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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수 사 건 : The Case For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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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강 Part 3 부활 연구 (2) 사라진 시체의 증거
이드보라  2017-08-03 15:40:54, 조회 : 446, 추천 : 130

12. 사라진 시체의 증거

예수의 시체가 무덤 속에서 사라졌다는 것은 사실인가?


캔디 회사의 상속녀인 헬렌 보어 브라흐는 공항에 들어간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0년이 넘도록 경찰과 기자들이 찾았지만 실패하였다. 그녀가 살해된 것으로 추정해 보지만 단정할 수 없는 것은 시체를 찾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이 사건은 미제로 남아있다.

무덤이 비어 있던 사건, 예수의 빈 무던 사건은 헬렌 브라흐 사건과는 다르다. 그 사건은 죽지 않고 산채로 사람들에게 나타났거나 죽은 채로 사람들에게 나타났거나 죽었으나 다시 살아서 사람들에게 나타난 경우이다.
복음서의 설명을 믿는다면, 이것은 시체가 사라진 것 이상의 문제 즉 십자가에서 죽은 후에도 여전히 살아있다고 하는 부활의 문제이다. 예수의 빈 무덤은 부활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예수의 말을 결정적으로 증명해 주는 강력한 증거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서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신학자 제럴드 오 클린스는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미완의 기독교가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라고 말했다.
부활은 그가 죄와 사망을 이기셨다는 것을 증명한다. 예수의 부활은 그를 따르는 자들의 부활도 말씀한다. 부활은 기독교인들의 소망의 근원이며 기적 중의 기적이다. 만약 부활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회의론자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예수의 시체가 사라진 것은 헬렌 브라흐가 사라진 것처럼 미제 사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단정지을 만큼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그 사건이 사실상 종결되었다고 말한다. 최초의 부활절 아침에 그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이 결정적 증거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확실한 증명을 하고 싶어서 윌리엄 레인 크레그 박사를 찾아가 보았다.


- 열 한 번째 인터뷰: 윌리엄 레인 크레그 박사


크레그 박사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미국 무신론자 협회의 대표자와 함께 논쟁을 벌이는 사회자로 라디오 방송국에서 기독교를 변론하고 있었다. 약 8천명의 군중과 전국 100개 이상의 라디오 청취자들 앞에서 말이다.
청중들은 기독교가 이성적인 분석과 정밀한 조사의 토대위에 세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회의론자 등이 참여한 그 토론은 일방적으로 끝났다. 82퍼센트의 압도적인 숫자가 기독교를 변론하는 크레그 박사의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말하였다.

크레그 박사는 무신론자와 회의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소중히 여긴다고 믿으며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대화의 방식을 보여주었다. 잘난체 하거나 반대하는 투로 말하지 않는 훌륭한 연설가였다.


- 빈 무덤에 대한 변론


크레그 박사는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영국 버밍햄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그곳에서 부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뮌헨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교수하였고 루베인 대학에 있는 고등 철학 연구소에서 교환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의 저서 중에는 ‘합리적 신앙’, ‘결코 쉽지 않은 대답’, ‘부활에 관한 진실’, ‘지혜로우신 한 분 하나님’, ‘하나님의 존재와 우주의 시작’, ‘유신론 무신론 그리고 빅뱅 우주론’ 등이 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을 선포하는 지식인들’, ‘비난받는 예수’, ‘기적에 대한 변론’,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셀수 없는 논문들이 잡지에 실렸다. 과학과 철학과 신학의 공통점에 대해 쓴 그의 글들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예수의 부활이라는 주제만큼 그가 관심을 가진 주제는 없었다.


- 예수는 정말로 무덤에 묻혔는가?


예수 세미나의 존 도미니크 크로산은 역사 속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진 범죄자들의 시체가 대부분 십자가에 그대로 남겨진 채 새의 먹이가 되던지 공동 묘지에 묻혔다는 것을 토대로 예수의 시체 또한 들개들이 무덤을 파헤친 후 먹어버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Q: 당시의 일반적인 관습에 비춰볼 때, 예수의 시체도 그렇게 처리되지는 않았겠습니까?
A: 당시의 시체 처리하는 방법은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주장이 간과하고 있는 빈 무덤에 관한 뚜렷한 증거가 하나 있습니다.

Q: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시체는 산헤드린 공회 의원이었던 아리마대 요셉에게 넘겨졌습니다.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의아해지는 부분입니다.
A: 예수께서 장사되신 것에 대한 성경의 증거들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3-7에서 사도바울의 기록을 찾아보겠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교회 시대 초기의 신경을 전수해 주고 있는데,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하면서 부활한 예수가 나타난 일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전하는 이 신경은 교회 시대 초기의 것으로 믿을만한 것입니다. 첫 번째 줄은 십자가 처형을 말하고 두 번째 줄은 장사되신 것, 세 번째 줄은 부활, 네 번째 줄은 예수님이 나타내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A: 이 신경은 복음서를 요약한 것입니다. 복음서의 내용과 일치하지요. 아리마대 요셉의 기록은 모든 복음서에 동일하게 등장합니다. 가장 먼저 기록된 책이라고 여겨지는 마가복음에 예수님의 공생애의 마지막 주간에 관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께서 무덤에 장사지낸 바 되었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 아리마대 요셉은 실존했던 사람인가?


Q: 마가는 산헤드린 공회 전체가 예수에게 유죄를 선고했다고 기록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아리마대 요셉도 예수를 사형시키는 데 표를 던진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가 예수의 시체를 고귀하게 장사지낼 수 있게 했다는 것과는 너무 모순되어 보입니다.
A: 누가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중요한 한 가지 세부사항을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리마대 요셉이 투표 당시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에 관해 말씀드릴 굉장히 중요한 사실 하나는 그는 기독교 전설속의 인물이나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Q: 실존인물이라고 말씀하시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A: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도록 선동했던 유대 지도자들에 대한 초기 기독교인들의 분노와 증오를 생각해 볼 때, 이왕에 예수님을 고귀하게 장사지내 줄 인물을 꾸며내려면 다른 사람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유대 지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선택했겠지요.
게다가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렸을 때가 아닙니까? 특정 집단에 소속된 특정 인물을 조작해 낼 수는 없습니다. 나중에 거짓말이라는 것이 들통났을 테니까요.
요셉은 실존 인물이었습니다. 요셉이라는 인물이 후대에 덧붙여진 인물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더 설명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지낸 것에 관한 다른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신약 학자들은 예수의 장사기록이 신뢰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동의합니다. 특히 케임브리지 대학의 신약학자인 존 A.T 로빈슨은 역사적 예수에 관한 사실로 확실하게 입증된 내용 중 하나가 예수의 장사기록이라고 말합니다.

Q: 신경은 분명히 예수의 십자가형과 장사, 부활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무덤이 비었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혹시 예수의 영혼만 부활하고 육체는 무덤에 그대로 남아있던 것은 아닙니까?
A: 신경은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데 동의합니다. 유대인들은 부활을 육체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시에 죽은 사람의 뼈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살은 썩기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의 뼈만 모아다가 상자에 담아 놓고서 세상 종말시의 부활 때까지 보존하였습니다.
이같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누군가가 부활했지만 그 시체가 무덤에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모순된 개념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사되시고 삼일 만에 살아나셨다는 내용의 신경은, 함축적이지만 분명하게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 무덤은 어떻게 보존되었는가?


Q: 예수의 무덤이 어떻게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보존되었습니까?
A: 고고학자들이 1세기의 유적들을 발굴한 후에 내린 결론을 토대로, 그리고 가능한 한 똑같은 무덤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무덤 입구 밑에 있는 땅에는 홈이 파여져 있습니다. 원반 모양의 큰 바위가 이 홈에 자리를 잡게 되면 무덤 입구를 완전히 가로막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작은 바위를 이용해 큰 바위를 지탱시켰습니다. 큰 바위를 굴려 내려면 최소한 남자 몇 명은 필요했습니다.

Q: 무덤 앞에 로마 군병들이 보초를 선 것은 확실합니까?
A: 마태복음에 로마 군병들이 지키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무덤앞에 군인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부활의 중요한 증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비평가들이 예수의 시체 도난설을 주장했던 18세기에는 로마 군병들의 파수꾼 이야기가 중요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은 아무도 그 이론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제자들은 신실하게 부활의 진리를 믿었고 죽기까지 선포했습니다. 빈 무덤은 속임수 혹은 음모라고 하는 주장이나 도난설 등은 오늘날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 실제로 군병들이 무덤을 지켰는가?


Q: 파수꾼 이야기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있습니까?
A: 1세기 당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부활에 대한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부활을, 유대인들은 파수꾼들이 잠들어 있는 사이에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도난했다고 주장했지요. 만약 무덤을 지키는 파수꾼이 없었다면 이런 논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의 논쟁은 파수꾼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Q: 왜 유대인 지도자들은 무덤에 파수꾼을 두었을까요?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든지 혹은 제자들이 예수가 부활했다고 거짓말을 할 것이라 여겼다는 것은 그들이 부활에 대한 예수의 예언에 대해서 제자들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까?
A: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무덤이 도굴되지 않도록 혹은 유월절 기간동안 어떤 소동도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Q: 마태는 로마 군병들이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보고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빌라도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습니까?
A: 본문을 잘 살펴보면, 마태는 파수꾼들이 로마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빌라도를 찾아가서 파수꾼을 달라고 요청하자 빌라도는 ‘이미 너희에게 파수꾼이 있지 않느냐?’라고 묻습니다. 이 말은 내 부하들을 데려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너희는 성전을 지키는 파수꾼을 이미 거느리고 있으니 그들로 하여금 무덤을 지키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학자들은 그 파수꾼들이 유대인 군병인지 아닌지로 논쟁했습니다. 파수꾼들이 유대인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태가 이 파수꾼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성전을 지키는 군병들보다는 로마 군병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로마의 백부장이 유대인 지도자들의 명령을 받고서 부하들을 이끌고 예수님을 체포했다고 나옵니다. 따라서 로마 군병인 파수꾼들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보고하는 일의 선례가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무덤을 지킨 자들은 로마 군인일 수도 있습니다.


- 모순은 없는가?



예수에 부활에 대한 찰스 템플턴과 같은 회의론자들의 주장은 복음서간의 상충되는 설명, 서로 조화되지 않는 기록에 대해서 꼬집는다. 빈 무덤에 대한 복음서의 신뢰성은 어떠한가?

보스턴 대학의 마이클 마틴 박사의 주장을 요약해 보면,

첫째로, 무덤 앞의 돌에 관해서는 이러하다. 마태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가 새벽녘에 무덤에 도착했다. 무덤 앞의 큰 돌, 큰 지진,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돌을 굴렸다고 말한다. 마가복음에는 여자들이 해 돋는 때에 무덤에 도착했고 이미 돌은 굴려져 있었다고 말한다. 누가복음에는 여자들이 이른 새벽에 도착했을 때 이미 돌이 굴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둘째로, 천사에 대해서는 이러하다. 마태복음에는 천사가 무덤 밖의 돌 위에 앉아 있었다고 하고, 마가복음에는 한 청년이 무덤 안에 있었다고 하고, 누가복음에는 두 사람이 무덤 안에 있었다고 말한다.
셋째로 무덤에 간 여자들에 대하여서는 이러하다. 마태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 마가복음에는 두 마리아와 살로메, 누가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요안나 그리고 다른 여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넷째로, 무덤에서 나온 여자들의 행적에 대해서이다. 마태복음에는 두 명의 마리아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이야기를 하였고 도중에 예수를 만났다고 한다. 마가복음에는 그들이 떨면서 무덤에서 뛰쳐나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누가복음에는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빈 무덤에 대해서 말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나오며 예수를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그리고 요한복음의 내용은 다른 복음서들의 내용과 상당히 다르다.

마이클 박사의 주장의 결론은 무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복음서들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을 일치시키는 것은 억지 해석이라고 말한다.

Q: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그럴듯해 보이지만 마이클 박사는 철학자일 뿐 역사가는 아닙니다. 역사가의 기교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만약 무언가가 일치하지 않으면 철학자는 모순의 법칙에 의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가는 서로 다른 복음서의 내용을 보면서 불일치 하는 내용에서 대해서 보충적인 세부 묘사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무덤에 장사지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린 후 첫 주일 아침에 몇몇 여자들이 주님의 무덤을 찾아옵니다. 그러나 무덤은 비어있었고 천사들이 예수께서 살아나셨다고 말해 줍니다. 설령 여자들의 이름과 정확한 시간, 천사들이 몇 명이었는지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하여도 우리는 본문의 핵심은 동일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들은 세부적인 부분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에딘버그 대학의 교수로 재직중인 마이클 그랜트 박사는 그의 책 ‘예수: 역사학자가 본 복음서’에서 말하기를 분명히 빈 무덤에 대한 복음서의 묘사는 각각 다르지만, 고대 문헌을 연구할 때 적용하는 기준과 똑같은 기준을 복음서에 적용해 본다면, 무덤이 실제로 비어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말합니다.


- 모순들이 서로 조화될 수 있는가?


형사 재판을 취재하면서 두 증인이 사건 핵심의 세부 사항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똑같은 증언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런 경우 피고인측 변호사는 두 사람을 떼어 놓고 사전결탁의 가능성을 놓고 조사한다. 만약 복음서의 내용이 세세하게 동일하다면 표절이라는 의심을 샀을지도 모른다. 크레그 박사는 복음서들의 진술 차이는 빈 무덤에 관한 여러 개의 독립적인 증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혹자는 마태와 누가는 마가의 글을 표절했다고 말하겠지만 각각의 본문들을 살펴보면 마태와 누가가 설령 마가복음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들이 분리, 독립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어떤 역사가도 부수적인 모순들을 이유로 빈 무덤이 거짓이라고 무시할 수 없다.

Q: 복음서 사이에 존재하는 이 차이점들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A: 무덤에 찾아갔던 시간을 예로 들어 보죠. 한 사람은 아직 어두웠다고 하고 한 사람은 동틀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마치 낙관론자가 컵 속에 반절의 물의 양을 두고 ‘반이나’ 들었다고 말하고 비관론자가 ‘반밖에’ 안들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덤을 찾아간 시간은 새벽녘이었습니다. 단지 두 사람이 다른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덤에 찾아간 여인들의 수와 이름에 관해서는 어떤 복음서도 완벽한 리스트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의 이름은 복음서 모두에 등장합니다. 따라서 복음서 기자들은 그 여인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으며 직접 대화를 나눈 여인들의 이름만 기록했을 것입니다. 함께 무덤에 찾아갔지만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여인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Q: 그 다음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조화시킬 것입니까?
A: 마가의 신학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두려움 그리고 경배를 강조합니다. 여자들의 반응을 두려움에 떨면서 도망치고 두려웠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마가의 신학 관점에 따른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일시적인 침묵이었을 것입니다. 돌아간 후에 이내 일어난 사건을 말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가는 그 이야기를 기록할 수 없었겠지요?

Q: 사람들이 모순이라고 말하는 또 다른 경우를 묻겠습니다. 마태복음 12:40에서 예수는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소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하루만 꼬박 무덤 속에 있었고 나머지 이틀은 하루 중 일부 시간에만 무덤 속에 있었습니다. 예언성취에 실패한 것이 아닙니까?
A: 몇몇 그리스도인들은 그 구절을 근거로 예수님이 금요일이 아니라 수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합니다. 꼬박 사흘을 채우기 위해서 말이죠.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유대인의 날짜 계산법에 따라 말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부분적인 하루일지라도 온전한 하루로 계산했습니다. 금요일 오후와 토요일 그리고 주일 아침을 무덤에 계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시간 관념에 따라 꼬박 3일로 계산됩니다.


- 증인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


복음서들은 예수의 친구이자 추종자들이었던 여인들이 빈 무덤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마틴은 증언을 의심한다. 왜냐하면 그 여인들은 객관적인 목격자들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Q: 여인들과 예수와의 관계 때문에 그들의 증언은 신빙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A: 사실상 그 주장은 오히려 그들을 불리하게 만듭니다. 분명히 그 여인들은 예수의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1세기 유대인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고려해 볼 때, 빈 무덤을 발견한 것이 여인들이었다고 기록하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여성을 매우 천하게 여겼습니다. 여성의 증언은 무익하게 여겼기에 유대 법정에서의 증인이 될 자격도 주질 않았습니다.
이런 배경에 비추어 생각할 때, 이것이 만약 사실이 아니라 전설이나 꾸며진 이야기라면 남성 제자들, 즉 베드로나 요한 같은 사람들이 발견했다고 썼을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서의 저자들이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뜻입니다.


- 왜 여인들은 무덤을 찾아갔을까?


Q: 왜 여인들은 무덤이 인봉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의 시체에 향유를 바르러 갔습니까?
A: 예수님을 향한 그 여인들의 헌신과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자들은 여인들이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냉정하게 판단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몹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여인들에게 있어서 시체에 향유를 바르고자 하는 절망적인 소망이 있었습니다. 무덤을 찾아가 시체에 기름을 바르는 행위는 유대인의 관습이었습니다.


- 왜 그리스도인들은 빈 무덤을 언급하지 않았는가?


무신론자가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은 제자들이나 후대의 크리스챤 설교자들 중에 어느 누구도 빈 무덤을 강조하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Q: 제자들조차도 빈 무덤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까?
A: 베드로의 설교 속에서 빈 무덤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24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몸을 썩지 않게 하였음을 설명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베드로의 설교는 다윗의 무덤과 그리스도의 빈 무덤과 부활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3장 29-31절의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도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도 빈 무덤에 대한 암시가 있습니다. 빈 무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지라도 당시의 설교자들의 설교에는 분명히 언급되었고 설교를 듣는 청중들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 긍정적인 증거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부활에 대한 의심의 주장들을 크레그 박사에게 질문하였다. 이제 그에게 긍정적인 경우를 설명할 기회를 주어야겠다.

Q: 빈 무덤이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것을 4~5가지 이유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증거 말입니다.
A: 첫 번째로, 빈 무덤은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 초기의 전승에 분명하게 암시되엇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 증거를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되고 믿을 만한 출처입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은 똑같이 예수님 무덤의 위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무덤이 비어있지 않았다면, 부활 신앙에 기초하고 있는 기독교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묻히신 바로 그 도시에서 생겨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 마가가 빈 무덤의 이야기를 그 이전의 어떤 출처에서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언어와 문법과 문체로부터 알아낼 수 있습니다. 여러 증거들을 살펴볼 때, 빈 무덤의 이야기는 A.D 37년 이전에 쓰여졌습니다. 원래의 이야기가 손상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지요. 이에 대해서는 그리스 로마 역사가인 A.N 셔윈화이트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로, 마가의 빈 무덤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2세기의 외경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였습니다. 마가의 이야기는 전설과는 다르게 있는 그대로의 단순한 내용이고 순수합니다.
다섯 번째로,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여인들이 처음 발견했다는 공통된 증언이 이야기의 진실성을 말해줍니다. 여섯 번째로, 1세기의 유대인 저널리스트들은 빈 무덤의 사실성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무덤 속에 예수의 시체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질문은 언제나 시체가 어떻게 된 것인가? 즉 없어진 시체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 다른 이론은 없는가?


Q: 1907년에 커솝 레이크는 여인들이 다른 무덤을 찾아갔다고 주장합니다. 길을 잃고 있을 때 빈 무덤 앞에 있던 묘지 관리인이 ‘당신들은 나사렛 예수를 찾는군요. 그는 여기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주장입니다. 가능한 해석입니까?
A: 당시의 유대인 권력자들은 예수의 무덤의 위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여인들이 설령 그와 같은 실수를 범했다 해도, 이를 믿고 예수의 부활에 대해 선포할 때 유대인 권력자들은 무덤의 위치를 정확히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레이크의 이론을 따르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친 후에 거짓말까지 하면서 목숨을 걸고 부활을 선포했을 리 만무했다. 유대인 권력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치울 가능성도 없었다.

Q: 빈 무덤이 후대에 만들어진 전설이고, 이미 무덤의 위치가 잊혀져 버렸기에 반증의 기회마저 사라졌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A: 1835년에 데이빗 스트라우스가 빈 무덤이 전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빈 무덤의 이야기는 부활 사건 이후 불과 몇 년 안에 기록된 것임을 밝혀 드렸습니다. 시간차가 없기 때문에 전설 이론은 의미가 없습니다.

Q: 모든 반대의 이론들이 허점을 가지고 있으나 예수가 살아서 부활했다는 주장보다는 더 믿을만 하지 않겠습니까?
A: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것은 역사적인 문제입니다. 기적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의 문제는 철학적인 문제이겠지요. 저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가정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증거들을 살펴보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 결론입니다. 자연적으로 소생했다는 것이 더 말이 안됩니다. 시체가 자연적으로 살아났다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다는 가정은 과학이나 우리의 경험적 사실과도 모순, 상충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가정이 필요할 뿐이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만한 증거는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실 가능성이 있는 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일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 결론: 무덤은 비어 있었다


매우 놀라운 결론이긴 하지만, 여러 증거들을 살펴 볼 때 무덤은 비어 있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빈 무덤은 부활의 증거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크레그 박사에게서 떠나 캘리포니아로 가서 다른 학자를 만날 예정이다. 크레그 박사가 제시한 증거들은 부활에 대해 회적인 비판가들의 주장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주장들은 이내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엇고 결국 부활의 증거를 논박하는 데 매번 실패했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법학자인 노먼 앤더슨 경은 법률적 관점에서 이 주제를 연구할 끝에 ‘빈 무덤은 부활을 논박하는 모든 이론들을 단숨에 파괴해 버리는 단단한 바위와도 같다’라고 결론내었다.



(( 연구 문제 ))

1. 사복음서에서 서로 다르게 설명되고 있는 빈 무덤에 대한 기록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2. 빈 무덤의 이야기가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설명해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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