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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예수 (Jesus the J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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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 유대인과 이방인
김 경래  2013-07-08 11:17:23, 조회 : 4,947, 추천 : 489


제 3부 누구를 위한 메시아인가

누구를 위한 메시아인가?
누가 예수를 죽였나?
도피성과 대제사장의 죽음
<유대인과 이방인>
히브리어를 통해 보는 하나님의 의미
변화된 유대인의 고민
멀지 않은 구원




                                                         유대인과 이방인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 1:16).


       유대인은 일찍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던 민족이다. 이들의 선민 사상은 약 4000년 전의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셈족의 한 족장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동시에 그의 후손을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다는 것이 이스라엘 자손에게만 한정된다는 사실은 모세 때에 이르러 밝혀졌다. 이스라엘이란 다름 아닌,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새 이름인 것이다. 그에게는 열 두 아들이 있었다. 이들을 통해 퍼진 민족이 바로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슬려 범하는 죄에 대하여는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마치 귀여운 자식 매 하나 더 주는 격이다. 그러나 선택에서 제외된 이방인에게는 꼭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방치하셨다고나 할까? 아니면 잠시 긍휼의 눈을 감으셨다고 할까? 어쨌든 우리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불평할 자격이 있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못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죄 아래 있기 때문이다(롬 1:18-32).

       지난 2000년 동안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주위의 온갖 박해 속에서도 자기들의 전통을 버리지 아니하고 끝까지 지켜 왔다. 그들은 결코 동화되지 않는 민족이었다. 이 때문에 유대인을 받아들인 국가나 민족은 이들을 좋아할 리 없었다. 유대인들은 어디에 가든지 나라 속의 나라, 민족 속의 민족을 형성하여 자기들의 독특성을 유지하였던 것이다. 이런 옹고집(?)은 그들의 선민 사상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1948년, 조상들이 살던 땅에 돌아와 2000년만에 다시 나라를 세운 오늘의 유대인은, 지난 날 자신들의 명맥을 끊이지 않게 이어준 선민사상을 다시금 되새기며, 일종의 자부심 같은 것을 품고 있다. 이스라엘밖에 사는 유대인에게도 동일한 자부심이 있는데, 이러한 자부심은 종교적인 유대인은 매우 강하며 세속적인 유대인은 비교적 약한 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이방인은 모든 비유대인을 가리킨다. 결국 인류는 유대인과 이방인 둘로 분류할 수 있다. 유대인과 접촉이 있는 이방인들은 앞서 말한 유대인의 자부심과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유대인에 대한 미움과 박해의 마음이 생긴다. 이처럼 엇갈린 반응은 유대인과 접촉하는 모든 이방인을 친유대계와 반유대계로 분명히 갈라놓게 된다. 어찌 보면 오늘날 서방 세계의 고질병의 하나인 반유대 감정은 유대인 스스로 키워놓은 것이다. 이와 같은 반유대 감정은 마치 유대인 모르드개가 페르시아의 제2인자 하만에게 꿇어 절하지 아니하여 그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유대인이 죽을 뻔했던 일이 재현된 것이다(에스더서 참조).

        이런 점에서 반유대 감정이란 표현은 반미, 반소, 반로마, 반제국주의 등의 표현보다 훨씬 역사가 깊은 것이다. 이 역사적인 감정은 거기에 연루된 사람들의 운명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기도 하다. 선민 제1호가 되는 아브라함을 향하여 하나님은 일찍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2-3).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앗시리아라는 몽둥이를 들어 치셨으나, 그 후에 앗시리아를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으셨다. 바벨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발람은 어마어마한 뇌물 공세에도 불구하고 감히 이스라엘 자손을 저주할 수 없었다(민 22-24장 참조). 대개 이방 기독교인에게는 이스라엘의 이 엄청난 복을 예수 때까지 만으로 제한하여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수 이후로는 이 복이 교회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두 말할 것 없이 이방 기독교회의 이러한 해석을 일축해 버린다. 그런데 오늘날 이방인 기독교인 중에서 이 복에 대하여 유대인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이들은 주장하기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이 복은 여전히 유효한 것인데, 그의 육적인 후손 곧 유대인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신학적 엇갈림은 지난 2000년 동안 유대인과 이방인(특히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방인) 사이의 갈등을 심화시켰을 뿐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신학에서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다음의 예들을 통하여 쉽게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키파(종교적 유대인 남자가 쓰고 다니는 조그만 빵모자)를 쓰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났다. 왜 키파를 쓰고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유대인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사실 미국인이지만 예수를 믿기 때문에 유대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미국인처럼 예수 믿으면 유대인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의외로 많이 만났다. 이들은 대개 선민으로서의 유대인을 부러워하여 자신도 유대인이 되어보고 싶은 심정에서 그러한 생각을 갖게된 것 같다. 소련에서 이민 온 한 유대인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방언도 하는 사람인데 필자더러 하는 말이 "당신도 유대인이니 이스라엘을 떠나지 말고 여기서 살라"는 것이었다. 그는 예수 믿지 않는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는 필자를 만날 때마다 늘 같은 말로 졸라대곤 하였다. 또 이스라엘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고, 유대인의 반예수 감정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서방 기독교인도 만나본 적이 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스스로 외면하였기 때문에 이미 버림을 받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들의 이러한 착각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복을 오해한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구분 자체는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구속하시고자 어느 민족이든 택하셨을 것이다. 유대인은 아브라함이라는 그들의 조상 때문에 선택을 받았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이 선택은 결코 그 외 모든 사람, 다시 말해서 이방인에 대한 저주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신 후 그에게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 22:18)고 하셨다. 바울은 이 구절을 해석하여 이르기를, '네 씨(자손)'는 곧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하였다(갈 3:16). 결국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천하 만민을 복주시고자 한 민족 곧 유대인을 택하셨던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를 쓰면서도(엡 2:11-22 참조) 하나님의 복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에게까지 확산되는 것을 강조하였다. 거기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보면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순서에 의한 것일 뿐이지 결코 우열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먼저 유대인에게 복주시고자 했고, 그리고 나서는 이방인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제공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을 누리는 모든 사람에게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란 별 의미가 없다. 또 이방인이 예수를 믿는다고 유대인이 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동시에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했다는 자체가 모든 복을 자동적으로 가져오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일종의 기회 제공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기회 제공에는 시간이 존재하는 한 만료 기한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그의 후손을 축복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일정한 시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가 지속되는 한 영원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복이 이방인에게까지 확산되었던 것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유대인을 통하여 구원을 내셨던(요 4:22 참조) 하나님은 유대인에 대한 선택과 축복을 포기하실 이유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12장의 약속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효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이방인은 유대인을 시기해서는 안되고, 유대인 또한 스스로 자만에 빠져서는 아니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축복은 결국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모든 족속에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도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을 축복함으로써 동일한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는 우열이 아닌 순서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은 먼저 유대인을 택하셨고, 그 후에 유대인 예수를 통하여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 축복의 기회를 제공하셨다. 결국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계속 유효한 것이며, 이것을 결코 문제거리로 삼아서는 안된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자신도 아브라함과 더불어 동일한 복을 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 믿는 이방인은 유대인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예수 안에서는 이방인, 유대인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예수 안'이라는 밀접한 관계는 나머지 모든 관계들을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든다. 만일 아직도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에 불만이 있거나 반대로 유대인이 되기를 원하는 이방 기독교인이 있다면, 그는 자신이 과연 '예수 안'에 있는지 점검해보아야 할 것이다. 바울은"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이방인)에게라"고 말했는데(롬 1:16; 2:9.10), 예수께서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하셨다(마 19: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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