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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강 사역: 지도력 훈련
이드보라  2017-04-12 11:18:35, 조회 : 659, 추천 : 104

14. 지도력 훈련


지도력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지도력을 추구하고 동경하는 무리가 있는 반면 이를 거절하고 반항하며 비관적인 생각에 의견을 일치하는 무리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서 리더쉽이라는 말은 너무나 광범위하게 쓰여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올바른 개념은 찾아보기 어렵다.
교회는 지도력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지도력의 부재로 여러 가지 고통을 갖고 있는 실정이다.
194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최근 수십년간 교회에는 활력있는 지역교회와 평신도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유능한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지금 여러 가지 통계에 따르면 확실하게 교회 내의 남자의 지도력은 쇠퇴하고 있다.
작은 규모의 교회에서는 장로의 책무를 이행할 남자를 찾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남자 성도들의 수는 여자 성도들의 수에 비해서 매우 적은 편이다.
그리고 교회의 봉사와 헌신이 필요한 곳에 소극적으로 임하면서 무거운 책무를 지려하는 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도력의 부재, 지도력에 대한 혼동 때문에 교회는 방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과는 다르게 성경에서는 위대한 지도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영적인 지도자들의 인격과 자질 그리고 임무 등에 관한 특별한 가르침을 통해서 지도력에 대한 분명한 교훈까지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교회는 지도력을 상실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에 최고의 신뢰를 두고 있지 않고 유행과 세상 풍조에 따라서 지도력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쫓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영적 지도력을 위한 준비


영적인 지도력에 꼭 필요한 자질들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보자. 모세 오경 가운데에서 여호수아에 대한 기사들은 우리들에게 영적인 지도력에 대한 포괄적인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기도


출 17:8-9은 아말렉이 이스라엘 후방에 있는 낙오자들을 침공한 뒤에 여호수아에 대한 첫 언급을 기록하고 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당시 모세는 80세의 고령이었다. 그는 홍해를 가를 때 사용되었던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 때 여호수아는 부대를 지휘하는 야전군 지휘관이었다.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모세가 팔을 들고 중보의 기도를 할 때 이스라엘의 전세가 우세하게 기울어졌고 그의 팔이 내려올 때는 전세가 불리해졌다.
때문에 아론과 훌은 모세를 돌 위에 앉히고 양 편에 서서 그의 팔이 하늘을 향하도록 붙들고 함께 기도하였고 이스라엘은 승리를 거두었다.


여호수아는 진정한 힘이 자기의 칼에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나서 사람들이 그를 추켜 올리고 노래하였지만 그는 승리의 원인이 하나님에게 있었으며 승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모세와 아론과 훌을 기억하였다.
그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기도였다.
E.M 바운즈 목사는 훌륭한 영적 지도력을 가진 자들이 그들의 탁월함 때문이 아니라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세상이 말하는 지도자상과 얼마나 반대되는가?
세상이 가장 먼저 고려하는 지도자의 능력은 매력과 활력이다. 즉 사람들을 끄는 카리스마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첫 번째로 꼽으시는 지도자상은 기도이다.


환상


출애굽기 24장에 나오는 여호수아에 대한 언급을 살펴보자.
모세가 율법을 받기 위해서 시내 산에 올랐다. 또 모세, 아론, 나답, 아비후, 그리고 이스라엘의 70장로들(그 중에 여호수아가 있다)이 그 산으로 부름을 받았던 일에 대한 기록이다.
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을 멀찍이서 바라본 뒤에 장로들은 그 곳에 남고 여호수아와 모세는 그들보다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13절).
여호수아는 영광스런 구름이 시내산을 덮은 6일동안 모세와 함께 있었다(16절). 그리고 제 7일에는 여호수아를 홀로 남겨두고 모세 혼자서 시내 산에 올라가 40일간 있었다(18절).


여호수아는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한’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다(10절). 모세가 시내 산에 걸쳐 있는 붉게 물든 천둥치는 구름 위로 올라가서 율법을 받는 동안 40일동안 홀로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과 능력에 대하여 깊은 감동을 맛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에게는 그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환상의 사슬이 있다.
하나님께서 천둥과 번개가 치는 시내 산 중에 있는 모세를 바위 틈에 숨기시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그의 곁을 지나게 하시는 광경을 생각해 보라(출 33:21-23).
이뿐 아니라 여호수아는 여리고 전투 직전에 하나님, 곧 ‘여호와의 군대 장관’을 만났다. 여호와의 군대 장관은 전신 갑옷을 입은 병사같았고 그의 칼은 달빛에 번쩍였다. 여호수아는 그에게 경배하였다(수 5:13-15).


다윗은 젊은 목동의 시절에 하나님에 대한 환상을 체험하였고,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깊이 생각하였다.
이사야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시고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환상을 보았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이 변화되어 그 영광이 해같이 빛나는 모습을 보았다.
사도바울은 삼층천에 올라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을 보았다.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환상을 갖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당신이 복된 환상을 본 일이 전혀 없다고 해서 지도력을 발후하는 것을 지연하거나 그것을 평가 절하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환상에 대한 두 개의 위대한 책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구약과 신약의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본 환상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영광을 계속해서 계시하고 계시하고 있는 성경책이 있다.
이 거대한 환상은 언제나 우리 앞에 있다. 하나님의 계시는 또한 만물에도 나타난다.
하늘의 별과 달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위대함을 증거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광대하심에 대한 풍성한 계시를 받기 위해 성경을 펴고 만물을 바라보며 주께 은혜를 달라고 구해야 한다.


개인 예배


출애굽기 33장의 기록을 통해서 지도력을 위한 여호수아의 준비에 대한 면을 살펴보자.
구름 기둥이 회막 위에 있는 동안 여호수아는 회막에서 모세와 함께 봉사하고 있었다.
11절 말씀에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라고 하였다.
여호수아는 모세처럼 하나님과 대면하여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의 임재를 경험하고 난후 좀처럼 회막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열정과 사모함이 있었다. 그 곳에 머물기를 원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또 다른 성경의 인물을 찾아보자. 눅 10장에서 기록하는 베다니의 마리아이다.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았다. 언니의 비난을 들으면서도 예수님이 계신 방을 떠나지 않았다.
주님은 그에게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눅 10:42). 값진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은 이도 이 마리아였다.


진정한 영적인 지도력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예배와 개인생활의 예배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관대함


민수기 11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모세의 수종자로 봉사하고 있을 때 당황스러운 소식을 들었다. 엘닷과 메닷이라는 일부 장로들이 이스라엘의 진에서 예언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것은 모세의 영적 지도력에 모욕적인 일이었다. 당시에 모세만이 이스라엘의 특별한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모세를 위하여 시기한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이를 알리고 이를 금하여 달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모세는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하였다(민 11:28-29).


이 사건은 여호수아에게 분수령이 되는 경험이었다. 모세의 관대함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지도자로서 적합하지 않은 사람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일들을 보면 여호수아는 이 사건을 통해서 속좁은 반응을 보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도량 넓은 지도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진정한 지도자는 다른 이를 못마땅해하거나 책잡을 것을 살피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능력을 찾아주고 인정해주고 함께 세워주는 일들을 하는 사람이다.


모세 오경에서 여호수아를 ‘모세의 종’으로 자주 지칭한다. 종이라는 말은 항상 ‘종속’의 개념을 포함한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는 날까지 그의 종으로 남아있었고 늘 그를 따르며 그 자리에 자족하며 모세를 받쳐 주는 일들을 하였다.
영적인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는 사람은 상대방에 대해서 또 주위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넓은 마음을 품고 도와주는 제2, 제3의 여호수아들이다.


믿음


민수기 13-14장의 기록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는 사건을 말씀해준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에 앞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다. 그 중 여호수아와 갈렙이 정탐을 하고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은 땅이 풍부하고 기름지다는 내용에서 일치하였다.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성읍이 요새화 되어있고 거인들이 있어서 정복이 불가능하다고 보고하였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보고였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10명의 정탐꾼의 말에 귀를 빌려주고 마음을 주었다. 심지어는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돌을 들어 치려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에 이르렀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백성들은 40년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게 되었다.


여호수아에게 이 사건은 아주 크고 명백한 교훈으로 남았다.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다수의 논리가 그릇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기독교와 복음의 역사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다수의 의견이 정의가 되고 진리가 되는 오류는 오늘날에도 허다하다. 다수의 횡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성경적인 지도자들은 다수와 소수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한 의견과 생각을 말하였다. 이것이 훌륭한 지도자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들은 고독하고 외로울지 모른다. 그러나 시내산에서 본 위대하신 하나님의 환상, 말씀을 통해서 본 광대하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그로 하여금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게 하였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지도자들의 삶의 기본 원리는 오직 믿음,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믿음 뿐이다.


또한 모세는 여호수아의 이름을 호세아(구원)에서 여호수아(여호와는 구원이시다)로 바꾸었다. 이 이름은 지도자로서 최고의 영예를 나타내는 이름이다. 예수님의 이름도 여호수아의 헬라어식 표기이다. 이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의 이름이다.


성령


민수기 26:65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이 40년동안 광야생활 뒤에 모압 평지에 이르렀을 때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고 말씀한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여호수아를 임직하였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라’고 말씀하였을 때 Spirit 의 단어의 첫 자가 대문자 S 인것을 볼 수 있다.
여호수아가 영적인 지도자로 세움 받을 때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이다. 영적 지도력은 뛰어난 영적 능력의 원천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을 가르쳐 준다.
사도행전 6장에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을 세울 때의 기록도 이를 증거한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고서는 결코 영적 지도력을 가질 수 없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다는 것은 삶 속에서 범하는 죄를 지속적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하며, 또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하시기를 구하면서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희생

여호수아에 관한 또 다른 언급을 찾아보자. 모세 오경 맨 마지막 장인 신명기 34장의 내용은 모세의 죽음에 관한 기록이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로부터 여호수아에게 지도자가 승계되었다. 모세가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였다고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지도자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지도자를 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도자의 일을 감당할 때, 그 사명을 감사히 여겨야 하고 우리 자신을 자랑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지금까지 여호수아에게 있었던 지도자상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 무엇보다 확실한 것 하나를 말하려고 한다. 그것은 지도력에는 반드시 성취하고자 하는 이상과 꿈, 비젼,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와 신념이 지도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그가 전달하는 능력과 기술은 그 다음이다.

확실한 신념을 가진 자는 이제 명료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능력을 소유해야 한다. 그리고 훌륭한 지도자는 일하는 사람들, 유능한 사람들을 두고 그들과 의논하며 함께 이끌어 간다. 모범을 보이며 그들로 하여금 억지로 따라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납득하여 따라오도록 만든다. 그리고 오래 참고 인내하며 구성원들을 이끌어준다.


세상의 어떠한 지도자상도 이런 것을 말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지도력은 방법에만 치우친다. 그러나 기독교의 지도력은 영적인 것이며 목적의식을 뚜렷이 갖는다.
우리가 가진 지혜와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하며 성경적인 지도력을 발휘한다.
이제 여호수아의 모범을 통해서 늘 중보기도에 힘쓰며, 하나님과 예배와 헌신에 대해서 열정을 더하며, 다른 이를 기뻐하는 관대함과 믿음을 가지고, 나는 하나님께 소모성을 지닌 수단임을 잊지 말고 겸손하게 나아가자. 우리는 거룩한 땀을 흘리며 지도자로 서야 한다.



(( 연구 문제 ))

1. 당신은 영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한 준비사항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2. 다수의 논리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3. 세상에서 추구하는 지도자상과 성경적인 지도자상은 어떻게 다른가?


임 바울
제 14 강 지도자 훈련
1. 당신은 영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한 준비사항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기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영적 지도자들과 선지자들과 선한 왕들은 기도의 삶을 가졌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면서, 하나님앞에 서 있음으로 해서 내 모습을 볼 수가 있게 한다.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환상은 여기에서 시작을 하고, 이웃에 대한 관대함이나 사랑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기도는 이 땅에서의 삶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말렉과 여후수아와의 전투에서 볼 수가 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이미 가장 강한 여리성을 패배시킨 경험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신 만만하였고, 또한 군사력도 대단한 것을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런데 싸움의 승패는 군사력에 있지 않음을 볼 수가 있다. 그렇게 잘 갖춘 이스라엘이지만, 산 위에서 모세의 손이 내렸을 때에는 후퇴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손이 올라갔을 때에는 전진하는 것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군사력 때문에 좌우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군사력을 앞으로 전진시키느냐, 또는 후퇴하느냐는 바로 산위에 하나님께서 뽑아주신 모세의 기도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기도는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도의 열쇠는 무엇일까? 전에 배웠던 것처럼 의지와 결단이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겠다는 결단이 없이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도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기도를 하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2. 다수의 논리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민주주의의 다수의 원칙은 아름답다. 그러나 항상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기본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싱카폴의 수상으로 있었던 이 광요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망치는 최고의 적이다”라고 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들은 민주주의는 철학자들에 의해서 운영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철학자들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아는 사람들에게 평민들보다 더 많은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잘못된 다수의 횡포를 막기 위한 발언이다. 다수는 힘이 될 수 있지만, 또한 망하는 길을 가속화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횡포를 성경에서도 볼 수 있다.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탐지하고 돌아온 12명의 보고서가 있었다. 2명은 하나님의 입장에 맞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10명은 가나안 땅을 악평하였다.

백성들은 2명의 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하고, 10명의 보고서를 채택하였다. 그리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여론을 조성하였다. 이 결과 악평을 한 10명은 즉시로 하나님의 재앙으로 죽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1일을 1년으로 계산한 40년의 광야생활을 했다. 그리고 애굽에서 나온 603550명중에서 두명을 제외한 603648명은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버리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잘못된 다수가 부리는 횡포가 빚은 지구상에 가장 비참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교회는 기독교인의 바른 세계관을 가진 백성들을 양육하는 일에 부지런해야 한다. 온갖 미디어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기독교의 세계관을 선전해야 하고, 특히 정치에서 기독교인의 사상과 일치하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한다.

3. 세상에서 추구하는 지도자상과 성경적인 지도자상은 어떻게 다른가?

먼저 성경적인 지도자와 세사의 지도자에게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있다. 첫 번째는 “ 꿈과 비전과 목표”이다. 두 번째는 이것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이다. 이 두가지는 지도자가가 일을 추진하는 데에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우선순위이다. 첫 번째의 것을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 성경적이 지도자상이다. 두 번째의 것을 우선시할 때에는 지구상에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과 대량학살은 바로 이런 순위가 잘못된 선택을 하였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지도자는 반드시 꿈과 비전과 목표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이 꿈과 비전과 목표는 반드시 하나님이 말씀과 흐름이 같아야 한다. 그리고 이 꿈을 성취하기 위한 능력과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비록 꿈과 비전과 목표가 능력과 기술의 부족으로 성취할 수 없다고 하여도, 인류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능력과 기술이 풍부하지만, 꿈과 비전과 목표가 잘못되었을 때를 생각해보라. 비록 잘못된 목표이지만,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해가 발생하게 되는지 모른다.

오늘날 새누리당의 조원진 의원은 “ 원칙”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원칙에 맞는 기술과 능력을 갖추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홍준표, 정규제등은 능력과 기술이 먼저인 사람이다. 우리는 대통령을 될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사람을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과 목표를 갖게 되면, 확신을 가질 수가 있다. 그래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어떤 것도 하는 일들을 하지 않을 수가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확신을 가질 수 있고, 또한 이 확신은 흔들리지 않는 기술과 능력을 부여한다.
2017-04-17
21:3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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