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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수 사 건 : The Case For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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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강 Part 3 부활 연구 (3) 출현 증거
이드보라  2017-08-10 16:21:25, 조회 : 426, 추천 : 105

13. 출현증거

예수는 부활 후에 정말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는가?


1963년에 14살 소녀인 애디 매 콜린스는 인종 차별주의자들의 폭탄에 희생된 흑인 소녀였다. 가족들이 1998년 애디의 묘지를 이장하기로 하여 무덤을 파헤쳤을 때, 놀랍게도 무덤은 비어있었다. 자초지종을 파악하기 위해서 조사하던 그들은 묘비가 잘못 세워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소녀의 빈 무덤을 보고 가족들은 모든 상상을 동원하였지만 단 한 가지, 부활했을 거라는 의견은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자체가 부활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윌리엄 레인 크레그 박사와의 대화를 통해서, 십자가 사건 후에 예수의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살펴보았다. 빈 무덤이 예수의 부활에 중요한 증거가 되기는 하지만, 시체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부활을 속단할 수는 없었다.
더 결정적이고 많은 증거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를 비판하는 마이클 마틴이 ‘부활에 대해 가장 정교한 변론을 펼치는 자’라고 인정하였던 게리 하버마스를 찾아갔다.


- 열 두 번째 인터뷰: 게리 하버마스 박사


철학적 무신론자 중의 하나인 앤터니 플루와 하버마스 박사는 ‘예수는 부활했는가?’를 주제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여러 대학에서 참석한 5명의 교수들이 중립적인 입장에서 그 논쟁을 심사했었다. 그 중 4명이 하버마스 박사의 논증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 중 한 사람은 ‘플루 박사의 접근법이 매우 취약한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앤터니 플루 박사가 제시하는 부활을 반대하는 주장의 증거와 논증이 그 무신론자들의 주장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이라면, 나는 이제부터 부활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라고 말했다.
하버마스 박사는 부활의 역사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충분한 역사적 증거들을 제시하였고, 앤터니 플루 박사는 그것을 반박할 만한 사실적 증거들이 없었다.

하버마스 박사는 부활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고 미시간 주립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영국 옥스퍼드의 임마누엘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부활을 주제로 7권의 책을 썼는데 그 중에는 ‘예수의 부활에 관한 합리적 연구’, ‘예수의 부활에 대한 변증’, ‘역사적 예수’, ‘부활 논쟁’등이 있다.
이 외에도100여편에 달하는 논문이 학술 저널과 대중 출판물에 실렸다. 현재 저명한 교수인 그는 리버티 대학 철학 신학부의 학장직에 있으면서 변증학 석사 과정의 지도교수를 맡고 있다.


- ‘죽은 사람은 사람들 앞에 나타날 수 없습니다’


Q: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A: 맞습니다. 부활에 대한 묘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의 시체에 생기가 돈다거나 일어나는 모습, 세마포를 푼 후에 그것을 접는 것, 돌이 치워지고 파수꾼들을 놀라게 한 후에 무덤을 떠나는 모습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Q: 그렇다면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임을 입증하는 박사님의 입장이 곤란해 지지 않습니까?
A: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은 전적으로 원인과 결과에 관한 학문입니다. 공룡을 연구할 때는 살아있는 공룡을 보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화석을 통해 합니다. 질병을 연구할 때는 질병의 증상을 연구합니다. 범죄현장을 목격한 이가 없다고 해도 경찰은 증거를 수집해서 상황을 구성해 나갑니다. 이런 식으로 나는 부활에 대한 증거를 연구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었는가?
둘째, 예수님은 그 후에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는가? 이 두 가지를 입증할 수 있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증명됩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절대로 사람들 앞에 나타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음을, 그리고 거기서 죽으셨음을, 그리고 무덤에 장사되었음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들이 있음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그 후에 예수는 정말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는가?

Q: 사람들이 예수를 보았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A: 비평가들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증거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의 저자가 사도 바울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내용을 고린도 전서 9장 1절(내가...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15장 8절(맨 나중에...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이렇게 두 군데 기록합니다.

이것은 앞서 크레그 블롬버그 박사와 토론했던 초기 교회의 신경에 포함된 내용이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신경의 전반부(3-4절)에는 예수의 처형, 장사, 부활에 대한 것이었다. 신경의 후반부(5-8절)는 부활 이후에 나타난 예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게바에게, 후에 열두 제자에게, 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고,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나 사도바울에게도 보이셨다고 말씀한다.
여기에는 예수를 목격한 구체적인 개인의 이름들과 그룹이 등장한다. 이 본문은 사람들이 바울의 글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던 때에 쓰여졌다. 목격자들이 태반이나 생존해 있었다는 말이다. 부활을 입증함에 있어서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 초기 교회의 신경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고린도전서 15장 3-8절까지를 신경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언제부터 그 본문이 신경으로 받아들여졌는가?


- ‘그것이 왜 신경인지를 저에게 납득시켜 주십시오’


하버마스 박사, 크레그 박사, 블롬버그 박사를 포함한 많은 학자들은 이 구절을 단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 글이 아니라 초기 교회의 신경으로 확신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Q: 그것이 왜 신경인지 저를 납득시켜 주십시오.
A: 첫째로 바울은 서두에서 ‘받았다’와 ‘전한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들은 랍비들이 사용하는 전문 용어로 거룩한 구전을 회중에게 전수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둘째, 본문의 병행적 구성과 일정한 양식이 그것이 신경임을 말해줍니다.
셋째, 원문은 베드로를 그의 아람어 이름인 게바로 부릅니다. 아람어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본문이 매우 이른 시기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넷째, 사도바울이 흔히 사용하지 않는 원시적 용어 예를 들어 ‘열 두 제자’, ‘사흘’, ‘다시 살아나셨다’라는 말을 씁니다.
다섯째, 어떤 단어들의 용법은 아람어적 히브리어나 미쉬나에서 사용되는 히브리어와 비슷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열의 많은 신학자들이 공감합니다. 저명한 학자인 요아킴 예레미야스도 이 신경을 가장 오래된 전승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울리히 윌킨스도 원시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쓰여졌음에 틀림없다고 말합니다.

Q: 이 신경이 언제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까?
A: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시기는 A.D 55년에서 57년 사이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5장 1-4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전서라는 편지를 쓰기 이전에 이미 그 신경을 고린도 교회에 전달해 주었노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그가 고린도를 방문했었던 A.D 51년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 신경은 부활 사건 후 채 20년이 되기 전부터 사용되었습니다. 매우 이른 시기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그보다 더 이른 시기라고 말합니다. 부활 사건 후 2년에서 8년 혹은 A.D 32년~38년경에 바울이 다메섹이나 예루살렘 중 한 군데서 이 신경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자료이며, 살아나신 예수께서 베드로와 나머지 제자들 뿐 아니라 야고보와 바울 같은 회의론자에게도 나타나셨음을 보여주는 기독교 초창기의 순수한 증언입니다.

Q: 그러나 이 신경은 1차 자료가 아니지 않습니까? 바울은 다른 사람을 거쳐서 받은 자료를 기록한 것입니다.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까?
A: 바울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직접 나타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직접적인 증언은 아니지만 바울이 길거리에 서 있는 아무에게서 받은 자료가 아닙니다.
학자들은 바울이 목격자인 베드로와 야고보에게 직접 받은 후에 면밀하게 검토했다고 봅니다. 학자들은 바울이 회심후에 3년째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났을 때 이 자료를 받았다고 믿습니다.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8-19절에서 그 여행을 설명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는 ‘히스토레오-찾아가다, 방문하다’라는 매우 흥미로운 헬라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Q: 그 단어가 왜 흥미롭습니까?
A: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갔을 때, 단순히 잡담이나 하고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바울이 무엇인가를 깊이 조사하기 위해서 두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신경에 특별히 두 사람의 증인-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나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는 점이 그것을 뒷받침해 줍니다.
몇 안되는 유대인 신약학자 중 한명인 핀체스 래피드는 ‘이 신경은 목격자들의 진술임이 틀림없다. 그것을 지지하는 확고한 증거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고린도전서 15장 11절에서 바울은 다른 사도들이 부활에 대한 동일한 복음,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는 데 동의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의 말하는 내용과 목격자인 베드로와 야고보가 말하는 내용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 오백 명의 수수께끼


예수가 오백 명의 군중 앞에 나타났다는 내용은 고린도전서 15장의 신경에만 나온다. 복음서들은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Q: 정말로 예수가 오백 명 앞에 나타났다면, 왜 아무도 그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을까요? 사도들이 가는 곳마다 이 신경을 증거로 인용했을 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것은 믿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A: 첫째, 오백 명에 대한 내용이 고린도전서에만 나온다고 치더라도, 그것은 가장 오래되고 믿을 만한 자료임을 생각할 때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둘째, 본문에서 바울은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 바울은 그들과 가까운 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아직도 생존해 있으며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직접 만나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만약 사람들이 부활 후의 예수를 직접 목격했다는 확신이 없다면 그런 내용을 신경에 넣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정말로 부활했는지에 대해서 그 사람들 스스로가 점검해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오백 명의 목격에 대한 구절이 부활을 증거하는 데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했다면 바울은 그것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셋째, 유일하게 한 곳만 나오는 내용이 왜 다른 곳에는 나오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내용이 무가치하다거나 믿을만 하지 못하다는 것은 비논리적입니다.

Q: 예수가 오백 명의 사람들 앞에 나타난 장소는 어디일까요?
A: 아마도 갈릴리 지방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는 그곳에서 오천명을 먹일 수 있었다면 오백명에게 설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께서 갈릴리에 있는 산 중턱에 나타나셨다고 기록하는데, 아마도 거기에는 11명의 제자들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Q: 이 사건에 대해서 역사가 요세푸스는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습니까?
A: 요세푸스는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후에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이 신경이라는 것에 대해서 확실한 증거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독일의 역사가인 한스 폰 캄펜하우젠은 이 신경이 얼마나 믿을만한 것인지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매우 신뢰할 만한 본문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신뢰성을 완전히 충족시켜 주는 기사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하기 위해서 오백 명에 대한 구절을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Q: 신경에는 예수가 베드로에게 처음 나타났다고 말하는 반면, 요한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 나타났다고 나옵니다. 복음서에는 여자들의 이름이 두드러지게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경에는 여자들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순점들은 신경의 진실성에 손상을 주는 것 같습니다.
A: 신경을 주의 깊게 읽어보십시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하지 않습니다. 단지 베드로의 이름이 제일 먼저 등장했을 뿐입니다. 1세기 유대 문화에서는 여자들을 증인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여자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지요.
신경의 진실성은 손상되지 않습니다. 신경은 아주 이른 시기의 자료이며, 후대의 설화가 첨가되었을 가능성이 없으며, 매우 명백한 내용의 자료이며, 궁극적으로는 목격자들의 증언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 복음서의 증언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께서는 여러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때로는 개인들 앞에, 때로는 무리 앞에, 때로는 실내에서, 때로는 실외에서, 그리고 요한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자들 뿐 아니라 도마와 같은 회의적인 사람들 앞에서도 나타났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지기도 하였고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예수님은 육체를 가지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으며 그 기간은 몇 주간에 걸쳤다.

복음서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심(요 20:10-18), 다른 여자들에게 나타나심(마 28:8-10), 엠마오 도상에서 글로바를 포함한 두 제자에게 나타나심(눅 24:13-32), 열 한 제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나심(눅 24:33-49), 도마를 제외한 열 한 사도와 여러 사람들 앞에 나타나심(요 20:26-30), 제자들에게 나타나심(마 28:16-20), 승천하기 전에 감람산에서 사도들과 함께 계심(눅 24:50=52, 행 1:4-9)

케임브리지 대학 신학자인 C.H 도드 박사는 이 모든 출현 기사들을 주의 깊게 분석하고서는 이 가운데 몇몇이 아주 초기의 자료에 뿌리내려 있다고 결론지었다. 예수님과 여인들의 만남(마 28:8-10), 지상 명령을 주시면서 제자들과 만난 사건(마 28:16-20), 자신의 손과 발을 보여 주시면서 제자들과 만난 사건(요 20:19-23)이 포함되어 있다. 예수를 목격했을 때, 그저 두어 사람이 스쳐 지나가는 어슴푸레한 인물을 본 것이 아니었다. 수 많은 여러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고 확실하게 예수님을 알 수 있도록 나타나셨다.
하버마스 박사는 교회의 시작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을 언급했다. 사도행전 곳곳에는 예수의 출현이 주기적으로 언급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사도들이 모든 일의 목격자라는 주제가 거의 모든 문맥 속에 드러나고 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있는 신경과 비슷한 종류의 신경들이 사도행전 1-5장, 10장, 13장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초창기의 자료들이라고 박사는 설명해주었다.

특히 사도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의 출현에 대해서 단호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특히 사도행전 2장 32절(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사도행전 3장 15절(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사도행전 10장 41절(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었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사도행전 13장 31절에서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고 말한다.

애초부터 부활은 초기 교회가 선포한 메시지의 핵심이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확신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직접 목격한 부활하신 예수를 확신했다. 그것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교회의 출발을 가져왔다.

- 마가의 숨겨진 결론

많은 학자들은 마가복음 16장 8절, 즉 여인들이 빈 무덤을 발견했지만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는 사실 외에 그 이후의 일들은 믿지 않는다. 마가복음 16장 9-20절 사이의 내용이 어떤 사본들에는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Q: 가장 초기에 기록된 마가복음에 예수의 부활 후 출현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마가가 예수님의 출현 기사를 포함했더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마지막 구절에서 청년은 ‘그는 살아나셨다’라고 선포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다음 이야기를 다 써 놓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 이야기를 충분히 믿을 수 있습니다. 마가는 청년들로부터 예수의 부활에 대한 선포를 들은 여인들에 대한 언급을 끝으로 마가복음을 맺습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서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나타나셨다고 확인시켜 줍니다.

Q: 그래도 베드로의 동역자였던 마가는 왜 예수가 베드로에게 나타난 것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A: 마가는 예수의 출현에 대해서 전혀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베드로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7절에서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5장 5절과 일치합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사건입니다. 초기 신경중의 하나인 누가복음 24장 34절에도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라고 말합니다. 마가가 베드로에 대해서 예견해 놓은 것이 사도행전에 가서 베드로에게 성취되었고, 또한 가장 신뢰할 만한 초기 신경 두 곳에서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다른 가능성은 없는가?


예수의 부활 후 출현한 증언과 기사는 엄청난 수를 보여준다. 목격자들을 한 사람씩 법정에 세우고 15분씩 들여서 반대 심문을 한다고 할 때, 하루 24시간을 꼬박 들인다고 할 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들의 증언을 들어야 할 것이다. 연이어 129시간 동안 목격자들의 증언을 들은 후에 믿지 않을 사람은 없어 보인다.

영국 대법원 판사였던 에드워드 클라크 경은 ‘대법원에서 많은 판결을 내려 봤지만 부활 사건만큼 확고한 증거를 가진 경우는 없었다. 법률가로서 복음서의 증거를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기들의 증언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신실한 사람들의 증언이다’라고 말했다.

- 첫 번째 가능성: 전설이다

마가복음이 예수의 출현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로 끝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복음서들이 진화적인 발전 과정을 거쳤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마가복음은 전혀 기록하지 않고, 마태복음은 조금, 누가복음은 조금 더 많이 그리고 요한복음은 거의 모든 출현 기사들을 기록하고 있다.

Q: 예수의 출현은 시간이 지나면서 살이 덧붙여진 전설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까?
A: 그렇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모든 학자들이 마가복음을 최초의 복음서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마태복음을 최초의 복음서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둘째, 그 이론은 전설이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고 하는 최초의 신앙을 해명해 주지 못합니다. 분명히 부활을 선포하게끔 만든 사건들이 있었는데, 전설 이론은 그 사건에 대한 초기 목격자들의 이야기를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전설 이론은 어떻게 이야기가 발전했는가에 대해서는 말해 줄 수 있어도, 어떻게 그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 말해주지 못합니다.
셋째,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 신경이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도 연대적으로 앞서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거기에는 예수님의 출현에 대한 많은 주장들이 나온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습니다. 오백여 명 앞에 나타나셨다는 사건은 연대적으로 가장 앞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신경과 사도행전에 나오는 신경의 기록들은 모두 복음서 자료들보다 연대적으로 앞서 있습니다.
넷째, 부활이 전설에 불과하다면 무덤에는 반드시 시체가 남아있어야 합니다. 전설 이론은 여기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 두 번째 가능성: 환상이다


Q: 심리학자인 개리 콜린스 박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에게 부활 후 출현이 환상일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 물었을 때 그분은 ‘집단으로 목격하는 것은 환상이 아니다. 환상은 오직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의미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환상 이론의 걸림돌이지요. 예수께서 여러 사람 앞에 나타나셨고, 그들은 똑같이 목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환상 이론은 이것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환상을 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후로 두려워했고, 의심하고 있었고,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고집이 셌고, 야고보는 회의적인 사람이었죠. 그들은 환상을 볼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또한 환상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죠. 또 특이한 조건들 속에서 일어나죠. 이를테면 마약을 하거나 육체적인 어려움 가운데 말이죠. 다양한 배경과 다양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몇 주 동안 여러 장소에서 한꺼번에 환상을 경험했다는 것은 너무 무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복음서의 기록들 중에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과 식사를 했다는 것과 예수님을 만진 것은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을 만나서 함께 가시며 이야기 나눈 사건은요? 빈 무덤은요? 사람들이 환상을 본 것이라면 예수님의 시체는 무덤 속에 있어야 합니다.

Q: 그렇다면 집단 사고의 한 예는 아닐까요?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가운데 존재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보는 것 말입니다.
A: 제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수를 목격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분명히 잘못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 신앙의 핵심에 관한 문제입니다. 제자들은 그 신앙 때문에 목숨을 내 놓았습니다. 만약 그것이 집단 사고였다면 제자들 중 일부는 도중에 주장을 철회한다거나 조용히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를 보십시오. 믿지 않던 자입니다. 바울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무엇인가를 볼 수 있습니까? 더구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신경과 그 외 여러 곳에서 나오는 목격에 대한 솔직한 표현들, 확신에 찬 부분들은 집단 사고설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확실하게 죽었다는 것, 무덤에 장사되었다는 것, 그리고 주일 아침에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을 앞서 증명한 바 있다.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목격하고 만지고 함께 식사를 나눴다는 것을 입증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살아나신 주를 보았노라’는 사실 때문에 부활을 확신하였다.

- 데비의 부활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증거에 대한 전문가를 찾아 나서기 전에 하버마스 박사에게 부활의 중요성에 관한 것을 묻고 싶었다. 그러나 묻는다면 분명코 박사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다, 기독교 신앙의 지축이다’라는 답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답을 들어보자.

Q: 부활의 중요성은 무엇입니까?
A: 제 경험 이야기를 좀 해도 될까요? 1995년도에 제 아내 데비는 위암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윗층에서 누워있었고 죽어가고 있었어요. 저는 현관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제 학생들이 저에게 전화를 했어요. 여러 명이 전화를 했지요. ‘교수님, 부활이 있다는 것이 기쁘지 않습니까?’ 학생들은 제가 가르쳤던 부활의 내용으로 저를 위로하였고 학생들의 격려가 제게 힘이 되었습니다.
현관에 앉아서 욥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욥처럼 ‘왜 데비입니까? 왜 그녀가 죽을 병에 걸려야 합니까?’ 라고 물을 때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다시 반문한 것처럼 ‘게리야, 너는 내가 내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 낸 것을 알고 있니?’라고 물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제 마음 속에서 똑같이 반문하셨습니다. 그 뜻을 이해할 때까지 질문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질문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2천년 전에 부활하셨다면 1995년에 죽은 아내 데비도 부활할 거라는 말씀이었지요. 그 자리에 앉아있던 저는 그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믿습니다. 아내가 죽어가는 것은 힘든 고통이었지만 부활이 그녀의 고통을 해결해 줄거라는 확신과 진리는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부활은 A.D 30년에도 유효하고 1995년에도 1998년에도 유효할 것이고 앞으로도 유효할 것입니다. 부활은 단순히 설교거리가 아닙니다. 부활은 확실히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데비도, 언젠가는 저도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그 때 저는 예수님과 데비, 두 사람 모두를 만나 볼 수 있을 겁니다.



(( 연구 문제 ))


1.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 신경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출현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2. 하버마스 박사가 인용했던 복음서의 출현 기사들을 읽어보라. 거기에 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부활에 대한 증거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왜 그런가?

3. 하버마스 박사의 개인적인 이야기처럼, 당신은 혹시 누군가를 잃어버린 적이 있는가? 부활은 그러한 일을 바라보는 당신의 관점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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