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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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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강 : 아버지의 일, 구주의 위엄
임 바울  2017-08-25 21:01:36, 조회 : 442, 추천 : 122

제 2장 누가복음서에 나타난 십자가


4. 아버지의 일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로만 온다는 것과 예수님께서는 늘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셨다는 것을 우리는 함께 보아야만 한다.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찾아다니던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자.

눅 2:49


        또한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 하신 답을 보자.

눅 4:4


        예수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헌신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떡과 그것이 의미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필연성과 결코 상관이 없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지상적 왕국을 수립하라는 유혹과 기적의 수행자가 되라는 유혹도 거절하신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것이었다.

눅 4:5 이하
눅 4:9 이하


        누가는 이런 면에서 예수님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많이 기록하였다. 만약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기로 작정하셨다면, 예수님은 반드시 그 일을 이루신다. 이런 필연성 가운데서,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다른 도시에서도 전하셔야 했고 마땅히 고난도 받으셔야 했다. 이런 문맥상의 차이는 누가로 하여금, 때로는 다른 복음서에서 말하는 것을 기록하게 하였고(눅 9:22), 때로는 다른 복음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기록하기도 하였다(눅 17:25, 24:7, 26, 44).


        누가는 예수님이 이미 작정된 대로 간다고 말한다.

눅 22:22


        분명히 누가는 예수가 받으시는 수난이 그의 소명의 일부로 여기시는 분임을 알려준다. 그것이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의 수난은 확실히 우연은 아니었다. 그것은 예수님이 가진 메시아의 개념에 포함된 사건이었다.


        모리스 고구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실패, 자신이 버림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신의 수난과 버림받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셨다... 예수는 그가 수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메시아라고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 그가 마땅히 수난 받아야만 하기 때문에 메시야라고 믿으신 것이다.”


        누가의 기록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받을 고난을 미리 아신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눅 22:22


        누가는 주님의 수난에 대해 독특한 표현들로 기록하였다.

눅 12:50,


        주님은 수난을 자신이 “받을 세례”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답답함”이라는 말로써 자신의 급박함을 표현하셨다.

눅 13:32


        이 구절에서 사용된 동사는 예수의 사역이 그 정해진 극에 이를 때가 있음을 보여준다.

눅 13:33


        그리고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아심과 그 일이 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때가 될 때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예수님이 가지고 계심을 보여준다.


        예수는 죽음을 계속 염두에 두었고, 그것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알고 계셨다. 예수는 자신의 생애 그 자체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며, 자신의 죽음도 아버지의 일을 이루는 것이었다. 누가는 이것을 조화시켜서 기록하고 있다.

눅 9:51


        크리드는 ‘승천’이라는 단어가 승천의 사건 단 하나만을 보여주기 보다는, 지상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다양한 단계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즉 그 안에는 수난과 관련되어 있고, 결국 예정된 승천에서 그 극에 이르는 것이다.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신 것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가는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에 하신 말씀을 기록한다.

눅 23:46


        이 구절은 누가 나름대로 예수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아버지와 하나이셨다는 것이다.



5. 구주의 위엄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려면, 우리는 그분이 하신 사역의 중요성과 그 의미에 대한 이해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은 그 어느 하나도 다른 한편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실제로 누가는 예수의 성품에 대해 많은 기록을 남겨두었다.


        먼저 그는 마리아가 낳게 된 아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는 천사의 메시지를 기록한다.

눅 1:35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사람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충실히 섬긴다는 뜻을 전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솔로몬이 이런 의미로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었고 신자들도 이런 지칭을 받기도 했다.

대상 22:10
요일 3:1 이하


        그러나 누가는 이런 의미보다 더 높은 의미로 쓰였다. 이 출산은 남성의 개입 없는 특별한 출산, 즉 성령이 임하시고 특별한 능력이 임하는 출산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 거룩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이었다.


        누가는 또한 마리아를 향한 엘리사벳의 말을 기록한다.

눅 1:42, 43


        이 말은 비록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그 아이가 가진 높은 지위를 누가는 이런 말들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또한 누가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으로서의 인상을 보여주셨음을 기록한다.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냈을 때, 그분이 일으킨 기적들은 그가 오랜 세월을 기다리던 메시아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되었다.

눅 7:20 이하


        그 기적을 본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돌아보셨다고 인식하던 백성들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눅 7:16


        그 기적을 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다.

눅 9:43


        그리고 그 기적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눅 17:15-18


        고기를 잡는 베드로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와 그의 동려들은 수 십 년 간 고기를 잡아온 전문가들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자, 그들의 생각으로는 결코 고기가 잡히지 않을 때와 장소에서 수많은 고기가 잡혔다. 그때 베드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고 놀라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눅 5:8


        거라사 땅의 귀신들린 이를 고치신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도 우리는 이런 점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 고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자신에게 한 일을 온 성내에 전파했다.

눅 8:39


        예수님이 하신 일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여겨진 것이었다.


        누가는 예수에게 죄사함의 권세가 있음에 대해 사람들이 놀라는 것을 기록하였다.

눅 7:49


        다른 공관복음서와 같이, 누가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예수님을 스가랴가 예언한 왕이심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록한다. 비록 그때 함께 올라간 사람들은 그들이 행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수도 있지만, 누가는 이 사건의 기록에서 아주 명백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왕에 대해서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군중들의 외침은 천사들의 찬송을 상기시킨다는 점이었다.

눅 2:14,
눅 19:38


        또한 누가는 주님이 천사들 앞에서 사람들을 인정하거나 부인하실 때가 올 것을 기록한다.

눅 12:8


        그는 예수님이 영광중에 천사들과 같이 올 이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눅 22:69


        엠마오로 가던 이들에 대한 기록은 매우 시사적인 말들이었다. 그들은 부활의 사실성도, 의미도 파악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라 했다.

눅 24:19


        따라서 누가는 예수님을 어떤 연약하고 낮은 구주로 생각한 적이 없다. 그에게 있어 예수님은 모든 것 위에 뛰어난 위치에 계신 분이었다. 그런 분으로만 구원이 이루어진다면, 그 구원은 굉장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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