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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강 “고백과 회개는 필수다”
김 에스더  (Homepage) 2016-11-28 13:45:38, 조회 : 737, 추천 : 176

“고백과 회개는 필수다”
(용서받은 마음에서 바른 기도가 세워진다)


        오늘날의 시대에는 ‘용서’라는 개념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히브리의 선지자들과 성경기자들에게 ‘하나님의 용서’란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개념이었다. 그들은 주님을 ‘용서하시는 하나님(느 9:17)’으로 기록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 자비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

출 34:6-7


        위의 본문은 하나님의 용서가 단순하거나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시 130:3-4


        다윗은 용서를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당연한 일로 결코 노래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이 불순종과 죄를 용서하신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몸을 떨고 있다.


미 7:18-19


        선지자 미가도 하나님의 용서를 더 장엄하게 표현하고 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관계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고 계약의 양쪽 당사자는 신실하게 이행할 것을 맹세하였다.

출 6:7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하나님과의 약속과 의무를 업신여겼고 깨드렸으며 불성실했다. 이런 자세라면 하나님으로부터의 축복을 빼앗기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신실하지 않은 이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고 회복시키시겠다고 되풀이해서 말씀하신다. 히브리 성경을 대하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의문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렘 31:31-34
겔 36:24-29


        신약은 이런 구약의 의문점을 해결해준다.

롬 3:25-26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서 인간의 불순종에서 비롯된 저주가 벗겨졌고, 주님이 온전히 순종하심으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갈 3:10-14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의로움을 보셨고 죄인들에 대해서는 자비를 베푸셔서 의롭다 여겨주실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신약 곳곳에서 하나님의 용서라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선물의 근원이 예수님임을 강조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인류와 맺은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신 하나님의 위대하신 신비를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값없이 허락하신 용서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얼마나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스도가 대속의 제물이 되셨기에 우리는 더 이상 저주의 그늘 아래에 있지 않다. 동시에 하나님에게 죄는 독생자를 희생시킬 만큼 대단히 심각하며 끔찍한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거룩한 은혜를 말할 때, 죄와 죄의 용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죄의 용서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를 통한 죄사함은 실제적이며 철저하게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죄의 대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치루셨다. 죄를 늬우치고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더 이상 죄의 저주가 미치지 못한다.

롬 8:1


        그러면 회개는 무엇인가? 마틴 루터는 1517년,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 문 앞에 95개 조항을 내걸고 토론을 요구하며 당시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였다. 그 첫 번째 조항이 바로 회개였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 믿는 이들의 삶 전체가 온전히 회개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염두에 두셨다”


        회개라는 것만을 언뜻 보면, 기독교인들은 실수만 되풀이하며 늘 용서를 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행이나 공로와 상관없이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과 용납을 받고 의롭게 된다’는 루터의 입장은 회개의 본질을 바꾸어 놓았다. 그에게 회개는 기독교인들의 삶을 발전시키는 방법, 즉 예수님의 성품을 향해 더 깊이, 지속적으로 성장해 가는 열쇠였다.


        여기서 우리가 만약 거저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면, 회개는 하나님의 불편한 심기를 달래는 노력으로 변질된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없으면, 회개는 고뇌의 표현으로 끝나버린다. 그리고 이런 회개는 그들을 의지적으로 규율을 지키도록 인도할 뿐, 결코 관점이나 동기 혹은 심령이 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루터는 이런 회개를 ‘자기 의’라고 말한다. 이것을 그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힘으로 죄를 씻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았다. 이것은 너무 슬프고 후회하는 심령 때문에 이정도면 용서받을 자격을 갖추었다고 하나님과 자신에게 확인시키는 또 다른 형태에 불과하다. 결국 이런 회개는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서가 아닌, 자신의 이름(혹은 회개라는 행위)으로 쏟아내는 고백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기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말하지 않는다.

요일 1:9


        오히려 우리가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예수님(혹은 예수님의 사역)이 이미 용납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용서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일 2:1-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은 누구나 용서를 받는다는 용서에 대한 깊은 확신과 안전함을 가지면 회개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회개를 죄의 용서받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고 주님을 기준으로 삶의 방향과 태도를 조정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세상의 윤리적인 종교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착하게 사는데 있다. 이런 세계관을 고집하면, 참다운 회개는 고통스럽고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자신을 비참한 처지로 몰아넣는 회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값없이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 칭의의 진리를 붙잡지 않으면, 회개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마지막까지 범죄를 멈추지 않고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보하려 할 것이다. 회개라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면, 그 뒤에 감추어진 본 모습과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용납을 받고 있음을 진실로 깨닫는다면, 스스로의 흠과 허물을 인정하기 훨씬 쉬울 것이다. 그리고 인정했다면, 가능하면 빨리 하나님 앞에 나아가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고 구원의 기쁨을 다시 경험해야 한다.


        회개는 어느 정도 쓰라린 아픔과 슬픔이 따르지만, 죄를 더 절실하게 알면 알수록 은혜에 대한 확신 또한 그만큼 커질 것이다. 용서를 받았음을 실감하면 할수록, 더 열심히 회개할 수 있고, 회개를 통해서 그는 더 빨리 성장하고 변화하며 겸손과 기쁨이 더 커질 것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거룩하신 공의의 하나님에게 죄를 용서하는 것은 더없이 어려운 문제였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용서는 가벼이 여길 것이 아니며 그 길이 열리기까지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루셔야 했는가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이다.


        용서의 대가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죄가 크다는 것이다. 죄의 값이 얼마나 큰지 헤아리지 못하면, 회개의 기도는 얄팍하고 천박해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높이려고, 삶을 변화시키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존 스토트는 ‘죄를 고백한다는 말은 결국 죄를 등지고 결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죄를 고백함과 동시에 죄와의 결별을 하기보다는, 그저 죄와 허물을 고백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그것은 그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그저 동의하는 것일 뿐이지, 죄 때문에 슬퍼하고 못견뎌하는 마음까지는 가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참된 회개는 이전과 다른 관점에서 죄를 바라보며 마음으로부터 미워하는 새로운 감정을 가지고 변화할 권세와 자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스토트에 의하면, 참된 회개에는 ‘인정’과 ‘거부’라는 두 가지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일단 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 뒤에는 곧바로 그것을 끊고 거부하고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과 죄 자체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시 51:4
시 32:5


        존 오웬의 “죄의 멸살(The Mortification of Sin)”이라는 논문을 보면, 죄의 위험성(결과)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단계를 넘어 애통하는 마음을 확고하게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죄가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시는 분을 얼마나 욕되게 하고 슬픔을 안겨드리는 가를 절감하는 것이다. 죄의 위험(결과)만을 염두에 두고 죄를 고백하는 회개는 결국 자기  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 오웬은 성경의 교리를 통해서 죄를 약화시키라고 권한다. 성경의 진리들을 하나하나 묵상함으로서 내면의 이기심과 두려움, 교만과 고집을 버려야 한다.


        오웬의 기도생활을 보여주는 마지막의 메시지는 그의 마음속에서 실제로 죄를 ‘멸살’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반드시 이런 짓을 그만두겠습니다”
“나는 천벌을 마땅한 인간입니다”
“죄의 형벌을 영원히 면제해 주신 예수님을 어떻게 이처럼 홀대할 수 있을까요?”
“주님은 내 죄를 용서하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셨는데, 어째서 나는 남을 용서하지 못할까요?”


        오웬은 성경의 많은 진리를 묵상하며 죄를 무력화하기 위해 복음의 핵심진리를 강조한다. 그 진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돌이키게 하며, 이것은 변화를 일으키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여기서 기도는 삶을 점검하면서 너무 둔하거나 분주해서 깨닫지 못하는 죄가 없는지 검증하는 마당이 되어야 한다. 정상적인 기독교인이라면,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져야 한다.

갈 5:22-24


        이에 대한 예로서, 위의 본문에 소개된 성령의 열매를 지침으로 삼고, 열매들이 나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혹시 부족한 열매들이 있는지 묵상하며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상적으로 자신을 점검하기 위해서, 다음의 네 가지의 요소를 사용해보자.


1. 철저한 겸손

- 점검 : 남을 얕잡아 본 적이 있는가?
         비판을 받았을 때, 지나치게 불쾌해하지 않는가?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가?

- 묵상 : 나 역시 죄인이므로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줄어들 때까지, 남의 비판을 받고 쓰라린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묵상하자. ... 감사가 넘치고 순전한 기쁨이 채워질 때까지 값없이 주신 은혜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자.


2. 방향을 정확히 잡은 열정

- 점검 :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사람이나 일거리를 회피한 적이 있는가?
         초조해하며 염려가 많은가?
         신중하지 못한가?
         지나치게 경솔하거나 충동적인가?

- 묵상 : 예수님은 나를 위해 악과 맞서셨으므로 어려운 일을 비겁하게 회피하지 않을 때까지, 불안해하거나 경박하게 행동하지 않을 때까지 묵상하자. ... 냉정한 분별력과 전략적인 담대함을 갖출 때까지 값없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자.


3. 식지 않는 사랑

- 점검 : 남에게 무정한 말을 하거나 고약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속으로 누군가를 희화화함으로서 자신을 합리화하지는 않았는가?
         남들에게 쉬 짜증을 내고 분통을 터트리는가?

- 묵상 : 내게 쏟아주신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을 생각하며 냉정하고 불친절한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나를 참아주신 주님의 인내를 기억하며 짜증을 내지 않을 때까지 ... 값없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자.


4. 흔들림 없이 ‘한결같은’ 시선

- 점검 :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가? 아니면 두려움이나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 안락하고 쉬운 삶을 좋아하는 마음,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의지, 인기와 권력을 향한 갈증, ... 등에 이끌려 움직이는가? 시샘하는 눈길로 누군가를 바라보지 않는가?
              
- 묵상 : 전혀 다른 쪽을 바라보게 하시고 내 마음의 소원을 채워주심을 묵상하자.



        인간은 스스로 죄가 있음을 알고 느끼지만, 심하게 자책하거나 열심히 행한 선한 일로는 절대 뿌리를 뽑을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친히 그것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담당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고 또 돌아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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