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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수 사 건 : The Case For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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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강 Part 2 예수 분석 (3) 프로필 증거
이드보라  2017-07-03 13:19:11, 조회 : 796, 추천 : 331

9. 프로필 증거


예수는 하나님의 속성들을 가지고 있었는가?


8명의 간호 실습생들이 시카고의 한 아파트에서 살해되었다. 유일한 생존자는 침대 밑에 숨어서 지켜보았던 살인자의 모습을 설명하였고 이내 몽타주가 그려졌다. 도시 전역에 몽타주가 뿌려지고 한 응급실의 외과 의사에게서 제보 전화가 왔다.
경찰은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있던 리처드 스펙이라는 부랑자를 체포하였고 그는 살인죄로 기소되어 30년간 감옥에서 살다가 죽었다. 런던 경찰국은 1889년에 처음으로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살인 용의자의 몽타주를 작성하여 사건 조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점점 발전한 기술은 오늘날에 전자 얼굴 인식 기술이라는 컴퓨터 시스템으로 자리잡고 있다. 1997년 시카고 교외에 있는 상점가에서 유괴 사건이 발생하였다. 피해자는 유괴범의 생김새를 자세히 설명했고 범인의 얼굴과 흡사한 몽타쥬를 뽑아냈다. 그 지역의 경찰서로 전송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수사관이 과거에 대면했던 범죄자임을 밝혀내었고 그는 신속하게 체포되었다.


몽타주 개념은 예수에 대한 진실을 찾는 일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가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편재하셔서 우주 어느 곳에나 계신 하나님, 전지와 전능의 하나님, 영원과 초월의 하나님, 시간과 만유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 불변하시고 사랑과 자비가 많으신 하나님,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지혜롭고 공평하신 하나님’ 이라는 하나님의 속성은 성경 곳곳에서 증거하고 있다.
예수님은 어떠한가? 그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도 하나님의 속성들을 가지고 있는가? 예수라는 인물을 자세히 조사했을 때,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동일하게 볼수 있겠는가?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그의 주장은 틀린 것이라고 말하겠다.


예수가 가버니움의 산 중턱에서 설교하고 있을 때, 동시에 여리고의 중심가에는 서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로 그가 무소부재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마가복음 13:32절에서 미래에 관해 모르는 것이 있다고 예수는 기꺼이 인정했는데 어떻게 그가 전지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가 영원한 분이라면 왜 골로새서 1:15은 그를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말하는가? 이러한 내용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모습을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이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 기독교 사상가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인 D.A 카슨 박사를 만나러 갔다.


- 여덟 번째 인터뷰: 도널드 카슨 박사


카슨 박사는 트리니티 신학교의 신약학 연구 교수로서, 그가 저술하거나 편집한 책은 40권 이상이 된다. 그 중에는 ‘산상 설교’, ‘해석상의 오류들’, ‘요한이 전한 복음’, ‘익살스러운 하나님’과 같은 책들이 있다. 그는 12개의 언어를 읽고 그가 다루는 분야는 역사적 예수, 포스트 모더니즘, 그리스어 문법 그리고 사도바울과 요한의 신학 등이다. 그는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신약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78년 이후로는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교수하고 있다. 나는 카슨 박사와의 인터뷰에서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물었다.


- 하나님처럼 살고 하나님처럼 용서함


Q: 예수의 어떤 말과 어떤 행동 때문에 그가 하나님이라고 확신합니까?
A: 어떤 사람들은 기적을 이유로 들겠지만, 기적은 다른 이들이 행하기도 하지요. 예수님의 신성을 암시해 주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못됩니다. 그 중에 물론 부활은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입증해 주기는 하지만 가장 뚜렷한 증거는 그분이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이 나에게 해를 가하였다면 나에게는 당신을 용서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에게 해를 끼쳤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말하면 우습고 뻔뻔한 일입니다. 이런 말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사람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과 그의 율법에 도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간통죄를 짓고 밧세바의 남편을 죽게 하였을 때,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라고 시편 51편에서 고백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죄를 지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께 죄를 지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용서를 베푸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말이 신성 모독임을 바로 알고 극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고 선언한 것이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Q: 예수는 죄를 용서했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속성인데요?
A: 서구 역사를 통틀어 가장 거룩하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은 자기의 허물과 죄를 가장 잘 깨달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자신이 단점 많고 정욕에 빠져있고 분노가 많음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죠.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정직하게 죄와 싸웠습니다. 사실 그들은 죄와 잘 싸웠기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사람들은 그들을 일컬어 ‘거룩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게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다릅니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정죄할 수 있느냐?’라는 말은 이 세상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도덕적으로 완전한 것과 죄를 용서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하나님이 갖고 계신 특징입니다.


- 성육신의 신비


Q: 예수가 동시에 두 장소에 계실 수 없었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가 편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날과 그 때는 아들도 모른다’고 하였는데 어찌 그가 전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자신의 고향에서는 많은 기적을 행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가 전능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A: 성육신에 대한 접근 방법으로 2-3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9세기 말의 위대한 신학자, 벤자민 워필드는 복음서를 가지고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내용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설명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하신 일이 하나님이 하실 법한 일이라면 신성에 속한 것으로, 사람의 한계와 유한성 그리고 인간성을 보여주는 일이 있으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속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Q: 그런 식으로 하자면, 예수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사람이라는 결론도 나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A: 그런 실수를 할 수도 있지요. 모든 신앙 고백서들은 말하기를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분명히 구분되지만 양자는 한 인격 안에서 결합되어 있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필수적으로 두 마음-예수님이라는 인간의 마음과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게 됩니다. 당신이 보기에는 신통치 않은 대답이겠지만 이것은 첫 번째 종류의 해결책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Q: 성육신에 대한 두 번째 접근 방법은 무엇입니까?
A: ‘비운다’라는 의미인 ‘케노시스’와 연관된 해결책입니다. 빌립보서 2장의 내용을 보면 바울이 예수님에 대해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우셨다’고 합니다. 이 말에 대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해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자신의 신성을 비우셨다면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속성을 비우셨다는 것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다만 실재로부터 속성을 분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처럼 생기고, 말 냄새가 나고, 말처럼 걷고, 말의 모든 속성을 가진 동물이 있다면 그것은 곧 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신 속에 있는 하나님의 속성을 비우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사용하기를 비우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 뜻은 비운다는 것이 자기 제한적인 형태를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일을 볼 때 그 말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방법으로 죄를 용서하셨지요.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이러한 견해를 통해서 ‘자신을 비웠다’라는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는 자신을 비우셨기에 혼자만의 결정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사용하지 않으셨다’라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에만 하나님으로써의 일을 하셨다는 거지요. 이러한 견해는 ‘비웠다’는 의미를 이해하는 데 더 분명한 이해를 돕지만 예수님의 공생애 속에는 하나님의 허락하실 때와 아닌 때의 구분이 없습니다. 즉 예수님은 실제로 하나님의 계명에 일치하는 행동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어쨌든 비웠다는 의미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카슨 박사는 빌립보서 2장에서 말씀하는 ‘자신을 비웠다’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였다. 어떤 종류의 비움인지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기독교 신학은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증거를 취해서 그것을 잘 보존하고 합리적으로 통일성있게 통합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설명하였다.
성육신에 대해서 미묘한 차이를 보이며 모두 설명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해가 되는 부분까지는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성육신이라는 성경과 기독교 신앙의 신비는 유한한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신약 성경은 전지, 전능, 편재와 같은 특성들이 예수의 속성이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 창조자인가 피조물인가?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시다. 영원전부터 스스로 존재하신 분이시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이 부분도 일치해야 한다. 이사야 57:15절은 하나님이 ‘영존하시는 분’이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예수는 지음 받은 존재라는 것처럼 말하는 구절들이 몇 개 있다.


Q: 요한복음 3:16에는 예수가 하나님이 낳으신 아들이라고 합니다. 골로새서 1:!5은 그가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들은 예수가 창조자가 아니라 피조물이라는 것을 명백히 암시하는 것이 아닙니까?
A: 요한복음 3:16절부터 살표보죠. 헬라어 원문을 ‘독생자’라고 번역한 것은 KJV입니다. 이 번역이 맞는 번역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흔히 그 구절을 성육신-즉,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나셨다는 사실을 연관시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헬라어 본문의 원래 의미가 아닙니다. 원래의 의미는 ‘유일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3:16은 ‘사랑하시는 유일한 아들’이라는 의미, 혹은 NIV 가 번역한 것처럼 ‘하나뿐이고 유일한 아들’이라는 의미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가 존재론적으로 때를 맞춰 태어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골로새서 1:15을 살펴봅시다. 그 구절에서 ‘먼저 나신’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보수주의자든 자유주의자든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합니다. 구약에서 ‘장자’는 상속법에 따라 일반적으로 유산의 대부분을 상속받았습니다. 장자는 궁극적으로 아버지의 모든 권리를 가지는 유일한 존재였습니다. 기원전 2세기 무렵에 어떤 곳에서는 그 단어의 의미가 ‘실제로 낳았다’든지 ‘처음 태어난 자’라는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정당한 상속자의 지위에 걸맞는 권위라는 의미였습니다. 이런 사실은 모든 학자들이 인정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먼저 나신’이라는 표현은 ‘최고 상속자’라는 번역이 더 정확합니다.
만일 골로새서 1:15을 주석하려면, 2장 9절까지의 문맥 안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2:9에서 저자는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가로 강조합니다. 저자는 ‘먼저 나신’이라는 말이 문맥 속에서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소유한다’는 의미안에 속하는 것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동일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하였고 예수님의 영원성을 충분히 드러내는 단어로 썼습니다.


Q: 그렇다면 마가복음 10장에서 누군가가 예수를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자 예수가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라고 말한 것은 왜입니까? 스스로 하나님임을 부인한 것이 아닙니까?
A: 마태복음의 유사구절을 함께 살펴보면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너는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그저 겸손한 말로 안부를 묻는 것이냐? 선하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나를 선한 선생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냐?’ 근본적인 의미에서 선하신 분은 하나님 뿐이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그러니까 나를 선하다고 하지 말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너는 네가 하고 있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말하는 것이냐?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할 그 선하다는 말이 정말로 나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아마 두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말한대로 나는 선한 분- 즉 하나님이 맞다’ 이거나 ‘나는 절대 선한 자가 아니다. 죄인 예수이다’ 일 것이다. 예수가 다른 곳에서 말하고 행동한 것들을 생각할 때 첫 번째 의미가 정확히 맞다.


- 예수는 작은 하나님인가?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셨다면 어떤 하나님이신가? 아버지와 동등한 하나님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속성을 가졌지만 성부 하나님보다 전체적으로 뒤떨어지는 작은 하나님인가?


Q: 요한복음 14:28에서 예수는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이는 이를 해석하기를 ‘예수는 작은 하나님이다’라고 말합니다.
A: 문맥을 떠난 본문의 해석은 내 생각을 꿰어 맞추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지요. 모든 구절은 문맥 속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떠나가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슬펐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다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즉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받아 마땅한 영광 속으로 돌아가시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왕국-누구보다 크신 원래의 영광으로 돌아가시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7:5에서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의 의미입니다.
‘~~ 보다 큰’과 같은 종류의 말을 할 때, 그것이 반드시 존재론적 의미로 더 크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미국 대통령은 나보다 크다고 말할 때 그가 더 우수한 존재라는 의미로써가 아니라 그의 군사적인 힘, 정치적인 용맹함, 그리고 대중에게 추앙을 받는 면에서 큽니다. 자기의 존재보다 나은 인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은 모두 동일하게 존엄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하실 때 문맥 속에서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이고 나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크다고 한 것인가? 하고 문맥 속에서 물어야 합니다. 비교라는 것은 같은 수준에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할 때 그 한계가 어느 정도 규정되어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육신이라는 한계 속에 계셨고 그래서 십자가의 고통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아버지께로 돌아가서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누리셨던 영광을 다시금 누리시려던 참이었습니다. 그 문맥 속에서 볼 때 예수님의 말은 그의 신성을 부정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밝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 지옥에 대한 질문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고 하였다. 예수도 사랑이 많은 분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지옥에 보내고 지옥에 대해서 가장 많이 가르치신 분이 사랑이 많은 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온화하고 자비롭다는 예수의 인격과 상충되지 않는가?


Q: 불가지론자인 찰스 템플턴이 ‘어떻게 사랑이 많은 하늘 아버지가 영원한 지옥을 창조해서 종교적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은 수 세기 동안의 많은 사람들을 지옥에 넣을 수 있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우선, 특정한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지옥에 던져 넣는 그런 하나님은 아니라고 확신하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죄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와 교제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와 반역이 들어오고 난 후 남자와 여자는 우주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철저하게 멀어지고 난 후에 온갖 죄의 모습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지 않는 자들이 범하는 죄들은 도덕적 심판을 하셔야 마땅합니다. 지독한 악에 대해서 아무런 할 말이 없다고 말하는 하나님이라면 정말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지옥은 선량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자이시며 우주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자들이 갑니다. 지은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게 관대하시고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지옥을 가는 데서 영생으로 옮겨가게 되는 자들이 있습니다. 지옥을 가는 자들은 영원한 시간이 흐른다 하여도 여전히 우주의 중심은 그들 자신이라고 믿는, 하나님께 게속해서 반역하는 사람들이 가는 것입니다.


Q: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영원토록 고통받게 하신다는 것은 나빠 보입니다.
A: 성경에 따르면 첫 번째로, 형벌에 다른 등급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타락한 세상에 대해서 방치하시고 인간의 악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인간들의 손에 의해서 지옥으로 변할 것입니다. 죄인들 모두를 어떤 제한된 곳에 살게 하여서 자신들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그런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지옥은 그들이 했던 악한 짓을 그들 자신에게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바이지요. 여전히 회개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모든 공의가 완전히 실현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모든 입이 닫히게 될 거라고 말씀합니다. 누구도 이것이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없고 누구도 그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 예수와 노예 제도


예수가 하나님이라면 윤리적으로 완벽해야 할 것이다. 어떤 기독교 비평가들은 예수가 반도덕적 관습이었던 노예 제도를 암묵적으로 인정했다고 주장한다. 모턴 스미스는 ‘로마 제국과 황제, 그리고 대제사장들까지 노예를 소유했다는 것, 예수가 체포될 때 귀를 잃은 노예, 부자들과 중산층의 노예 소유, 한번도 노예 제도를 공격하지 않은 예수’에 대해서 말하였다. 왜 예수는 직접적으로 노예 제도는 악하다고 외치지 않은 것인가? 왜 예수는 노예 제도를 없애지 않은 것인가? 이에 대한 카슨 박사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 압제 타파


흑인 학자인 토마스 소웰은 자신의 저서인 ‘인종과 문화’에서 현재까지 존재한 모든 세계 주요 문화권 안에는 예외 없이 노예 제도가 존재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서 카슨 박사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군사적인 정복과 함께 노예제도는 경제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빚을 갚는 역할로 가족을 노예로 팔기도 하고 노동력을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노예 제도는 살아 남기 위한 선택이었고 항상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광산 노동을 하는 노예도 있었고, 저명한 박사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주인의 가족을 가르쳤던 노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정한 인종만 노예가 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미국의 노예 제도는 모든 흑인을 노예로 삼았는데 이는 혐오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흑인을 열등한 인종으로 보는 불공정한 시각이 생기고 지금도 이에 대항해서 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 성경을 살펴봅시다. 유대 사회에서는 희년마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민이 되었습니다. 율법이 정하기로 매 7년째마다 노예 제도를 금지하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예수는 그런 사회 구조 속에서 자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사명에 초점을 맞추어 봅시다. 근본적으로 예수님은 노예 제도를 포함한 로마 경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죄로부터 자유케 하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메시지는 노예 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바울이 빌레몬서에서 도망간 노예인 오네시모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노예 제도를 타도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오네시모는 처형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자신을 대해 준 것처럼 오네시모에게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로 대해줘 달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인해 나에게 생명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고 강조합니다”


“노예 제도를 없애는 일은 경제 체제를 바꿈으로써가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킴으로써 가능합니다. 농부를 압제하는 부자를 없애버리면 농부들이 자유롭게 될 것으로 생각한 공산주의는 농부들이 자유롭게 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속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제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노예 제도를 폐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영국의 대각성 운동이었습니다. 19세기 초에 그리스도인들은 노예 제도 폐지안을 의회에 넣었고 결국 영국 군함을 이용해서 대서양을 통한 노예 무역을 금지시켰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막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삶의 태도, 관점, 그리고 가치관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성경의 가르침을 받고서는 누군가에게 악의를 품을 수 없게 되었단 말입니다. 법률의 제정도, 이론도, 감정적인 호소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바꾸신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3:28에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의 모습과 일치함


성육신의 사역 즉, 어떻게 영이 육신을 입으셨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으나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성육신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신약 성경은 말하고 있다.

* 예수는 전지하신가?
요한복음 16: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에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서 나오심을 우리가 믿삽나이다

* 예수는 편재하시는 분인가?
마태복음 28:20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18:20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 예수는 전능하신 분인가?
마태복음 28:18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 예수는 영원하신 분인가?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예수는 불변하신 분인가?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또한 구약 성경은 알파와 오메가, 주, 구세주, 왕, 심판자, 빛, 반석, 구속자, 목자, 창조자, 생명의 근원, 죄를 용서하시는 분, 권위 있게 말씀하시는 분 등과 같은 명칭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신약 성경은 이 모든 명칭을 예수에게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다. 예수는 요한복음 14:7에서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라고 말씀한다. 이 말을 의역해 보자면 이렇다. ‘너희가 구약성경에 그려진 하나님을 볼 때 그 분이 나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연구 문제 ))

1. 도널드 카슨 박사는 예수님의 신성을 암시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기적보다도 죄사함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의견에 대해서 동의하는가?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2.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의심의 구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하나님임을 부인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맥을 떠난 본문은 내 생각을 꿰어 맞추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라는 카슨 박사의 말을 통해서 답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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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 11 강 Part 2 예수 분석 (4) 지문 증거    이드보라 2017/07/17 352 797
 제 10 강 Part 2 예수 분석 (3) 프로필 증거    이드보라 2017/07/03 331 796
9  제 9 강 Part 2 예수 분석 (2) 심리학적 증거    이드보라 2017/06/26 270 868
8  제 8 강 Part 2 예수 분석 (1) 정체성 분석    이드보라 2017/06/21 262 824
7  제 7 강 Part 1 기록 검토 (6) 반증    이드보라 2017/06/12 376 990
6  제 6 강 Part 1 기록 검토 (5) 과학적 증거    이드보라 2017/05/29 277 900
5  제 5 강 Part 1 기록 검토 (4) 확증적 증거    이드보라 2017/05/19 361 901
4  제 4 강 Part 1 기록 검토 (3) 기록상의 증거    이드보라 2017/05/15 272 956
3  제 3 강 Part 1 기록 검토 (2) 목격자들의 증언 검사    이드보라 2017/05/02 286 1030
2  제 2 강 Part 1 기록 검토 (1) 목격자들의 증언    이드보라 2017/04/29 267 1050
1  제 1 강 강의 소개 및 계획    이드보라 2017/04/29 280 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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