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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강 사역: 헌금의 훈련
이드보라  2017-04-13 21:34:52, 조회 : 643, 추천 : 88

15. 헌금의 훈련

재물과 물질주의에 빠져 그들의 부와 명예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지구촌 곳곳의 삶의 모습은 늘 우리에게 경고를 한다.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가지고 있는 재물로 인해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념은 매번 실패하고 그 마지막이 참혹하다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재물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위험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와 같은 물질주의의 세력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경쟁 사회에서 떠나야 하는가? 금융가를 등지고 살아야 하는가?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가? 어떤 공동체 생활에 가담해야 하는가?  
주님께서는 세상과 사회를 떠나서 고립된 생활을 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다.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속에 물들지 않겠다는 이유로, 재물의 지배를 받지 않겠다는 이유로 세상을 등지고 세상에서 떠나가 살아가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떠나서 살아가는 길보다 더 선한 길을 반복해서 가르친다.
성경은 그것은 은혜 속에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한다. 오늘은 물질을 드리는 헌금생활의 훈련을 통해서 우리들이 재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신념들을 되짚어 보고, 은혜의 헌금생활을 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 주제와 관련된 가장 명백한 가르침은 고린도후서 8장에서 찾을 수 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들에게 헌금에 대하여 마게도냐 교회들이 보인 아름다운 헌금의 모범을 예로 들면서 가르치고 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헌금의 은혜라는 뜻임)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고후 8:1).
바울은 헌금을 드리는 일이 너무나도 큰 은혜라고 생각하여 은혜라는 단어를 1절에서 9절 사이에 5번이나 사용하고 있다. 헌금하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가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은혜로 드리는 헌금


바울의 교훈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가르친 성경의 교훈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과 관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십의 일조로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스라엘에서는 십의 일보다 훨씬 많은 헌금의 책무가 있었다.


여호와의 십일조


기본적인 십일조에 여호와의 십일조라고 불리는 것이 있었다. 레 27:30에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라고 말씀한다.
이는 백성의 모든 수확물과 가축의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돌렸다는 뜻이다. 백성은 제사장들의 사역을 부양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레위인의 십일조라고도 불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와 관련하여 반대의견을 가지지 않았다. 십분의 일을 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도덕질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말 3:8)


절기 십일조


두 번째 십일조는 흔히 절기 십일조라고 불리운다. 신 12:10, 11, 17, 18에 따르면 이 십일조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때 내게 되었다.
여호와의 십일조의 목적은 영속적인 사역을 지지하는 데 있는 반면에, 이 절기 십일조는 종교적인 절기와 이스라엘 백성 상호 공동체를 세우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 두 십일조를 합치면 모든 수입의 20%를 의무적으로 드리는 것이었다.


구제 십일조

신 14:28-29을 보면, 세 번째 십일조 곧 구제의 십일조를 바치라는 명령이 있다.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내어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이나 성에 우거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먹이라는 명령이다. 그리하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주시리라고 말씀한다.


자력으로 생계를 꾸릴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 십일조는 매 삼년째의 10%이기 때문에 매년 3.3%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이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십일조를 모두 합하면 매년 모든 수입의 23%이상을 십일조로 바치는 것이 되었다.

이 세 가지 의무적인 십일조들은 제사장들의 생계비와 국가적인 절기 행사 비용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금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레위기 19:9-10에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이삭을 남겨두라고 하였다.
또한 기타 세금으로 하나님의 전에 사용할 성물을 위하여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의 일을 내야 했다(느 10:32-33). 모든 것을 계산해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해마다 최소한 소득의 25%는 내도록 되어 있었다.


은혜로 드리는 헌금


여기까지 세 가지의 의무적인 십일조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25%의 십일조가 정확한 한도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헌금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은 의무가 아닌 예물, 은혜로 드리는 헌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쳤던 것 중에 자기의 곡물이나 생축의 첫 소산을 드리는 ‘첫 열매의 제물’이 있었다(민 18:11-13).
이 제물은 농작물을 다 추수하기 이전에, 최종적으로 작물의 소산이 얼마나 되려는지 알지 못하는 때에 이것을 행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추수할 것들을 넉넉히 주실 것을 신뢰하면서 첫 소산 가운데 최고의 것을 드렸다. 이것은 믿음으로 드리는 일이었고 자발적인 것이었고 넉넉하게 드리는 것이었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을 때 요구하신 자발적인 예물들이 있다.
출 25:2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진해서 마음에 우러나와서 드리도록 하라’는 것 외에 그 어떤 지시도 말씀하지 않았다.
그런데 백성들의 반응은 모세가 그들에게 자원해서 드리는 일을 이제 그만두라고 말해야 할 정도로 훌륭했다(출 36:2-7).
하나님의 은혜로 넘쳐 나는 마음에서 드리는 일은 그것이 의무적인 것이든 자발적인 것이든 항상-구약 시대이든 신약 시대이든- 하나님의 백성이 지향해야 할 이상이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으로 생각하며 드리는 일로 넘쳐 날 때 그 사람의 소득의 상당한 양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은혜로 드리는 헌금


바울은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놀라운 정도로 풍성한 연보를 낸 마게도냐 교인들을 칭찬하면서 은혜로 드리는 연보에 대한 가르침을 시작한다(고후 8:1-2).
극한 가난이란 말은 ‘Bathysphere’라는 말의 유래가 된 단어로 바다의 심연을 정밀 탐색하는 배를 가리키는 데 사용한 말이기도 하다.
최저 바닥의 생활, 최악의 빈곤을 뜻하는 말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는 가난하다’라는 개념이 아니다.
그들의 경제적인 처지가 극빈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환난의 많은 시련을 겪었다. 문자적으로 그들이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들에 꽉 붙잡혀 있었다는 뜻이다. 그들의 주변문화는 그들을 거절했고 그들이 그리스도께 헌신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런 중에 그들에게는 넘치는 은혜의 풍성함을 맛보았고 넘치는 기쁨과 합하여 풍성한 연보를 드리게 된 것이다.
바울은 3-4절에서 그들이 ‘힘에 지나도록’ 헌금하였다고 말씀한다. 덧붙여 교인들은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간절히 구하였다’고 말씀한다.


헌금의 은혜는 부유한 것과 상관이 없다. 능력에 의해서 좌우되지도 않는다.
기꺼이 헌금하려는 마음이다. 헌금하는 것은 성도의 특권이다. 기쁘게 열심을 내는 것이고 더 많이 헌금하려고 기회를 구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런 헌금을 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5절에 보면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라고 말씀한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 드릴 때, 다른 사람을 구제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영적 상태의 자연스런 반응이라고 말하겠다.
우리가 이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린 상태에 있다면 우리 소유의 일부를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 주는 일은 아주 수월한 일이 된다. 은혜로 드리는 헌금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서 시작하고, 이같은 일이 선행되지 않으면 은혜로 드리는 헌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롬 12:1).


은혜로 드리는 헌금의 영향


바울은 마게도냐 교인들이 보인 헌금의 모범을 고린도 교인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높이 부각시킨다(고후 8:6-7). 고린도 교인들이 헌금 외에 많은 칭찬할 만한 은사를 가졌으나 헌금의 은혜를 배우기 전에는, 그들이 될 수 있고 또한 되어야 하는 그런자가 결코 되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님께 드리는 일이 없이 영적인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돈을 가지면서 우리의 마음을 가지지 못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돈 전부를 가지는 일이 없이 우리의 마음을 소유할 수는 없으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마 6:21).


예수님은 천국과 지옥, 성적 부도덕과 폭력에 관한 말씀보다 돈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하셨다. 부자 청년에 대한 말씀의 요지는 재물의 힘을 의지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셨다(마 10:25-27).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께 책망을 받게 된다. 모든 탐심 때문에 그 생명의 귀함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의 결국은 저주와 심판 뿐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들은 자신을 줄 뿐 아니라 자기의 재물도 드리는 자이다.
물질주의의 세력에서 벗어나는 길은 문화에서 벗어나거나 금융가에서 떠나거나 국가의 부를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헌금에 있는 것이다.
은혜로 드리는 헌금은 단순히 십일조를 드리는 것 이상의 일이다. 어쩌면 곤란한 정도까지 재물을 내어 헌금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은혜로 헌금을 드리는 사람은 생활 양식에 영향을 끼친다. 헌금 때문에 어떤 물건을 소유할 수 없게 되며, 어떤 물건을 포기하게도 된다.


하나님을 위해서 헌금하는 자들은 돈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그 위에 선다.
다른 신앙생활의 부분들을 잘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헌금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그 부분을 소유하지 못하고 계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로 드리는 헌금이다. 첫 열매의 소산을 드리되 나머지 모든 소산을 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가장 최상의 것을 드려야 한다.
또한 모세가 그만하라고 명령해야 했을 정도로 몸소 실행했던 자원하는 헌금, 마게도냐 교인들이 더 많은 헌금을 할 기회를 구하며 풍성하게 드렸던 ‘은혜로 드리는 헌금’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 헌금의 은혜를 일으킨 것은 헌금에 대한 궁극적 모범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이다.
그는 만유의 주인이시지만 우리를 위하여 세상의 비천한 종이 되시고 모든 것을 다 비우시고 드린 분이 아니신가? 주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헌금의 은혜를 일으키셨다.


헌금의 훈련


하나님의 은혜는 훈련을 요구한다. 헌금의 은혜에 있어서도 헌금의 훈련이 필요하다.


-지적인 훈련

외적인 훈련을 하기 앞서, 우선 헌금에 대한 훈련된 이해가 필요하다.
첫째로, 헌금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높여줄 만한, 칭찬할 만한 일이 아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보다 더 낫게 만들지 않는다.
둘째로, 하나님으로부터 점수를 따는 일이 되지 않더라도 헌금이 복을 가져다 주는 일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눅 6:38).
셋째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헌금은 후하고 희생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넷째로, 당신은 헌금하는 것이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서 결정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발적으로 드리거나 성의없이 결정되어서는 안되며 신중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어야 한다.


-의지의 훈련


헌금에 대한 지적인 이해가 되었다면 헌금의 행동이 따라야 한다.
첫째로 헌금의 행동은 주님께 자신을 드리는 일을 시작으로 하여야 한다. 이 일 자체가 벌써 예배이다(롬 12:1).
둘째로, 모든 신자들은 적어도 첫 번째 십일조를 헌금의 출발점, 즉 최소한의 헌금으로 삼아야 한다.
극한 가난 속에서 은혜의 헌금을 낸 마게도냐 교인들의 연보는 분명히 자신들의 소득의 10%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10%정도였다면 어떤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극한 가난 속에 살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헌금은 정기적으로 드리는 일이 되어야 한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한 권면의 말을 들어보면 매주일 첫날에 연보를 하게 하라고 하였다. 정기적이고 조직적인 헌금, 정기적인 헌금이 성경적이다.
넷째로, 당신은 지금 당장 헌금을 시작해야 한다. 헌금할 수 있는 형편이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번도 헌금하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헌금은 즐겨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즐겨내는 자를 사랑한다고 고후 9:7에 말씀한다. 즐겨낸다는 것은 기쁨에 겨운이라는 말이다.
헌금을 하기 위해서 계산의 오차가 있을까봐 계산기를 두드리지 말아야 한다. 헌금을 하는 행위는 복된 것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는가?(행 20:35).
모든 성도들이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소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충성되고 그것을 위해서 훈련을 받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 연구 문제 ))

1. 구약 시대의 헌금과 신약 시대의 헌금은 서로 다른가? 동일한가? 설명해 보라.

2. 바울이 칭찬한 마게도냐 교인들의 헌금의 모범에 대해서 설명해 보라.

3. 당신은 헌금에 대한 지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는가? 의지의 훈련을 통해서 고쳐야 할 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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