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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강 “하나님 뜻대로 간구하다”
김 에스더  (Homepage) 2016-12-12 14:02:52, 조회 : 1,054, 추천 : 203

“하나님 뜻대로 간구하다”
(어려움에 처할 때 지체하지 말고 기도하라)


시 61:1-2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은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다. 특히 시편을 통해서 우리는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많이 본다. 그러나 도움을 청하는 일은 그다지 간단한 일은 아니다. 시편의 구절들을 보면, 단순하고 솔직한 형태로서 특별히 교육을 받지 않고도 도움을 간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약 4:2-3


        우리가 기도를 통해 도움을 청한다고 해서 그 일이 ‘내 뜻대로 무조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확신한다면 큰 오산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하고 나의 욕구만을 채우는 기도를 한다면, 그 기도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기도는 한마디로 정교한 형식과 관습을 따름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 형식의 기도일 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것을 기억해보면, 기도는 단순히 평안을 추구하는 수단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동참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날드 블로쉬는 기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도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고된 간구이다.... 하나님께 열심히 간청하는 몸짓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돌아보는데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약속을 붙잡고 매달리는 일이다(사 64:7 참고).”


        그렇다면 어떻게 구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첫 번째로 올바르게 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로 작정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즉 하나님은 친히 역사를 주관하시는 동시에 우리의 기도와 행동이 일정 부분의 역사를 책임지게 하신다는 것이다.


        예로서, 비를 내리게 한 엘리야의 기도에 대한 존 칼빈의 해석을 들어보자. 그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일정부분을 엘리야가 드린 기도의 통제아래에 두셨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은 그의 요청에 따라 초자연적인 힘으로 하늘을 움직이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기도로 우주의 한 부분을 이리저리 움직일 능력도 힘도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한 자녀들의 기도에 세상이 반응하도록 해주셨다.


        또 하나의 예는 느헤미아 4장에 있다. 예루살렘의 성벽을 쌓고 있던 유대인들은 적들이 곧 공격할 것임을 알고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비병을 세워 밤낮으로 지키게 하였다.

느 4:9


        히스기야 왕은 시름시름 죽어갔고, 이사야 선지자도 그렇게 되리라고 예언을 했다. 그런데 왕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바로 응답을 주셨고 그 죽음에서 살아날 방법을 이사야를 통해 전해주셨다.

사 38:5, 21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기독교인의 기도는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과 동시에 하나님의 지혜로운 계획은 주권적이며 어긋나는 법이 절대 없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진리이고 서로 충돌하지 하지 않으며 함께 역사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기로 작정을 하셨고 기도의 힘을 통해 세상의 일정 부분을 움직이게 하셨기 때문이다. 기도의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이런 기도의 강한 힘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소교리문답서에서, 기도는 ‘거룩하고 합당한 것들을 구하는 소망’으로 요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타락한 본성 때문에 무엇이 ‘거룩하고 합당한 것’인지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구할 때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최상의 결과를 기대하며 비록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과 다른 일을 행하신다 할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열린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 J. I. 패커는 세 가지의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우리가 구하는 제목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기도에 반드시 포함시켜서 주님께 드려야 한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와 다른 뜻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 편이 더 선하며 주님이 계획하신 대로 이뤄지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세 번째는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기도 제목 하나하나를 ‘하나님은 아는 지식’과 연결 짓는 훈련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스스로에게 간구의 동기가 무엇인지, 무엇을 사랑하고 있으며 어떤 죄나 연약한 부분과 연관되어 있는지를 스스로 질문하고 찾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패커는 간구하는데 시간을 들이는 만큼 신학적인 사고와 자기 성찰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기도문을 통해서 간구의 목적을 알아보자. 간구에는 밖을 향한 기도와 안을 향한 기도가 있다. 밖을 향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녀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적인 정황에 영향력을 행사하시며, 세상에 정의를 세우시는 것을 목적으로 드린다. 그리고 하나님은 거룩한 백성들이 기도하지 않으면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러나 간절히 구하면 기대의 수준을 훨씬 넘는 응답을 주신다.

약 4:2
엡 3:20


        안을 향한 기도는 기도를 통해 평안과 안식을 얻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기도는 스스로 통제하려는 의지를 버리고 모든 필요를 하나님의 보살핌에 맡기며 안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편은 이런 두 가지의 기도의 목적을 보여주는 구절로 가득한다. 예로서 시 4편과 5편을 살펴보자. 시 4편은 하루 동안 벌어진 일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되짚어 보는 저녁기도이다. 반면에 시 5편은 세상 형편을 바꾸어 달라고 요청하는 아침기도이다. 시편 5편의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간구에 비해서 시 4:5-8은 순종하며 마음의 평안을 구하는 기도이다. 특히 저녁기도는 한밤의 단잠이 육신에 가져다주는 것처럼 영적 평안을 목표로 기도한다. 다윗은 마음을 내려놓고 “뜻이 이루어지이다”의 간구를 위해 일종의 ‘자기와의 대화’ 또는 ‘묵상’을 하고 있다.

시 4:7


        성경에 나타난 간구의 형태로는 대략 세 가지의 형태가 있다. 첫째, 자신과 남들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가 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영적이고 정서적인 영역에서부터 물질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그 폭은 상당히 넓다. 또한 이 기도는 중보기도의 형태를 가진다. 즉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와 세상을 향한 기도로 연결된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지 혹은 친구들뿐만 아니라 경쟁자나 적을 위한 기도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또한 기도와 세상을 향한 기도, 전쟁과 평화를 위한 기도, 가난과 굶주림을 위한 기도, 지도자와 사회의 건전함을 위한 기도 등이 이에 포함된다.


        두 번째로, 고통과 환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힘겨운 씨름을 벌이면서 주님이 역사하시는 방식에 끊임없는 의문과 거룩한 뜻을 깨닫고 현실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기도이다. 성경에는, 특히 시편에는 이런 탄식하며 불평하는 기도를 많이 볼 수 있다.

시 13, 55 (배신이나 핍박, 혹은 대적의 면전에서 드린 기도)
시 6, 38 (건강이나 물질을 잃었을 때 드린 기도)
시 29, 79 (가족과 친구들을 잃고 혼자 남아있는 상태에서 드린 기도)
시 39, 88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음으로 인해 애통하고 탄식하는 기도)
시 42-43 (낙담의 노래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이런 애통하고 불평하는 유형의 기도를 별로 하지 않는다. 로널드 리트거스는 그 이유에 대해서 ‘불평이 아니라 착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자 하는 율법주의’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오늘날 서구 사회의 신앙들은 대부분, ‘하나님은 자신들이 스스로 세운 기준에 필요한 것을 당연히 공급해주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J.I 패커는 반론을 제기한다. 그에 의하면, 성경은 마음과 거기서 비롯되는 사랑, 소망, 믿음을 이성과 감정의 바탕으로 여긴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우리는 그분 앞에서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모두 말할 수 있고, 특히 불평은 새 생명을 얻은 이들이 교제하고 기도하는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성분이라고 말한다.


        간구의 세 번째 형태는 소위 ‘하나님께 조르는 기도’이다.

눅 18:1-8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르쳐주신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신다는 확신을 품어야 하며 또 하나는 그분의 때를 끈질기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한 달이든 일 년이든 끈질기게 기도할 필요가 있다.

벧후 3:9


        마지막으로 기도의 응답이 원하지 않는 모양으로 나타났을 때,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는가? 실제로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별을 막아달라고 기도하거나, 멸망을 막아달라고 기도했을 때, 결국 피하고 싶었던 일들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다시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기도할 수 있을까?


        다윗의 시편을 보면,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자식이 죽는 절망적인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기도로 요청한 제목들이 무수히 거절되는 일을 겪으면서도 확신을 품고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삼하 12
시 51


        다윗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랫동안 주님과 동행하면서 자신을 살려주신 경험과 성령하나님의 계시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에 달려 받아야 할 고난의 잔을 옮겨주시기를 기도하셨지만, 그 요청은 거절되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때에도 주님은 ‘나의 하나님’을 찾았지만 결국 버림을 받으셨다.

마 27:46


        죄인이라면 기도에 응답받지 못해도 할 말이 없고 우리는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기도에 응답을 받으셨고 유일하게 응답받으실 자격이 있으신 분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기도는 외면을 당하셨다.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 답은 복음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합당한 처벌을 예수님께 내리셨다. 인류가 받아야할 형벌을 주님이 대신 받으셨고 그 때문에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대우를 해주신다.

고후 5:21


        결국 예수님의 기도는 죄인의 기도처럼 거절당하셨지만, 그 기도의 응답을 우리가 받은 것이었다. 기독교인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선하신 방법으로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눅 11:11-13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사랑이 넘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예수님 대신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든 것을 채워주시고 누리게 해주신다. 즉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외치신 예수님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셨기에 우리가 ‘나의 하나님’을 부를 때 응답하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하나님께 담대하고 구체적이며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간구를 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지혜로운 사랑을 인정하고 끈질기게 순종해야 하며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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