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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THe Prophets Speak of Him :회상하고 고대하기 스가랴
임 바울  2015-07-31 16:39:42, 조회 : 1,292, 추천 : 258

                                                     제 11 장
                                          회상하고 고대하기 스가랴


        원스턴 처칠이 전에 말하였다, “과거를 오랫동안 볼수록, 미래를 더 멀리 볼 수 있다.” 인류의 가장 뛰어난 특징 중에 하나는 역사를 보존하고 그것으로부터 배우는 능력이다.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고 배우는 것에 실패를 하게 되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과거에 붙잡혀 있으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스가랴 예언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룬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과거를 보고 이 고통스러운 역사로부터 배우라고 촉구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질 영광스러운 미래, 메시야의 사역으로 두드러지는 미래를 보라고 한다.


1. 스가랴 세계로 들어가기


        학개와 같이 스가랴도 바벨론 포로 이후의 선지자이다. 그는 B.C. 6세기 말에 예언하였다. 스가랴와 학개의 두 번째 유사성은 그들 모두 성전을 재건축하는 노력에 관심을 기울였다. 스가랴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아는 것은 많지 않지만, 그가 제사장 가족 출신이라는 증거들이 많이 있다. 그의 예언은 소 선지서중에서 가장 길다. 그러고 이해하기가 가장 어려운 책이다. 교부 Jerome은 스가랴를 히브리 성경 중에서 가장 모호한 책이라고 언급하였다. 스가랴 예언은 이상과 상징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이해하는 일이 어렵다. 이 상징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스가랴서는 계시록에서 나타나는 상징의 주요 원천임을 아는 것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계시록에 주었던 영향뿐만 아니라, 스가랴는 또한 수난기사에서 구약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된 책이기에 신약 신학에 특별한 의미를 준다. Walter Kaiser는 신약에서 스가랴서를 약 72번이나 인용 또는 암시를 하였다고 한다. 이중에서 1/3이 복음서에서 사용되었고, 나머지 2/3이 계시록에서 사용되었다.


        스가랴 예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8장까지는 과거의 문제, 현재의 문제 그리고 가까운 미래의 문제를 다룬다. 본질적으로, 스가랴 예언의 첫 번째 부분은 회복된 포로 이후의 공동체에 필요성과 소망에 관계되어 있다. 이런 이상의 목적은 주로 포로 이후의 공동체에게 하나님의 신실함을 확신시켜주는 것이다. William Van Gemeren는 다음과 같이 주석하였다; “요한계시록처럼, 이상들은 주님이 구원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서 거룩한 사람들로 하여금 위로를 받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마지막 6장은 (9-14장) 매우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이 마지막 장들은 미래를 바라본다. 그들은 종말론적이고 묵시적인 상징과 이상으로 가득 차 있으며, 예언적인 신탁 또는 설교로 표현되어져 있다. 스가랴 예언의 이 두 부분은 또한 중심인물도 다르다. 첫 번째 부분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로서 알려진 역사적인 인물에 대해서 언급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 주요 인물은 신분이 확인되지 않고 이름이 없는 목자이다.


        스가랴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은 새로운 날을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자유롭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미래는 불확실하였다. 포로로 잡혀가게 했던 그들 조상들의 죄를 다시 짓게 될 것인가 또는 그들의 미래는 하나님에게 충성하게 될 것인가? 그들은 성전을 재건축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적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백성들은 갈림길에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과거에서 도전을 받고 그들의 미래에 대해서 용기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하나님이 스가랴를 보낸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이다. 그는 이중의 의미를 가진 메시지를 가지고 유다에 왔다. 분별력을 가지고 과거를 보고 확신을 가지고 앞을 보라고 스가랴는 유다 백성들에게 말한다.


2. 선지자의 예언 :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바라보기


        스가랴는 과거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가지고 예언을 시작한다. 그의 이름의 의미는 “기억하라”이다. 바로 이것이 스가랴가 백성들이 하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그들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기억하라고 요청한다. 이것의 목적은 바베론 포로를 일으켰던 그들 조상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포로가 왜 일어났는가를 상기시켰다.

슥 1:2


        과거의 죄를 되풀이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슥 1:4


        그리고 나서 그들이 과거의 죄를 되풀이한다면 무엇이 일어나게 될 것인가를 그들에게 상기시켰다. 간단한 수사학적인 질문을 함으로서 이것을 하였다.

슥 1:5


        여기에서 스가랴의 요점을 알겠는가? 그들이 과거의 죄를 되풀이한다면 그들은 조상들처럼 종말이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의 침략과 포로로 잡아감으로서 고통을 당하였고 죽었다. 하나님에 대한 불충실함 때문에 한 세대가 사라졌다. 스가랴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으며, 직접적으로, 인격적으로,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그들을 권면한다. 스가랴 예언은 과거를 보라는 요청으로 시작을 하고, 되풀이하지 않음으로서 과거를 소망으로 바꾸라고 말한다. 그러나 스가랴의 예언은 재빠르게 포로 이후의 공동체가 가지는 고난과 도전을 다루는 장으로 옮겨간다.


        제 1장 7절에서 시작해서, 스가랴는 일련의 밤에 보여진 이상으로 통해서, 포로 이후의 공동체가 직면한 도전에 대해서 연설을 하고 있다. 이런 이상은 생생하고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상들은 여러 가지 색깔의 말, 불 성벽 그리고 날아가는 두루마리와 같은 형상도 포함한다. 이 8가지 이상의 의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주제를 아는 일에 도움이 된다. 이런 이상들의 공통점은 포로 이후의 공동체의 번영과 안전에 위협을 다루고 있다.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두 주요한 적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첫 번째로, 외적인 적이다. 주위에 있는 이방 나라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침략하고 파괴하려고 위협을 한다. 이 위협은 특별히 1;18-21절과 2;1-13절의 이상에서 보여진다. 다른 주요 위협은 공동체 안에서 나오고 있다. 공동체는 또한 그들의 내적인 죄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 때문에 파괴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위협은 여섯 번째 이상(5:1-4)과 7번째 이상(5:5-11)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런 이상들은 포로 이후의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서 많은 위로를 주기도 한다. 이 두 가지 위협들은 성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스가랴는 하나님이 모든 백성들을 다스린다고 백성들에게 말한다. 첫 번째 이상(1:7-17)과 8번째 이상(6:1-8)의 주요 목표는 그의 백성을 핍박하는 나라들을 대항해서 하나님의 복수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두 번째로, 그들 자신의 죄들은 두 개의 중간 이상에서 다루고 있다. 4번째 이상은(3;1-10),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자신의 죄성을 보여주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사단은 여호수아 앞에 있으며 죄에 대해서 그를 고소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대제사장의 죄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전체 나라의 죄를 보여준다. 대제사장은 나라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상에서 하나님은 대제사장의 더러운 옷을 의의 깨끗한 옷으로 바꾸어준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에서 그들을 구속할 것을 약속한다. 게다가 5번째 이상은 (4;1-14) 결코 꺼지지 않는 무한한 연료를 공급하는 일곱 등불에 대해서 말을 한다. 하나님이 그의 성전의 임무를 보존할 것을 보여주는 약속이다. 구약에서 성전은 성도들이 그들의 죄를 위한 속죄를 위해서 가는 장소임을 기억하라. 보통, 제사장은 하루에 두 번씩 등불을 정리하고 간수를 한다. 그러나 이 이상은 등불이 계속해서 타오르도록 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약속을 한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배의 장소와 속죄의 장소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스가랴의 밤 이상이 미래에 대해서 위대한 위로를 주는 반면에, 스가랴 예언의 마지막 부분(스 9-14장)을 보면 이 이상은 매우 창백하다. 이 마지막 부분에서, 스가랴는 구원자가 오고 있으며, 그는 목자이고 왕이고 제사장이라고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의 도전을 직면하라고 그들에게 용기를 준 뒤에, 스가랴는 그들의 눈을 영광스러운 미래로 돌리라고 촉구한다. 메시야의 사역으로 가득 찬 미래이다.


        그의 밤 이상과 예언적인 신탁으로, 스가랴는 궁극적으로 백성들의 눈을 그리고 우리들의 눈을 예수님에게 돌리게 한다. 궁극적으로 그들의 내외적 적으로부터 그들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은 예수님이다. 우리의 과거의 죄를 다루고 우리의 미래를 붙들어주는 것은 예수님이다. 스가랴는 예수님이 우리의 과거의 죄를 제거하고 그들의 죄의 값을 지불함으로서 우리들의 과거를 다루심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우리의 왕이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도 붙잡아주실 것이다.



3.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를 다루신다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스가랴는 조상들의 죄를 되풀이하지 말 것을 백성들에게 요청함으로서 그의 예언을 시작한다. 그들의 과거의 죄를 가지고 시작한다. 물론, 유대인들은, 사실, 그들 조상의 죄를 되풀이하였음을 우리는 안다. 그들은 불충성하였음을 다음 책인 말라기서를 통해서도 볼 수가 있다. 왜 그들은 과거를 통해서 배우지 않는 것일까? 그 대답은 그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똑같다. 왜냐하면 이것은 구약 백성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또한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인류의 문제이다. 이것은 우리의 문제이다. 그들의 삶에서, 그리고 우리들의 삶에서, 불충성이라는 계속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죄의 문제이다. 모든 인류는 이 세상에 과거를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의 첫 번째 조상인 아담과 하와로부터 유산을 받았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난다. 스가랴는 이 기본적인 인류의 문제는 다가오는 메시야를 통해서 다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알려준다. 선지자는 메시야가 우리의 과거를 다루어줄 것이라고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에덴동산까지 이루는 과거를 해결해줄 것이다. 메시야는 우리의 죄를 제거함으로서 그리고 그들의 죄값을 치루어줌으로서 과거를 다룰 것이다.


        이 영광스러운 메시야의 사역은 스가랴 제 3장에서 놀랄만한 장면으로 강하게 예언되어 있다. 전에 언급한 것처럼, 그 장면은 대제사장인 여호수아를 포함한다. 그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으며 사단의 고소로서 공격을 당하고 있다. 주님의 사자가 여호수아를 변호하고, 사단을 꾸짖는다. 주님의 사자는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깨끗한 옷으로 바꾸라고 명령을 한다. 옷을 바꾸는 것은 죄의 용서에 대한 은유라고 그는 설명한다.

슥 3:4


        지금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가를 알겠는가? 여호수아는 대 제사장이고, 백성들의 대표이다. 그러나 그는 더럽다. 그는 더러운 옷으로 덮혀 있다. 하나님은 이 더러운 옷이 대표하는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그러나 주님의 사자는 여호수아에게 깨끗한 옷을 주고 그렇게 함으로서 그의 죄를 제거할 것을 약속한다. 이것은 용서의 위대한 약속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제 3장이 시작되면서, 이상은 더 놀랄만한 것으로 바뀐다. 여호수아의 개인적인 죄를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대표하는 사람들의 죄까지도 다룰 것이기 때문이다. 슥 3:8-9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그의 백성들의 죄를 다룰 것이라고 약속한다.

슥 3:8-9


        얼마나 영광스러운 약속인가! “그의 종, 그의 싹”을 보냄으로서 우리의 죄를 하나님이 다룰 것이라고 한다. 그의 백성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으로서 이 구절에서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주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누가 있는가?


        스가랴 제 3 장은 두 개의 메시야 직분을 채용함으로서 예수님의 오심을 예견한다; “종, 싹” -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가 종이라는 직분을 가지게 될 것을 선포했다.

사 42:1-3


        신약은 분명하게 이 구절에서 사용된 단어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연결시킨다. 사실, 마태복음은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되었다고 선포한다( 마 12:17-18).

마 12:17-18


        예수님은 아버지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오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종이다. 그는 우리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 왔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가 “가지”라는 직분도 가지고 온다고 계시한다. 예를 들면, 이사야 11:1절에서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사 11:1


        이 직분을 다윗의 언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처럼, 이새는 다윗 왕의 아버지이다.

삼상 16:1


        삼하 23:5절에서 다윗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하 23:5


        “이룬다(bring to fruition)는 표현은 자라게 하거나, 싹을 나게 하거나 또는 가지를 나게 한다는 농업 용어이다. 다윗은 그의 왕조가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의 혈통에서 영원한 왕이 나오게 될 것이다. 신약은 예수님이 다윗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마 1;1


        그리고 다윗의 후손이라고 말한다.

계 22:16


        예수님은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가지이다. 그는 우리의 죄를 제거할 싹이다.


        종과 가지라는 직분이외에, 이 장에서 메시야를 언급하는 또 다른 직분이 있다. 9절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 앞에 돌을 놓겠다고 한다. 이 돌위에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을 새겼다.

슥 3:9


        이 점에 대해서 많은 이견이 있지만, 많은 주석가들은 여기에 언급된 돌은 메시야에 대한 언급이라고 말한다. 시편에서 그리고 베드로서에서 메시야가 돌로서 언급되어 있다는 점이 이것을 지지한다.

시 118:22
벧전 2:4-8


        이런 연결이 더욱 신빙성이 있는 것은 슥 3:9절에서 말하는 돌은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슥 3:9


        이것은 그리스도 구속사역의 요약이 아닌가? 하루에 그의 백성의 죄를 제거하는 사람이 그가 아닌가?


        슥 3장에서 가르쳐지는 놀랄만한 진리는 예수님이 우리들의 과거를 다룬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죄를 제거한다. 그는 우리의 대제사장이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는 달리, 그는 죄가 없으며 더럽지 않다. 게다가, 구약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단번에 다루었다. 단 하루 만에 다루었다.

히 10:12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제거함으로서 우리의 과거를 다루신다.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는 그리스도 사역의 중요한 부분은 그들을 위해서 죄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자신의 지상생활에서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이것을 실행했다. 고통이 메시야의 사역 중에 하나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스가랴는 소 선지서중에서 아주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다. 스가랴는 메사야가 거절되고, 찔리고, 상할 것을 말한다.


        첫 번째로, 스가랴 11장에서, 선지자는 하나님 백성의 목자의 역할을 고려하라고 하나님에 의해서 요청되었다. 스가랴는 이 임무를 성취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궁극적으로 백성에 의해서 버림을 받았다. 스가랴를 그들의 목자로서 거절함으로서 백성들은 결국 그를 보낸 하나님을 거절하였다. 모욕과 치욕을 더하기위해서, 백성들은 목자로서 그의 임무를 제거하기 위해서 은 30냥을 달아서 주었다. 이 교환이 있었음을 스가랴서는 말한다.

슥 11:12-13


        하나님이 이 돈을 “품삯”이라는 표현했을 때에, 이것은 조롱과 모욕이 표시이지, 승인의 표시가 아니다. 사람은 목자를 거절했고 그를 보낸 분을 거절했다. 신약은 스가랴가 예수님의 거절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라고 확인해준다. 복음서는 선한 목자가 은 30냥에 의해서 백성들에게 거절당했다고 확인시켜준다.

마 26:15
마 27:6-9


        스가랴는 메시야가 거절당함으로서 고통당할 것을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두 번째로, 스가랴는 메시야가 찔림으로서 고통당하게 될 것을 보여준다.

슥 12;10


        여기에서 선지자는 은혜를 선포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메시야가 왔다고 선포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스가랴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힘을 말하고 있다고 신약은 말한다.

요 19:34-37


        그의 죽음 후에, 스가랴가 예언한 것처럼, 백성들은 그를 위해서 애통해했다.

눅 23:48


        스가랴는 메시야가 찔리는 고통을 당했다고 말한다.


        세 번째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가랴는 메시야가 그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서 상함을 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슥 13:7


        하나님 아버지가 칼을 휘두르시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목자와 가까이 있고, 그의 동료이며, 그를 상하게 하시는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다. 구약 학자 C. F. Keil는 “나에게 가까운 자는 분명히 이 예언을 메시야와 연결을 한다”고 하였다.


        “ 나와 가장 가깝다는 것은 사역에서 유사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같은 후손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그의 이웃이라고 부른 그는 사람이 아니다. 신적 본질에 참여한 분이다. 본질적으로 신성을 갖고 있는 분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목자 즉 칼로 상함을 당하는 목자는 메시야 이외에는 어떤 사람도 될 수 없다.”


        메시야는 그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상함을 당한다고 스가랴는 선포한다. 다시한번, 신약은 스가랴의 이 예언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결을 한다. 마지막 식사 후에,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말한다.

마 26:31


        고통당하는 메시야에 대한 스가랴의 다음과 같은 질문을 야기시킨다; “왜 메시야는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잠깐 생각해보자. 왜 아버지는 목자를 상하게 하려는 것일까? 왜 그는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상하게 할까?  메시야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거절당했다. 찔렸다. 그리고 상함을 당하였다. 왜? 메시야의 고통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은 메시야가 우리의 죄를 짊어진 사람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사야는 그의 예언 속에 이것을 언급한다.

사 53:5


        예수님은 거절당하고, 찔리고 상함을 당하였다. 우리 죄의 형벌을 짊어지기 위해서이다.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아담과 하와로부터 유산을 받고 태어난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이다. 스가랴는 이 근본적인 인류의 문제가 다가오는 메시야에 의해서 다루어지게 될 것을 선포하였다. 좋은 소식은 메시야가 왔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왔고 그는 죄의 유산을 다루었다. 그는 우리의 죄를 제거하였고 그는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지불하였다. 이 사실은 새로운 관점에서 우리의 죄된 역사를 회고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죄 있는 과거를 바라볼 때에, 우리의 삶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케 하는 사역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죄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에 의해서 죄성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그들 과거의 죄에 대한 엄중함과 결과에 의해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과거의 죄에 대한 중압감은 종종 너무 무거워서 그 과거 때문에 깊은 실망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다. 그들 과거의 죄에 대한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과거의 죄수로서 삶을 마치는 경우가 많다. Martin Lloyd -Jones박사는 이것을 영적 우울증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이런 영적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다시는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 현재에 당신의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당신의 힘을 소비하지 말라. 과거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를 기뻐하라. 그의 놀랄만한 은혜의 비법에 의해서 당신의 삶과 존재에 놀라움을 발견하라. 시간이 지나면 마지막이 처음이 될 것이다. 당신을 지금처럼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리고 당신이 하나님의 왕국에 있음을 기뻐하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된 과거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왔다. 이런 상태에 붙잡아 두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죄로부터 일어서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과거로부터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그는 우리들의 죄를 멀리 던져버렸다.

시 103;12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볼 수가 있으며 또한 기뻐할 수 있다.


4. 예수님은 우리의 미래를 붙잡아주신다.


        스가랴 예언이 과거를 바라보며 시작하지만, 지배적으로 미래를 바라보게 한다. 미래를 바라보도록 강조하는 요점은 그들의 미래에 대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하나님이 미래를 통치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상기시키고 그는 자신이 한 약속을 성취할 것을 상기시켜준다. 스가랴 예언은 이 영광스러운 미래가 다가오는 왕에 의해서 인도되었고, 실행되었고 바뀌어졌음을 알려준다.

        
        전 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제거하고 형벌의 값을 받음으로서 과거를 다루시는 것을 보았다.  이 임무는 그의 제사장적 역할을 통해서 예수님에 의해서 수행되었다. 그러나 스가랴의 예언은 또한 다가오는 메시야가 제사장일 뿐만 아니라, 또한 왕임을 보여준다.

슥 6:12-13


        이 구절들은 메시야가 제사장적 왕임을 보여준다. 종종 구약에서 갈등을 일으켰던 이 두 직분사이에 조화를 이룰 것이다. 다가오는 통치자를 스가랴는 예언하였다. 그는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스가랴는 그의 예언 제 9장에서 이 질문을 다룬다. 그는 통치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슥 9:9-10


        그의 통치는 의와 평강에 의할 것이다. 그는 전쟁의 말을 타지 않는다. 그는 천한 나귀를 탈 것이다. 그는 잔인한 힘을 사용해서 정복자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십자가를 통해서 평화를 줄 것이다.

골 1:20


        그의 통치는 모든 것을 포함할 것이다.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를 것이다. 그것들은 바뀌게 될 것이다. 세상의 미래를 통제할 것이다. 그의 통치의 변화시키는 능력은 스가랴 예언에서 여러 가지 부분으로 나타났다. Willem VanGemeren는 매우 적절하게 주석하였다;


        “모든 땅이 섬기는 주님은 제사장적 왕이다(4:14). 그리고 그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 즉 유대인과 이방인을 통치한다(8:20-23)... 끝으로 메시야는 지구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울 것이다. 그는 성도들을 변호하고 불신자를 심판한다. 그 날에 그의 발은 감람산에 설 것이다.... 그리고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은 그의 성도들과 함께 올 것이다(14:4-5). 영광스러운 날에 주님과 인류의 창조주는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14:6-8).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에 그의 복을 내려줄 것이다. 그들은 이런 변화되고 거룩한 세상을 나누게 될 것이다(슥 14:20-21).”


        스가랴는 세상의 미래를 통치하고 바꿀 다가오는 왕을 예견하였다. 신약은 이 왕이 예수 그리스도로 왔다고 확인시킨다.

요 12:12-15


        예수님은 스가랴에 의해서 왕으로 설명된다. 예수님은 우리의 미래를 통치하고 바꿀 왕이시다.


        스가랴는 이 영광스러운 미래를 봄으로서 용기를 가지라고 그의 백성들을 격려한다. 메시야의 통치에 의해서 미래는 통치되고 바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통치가 이미 시작이 되었지만, 오늘날 성도들은 예수님에 의해서 바뀔 미래를 계속해서 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의 재림을 고대해야 한다. 우리는 고통과 죄의 종말을 고대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의 절정을 고대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을 것과 그리스도와 같아질 것을 고대해야 한다. 우리는 고대해야 할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며, 예수님이 우리들의 미래를 붙잡아주기 때문에 이것이 이루어질 것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미래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들의 미래를 붙잡아주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의 목회사역 중에서 성도들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다루는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때때로 이 두려움은 기독교인의 삶을 어그러지게 할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를 영적 우울증에 빠지게 한다. 우리의 과거의 죄 때문에 슬픔에 빠지는 것과 똑같다.  Martin Lloyd - Jones는 미래의 두려움을 영적 우울증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았다. 그리고 그는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의 삶에서 역사하는 예수님을 보아야 한다고 권면한다;


        “미래와 그것에 대한 생각이 당신을 붙잡기를 허락하는 대신에, 여러분들 자신에게 말을 하라. 당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고, 당신 안에는 어떤 영이 있는가를 스스로 상기하라. 그리고 성령이 어떤 일들을 하는가를 상기해보라. 그러면 당신은 미래를 향해서 꾸준하게 나아갈 것이고,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현재에 살면서 미래를 준비할 것이고, 오직 한 가지 욕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마틴 로이드 존슨이 미래에 관해서 우리들에게 확신을 제공하는 성령 사역의 중심을 얼마나 강조하는가를 주목해보라. 성령이 현재 거주하는 것은 미래를 직면하는 기독교인의 능력에 매우 중요하다. 결국 성령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는 보혜사로서 성도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요 14;16


        확신시키는 성령의 이 사역이 스가랴에서 보여지고 있다. 제 4 장에서, 이스라엘의 총독인 스룹바벨은 성전을 재건축하는 일에 매우 중요한 도전을 직면하고 있었었다. 하나님은 확신시키는 이런 말을 가지고 이 종을 위로하였다.

슥 4:6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그로 하여금 이겨나갈 수 있게 하기 때문에 그가 미래를 직면할 수 있다고 스룹바벨에게 말한다. 예수님은 신약에서 똑같은 약속을 그의 제자들에게 했다. 그는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였다.

요 14:18


        오히려 성령을 통해서 그들과 영원히 있겠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미래의 도전을 제자들이 직면하게 하기 위해서 그의 백성에게 위로자로서 성령을 보내주었다. 사실,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미래의 확실성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것은 현재 거주하는 성령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사도 바울이 성령을 우리의 기업을 보증하는 분으로서 말한 이유이다.

엡 1:14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령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 미래를 바라보는 일에 어떤 두려움도 가질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우리의 미래를 붙잡아주신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우리는 이길 것이다!


5. 회상하고 바라보기


        아마도 우리는 과거에 의해서 괴롭힘을 받거나 또는 우리의 미래를 두려워할 것이다. 이런 부담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과거를 이해하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미래를 아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그가 우리의 과거를 어떻게 다루었으며, 어떻게 우리의 죄를 제거하였고 이 죄에 대한 전체의 값을 어떻게 지불했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 예수님 안에서, 미래를 붙잡아주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전망 때문에 우리는 또한 기뻐한다.  그는 우리의 위대한 왕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넘치는 기쁨으로 과거를 보고 미래를 본다. 바로 이것이 스가랴 선지자가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이다.



<<시험문제>>

1. 우리는 과거 때문에 괴로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2. 내가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염려는 무엇인가?


3. 스가랴 예언의 마지막 장에서 메시야를 통해서 가지고 오는 영광스러운 회복은 무엇인가?


4. 스가랴 시대에 총독 스룹바벨은 자기 앞에 놓여있는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나갔는가?



P.S. 이 책은 "The Prophets Speaks of Him: Encountering Jesus in the Minor Prophets by Anthony T. Selvaggio" 의 제 10 장을 번역한 것입니다. 혹시 저자의 의도와 다른 번역이 있다면 순전히 저의 잘못입니다. 많은 이용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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