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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THe Prophets Speak of Him : 메세지를 받아들이라 말라기
임 바울  2015-08-14 18:35:27, 조회 : 1,305, 추천 : 318

                                                        제 13 강
                                        메시지를 받아들이라 :말라기


        메시지를 어떤 사람에게 전달하려고 시도했지만 그들이 가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아마도 어떤 사람의 행동을 고쳐주려고 하였지만, 우리의 의도가 그에게 전달되지 않았던 적이 있는가?  우리는 종종 미묘한 수단으로 다른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나의 아내는 종종 나에게 이런 묘한 방법을 쓴다.  내가 남편의 의무를 무시할 때에, 보통 그녀는 나로 하여금 상기시켜주는 어떤 수단들을 사용함으로서 나로 하여금 그 일을 하도록 만든다. 한 예를 들어보자. 전 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부부는 현재 국제 입양을 위한 절차에 놓여 있다. 그녀는 여러 달에 걸쳐서 앞으로 올 아이를 위하여 집을 단장하고 있다. 모든 장식을 그녀가 책임지고 있지만, 지하실에 보관된 유아용 침대를 조립할 의무가 나에게 주어졌다. 나는 몇 주일 동안 조립을 기다리고 있는 유아용 침대가 지하실에서 유아실로 옮겨진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이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묘한 메시지이다. 물론, 나의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나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을 교정시키려고 할 때에 교묘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때때로, 이런 대화의 교묘한 방법은 성공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더 직접적인 접근을 요구될 때가 있다. 직접적이고 반복되는 권면에 의해서 강타당할 때까지 사람들은 종종 듣지를 않는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때에 이런 방법을 쓰는 것은 드물다. 말라기 예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말라기는 너무 늦기 전에 그들의 죄를 회개하기를 직접적으로 제의한다. 그들로 하여금 자기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받고 그것을 지금 당장 취하기를 말라기는 원한다!


1. 말라기 세계로 들어가기


         말라기는 기원전 5세기 초에 예언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은 빠르게 옛날이 되었다. 성전은 세워졌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평상시로 돌아갔다. 우리가 전에 배웠던 것처럼, 다른 동시대의 선지자인 스가랴와 학개는 백성들에게 영광스러운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말라기 시대에 와서도 영광스러운 미래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함을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기 시작하였다. 믿음의 상실은 그들의 행동 속에서 나타났다. 말라기 시대에, 불의는 제사장과 백성들 사이에 성행하였다. 바로 이것이 말라기 선지자가 보내진 배경이었다.


2. 선지자의 메시지


        말라기라는 이름은 “나의 사자”를 의미한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고 그의 명령에 따라 살도록 촉구하였다. 말라기의 임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충성하고 있는 영역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말라기는 네 가지 중요한 불성실함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예배에 불성실함, 불성실한 제사장, 결혼 생활에서의 불성실, 끝으로 하나님의 일에 제시되는 헌금에 불성실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첫 번째로, 그들은 예배에 불성실하였다. 이 불성실은 그들이 하나님에게 가져온 제물의 질(質)에서 나타났다. 말라기 1:13절을 보라!

말 1:13

        
        하나님의 법은 최고의 것을 가져오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나쁜 것을 가지고 왔다. 상처가 있는 것, 저는 것, 병이 든 동물을 하나님에게 가지고 왔다.


        두 번째로, 그들은 불충성스런 제사장이었다. 개인적인 경건함의 부족과 잘못된 가르침을 통해서 그들의 불성실함을 보여주었다. 말 2:6-7절에서, 하나님은 제사장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설명한다;

말 2:6-7


        제사장은 평강과 정직하게 살아야 했으며, 참된 교훈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말라기 시대에 제사장은 이 모든 것에 실패를 하였다:

말 2:8


        제사장은 경건함과 가르침을 통해서 그들의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넘어지도록 하였다.


        세 번째로, 그들은 결혼생활에서 불성실하였다. 결혼에서의 불충성스런 표시로서 그들은 불신자와 결혼을 하였다.

말 2:11


        결혼에서 그들의 불성실이 보여지는 것은 널리 성행하는 이혼이었다.

말 2:15-16


        불성실이 예배와 제사장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장 긴밀한 인간관계인 결혼에서도 나타났다.


        네 번째로,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그들의 십일조와 헌물에서도 불성실함을 보였다.

말 3:8-9


        백성들은 그들의 헌물에 불성실하였다.


        확실히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는 교묘한 것이 아니었다. 직접적으로 말라기로 하여금 이 네 가지 영역에서 그들의 불성실에 대하여 백성들을 직면해서 권면하도록 보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백성들은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실패는 특별한 책망을 가지고 대했을 때에 그들이 보여준 응답이 증거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그들의 불성실한 예배로 그를 멸시하였다고 책망하였을 때에,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함으로서 응답을 하였다.

말 1:7


        하나님의 이름에 보여준 제사장들의 경멸을 책망하였을 때에,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다;

말 1:6


        하나님이 그들의 불성실한 헌물에 대해서 책망하였을 때에 그들은 다음과 같이 응답을 하였다;

말 3:8


        그들은 부인하였고 거의 모든 책망을 대항하였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부인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을 향한 사랑을 설명할 때에, 그들은 다음과 같이 응수하였다;

말 1:2


        하나님 백성들이 얼마나 뻔뻔한가?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완전히 어겼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였는가!” 그들은 자신의 삶에 나타난 불성실을 보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향한 사랑이 부족하다고 비난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말라기 시대에 백성들은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그를 섬기도록 하는 메시지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사자를 보내기로 약속하였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에게 눈을 돌리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메시지이다.


3. 예수님은 최종적인 사자(使者)이다.


        말라기서는 회개하도록 백성들에게 사자들을 보냈음을 보여준다. 첫 번째로, 말라기 그 자신이다. 우리가 본 것처럼, 그의 이름은 “나의 사자”를 의미한다. 그는 백성들에게 회개를 하라고 요청하기 위해서 왔다. 그러나 말라기 3;1절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에 의해서 보내질 또 다른 사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말 3:1


        이 약속은 말 4:5절에서도 다시한번 들려진다.

말 4:5


        신약은 이 약속된 사자가 세례요한이라고 확인시켜주었다.

눅 1:17


        말라기와 같이, 세례요한도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

마 3:1-2


        말라기와 세례요한은 모두 똑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회개하라!”


        그러나 말라기는 말 3:1절 다음으로 세 번째 사자에 대해서 말한다.

말 3:1


        이 세 번째 사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이 말라기 3:1절에서 말하는 언약의 사자라는 결론을 내릴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말라기는 주님이 그의 성전에 오신다고 선포한다. “주님”이라는 직분은 다가오는 사자가 인간 선지자일 가능성을 배제시킨다. 그는 주님이고 그는 그의 성전에 온다. 두 번째로, 이 구절에서 “주님( Lord)”으로 번역이 된 단어는 두 가지 다른 히브리어이다. 영어성경을 보면, 첫 번째 주님은 소문자로 되어 있고, 두 번째 주님은 대문자로 되어 있다. 첫 번째 주님이라는 히브리어는 “아돈(Adon)”으로 되어 있고, 두 번째 주님으로 번역이 된 히브리어는 “야훼(Yahweh)”이다. 왜 이 구절에서 두 가지 다른 히브리어가 사용되었을까?  아버지와 아들의 구속사역의 차이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아버지는 (야훼로서 이름되어 있고) 아들(아돈으로 이름되어 있는)을 그의 백성들에게 보내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최종적으로, 예수님은 다가오는 분에게 준 직분이 “언약의 사자”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언급이 되었다고 믿는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언약에서 중보자이기에, 그는 “언약의 사자”라는 표현으로 신분이 밝혀진 유일한 분이다. 예수님을 위한 이 직분은 너무 영광스러워서 좀 더 자세한 고찰이 필요하다.


        예수님에게 언약의 사자라는 직분을 줌으로서, 하나님은 예수님만이 그의 백성과의 영광스러운 언약을 다룰 수 있는 분임을 진술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신약과 구약의 백성을 다룸에 있어서 중심적인 인물이다. 월터 카이저는 언약의 사자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시킴으로서, 이 구절의 의미를 구속사적인 영역으로까지 확장해서 주석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된 언약은 언약의 연속성이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단 하나의 계획이다. 이것은 창 3:15절에서 하와에게 주어진 말씀으로 시작하고, 창 9:27절에서 셈에게 주어졌던 말씀에서 계속되며, 창 12:2-3절에서 아브라함에게 계속되었고, 삼하 7:12-19절에서 다윗에게 주어졌으며, 렘 31:31-34절에서 새롭게 되고 확장되었다. 이 언약의 사자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 이스라엘 보다 앞서 가도록 하나님이 보내셨던 똑같은 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그 자신의 이름을 주었다(출 23:31). 그의 신분에는 어떤 실수가 없다. 하나님의 이름을 그의 천사 또는 사자에게 주어졌을 때에 그를 신적인 인물로 불러야 한다. 다른 곳에서 이 사자는 ‘주님의 천사’라고 불리웠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성육신하기 전의 모습으로 이해되어져야만 한다. 메시야는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언약의 중보자이다(히 8:8-13, 12:24). 그는 전달자, 실행자, 통치자, 신적 계획의 총화이다.”


        언약의 사자라는 표현은 구속계획에서 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영광과 중심을 보여준다.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말라기는 예수님이 세 번째,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임을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그를 앞섰던 모든 사람도,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

마 4:17


        세 명의 사자들은 “회개하라”는 똑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우리를 위한 질문은 ‘우리가 이 메시지를 가졌는가’이다. 말라기 예언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우리들에게 생소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영속적인 성격을 가진 문제이다. 사실, 최종적인 사자가 왔을 때에, 말라기 예언에서 제기된 네 가지 영역에서 백성들에게 도전하였다.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였다(요 4:24). 바리새인들은 헛되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었다(마 15:9). 계속해서 그는 제사장들의 불성실을 지적하였다. 특히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에게 중점적으로 책망하였다(마 23:15-30). 그는 참된 결혼의 목적에 대해서 그들을 권면하고 이혼의 악한 행위들을 고발하였다(막 10:2-9). 그는 참된 헌물에 대해서도 책망을 하였다(눅 21:1-4).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은 것에 대해서 심한 책망을 주었다(마 21:12).


        불성실은 말라기 시대의 문제이고, 예수님 시대의 문제이고, 또한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이다. 성경은 이 똑같은 죄에 대해서 회개를 하라고 계속해서 요청을 한다. 이런 죄들이 우리 안에 있다. 잠깐만 생각해보라. 예배와 제사장들을 통해서 현대 교회는 고통을 겪고 있지 않은가? 불의한 결혼과 물질로 현대교회는 고통을 겪고 있지 않은가? 이런 것들은 우리들의 문제는 아닌가? 말라기에서 언급된 죄들은 우리 시대의 복음주의 교회를 위협하는 죄는 아닌가?


        예배의 영역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예배에서 하나님에게 최선을 것을 드리는가? 신약은 우리들이 찬양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이다. 우리는 최고의 헌물을 드리는가? 우리는 예배를 준비하고 오는가? 토요일 저녁에 일찍 자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가? 주중에 설교를 하는 목사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있는가?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 예배를 사용하시는 성령 하나님에게 기도를 하는가? 예배를 참석하는 일에 신실한가?


        불성실한 제사장의 문제는 어떤가? 현대 교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성경의 영감과 예수님의 신성, 동성연애자를 목사로 임명하는 교단들을 비난하는 것이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조금 더 실감있게 말해보자. 목회에서의 불성실은 자유주의 교회에서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좋은 제사장은 두 가지 특징을 가져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말한 것을 기억하라. 개인적인 경건함과 충실한 가르침이다. 신약은 이 두 가지 기준을 디모데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다.

딤전 4:12-13


        얼마나 많은 현대 교회의 목사들이 이런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것보다 신기한 신학사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물들어가고 있는가? 부족한 경건함 때문에 얼마나 많은 올무를 목사들이 놓고 있는가?  


        결혼의 영역을 생각해보자. 얼마나 많은 성도들의 자녀가 불신자들과 결혼을 하고 있는가? 결혼이 정식으로 행해지기 전에 얼마나 많은 젊은 청년들이 함께 사는 일을 먼저 하는가? 이혼에 대해서 말하면, 통계는 이 영역에서 세상 사람들보다 결코 낫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주 안에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당신의 자녀들을 가르치는가? 당신의 결혼 서약에 충성하는가?


        최종적으로, 물질관은 어떤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은 소유하고 있다고 우리들에게 가르친다(시 23;1).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의 피조물을 다스리거나 또는 청지기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아담이 에덴동산을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경작하고, 다스리고, 지킬 것을 명령하고 있다(창 2:15).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부의 참된 주인이기에 우리로 하여금 그가 준 원리에 의해서 갖고 있는 부를 사용하라고 말한다. 청지기는 성경적인 원리에 따라서 물질을 관리하는 것이다. 말라기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에 대해서 청지기적인 원리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십일조를 속여서 하나님의 것을 강탈하였다. 그들은 성경적인 청지기 사명을 버렸다. 특별히 하나님의 교회에 주는 헌물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 이런 실패 때문에 심판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물질적인 면에서 우리들은 어떤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바치라고 명령을 한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구약에서 보다 더 높은 비율의 헌금을 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정규적으로(고전 16:2), 자유롭게(고후 8:3), 그리고 자원해서(고후 9:7) 드릴 것을 요구한다. 이런 기준에 맞추어서 물질을 사용하고 있는가? 시간은 어떤가? 우리들의 불성실이 얼마나 교회를 약하게 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바울의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

고후 9:6


        이것은 현대 교회를 향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풍부하게 수확하고 있는가? 우리가 헌물에 충실하다면 하나님은 하늘의 창고를 열어서 부어주시겠다고 말씀한다.

말 3;10


        현재 교회들은 가뭄과 기근을 겪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세 명의 사자를 보냈다; 말라기, 세례 요한, 그리고 예수님이다. 이 세 명의 사자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라는 메시지이다. 우리들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그들의 메시지를 지금 듣고 있는가?


4. 예수님은 궁극적인 메시지이다.


        전에 말한 것처럼, 말라기, 세례 요한, 예수님을 하나로 묶는 것이 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자이며 모두 회개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을 다른 두 사람의 메시지와 다르게 하는 것은 그는 죄의 문제를 지적하러 왔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해결책도 제공하려고 왔다는 점이다. 예수님은 전령일 뿐만 아니라 또한 메시지 그 자체이다.


        말라기는 다가오는 메시야는 죄의 문제를 다룰 것을 약속했다. 예를 들면, 말 3:2절은 언약의 사자가 그의 백성들을 정결케 할 것이라고 말한다.

말 3;2


        ‘정결케 하고  씻는다’는 은유가 메시야의 사역을 기술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이 두 가지 행동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정제와 씻는 사역의 유사성은 무엇인가? 그들 모두는 존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정제하고 깨끗케 하는 것이다. 여기에 주어진 약속은 예수님이 불성실한 백성들을 정결케 하고 씻어주신다는 것이다.


        신약은 예수님이 우리를 정결케 하고 씻어주는 분임을 확인해준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정결케 하는 분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한다.

요일 1:7


        바울도 똑같은 말을 한다.

엡 5:25-27


        예수님은 우리들을 없애기 위해서 멸망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왔다. 그는 우리들의 찌꺼기를 없애주고 우리들의 오점을 씻어준다. 예수님은 사자일 뿐만 아니라 또한 참된 메시지 자체이다.


        말라기는 궁극적인 메시지가 예수님이고, 우리가 이런 궁극적인 메시지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우리들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말한다. 선지자는 제 4장에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말 4:6


        이것은 초림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스가랴 예언에서 보는 것처럼, 재림을 통해서 절정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말라기는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에 두 종류의 사람만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첫 번째로, 불에 의해서 형벌을 받는 교만한 사람과 행악자이다.

말 4;1


        두 번째로, 온전히 자유롭게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있다.

말 4:2


        말라기의 메시지는 예수님이 우리들을 정결케 하고, 씻어주고, 그리고 우리들의 죄에서 자유롭게 해준다고 말한다. 이 메시지를 거절하는 것은 구속의 모든 소망을 거절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궁극적인 메시지이고, 이것은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된다.


5. 메시지 받아들이기


        나는 우리들이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일에 얼마나 자주 실패하는 가를 말라기를 통해서 지적하였다. 이런 일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 그것을 전달할 때에 분명하지 않았을 때에 일어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말할 때에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불분명하게 말씀하지 않는다. 성경은 세상에 살아있는 메시지이다. 그 안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해준다. 그의 말씀 속에서, 다가오는 심판을 피할 유일한 길이 있다.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며 예수님을 믿을 기회를 얻게 된다. 이 메시지는 사도 요한만큼이나 분명하게 전달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 3:16


        우리들이 갖고 있는 문제는 이것이다; 이 메시지를 지금 받아들이고 있느냐이다. 바로 이것이 말라기가 우리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전달하는 메시지이다.



<<시험문제>>


1. 말라기 시대에 갖고 있던 헌물의 문제를 오늘날 현대 교회는 어떻게 겪고 있는가?


2. 말라기 2:6-7절의 기준에서 볼 때에 무엇이 오늘날의 목사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3. 말라기 시대에 결혼 제도의 신성함을 모독하였다. 현대교회는 지금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4. 말 3:8-9절을 보면 물질관에서 불성실함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고쳐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P.S. 이 책은 "The Prophets Speaks of Him: Encountering Jesus in the Minor Prophets by Anthony T. Selvaggio" 의 제 12 장을 번역한 것입니다. 혹시 저자의 의도와 다른 번역이 있다면 순전히 저의 잘못입니다. 많은 이용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으로 이 책의 모든 번역을 마쳤습니다. 그동안 거칠은 번역을 읽으면서 공부했던 모든 학생들의 인내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 강의안을 준비하면서 구약에서 보여지는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이렇게 풍성한 것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되었고, 또한 예수님을 믿는 일의 중대성과 두려움을 함께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admin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5-08-27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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