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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강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김 에스더  (Homepage) 2016-11-21 12:52:38, 조회 : 825, 추천 : 202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하나님과 연합하고 영광을 즐거워하라)


엡 3:14-19

        이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주시며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하시길” 기도하고 있다.


        엡 1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서 이미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그 안에 지니게 되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2장에 와서는 어떻게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주안에서 다른 형제자매들과 하나가 되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3장에 와서 사도바울은 이미 구한 것을 왜 다시 한번 구하고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하나다. 그들은 이미 받은 것을 체험적으로 누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이 행하신 일을 아는 것’과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높고 깊은지 절감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즉 이론적으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과 그것을 수용하고 적용하며 속사람(엡3:16)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진리를 마음 가운데로 끌어들이지 못하면, 그 삶은 가식적이고 공허하며 진실함이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원래의 모습과 삶의 방식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높고 희귀한 일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본문에서 바울은 성령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기독교인들이 붙잡고 있는 믿음의 진리가 마음과 성품을 사로잡고 또 빚어 갈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입은 성도들에게는 공통점이 나타난다. 그리스도를 통해 무엇인가를 받아 누리게 되었음을 알게 된 뒤부터 마음가짐과 감정, 행동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속사람의 영적인 경험은 무엇일까? 성령하나님은 성도들 안에서 어떻게 역사를 하시는가? 바울은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엡 3:16-19


        19절에 있는 “깨달아”의 의미는 단순히 어떤 사실을 믿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단순히 믿는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서 무엇인가를 ‘단단히 붙들다’의 의미를 가진다.


        성도가 아무리 머리로 진리에 동의하고 입으로 고백한다 할지라도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으면, 생활방식에 있어서 달리 뚜렷한 변화의 모습은 일어날 수 없다. 성경하나님이 마음을 민감하게 하셔야 진리의 빛을 받았을 때, 삶에서의 생활과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즉 그 빛은 성도의 마음에 확실한 흔적을 남겨놓을 수 있다.


        이 흔적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이기에 사도바울은 기도로 간구하기를 원한다. 엡 1:18의 말씀처럼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주님의 자녀들의 ‘마음의 눈을 밝히사“ 확실히 깨닫게 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영적인 체험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바울의 기도에서 우리는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3:15


        실제로 무릎을 꿇는 일은 당시 기독교인에게나 유대인에게는 통상적인 기도의 자세는 아니었다. 따라서 본문에서의 ‘엎드려 절하는 행위’는 특별한 경배를 의미한다. 즉 사도바울은 이 구절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라는 점에 특별히 주목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롬 8:15에서 사도바울은 성령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도록 인도하는 ‘양자의 영’이라고 소개한다. 또한 성령하나님의 사역 중 핵심이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데 있다고 16절에서 말씀한다.


        성령하나님으로 충만해지면, 성도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영에 힘입어 우리는 찬양과 감사의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은 그분이 주시는 사랑과 결코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바울이 “깨닫게” 해주시기를 성령하나님께 구한 것은 또 따른 하나의 의미를 가진다. “깨닫다”라는 동사는 원래 “씨름하다”의 뜻이며 간혹 싸움을 벌여서 성읍을 점령한다는 의미에서 “차지하다”의 의미도 가진다.


        이것을 염두 해 두면서, 19절의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의 의미를 살펴보자. 분명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야 우리는 그 깊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게 된다. 그분의 사랑을 알려면, 먼저 그분의 사랑에 압도되었다고, 그 사랑에 우리가 완전히 점령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곱씹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성령하나님이 권능으로 우리를 도와주셔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넓을까?

사 1:18


        하나님의 베푸신 사랑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요 10:14-15
빌 1:6


        하나님의 그 길고 긴 사랑은 언제 시작되는가? 먼 옛날부터 시작해서 영원토록 이어진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만큼 길고 길고 또 길다.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그처럼 끝없이 광대하고 무한정 긴 까닭은 한없이 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깊을까?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님의 베푸신 사랑의 깊이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분이 당한 고통과 고난의 깊이를 보면,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 수 있다. 우리를 위해 그분은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죽으셨으며 끝없는 지옥으로 내려가셨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구하시기 위해 이 어려운 길을 스스로 선택하셨다.


        하나님이 사랑은 또한 한없이 높다.

요 17:24
요일 3:2


        다윗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시 27:8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찾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것은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실재와 임재를 아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거룩한 백성들에게 기도로 주의 얼굴을 찾으라고 명령하셨다.

대하 7:14


        하나님의 임재를 감지하는 힘을 잃어버리는 것은 곧 하나님이 얼굴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시 13:1


        존 오웬은 하나님의 임재와 경험에 대하여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

        “착각하지 마라. 성령에 속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마음에 영적인 일에 대한 관념이나 의식을 갖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혹은 신앙적인 의무들을 꾸준히 또는 아주 많이 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일들은 마음에 은혜가 전혀 없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는 덧붙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다운 기독교 신앙의 정수, 즉 성령에 속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하늘의 것들, 특히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오웬은 진리와 체험의 관계에 대한 원칙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빛이 사랑을 외면하면 형식주의와 무신론이 되기 쉽고, 반대로 사랑이 빛을 앞서면 형상이나 그림 등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미신의 늪에 빠지기 쉽다”


        빛은 올바른 가르침이나 교리를 통해 얻는 지식이다. 교리와 성경적인 지식은 결코 ‘사랑’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거룩하심을 전심으로 신뢰한다면, 주님의 거룩함에 대하여 즐겁고 만족함으로 찬양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의심치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이나 고난 혹은 죽음 앞에서 우리는 감정적으로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건전한 교리에 따른 체험이 뒤따르지 않으면 이름뿐인 기독교인이 될 것이고 마침내는 불신앙으로 이르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빛을 앞지르면’, ‘미신의 늪’에 빠지게 된다. 교리나 성경적 지식이 없는 묵상이나 상상 기법은 하나님의 성품이나 실상과 동떨어진 의식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앞서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특정한 단어나 구절을 반복적으로 음송하다보면, 의식이 달라져 일종의 최면 현상도 일으킬 수 있다.



        에덴동산에서 인류는 죄를 범하고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다. 하나님의 얼굴에서 나오는 완전하고 경이로운 빛 가운데서 살아가도록 지음 받은 인류에게 그 가운데서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된 것은 더 없이 큰 재앙이었다. 모세는 하나님을 직접 대하는 최고의 기회를 가졌지만, 결국 죄라는 장벽 때문에 만족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그 높은 벽을 허무시고 그분의 얼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영광의 빛을 부분적으로나마 믿음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성령하나님의 권능에 힘입어 복음과 그 안의 진리를 묵상하며 마음에 품고 기도하면,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우리의 내면의 간구는 서서히 충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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