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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강 사역: 사역의 훈련
이드보라  2017-04-22 22:34:11, 조회 : 508, 추천 : 84

17. 사역의 훈련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형태의 다른 삶이 나타난다.
하나는 소극적인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삶의 슬픔을 최소화하기 위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보이는 이것은 얽혀있는 여러 관계들을 피하고, 다른 이의 삶에 관심 갖지 않으며 고상한 이상들에 대하여 심각하게 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원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눈을 감아 추한 것을 보지 않고, 귀를 닫아 삶의 부딪히는 소리를 듣지 않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대피시키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길은 사역의 마음을 키우는 길이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개방하고 이상을 크게 하고 고상하게 한다.
이것은 다른 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여러 관계와 얽혀 지낸다. 이러한 길을 가게 되면 아마도 여러 가지 슬픔에 맞딱드리게 되고 상처받을 일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마음을 넓히고 계발하고 사역을 위해서 훈련하며 폭넓은 경험들을 하라는 영적인 사역의 원칙이 쉬운 인생의 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소극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안전하게 방어하고 살아갈지 모르지만 자신에게도 주변에도 어떤 유익이나 기여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사역의 훈련을 통한 삶은 상처가 있겠지만 더 큰 기쁨을 소유하게 되고 본인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 된다.
소극적인 삶을 통해서 눈과 귀를 가린다면 추하고 악한 것을 보고 듣지 않을 수 있지만, 또 반대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게 된다.
어떤 행동을,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삶의 원칙이자 방법으로 삼는다고 해보자.
야구 경기에서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하는 일은 없겠지만 9회말 만루 홈런을 쳐서 통쾌함을 얻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산에 오르지 않으면 산비탈의 부상과 고통을 피할 수 있겠지만 산 정상에서 보는 광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고전 14:8에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훈련된 폭넓은 마음과 돌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두려움과 갈등에 대해서 미리 백기를 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수고의 훈련


예수님께서 세례 베푸는 일을 유대에서 마치시고 갈릴리로 돌아가시는 길에 사마리아 땅을 통과하셨다. 수가라고 하는 옛 성에 들르셨을 때 예수님과 우물가의 여인이 만난 사건을 살펴보기를 원한다.


예수님은 육신이 피곤하였다. 개인 시간을 가질 짬도 없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먹을 것을 사오게 하시고 잠시 쉬기 위해서 우물가에 앉아계셨다. 그 때 한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 다가왔다. 잠깐의 시간을 내서 영육의 피곤함을 위로하고 있던 차였다. 그가 모든 것을 무시하고 몸을 돌보는 것이 당연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영적인 적극성을 가지고 여인과 대화하였다. 예수님의 마음은 영혼에 대한 관심과 긍휼로 기울어졌고 여인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아주 지칠 때조차도 사역의 손길을 늦추지 않은 것이다.


세상은 피곤한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여진다. 전쟁의 승리는 피곤한 장군들과 군인들에 의해서 쟁취되고 나라는 피곤에 지친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서 움직여진다. 중대한 법률들은 매우 피곤한 국회 의원들에게서 만들어진다. 그들은 주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고 정열적으로 헌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계도 마찬가지이다. 늘 몸이 지쳐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지고 있다. 힘들고 지친 선교사들에 의해서, 일하는 사역자들에 의해서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
우리는 몹시 피곤한 중에도 복음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드릴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대한 일은 결코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라고 살전 2:9에서 말씀한다.
이러한 사도적인 노동관은 바울의 커다란 주제였다.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며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고백하고 있다(고후 11:27).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수고하는 마음을 소유한 자들임이 확실하다.
사람들이 루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는 지나친 과로에 시달린 나머지 침대에 곯어 떨어지곤 하였으며 심지어는 일년이 다 되도록 침대 커버를 바꾸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무디도 침대에 쓰러지면서 기도하기를 ‘주여, 너무나도 피곤합니다. 아멘’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큰 마음 곧 폭넓은 마음은 수고하는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는 위치에 있는데 복음을 위해서 애를 쓰고 있지 않고, 또 사명을 헌신적으로 수행하느라 피곤함을 느끼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사역하는 마음은 수고하고 애쓰도록 훈련받는다.
안락한 영역에서 벗어나고 자처하여 공격받기 쉬운 지점에 들어가며, 희생이 따르는 헌신 속에 살아가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곤할 때까지 일하며,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고, 거친 바다를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의 항해들은 성령이 충만한 항해이다.


다가가는 훈련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가 보여주는 또 다른 면은, 관계상의 어려운 난관에 부딪힐 때에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마음 자세를 가리킨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 하신 예수님은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이 서로 상종하지 않는 관계에 있음을 알면서도 상관하지 않고 접근하셨다.
400년간 이어진 유대와 사마리아 간의 혐오적인 관계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 기간동안 민족적 순결을 지킨 데 반하여 사마리아인들은 앗수르 침입자들과 결혼을 함으로써 민족적 순결을 버렸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에 대응할 만한 성을 그리심 산에 건축하였는데, 마카비 시대에 유대인들은 그것을 파괴하였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보았고 서로간에 상종하지 않았다. 이러한 서로간의 미움과 증오심은 예수님 당시에도 깊이 뿌리내려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다가가신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여자였다. 랍비들이 공중 앞에서 여자에게 인사하는 것을 금했을 정도였던 바리새인들이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의 잃은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것은 그 당시의 전통적인 장애물을 파격적으로 뛰어넘는 일이었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예수님은 인종적,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인 장벽들을 초월하셨다. 이로 인해 초대교회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부한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종이든 자유자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아무 차별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으로 사랑해 주셨다.


우리들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자연히 더욱 편한 감정을 느낀다.
부자가 부자를, 법조인이 법조인을, 농구선수가 농구선수를, 점원이 점원을 전도하기가 아주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과 초대교회가 이상적으로 여긴 방법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멀리 나아가서 장애물과 상관없이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우리는 인간 평등 사상과 함께, 죄인이 똑같은 죄인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기회는 사실상 무한정하다. 외로운 유학생들, 이민자들, 안정과 보호가 필요한 미혼모들, 최저 임금의 근로자들 등 우리가 길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전도와 사역의 대상들인 것이다.


장애물을 넘어서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처음에 밝혔듯이 우리에게 소극적인 마음이 아니라 훈련된 사역의 넓은 마음이 있다면 이것은 기도하면서 행할 수 있는 일이다.


통찰력을 갖는 훈련


예수님께서 우물가의 여인과 이야기를 나눈 일은 사역하는 마음의 특성을 암시한다.
주님은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일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미리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는 모든 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사람을 바라보았고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서 보내 주시는 사람으로 파악하였다. 사역하는 사람에게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란 없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자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거룩한 깨달음이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봉사하는 마음에 관해 선명하게 보이신 것은 사역의 삶을 사는 데 꼭 있어야 할 훈련들을 보여준다.
첫째로 봉사하는 마음은 수고하는 훈련을 받은 마음이다.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하여 애쓰고 노력한다. 본인이 불편함을 겪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안락한 생활이 침해를 받더라도 주님과 교회를 위해서 감수한다.
둘째로, 사역하는 마음은 다가가는 훈련을 받은 마음이다. 복음을 위해서 사회적인 장애들을 극복하며 심지어 다른 이의 비난도 감수한다. 자기와 아주 다른 사람에게라도 겸허하게 다가간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쓰시는 마음은 통찰력을 갖는 훈련을 받은 마음이다. 모든 인간관계들을 하나님이 만나도록 하신 영원한 존재들로 보는 능력을 말한다.
자,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어떠한 모양으로 살아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선택은 우리들의 몫이다. 소극적인 마음으로 인생이 부드럽고 안위롭게 순항하게 할 것인지, 넓은 마음으로 항해하면서 성령의 바람의 활기를 맛볼 것인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 연구 문제 ))


1.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택하고 있는 삶의 소극적인 태도는 무엇인가?

2. 또 다른 삶의 태도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서 설명하라.

3. 수고의 훈련, 다가가는 훈련, 통찰력의 훈련 중에서 당신에게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가?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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