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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학기 '성결' 제 19 장 "때를 분별함"
이드보라  2015-08-03 11:29:17, 조회 : 1,638, 추천 : 366

                                                         거   룩                      
                                                                                                             <J. C. 라일>

                                              - 제 19 장 때를 분별함 -

대상12:32 그들은 때를 잘 분간할 줄 알고

본문의 말씀은 다윗이 이스라엘 통치를 시작할 때 잇사갈 지파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다.
사울이 죽고 난후 새롭게 세워질 왕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 하고 있을 때 잇사갈 지파의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을 보였다.
잇사갈 지파또한 거룩에 있어서 좋은 예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지금 처한 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 시대의 요구가 어떠한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전투 속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지혜롭다고 믿는다.

1.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는, 온전한 기독교의 진리와 성경의 신적권위를 담대히 주장하고 지키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첫 번째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오늘날 배교와 회의주의 등 세속주의가 만연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에 대한 배반과 공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불신자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마져도 성경의 권위에 대해 가벼이 여기고 심지어 허구로 생각하기까지 한다.
이성과 과학이 발달한 지금, 기독교를 서슴없이 반대하되 현대과학과는 너무 거리가 먼 무식하고 감정적이며 터무니없는 종교로 깎아내리고 있다.
믿는 자들조차도 견고한 반석위에 서질 못하고 성경의 증거들에 대한 불신과 성경 자체의 권위에 코웃음을 친다.
이러한 일들은 갑자기 생겨난 현상들이 아니라, 옷만 바꿔 입은 옛 원수요 모양만 바꾼 옛 질병이다.
아담과 하와 때 그들을 미혹하였던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흔들고 조롱하며 끊임없이 사람을 미혹하였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믿음에서 멀어지도록 힘써왔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제아무리 무섭게 다가온다 하여도 하나님의 방주는 전혀 안전하다.
과거에 기독교를 흔들었던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기독교의 가면을 쓰고 공격해 왔지만, 기독교를 망치지 못하였다. 기독교는 이 세상의 똑똑한 자들의 공격에 견뎌낼 것을 확실히 믿는다.
기독교의 교리를 교묘히 가리고 무시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버리는 동시에 인간의 능력과 고귀함을 강조하는 일들, 그 일로 인해서 견고하지 못한 신앙인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일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아주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절대로 설명할 수 없는 절대 진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세 가지로 구분하여 간단히 설명해 보겠다.

첫 번째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존하셨던 분이시다. 그분에 대하여 강압적으로도, 뇌물로도 세상에 깊은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인간 역사 이래로 다시 그분과 같은 다른 이가 나타날 수 없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믿음이 없는 자들은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오직 계시종교의 위대한 근본 원리로만, 오직 믿음으로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며, 그의 복음이 진리임을 설명할 수 있다.
두 번째 사실은 성경 자체이다.
기독교가 정말 사람이 지어낸 책이라면, 어떻게 성경이 지금과 같은 책이 될 수 있을까?
저자들이 살던 시대는 사전 조율도 공모도 할 수 없는 시대들이었다. 저자들은 문학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던 시대와 나라의 사람들이었고 각기 다른 때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 책이 심오하고도 단순하고 지혜롭고 완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다.
오직 이 책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책이라고 믿는 사람만이 설명할 수 있다.
세 번째 사실은 기독교가 세상에 미친 영향이다.
기독교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고, 단지 사람이 지어낸 것이라면 기독교가 인류 역사 전반에 이루어낸 완전한 변화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기독교가 뿌리내린 나라들마다 변하여지고 발전하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이 세가지만 기억하여도 우리는 회의주의자들과 세속주의자들의 도전에 응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 그들은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는 설명할 수 있지 않은가?

2. 이 시대는 우리에게 기독교 교리에 대한 분명하고 확고한 견해를 요구한다

19세기의 교회는 회의주의자들로 인하여 외부적인 손상을 입었을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교리문제에 큰 타격을 받았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이 교리적인 차이를 분간하지 못하고 분별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듣고 있는 설교가 비성경적이고 오류투성이이고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 대하여 설명하여도, 분별하지 못하고 무작정 받아들인다. 감상적인 박애와 관용에 길들여져서 다른 복음을 전하여도 그것이 옳겠거니 하고 아멘으로 화답한다.
평생을 교회를 다니고도 성경을 알지 못하고, 칭의와 중생과 성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성도가 얼마나 많은가?
논쟁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과 혐오감에 사로잡혀서 불확실한 것들 가운데 거하기를 좋아하고 어떠한 확신도 위로도 갖지 못하고 살아간다.
본성적으로 우리는 진리에 무지하여서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조명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다. 신앙에 열심을 내지만 그 신앙의 원리가 어디에 있는지 관심없는 자들은, 이제 그 불가지론에서 벗어나서 우리가 속해있는 기독교의 내용이 무엇인지 교리에 관심을 가지고 분명하고 확고한 사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거룩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성화의 길을 가고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우유부단함을 벗어버리고 분명하고 예리한 교리적 신앙으로 옷갈아입어야 한다.
기독교 역사상 승리가 울려퍼지는 곳에는 확실한 교리와 신학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교리없는 신앙은 오래가지 못하고 사그라들고 말아 남아있는 것이 없게 된다.
우리는 믿음의 선진들이 갔던 길처럼 교리를 고수하고 신앙의 무기로 삼는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적극적이고 복음적인 교리가 없이는 복음전도도 없기 때문이다.

3. 이 시대는 우리에게 비성경적이고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 로마 카톨릭의 특징을 분명히 자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소리는 분명히 내야할 만큰 절실하고 필요한 주제이다.
로마 카톨릭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어떠냐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로마 카톨릭의 신학과 가르침을 혐오하고 싫어했던 나라와 교회들이 그들에 대하여 사랑과 관용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그들도 많은 종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거나 기독교보다 더 나쁠것도 좋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관대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미신 천지의 구렁텅이로 이끄는 것이요 종교개혁의 복을 걷어버리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은 지칠줄 모르는 열심을 내어 포교한다.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기 위해 열심을 불사르며 그들의 교리를 가르친다.
그동안 개신교는 교리와 신학 위에 우뚝 서서 싸움을 한 것이 아니라 서로 헐뜯고 조롱하며 한없는 사랑과 용납만을 강조하며 끝도 없이 타락하고 있다. 로마 카톨릭의 신조에 별 위험이 없다 믿으며 그들을 그냥 두기를 원하였다.
로마 카톨릭의 교리에 무릎꿇기를 원하는가? 신앙에 대하여, 신앙양심에 대하여 개인적인 판단이 금해지고 성경을 읽는 일이 제한될 것이다. 하나님을 버리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들을 섬기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닌 나의 공로를 자랑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에게 버림받게 될 것이다.
어딜 가나 비천하고 가난한 자들로 넘쳐나게 될 것이고 믿음을 저버리고 회의주의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의 가치에 대한 적극적인 방어와 공격의 태도가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면 이 모든 일이 분명히 일어나게 될 것이다.
종교개혁이 얼마나 복된 일이었는가?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교황주의를 깨부수고 오직 은혜와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짖은 것을 잊었는가?

성경을 읽고 성경을 숙지하기를 바란다. 성경을 읽는 평신도가 이 나라를 오류에서 지켜낼 것이다.
교회의 바른 가르침과 합하여 자신들의 각자의 성도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기만 하면 더 이상 걱정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오늘날의 목회자들, 교회, 그리고 모든 평신도들은 다시 한번 일어나야 한다.
로마 카톨릭의 교리는 교회와 국가를 파멸로 이끈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일들은 마지막 심판까지 계속될 것이다.
남아메리카를 저리 만들고, 유럽을 저리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로마 카톨릭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이 오늘날 부강한 나라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종교개혁의 원리가 살아있고 누구나 자유롭게 성경을 읽을 수 있고 성경대로 생활하도록 가르쳤기 때문이다.
흑암 가운데 있던 자들이 빛을 보게 되었고 사제의 횡포 아래 있던 자들이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은 속죄와 믿음과 은혜와 참된 거룩에 대하여 외인이었던 자들이 모든 것을 누리는 열쇠를 쥐게 되었다.

종교개혁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바란다. 이 시대는 로마 카톨릭의 악함과 더불어 기독교 종교개혁의 엄청난 가치를 새롭게 자각해야할 시대이다.

4. 이 시대는 더 높은 수준의 개인적인 거룩을 요구하며 일상에서의 실천적 신앙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들,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다. 알맹이 없는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이토록 많은 때가 또 있었던가?
그리스도인의 이름에 걸맞는 거룩과 선한 행위들에 대한 인식수준 또한 퇴보하고 타락하였다.
성화에 대해서 거룩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주일날 교회를 참석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 말하지만, 주 6일간의 날들은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전혀 없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지 못하고 무엇이 해롭느냐고 반문하는 자들은 얼마나 많은가?

금욕주의를 조장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수도원과 수녀원처럼 세상과 담쌓고 결별해야만 신앙의 거룩을 쌓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비성경적이고 해로움만 끼치는 가짜 치료제이다. 그리스도의 완전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장부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진작시켜서 신자가 어느 자리에서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향기를 내고 소금맛을 내는 자들이 되어서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높은 수준의 거룩에 이르는 길은 너무도 단순하다.
우리의 오랜 친구인 십계명을 더욱 주의깊게 살피고 실천적 신앙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구약의 십계명을 소홀히 다루고, 십계명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만큼 십계명이 필요한 시대가 어디에 있겠는가?
주님의 산상설교가 필요한 때가 따로 있겠는가?
사도바울이 서신들마다 마지막에 실천적 교리에 대해서 주장한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 부분들은 하나도 가볍게 다뤄지거나 무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해석과 가르침이 오늘날 무시되고 있다.

기독교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셨다는 교회가 세상을 뒤흔들지 못하고 있는가? 그것은 당신의 삶이 너무 낮아졌기 때문이다.
각 성도의 삶의 수준이 거룩과는 거리가 멀고 이것이 기독교 전반의 현상이 되었고, 그에 대한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실천적 거룩의 표준이 현저히 드러났던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자기부인, 세월을 아끼는 것, 사치와 방종을 물리치는 것, 이 땅에 속한 것과 구별하는 것, 주님의 일에 대한 분명한 태도, 신실한 마음, 단순한 가정생활, 일상에서의 경건한 대화, 인내와 겸손과 정직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상을 감화시키는 것은 삶이다. 세상이 멸시한다 하여서, 세상이 귀기울이지 않는다 하여서 당신도 따라가겠는가?
비아냥 대는 세상을 단번에 바꿀수는 없다 하여도 일상에서의 철저하고 명백한 거룩의 삶은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시대가 거듭되면서 바뀌어질 것을 확신한다.

5. 마지막으로 이 시대는 우리의 영혼을 기름지게 할 옛 방법들을 일상에서 확고히 지켜가기를 바라고 있다

예배의 처소가 많아지고 기도모임과 설교가 늘어난 지금, 가히 대중적이고 공적인 신앙활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시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대중적이고 공적인 집회와 모임이 많아진 것을 비난하고자 하는것이 아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신앙생활을 동반하지 않는 대중적인 신앙활동은 견고하지 못하고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우려할 만한 결과를 낳기 쉽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스럽다.
인기 있는 설교자를 쫓아다니고 열광적인 대중 집회에 참석하는 일은 자칫 건강하지 않은 기독교를 양산하게 되고 영혼의 파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대중적인 신앙활동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고, 일시적인 종교적 흥분과 자극 때문에 자신의 신앙을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속적인 만족을 위해서 더 큰 흥분과 자극을 찾되, 여의치 않을 때는 불만과 권태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대중적인 신앙활동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 각 사람의 은밀하고 개인적인 신앙생활은 모든 생동적인 기독교의 뿌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개인기도에 더욱 열심내야 하며, 개인 성경읽기에 전력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묵상과 그리스도와의 친교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영적 번영은 우리 개인의 신앙생활에 달려있다.
우리들의 복음주의 조상들은 우리가 지금 누리는 방편이나 기회보다 훨씬 열악하였으나 가진 방편과 도구들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는 이들을 따라올 자가 없다.
그들은 개인적인 신앙생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하나님과 친밀히 동행하며 그를 섬겼기 때문이다.

이제, 실천적 적용을 할 준비가 되었는가?
사상의 자유라는 허울 아래, 분열을 조장하지 않겠다는 그럴듯한 구실 아래, 관용과 박애라는 미명하에 교리적 진리에 대한 어리석은 태도를 취하지 않기를 바란다.
결단할 날이 오기만을 바라면서 미루고 허비하다가 결국 문이 닫히고 굳은 양심으로 죽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의 영혼과 관련하여,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영혼과 관련하여 기회를 붙잡고 유익하게 사용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지금 속해 있는 이 시대에 배교자와 불신자와 자유주의자들의 위협속에서 기독교 종교개혁의 원리를 고집하고 나아간다면 애써 싸우고 달려간 그 일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주위와 환경과 속해있는 곳 모두에 헛되지 않을 것이다.


(19장 문제들)

1. 오늘날, 기독교를 향한 최대의 공격은 무엇인가?

2. 이 공격에 대항하여 이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1번 문제와 연관하여 답하시오)

3. 기독교 교리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라. 개인적인 견해도 첨가하시오.

4. 로마 카톨릭에 대한 바른 이해는 우리의 경건생활에 어떤 유익이 있는가?

5. 이번 학기의 배움을 통해서 개인적인 신앙생활, 거룩의 생활에 대한 변화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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