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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결론: 하나님과 동행하기 그리고 진리와 은혜 안에서 서로 동행하기
임 바울  2015-12-03 17:41:41, 조회 : 1,405, 추천 : 290

                                                         결론
                             하나님과 동행하기 그리고 진리와 은혜 안에서 서로 동행하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대는 우리가 고른 것이 아니다. 직면하고 있는 모든 어려움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충실(忠實)함은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 그 충실함의 모양은 하나님이 결정할 일이다. 우리 시대에, 충실함은(다른 많은 것 중에서도) 매우 매력적이다. 그리고 충실함은 과거에 확실했던 것을 신중하게 재 진술하는 것이다. 즉 동성애 행위는 죄라고 말하는 것이다. 온 지구 땅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과 20세기 동안에 살았던 모든 기독교인들과 함께, 성경은 동성애 행위를 (어떤 종류의 동성애 행위를 하던지 간에) 성적 악행의 범주에 놓는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이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해야 한다.

빌 3:1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다른 목적을 향해서 똑같은 것을 들을 필요는 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냉정한 이 논증들을 평가하고, 잘 생각한 주석적, 역사적, 신학적인 결론을 바탕으로 한 이런 성과를 고려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런 논란이 많은 주제를 차치하고, 개인적인 배경이나 개성에 영향을 받지 않고 책을 읽고 쓰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이런 말들이 객관성, 명확성, 성경적 고결함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문제를 숙고할 때에, 우리 각자는 편애(偏愛)와 성향(性向)이라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반드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1. 생각한  것 이상으로


        수천 년 동안 유지되었던 결혼관을 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 행위들이 어떤 위험성을 동반하는가를 숙고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의 윤리적 논리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 ; 세 사람 또는 삼십 명이 서로 사랑한다면, 왜 그들은 결혼을 할 권리를 갖지 말아야 하는가? 서로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 또는 두 자매, 또는 엄마와 그녀의 아들, 또는 아버지와 그의 아들, 또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은 왜 되지 않는가? 물론 이것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논쟁하는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논쟁을 미연에 방지할 일관된 논리가 전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다혼제(多婚制))에 대해서 말한 적이 전혀 없다. 그는 근친상간에 대해서 말한 적도 없다. 아마도 신약의 저자들은 강제적인 다혼은 알았을 것이다. 그들이 헌신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다혼제를 알았다면, 그들이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성적인 관계가 사랑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합의하에 이루어진 성관계는 결혼할 권리를 부인할 수 없다는 논리를 받아들이게 되면, 절대로 막을 수 없는 결혼 변경의 문을 열어놓는 셈이다.


        ⓑ 기독교 성적 윤리의 고결함이 위험에 처한다.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문제는 동성애에 관한 것 이상이다. 성적 윤리의 한 영역이 자유화되면, 나머지도 자유롭게 된다. 지금 이성들의 죄에 대해서 침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동성애 행위에 속한 사람들이 이런 죄를 지었을 때에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동성애 행위를 지지하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과, 동성애 행위를 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개인적인 거룩한 삶을 살아갈 것을 성경이 요구한다고 할 때에 어떻게 반응을 할 것이며, 기독교 윤리 기준에서 심하게 이탈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 성경의 권위가 위험에 처한다. ; 전통주의자들과 수정주의자들이 각자 “회심”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한편은 동성애 행위의 삶을 버렸다. 다른 한편은 근본적인 삶을 버렸다. 이런 이야기는 항상 다음과 같이 진행이 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전에 나는 보지를 못하였지만, 이제 나는 보고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에 나는 동성애 행위를 하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였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또는 “나는 동성애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이런 기대가 얼마나 포악한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고, 내가 지금까지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수정주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성경을 탐구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관점을 거절하려는 그들의 전환점은 대부분 개인적인 체험에서 나온다. 예를 들면, 동성애 친구들, 레즈비언 딸, 동성애를 승인하는 교회의 회원, 공허감, 행복감,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느낌. 동성애로 바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경험에 의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부랴부랴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과 성경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려고 한다.


        Luke Timothy Johnson은 동성애를 지지하는 유명한 신학 신학자이다. 그는 매우 솔직하게 이 문제에 대해서 말하였다;

        “사실, 우리가 성경의 명령을 거절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동성애 연합이 거룩하고 선한 것이라고 선포할 때에 우리는 다른 권위에 호소하고 있음을 말해야 한다. 이 권위는 정확하게 어떤 것인가? 확실히 우리 자신의 경험과 수천의 사람들이 간증하고 있는 경험에 호소를 하고 있다. 우리 자신의 성적 경향은 사실 하나님이 우리들을 창조한 방식을 용납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경험이다.”


        이것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이런 생각을 우리는 자유주의 사상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혹평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전적인 의미에서 그렇다. 자유주의는 현대의 생각과 가치를 가지고 기독교의 가르침을 재조명하려는 19세기 개신교의 운동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의 가장 유명한 자유주의 신학의 전문가이자 그 자신이 자유주의 신학자인 Gary Dorrien은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리고 있다;


        “ 기본적으로 외적인 권위에 바탕을 두지 않는 기독교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 신학은 무신론적 이성주의와 외적 권위에 기초를 둔 신학에 대한 진보주의적인 신학의 대안(代案)이며, 전통적인 기독교의 의미를 재해석하려는 운동이다. 특히, 자유주의 신학은 현대 지적 탐구의 평가를 받아들이며 특별히 개인적인 이성과 경험에 대한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정의될 수도 있다. 기독교의 개념을 실천적인 삶의 방식으로 재해석함으로서, 현대인들이 기독교를 용납할 수 있게 하고,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도록 하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유주의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무서운 것으로서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모습이 실제로 어떤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동성애 행위를 인정하는 것으로 길로 인도하는 것은 분명하고 오류가 없는 성경을 버리려는 시도이고, 개인적인 권위의 중요성 문화를 신뢰하는 중요성을 자유주의로부터 받아들이려는 여정이다.


        ⓓ 마지막으로, 성경의 위대한 이야기가 위험에 처해진다. 우리 모두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거룩한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아들을 더러운 사람들을 위한 속죄제물로서 죽이게 하였다.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그들은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있는 거룩한 곳에서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인정된 교회에서 축하하고 설교하는 이야기인가? 지금부터 20년 뒤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런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그리스도의 배타성과 영원한 지옥에 대한 개념을 포함시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이야기가 우리들로 하여금 회개와 신앙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이야기가 사랑의 예가 아니라, 죄를 짊어진 대속자에게 쏟아지는 신적인 진노에 대한 성취로서 십자가를 중심에 두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동성애 행위를 위한 지지는 항상 그리고 거의 100% 증명된 정통주의를 희석(稀釋)한 것이다. 성경적 성 개념을 흔들어놓는 영은 창조의 교리, 구약의 역사적 정확성, 동정녀 탄생, 예수님의 기적, 부활, 재림, 지옥의 실체,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의 당하는 고통, 새로운 탄생의 필요성, 성경의 완전 영감, 십자가 피의 중심성을 논할 때에도 그 사람의 마음과 머리에 모호하게 하는 영이다. 동성애 행위가 죄임을 부정하면서 사도 신경의 모든 구절들과 니케아 신조의 모든 구절들을 여전히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얼마동안은 이런 신조들에 머물 수 있을지 있지만…… 결국은 부인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인 압력이 증가하고 성경의 다루는 우리들의 자세가 느슨해진다면, 아타나시우스 신조가 말하는 것과 같은 신앙고백들을 여전히 인정할 수 있을까?


        “영원한 구원을 위해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바르게 믿는 것이 필요하다. 또는 그가 오실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몸으로서 다시 일어날 것이며, 자기의 모든 행위대로 진술할 것이다. 그리고 선을 행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고, 악을 행한 자는 영원한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런 모든 신조(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대한 정통적인 이해)는 보편적인 신앙이기에 이를 신실하게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사회에 갈채를 받았지만 자기의 영혼을 잃어버린다면 그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을 것인가?


2.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은 항상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그는 죄인을, 세리를 환영한다. 문둥병과 절름발이를 고쳤다. 그들이 배고프고 집에서 멀리 떠나 있을 때에 연민(憐愍)을 가졌다. 그는 자칭 의롭다는 외식하는 사람들을 저주했다. 회개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예루살렘에 대해서 심판을 예언하였다. 그는 천국보다 지옥에 대해서 더 많이 말했다. 그는 법을 지켰고, 율법을 범한 사람들에게 긍휼을 보였다. 그는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주었기에 우리들로부터 모든 것을 요구한다. 그는 우리를 위해서 죽었다. 우리가 그를 위해서 죽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절대적으로 우리의 인생에는 은혜가 필요하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예수님으로부터 듣는다. 지치고 상처받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초청하신다.

마 11:28


        예수님에게 가기 전에 우리 자신의 행동들을 고칠 것을 하나님은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 오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오기를 간청한다. 상한 마음, 겸손한 마음, 회개하는 마음, 그리고 믿는 마음을 가지고 오기를 원한다. 우리는 타락한 이들에 대해서 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자기의 유업을 탕진하였고 부정한 삶, 반역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도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올 수 있으며 환영받을 수 있다.

눅 15:20


        우리는 절대적으로 진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듣는다. 진리가 있어야만 우리가 비로소 자유롭게 된다.

요 8:32


        또한 예수님은 이런 말씀도 하였다. 죄를 범하게 되면 종이 된다. 종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아들의 집에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종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있고, 아버지 집에 머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요 8:34-36


        예수님처럼 진리를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사람들을 우리는 필요로 한다. 우리는 괜찮은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용서가 필요하다. 우리는 구출 받아야 한다. 우리는 구속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진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은혜가 필요하다.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하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와 같은 비참한 사람을 구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듣지 못한 최고의 소식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신다; 비겁한 사람, 심술궂은 사람, 무정한 사람, 불법한 사람, 교만한 사람, 성질이 급한 사람, 간음하는 사람, 우상숭배 하는 사람, 성적으로 우쭐대는 사람, 성적으로 더러운 사람 등.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이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만, 그리고 성령이 감동을 하신 책을 통해서만, 새로운 삶이 옛적 길에 머묾으로서 발견됨을 우리는 인식하게 될 것이다.

렘 6:16



<< 연구 문제 >>


1. 충실하다는 단어가 이 세대에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2. 전통적인 결혼관을 어떻게 할 때에 버리게 되는가?


3. 동성애를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때에 맞이하게 되는 위험성을 설명하라


4. 자유주의 신학과 정통주의 신학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을 저자는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5. 동성애자들로 하여금 주님이 갖고 있는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라



P. S. Kevin Deyoung의 “What Does the Bible Really Teach About Homosexuality” (P&R) "Conclusion"를 번역한 것입니다. 저자의 의도에 벗어난 것은  오직 저의 잘못입니다. 많은 이용과 공부는 번역을 한 저의 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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