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

The Prophets speak of Him

Home About Us Academic Program Admissions News &
Event
Gallery Contact Us
LOGIN

 



16. THe Prophets Speak of Him : 두 날의 이야기 : 스바냐
임 바울  2015-07-17 20:40:20, 조회 : 1,393, 추천 : 281

                                                             제 11 강
                                                  두 날의 이야기 : 스바냐


        셀라노의 Thomas는 13세기의 프란시스코 계열의 수도사이다. 그는 프란시스 앗시시의 추종자이고 결국 그의 전기 작가가 되었다. 셀라노는 또한 유명한 라틴 찬송가 Dies Irae(The Day of Wrath, 진노의 날)로 유명하다. 이 찬송가에서, 셀라노는 심판의 날을 생생하게 설명한다. 스바냐의 예언은 셀라노 찬송가의 수사적 표현의 주요 자료였다. 어떤 다른 소 선지서보다도, 스바냐는 이 찬송가를 짓는 일에 많은 자료를 제공하였다. 스바냐는 심판의 날의 의미를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판 이외의 다른 예언들이 많이 있다. 스바냐는 둘째 날, 소망과 회복의 날에 대해서도 말을 한다. 심판의 날과 새로운 날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서 그들의 궁극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1. 스바냐의 세계로 들어가기


        다른 소선지서와 같이, 우리는 스바냐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가 7세기 후반, 요시야 왕의 통치 초기에 예언을 하였다는 것을 안다. 하박국에서 말한 것처럼, 요시야 왕은 유다에서 가장 위대한 개혁자가 되었다. 그때에는 여전히 유다가 영적 쇠퇴기에 있었을 때이다.


        유다의 낮은 영적 상태가 스바냐 예언의 첫 장에서 보여진다. 먼저 그는 제사장들이 우상을 섬기고 통치자들이 불의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습 1:4
습 1:8-9.


        다음에 스바냐는 전 국가의 영적 상태를 요약하였다. 습 1:12절에서 백성들은 자기만족에 빠졌고,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시는 것을 믿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스바냐는 백성들의 세계관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습 1;12


        국가의 지도자들은 부패에 빠졌고, 일반 백성들은 자기만족에 취해 있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스바냐 선지자를 보낸 이유이다.


        자세히 구절들을 연구하기 전에, 스바냐 선지자에 대한 학자들의 논의를 짧게 언급하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예언서를 읽으면서, 그의 예언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첫 째, 주제는 소 선지서의 공통주제인 심판이다. 둘째, 다른 선지자들과 유사한 단어를 사용해서 이 주제를 다룬다. 사실, 스바냐 선지서는 다른 것들과 너무 유사해서 독창력이 부족하다고 어떤 학자들은 비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바냐 예언에서 보이는 반복은 독창성의 부족이 아니라, 소 선지서라는 전집에 맡겨진 독특한 역할에 기여한다고 봐야 한다. 스바냐는 포로로 잡혀가기 전의 마지막 선지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의 예언은 바벨론의 침공과 이어지는 속박이 있기 전에 유다에게 주어진 마지막 경고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의 예언에서 보이는 반복은 소 선지서에서 스바냐로 하여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한다. 그의 사역은 앞서서 예언을 한 모든 선지자들의 주제를 요약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하는 최종적인 경고자이다.


2. 선지자의 메시지 : 대조되는 두 날


        스바냐 예언의 첫 부분은 주님의 날( 1:7, 1:14, 2:2, 2:3)에 대해서 네 번이나 언급하며 다가오는 심판에 대해서 무섭도록 자세히 말하고 있다. 스바냐는 이 무서운 날을 기념하는 두 가지 주요 특징을 기술한다.


        첫 째, 스바냐는 주님의 날에 그 범위는 우주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것에 적용이 될 것이다:

습 1:2


        이런 표현은 하나님이 전에 행했던 다른 심판을 연상케 한다. 창세기의 노아를 생각해보라;

창 6:7


        스바냐는 주님의 날이 노아의 날에 큰 호우와 같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이것은 범위에 있어서 우주적이다.

        
        두 번째로, 스바냐는 주님의 날이 그 정도에 있어서 포괄적일 것이라고 선포한다:

습 1:15-16


        여기서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 대한 미묘한 언급을 하고 있다. 주님의 날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서 “날”이라는 단어를 6번이나 사용하고 있다. 스바냐 선지자가 주님의 날의 포괄적인 파괴의 힘을 포괄적인 피조물 창조의 능력과 비교하고 있다고 어떤 주석가들은 말한다.


        주님의 날의 포괄성은 또한 습 3:8절에서도 나타난다:

습 3:8


        분명하게, 주님의 날은 정도에 있어서 모든 것을 포함한다.


        스바냐의 예언은 심판의 모습으로 가득차 있다. 그렇다고 해서 소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언의 말미에서, 스바냐는 다른 날이 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 날은 소망과 회복의 날이다. 모든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할 날이 있다고 그는 선포한다.

습 3;9-10


        스바냐는 또한 새로운 날에 하나님이 그의 백성의 성격을 겸손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한다;

습 3:11-12


        게다가, 새로운 날의 거룩함은 하나님 백성의 성격이 될 것이다;

습 3:13


        스바냐에 의해서 언급된 새로운 날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든 나라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겸손하고 그들은 거룩할 것이다.


        스바냐 예언은 두 날, 심판의 날과 회복의 날에 대해서 말한다. 스바냐가 그의 예언을 전달한 다음에, 유다는 주님의 심판을 경험했다. 바벨론 인들이 유다를 점령하고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바벨론 침공 후 50년이 지나서, 사람들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오는 소망과 회복을 유다는 경험했다. 스바냐에 예언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바벨론으로의 추방과 그 추방으로부터의 귀환은 스바냐 예언에서 말하는 두 날의 성취인가? 물론, 나의 대답은 제한적으로 “예”라고 말할 수 있다. 바벨론 포수와 이어지는 귀환은 부분적으로 스바냐 예언을 성취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충만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잠깐만 생각해보자. 바벨론 침공이 스바냐에서 주어진 주님의 날에 대한 설명과 어울리는가? 범위가 우주적인가? 정도에 있어서 포괄적인가? 또한 추방으로부터 귀환을 잠깐 생각해보자. 모든 나라가 와서 주님께 경배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이 겸손과 거룩함을 보여주는가?  스바냐에 의해서 기술된 두 날은 부분적으로만 바벨론 포수와 귀환으로 성취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이 두 날의 궁극적인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인격 속에서만 발견되어진다. 바로 이것이 스바냐 예언을 통해서 우리들의 눈을 예수님에게 돌려야 하는 이유이다. 그는 궁극적인 심판의 주님이다. 그는 회복의 최종적인 날의 주님이시다.


3. 예수님은 다가오는 심판의 주님이다.


        우리가 본 것처럼, 스바냐 예언은 주님의 날로서 언급된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시작을 한다. 스바냐는 이 날이 정도와 범위에 있어서 보편적이고 포괄적일 것이라고 말한다. 바벨론 포수는 확실히 이스라엘 역사에서 격변하는 큰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스바냐가 설명한 주님의 날의 보편성과 포괄성을 전적으로 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신약은 이 예언의 말씀에서 말하는 최종적인 심판의 날을 설명하고 있다. 신약은 예수님의 재림을 이 최종적인 심판의 날과 연결을 시킨다. 다음의 구절들은 신약이 어떻게 주님의 날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결을 시키는가에 대한 예이다.

고전 1:8
빌 1:6
살후 2:1-2


        신약은 예수님이 주님의 최종적인 날의 주님이라고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신약은 주님의 날을 예수님에 의한 최종적인 심판에 적용할 뿐만 아니라, 또한 보편성과 포괄성의 특징까지 보여준다. 신약은 주님의 최종적인 날이 범위 면에서 우주적이라고 선포한다. 예를 들면, 주님의 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이 주님으로 인정을 할 것이다;

빌 2;10


        추가적으로, 주님의 날에 보편적인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약은 세 번이나 예수님이 죽은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한다.

행 10;42
딤후 4:1
벧전 4:5


        최종적으로, 스바냐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신약은 주님의 날을 노아의 때에 경험된 우주적인 심판과 연결을 시킨다.

마 24:37


        주님의 날은 범위 면에서 우주적이 될 것이다.


        신약은 또한 주님의 날이 정도에 있어서 포괄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신약에 의하면, 이 날은 모든 것을 포함하며 강력할 것이다. 사도 베드로가 이 날의 엄중함을 표현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벧후 3:10


        사도 요한은 더 생생한 언어와 도발적인 그림을 사용하서 이 날의 엄중함을 기술하고 있다.

계 6:12-15


        주님의 날은 정도에 있어서 포괄적이다. 신약은 주님의 마지막 날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이 미래의 날은 범위와 정도에 있어서 우주적이고 포괄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오늘 여기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마지막 날에 대한 정보는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가?  사도 베드로는 벧후 3:9-10절에서 이 질문을 제기하고, 예수님 재림과 함께 오는 필연적인 파괴력을 기술하였다. 주님의 날을 설명한 다음 그는 이 날에 대한 지식이 현재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벧후 3:11-12


        베드로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알겠는가? 주님의 날의 지식은 우리들로 하여금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그는 종말론을 윤리학과 연결을 시킨다. 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사는 가에 영향을 준다. 왜 그런가? 주님의 날의 목적의 일부분은 세상에서 죄와 악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날에 대한 바른 지식과 적당한 두려움은 우리의 성화에 강한 역할을 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주님의 날을 부인한다면, 그때에 무관심과 자족감이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스바냐 예언은 바로 이 점을 보여준다. 우리가 이 장의 초기에 언급된 것처럼, 스바냐 시대에 살았던 유다 사람들의 문제점은 하나님이 심판을 하러 오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이렇게 생각을 하였다.

습 1:12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시야에서 놓쳤기에 그들의 삶은 불경건하고 더러웠다. 그들은 심판이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바냐 예언 제 2 장에서, 그는 하나님이 심판하기로 약속한 나라를 언급한다. 이 목록은 유다의 적이 누구인지를 증명해준다.

습 2:4-7
습 2:13-15.


        하나님이 미워하는 그들의 경쟁 나라에 심판을 선포하셨을 때, 유다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했는가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바냐가 하나님의 심판이 이들 나라만 위한 것이 아니라 또한 유다에게도 임할 것이라고 설명하였을 때, 유다의 기쁨은 으스스하게 잠잠해졌을 것이다. 제 3 장의 시작에서, 스바냐는 유다가 또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습 3:2-4


        유다는 자족감이 넘쳐났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무관심과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그들의 불신은 그들의 더러운 삶을 야기시켰다.


        스바냐 시대의 사람들은 주님의 날이 오지 않을 것처럼 살았다. 신약의 성도들은 다가오는 날을 기준해서 살아야 한다고 베드로는 권면한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유다처럼 살아가고 있는가? 심판의 날이 오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가?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살전 5:2-3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재림을 기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경계를 풀지 않을 것이다.

살전 5:4


        이 후자의 그룹들은 이 무서운 날에 살아남을 것이다

살전 5:9-10


        필연적으로 오는 주님의 날에 대하여 우리들의 반응은 어때야 하는가?


        주님의 날에 대한 스바냐의 경고는 잊어버리거나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다루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자족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교회는 주님의 날을 앞에 두고 살아야 한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 교회와 주변의 세상은 스바냐 선지자가 하는 경고에 절대적으로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습 2:1-3


        주님에 대한 지식은 의를 찾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용기를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부르심과 선택하심을 확실하게 해야 하는 중요성을 상기시켜준다. 주님의 날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될 것이다. 매튜 헨리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위대한 진노의 날에 주님 안에 숨겨져 있을 것을 확실히 하는 일에 모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예수님은 다가오는 주님의 날에 주님이시다. 이 사실에 대한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두 가지 질문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첫째로, 지금 우리는 이 다가오는 날에 대한 인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이 우리들의 삶을 거룩하게 하고 경건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가? 둘째로, 더 중요한 것은, 다가오는 날에 주인공인 주님을 알고 있는가? 당신은 영원토록 그 분과 함께 살 것인가 또는 당황스러움을 당할 것인가?


3. 예수님은 새로운 날의 주님이시다.


        신약은 예수님이 다가오는 심판의 주님이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는 새로운 날의 주님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주님의 날과는 다르게, 이 소망이 넘치는 날은 벌써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함께 열렸다.


        스바냐는 새로운 날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세 가지 특징이 보여질 것을 약속했다. 다양성(모든 나라의 백성을 포함), 겸손과 거룩함이다. 이 세 가지 특징이 스바냐 선지서에서 어떻게 예언되었으며 신약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보자.


        첫째로, 스바냐는 모든 나라에서 오는 백성을 포함하는 다양한 교회를 약속했다. 이 약속은 스바냐 예언의 제 3 장에서 보여지고 있다. 이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또한 모든 나라에서 구원받는 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약속했다.

습 3:8-10.


        습 3:9-10절은 어느 날 교회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는 위대한 구약의 구절이다. 9절은, 미래 이방인의 포함에 대한 직접적인 구절이다.

습 3:9


        8절에서 선포된 모든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대조할 때에 이것은 얼마나 놀랄만한 약속인가? 8절과 9절의 대조를 고찰한 Raymond Dillard 와 Tremper Longman은, 습 3:8절을 그들이 주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모이게 될 것이라고 주석하였다. 그들은 모두가 주님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 중에 있을 것이라고 스바냐는 약속한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또한 다가오는 바벨론의 침공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어느 날에 하나님을 경배하고 헌물을 드릴 수 있도록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두 구절의 크게 놀라운 점은 구약의 약속이 신약의 성취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스바냐의 약속은 새로운 날이 다가오고 있으며 하나님의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는 다양한 공동체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신약은 새로운 날이 초림에서 동이 트고 있다고 증명해주고 있다. 첫째로, 예수님의 사역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분리시킨 적의의 경계선을 무너트렸다.

엡 2;14


        그리스도의 사역 때문에, 유대인과 이방인은 더 이상 갈등을 겪지 않는다. 오히려 스바냐가 예언한 것처럼 함께 서있다. 예수님은 모든 나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가능케하였다. 사도행전은 스바냐 예언에서 계시된 약속을 펼쳐 보여준다. 사도행전 제 2 장에서, 모든 나라에서 온 흩어진 유대인들이 성령과 복음을 듣기 위해서 모였다. 그리고 같은 성령과 같은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전달되었다. 게다가, 이방인과 유대인을 포함하는 연합된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스바냐의 약속은 사도 베드로가 말한 말과 비슷하다.

행 2:39


        이 선포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방인과 유대인들에게 동시에 적용한다.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그들이 더 이상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집에 참여하였다고 말한다.

엡 2;13


        예수님은 습 3:9-10절의 약속을 성취하였다. 교회는 모든 나라를 포함하는 다양한 공통체이다.


        두 번째로, 교회는 겸손함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습 3;12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되었다. 그의 성육신과 종으로서의 섬김을 통해서, 그의 백성들이 따라야 할 예를 보여주었다. 예를 들면, 빌 2장에서, 예수님은 공동체에 겸손함을 보이신 자신을 따르도록 우리들을 불렀다고 하였다;

빌 2:3


        골로새서에서, 겸손함으로 옷을 입으라고 하였다.

골 3;12


        마찬가지로, 디도서에서도, 바울은 디도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을 한다.

딛 3:1-2


        분명히, 기독교인의 특징 중에 하나는 겸손이다. 우리 모두는 이 속성이 이 세대의 성도들 안에서 완성이 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사람라면 이것은 분명한 특징이 되어야 한다.


        최종적으로, 스바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거룩함이 있다고 약속했다.

습 3;13


        예수님은 거룩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징으로서 만듦으로서 이 약속을 성취했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죄와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모든 참된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분명한 변화가 있다. 바울은 기독교인들을 성도(saints)라고 부르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죄의 권세에서 기독교인들이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세대에도 기독교인들을 거룩한 자라고 부르는  것이 전적으로 타당하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다음과 같이 편지를 하였다.

골 1:2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세대에서 거룩함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보여지는 특징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날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벌써 시작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날이 충만하게 성취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나라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을 마치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은 현재 완전한 겸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행동에 완전한 거룩함이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날은 부분적으로 이 세대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훨씬 더 많은 것이 성취되어져야 한다. 새로운 날에 대한 “이미”의 개념이 있지만, 또한 “아직”이라는 개념도 남겨져 있다. 현세대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시련과 고통을 경험하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은 한 날에 우리를 모아서 고향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다. 하나님은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주님의 날의 “아직”이라는 국면에 대해서 말한다.

습 3:19-20


        신약에서, 그리스도는 이 중요한 약속을 되풀이하였다. 그는 주님의 날에 그가 다시 와서 우리를 고향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하였다.

요 14:2-3


        그리고 그를 통해서 우리는 행복이 회복되고, 또한 하나님 왕국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다.

계 21:6-7


        그러므로, 앞으로 올 것이 무엇인가를 안다면, 기독교인들은 충만한 새로운 날을 경험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주님의 오심을 소원해야 한다. 새로운 날의 시작을 기대하는 것은 우리의 위로뿐만 아니라, 현 세대에서 거룩함을 위한 동기로서 사용되어져야 한다. 전 장에서 본 것처럼,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다가오는 심판의 날을 현 세대에서 거룩한 삶의 동기로서 사용할 것으로 요청하고 있다.

벧후 3;11


        흥미롭게도, 똑같은 구절에서, 베드로는 똑같은 목적으로 위해서 새로운 날의 시작에 대한 지식을 사용하도록 성도들에게 요청을 한다.

벧후 3:13-14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지식과 새로운 날의 시작에 대한 지식은 기독교인들에게 똑같은 결과를 산출하도록 한다. 그것은 곧 거룩함이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날의 도래에 대한 지식을 사용하고 있는가? 점이 없고 흠이 없기를 힘쓰고 있는가?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나도 거룩해지를 갈망하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너는 지금 대중 속에 빠져있는가?


        스바냐 시대의 불의한 지도자들은 이방인의 옷을 즐겼다고 말하고 있다. 분명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주위에 있는 불신 나라의 습관을 닮아가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있기 보다는 부자들과 권세자들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였다. 이것이 우리의 삶에 보이고 있는가? 살고 있는 문화의 옷을 우리가 입고 있는가?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삶을 영위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가? 종말론은 여기 그리고 지금 우리들의 도덕적인 삶에 영향을 줄 것을 성경은 요구한다. 예수님은 새로운 날의 주님이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질문은 “새로운 날의 주님을 섬기고 있는가?”이다.


5. 두 날의 이야기


        스바냐는 두 대조되는 날을 이야기한다. 한 날은 심판의 날이고 다른 한 날은 회복과 소망의 날이다. 예수님은 이 두 날의 주님이시고 그 분과의 우리의 관계는 이 두 날을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를 결정해준다. 주님을 믿지 않으면 우리들은 놀라움에 잡히게 될 것이다. 주님의 날에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주님의 믿는다면, 그때에 우리는 새로운 날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스바냐는 그의 예언의 끝에서 이 즐거움을 말해주고 있다.

습 3;14-17


        스바냐에서 기술된 즐거움의 충만함을 경험할 것을 우리는 확실히 해야 한다. 주님의 날에 주인이신 예수님을 우리가 섬기고 있음을 확실히 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스바냐 선지자가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험문제>>


1. 복음 전도와 활동은 주님의 날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설명하라


2. 벧후 3:10-14절을 통해서 주님의 날이 이 세대에 사는 우리들의 도덕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설명하라.


3. 주님의 날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설명하라


4. 현대의 기독교인들이 ‘이방인의 옷’을 입는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는지를 말해보라


P.S. 이 책은 "The Prophets Speaks of Him: Encountering Jesus in the Minor Prophets by Anthony T. Selvaggio" 의 제 9 장을 번역한 것입니다. 혹시 저자의 의도와 다른 번역이 있다면 순전히 저의 잘못입니다. 많은 이용이 있기를 바랍니다.



* admin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5-08-27 00:56)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3  19. THe Prophets Speak of Him : 메세지를 받아들이라 말라기    임 바울 2015/08/14 299 1243
12  18. THe Prophets Speak of Him :회상하고 고대하기 스가랴    임 바울 2015/07/31 258 1293
11  17. THe Prophets Speak of Him : 더 큰 영광의 성전 : 학개    임 바울 2015/07/23 269 1262
 16. THe Prophets Speak of Him : 두 날의 이야기 : 스바냐    임 바울 2015/07/17 281 1393
9  15. THe Prophets Speak of Him :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하박국    임 바울 2015/07/09 310 1437
8  14.THe Prophets Speak of Him ; 나훔    임 바울 2015/07/03 218 877
7  13. THe Prophets Speak of Him :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미가    임 바울 2015/06/27 179 1022
6  12. THe Prophets Speak of Him ; 놀라운 은혜 : 요나    임 바울 2015/06/20 174 982
5  11. THe Prophets Speak of Him : 왕국은 주님의 것이다 : 오바댜    임 바울 2015/06/12 178 979
4  10. The Prophets Speaks of Him; 사자가 울부짖을 때 : 아모스    임 바울 2015/06/08 189 1007
3  9. The Prophets Speaks of Him : 철저한 회개 - 요엘서    임 바울 2015/05/29 168 961
2  8. The Prophets Speaks of Him: 호세아서 - 비교할 수 없는 사랑    임 바울 2015/05/25 248 1013
1  7. The Prophets Speaks of Him: Encountering Jesus in the Minor Prophets - 서론    임 바울 2015/05/16 217 1078

    목록보기 1
       

 
www.hendersonny.org // email: info@hendersonny.org

Copyright © 2018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
NY : 40-36/38 78th Street, Elmhurst, NY 11373
General and Admission Office of NY & NJ 718.810.3248 or 646.338.7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