 결혼에 대한 계획을 왜곡을 승인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바로 이 사람들이 “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낸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또는 하나님은 우리들이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양자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이혼을 승낙하신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똑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신이지, 성경의 계시에 의해서 보여진 하나, 님은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그들 자신이 고안한 신, 거짓된 신, 우상, 그들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서 고안된 신,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도전도 하지 않는 신이다. 팀 켈러가 말한 것처럼, “ 당신이 믿는 신이 당신과 의견 충돌이 없다고 한다면, 그 신은 당신이 상상해서 만들은 신은 경배하고 있는 것이다.”

B. 광범위한 함축

        The Masterpiece Cakeshop의 사건은 동성애 대 기독교인의 사건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의미들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유대인 요리사가 손님 결혼식을 위해서 그들의 음식법과 반대되는 돼지고기를 요리하고 제공하도록 강요되어야 하는가?( 또는 안식일에 일을 하도록 강요될 수 있는가?) 동성애자들은 그들의 생활을 조롱하는 말이 새겨져 있는 옷을 입도록 강요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9-11의 미망인을 가진 제빵업자에게 “ 9-11은 성공이다. 알라는 위대하시다”라고 쓴 케익을 만들도록 정부에 의해서 강요되기를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모슬렘 고객이 “ 차별이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정부가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쇄소를 하고 있는 흑인 여자로 하여금 “ KKK 행진”에 참여하라는 초청장을 인쇄하도록 정부에 의해서 강요되지 않을 것이다. ( 그러나, 피부색에 기초한 시민 권리는 성적 선택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가들은 서비스를 거절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그들에게 요구된 것이 그들의 양심( 그리고 특별히 그들의 종교)를 범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때에 그들은 이런 고백들에게 서비스를 거절할 헌법상의 권리를 ( 그리고 하나님이 주어진 권리) 가진다.

C. 양편을 보호하자

        동성애자와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확신을 보호받아야 하고 정부는 그들이 갖고 있는 소중한 신념들을 대항해서 행동하도록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제시하고 싶다. 동성애 제빵업자는 그들의 생활 방식에 손상을 주는 어떤 것을 말하는 케익을 생산하도록 정부에 의해서 강요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신론 웹 작성자는 기독교를 변증하는 웹사이트를 작성하도록 정부에 의해서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유대인 영화 감독은 포르노 영화를 만들도록 정부에 의해서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기독교 꽃가게는 성경을 범하고 하나님, 성, 성별, 결혼, 가족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그림을 만들도록 정부에 의해서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관용은 우리가 의견의 불일치를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관용은 내가 원하는 것에 반드시 동의하고, 반드시 인정하고, 반드시 축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관용이 아니다. 이것은 강요 또는 세뇌이다. 관용에 대한 이런 부정확한 정의는 우리의 헌법이 부여한 첫 번째 권리를 위협하는 부정확한 법적인 간섭으로 나아간다. 정부가 잘못된 행동을 승인하거나 또는 축하하도록 믿음의 사람들을 강요하면, 기독교인은 시민 불복종을 행사해야 한다. 특별이 이런 정부의 독재가 반헌법적이거나 그리고 고객들이 기념이나 축하를 통해서 그들의 죄된 행위에 대해서 예술가들의 승인을 요구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 행동은 첫번째 헌법 수정조항이 보장하는 자유와 하나님으로 허락이 된 양보할 수 없는 권리라기 보다는 확실히 조오지 오웰이 쓴 1984년이라는 소설에서 나오는 경찰에 의해서 독재에 해당한다.

        이것은 우리들의 자유가 위험에 처한 것 이상이다. 우리 문화는 이미 하나님이 주시고 , 하나님이 설명한 결혼 개념을 잃어버렸다. 기독교인이 동성애 결혼을 축하하는 일에 참여한다면, 점차적으로 결혼에 대한 이해가 교회에서 이그러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혼이 비틀거리게 되면, 복음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동성애 결혼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와 결혼하지 않았고, 교회는 교회와 결혼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교회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이것을 가르치고 있다( 엡 5:22-23)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결혼에 대한 이런 싸움은 싸울 가치가 있다. 우리의 주요 목적은 아니다.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결혼은 어떤 사회, 어떤 나라든지  근간을 이룬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을 권장하고 복음의 사실을 유지하는 일에 있어서 교회는 물러서거나 포기해서는 안된다( 히 13:4).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은 결혼이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유일한 연합임을 믿는다. 따라서 어떤 다른 결혼 형태를 축하하거나 인정할 수 없다. 일부 다처론자가 케익을 요구할 때에, 기독교 제빵업자는 이것을 거부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동성애에 대한 차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이냐에 있는 것이다( 창 2장, 아가서, 마 19:1, 고전 7장, 엡 5장, 골 3:1, 벧전 3장, 히 13장). 예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풀어주기 위해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롬 6장)

        예수님은 자신이 죄라고 부르는 것을 축하하고, 교회와 자신과의 연합의 상징을 왜곡하는 즉 그가 계획한 성경적인 결혼을 왜곡하는 케익을 결단코 만들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예수님은 분명하게 케익을 만들지 않는다.


원본 https://thecripplegate.com/would-jesus-bake-the-cake/

<번역상의 오류를 지적해주시면 기꺼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역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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