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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부 설계로 부터 논증 : 제 14 장 창세기 문제 : 과학의 방법론적 무신론
임 바울  2014-12-04 19:45:17, 조회 : 2,033, 추천 : 343

                                                      제 14 장
                                       창세기 문제 : 과학의 방법론적 무신론


“철학이 없는 과학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적 수화물을 검사없이 탐승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과학밖에 없다.”

        -Daniel Dennett, Darwin's Dangerous Idea


        현대과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할 시간이 되었다. 문제는 현대 과학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에 대한 잘못된 관점에 있다. 과학이 사람과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완전한 구조라는 생각이다. 이런 비과학적인 주장들은 거절되어야 한다.  지식에 대한 이런 방향의 접근은 가장 이성적인 방법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이것은 매우 비이성적인 것임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것은 마치 살인자를 단지 물리학과 화학으로 해결하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떤 총이 사용되었고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에 죽은지 얼마나 되었는가를 알기위해서 이런 법들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살인자가 그것을 왜 했는가와 같은 중요한 요인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간구해야 한다. 이 장에서 우리는 과학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시도가 부적절하고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접근법은 궁극적으로 과학에 장애가 된다.


        과학자들은 그들 자신을 이성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기를 원한다. 사실이 어디로 인도하던지 증거를 따라서 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착각을 한다. 과학만큼 그들 자신이 얼마나 이성적인가를 자축하는 곳은 없다. 그들의 결론은 실험과 실증을 따른다고 말한다. 실험적인 증거와 비평을 통해서 편견과 성향을 없앤 곳이 과학이라고 떠든다. Carl Sagon의 자랑은 매우 전형적이다 : “과학의 중심에는 새로운 사상에 대한 포용이다. 얼마나 기괴하고 또는 얼마나 반직관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는다.” 우리의 문화에서 과학의 명성으로 인해서 이런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과학자들의 실제적인 행동들은 확실히 터무니없는 것일 수 있다. 주요한 과학자들은 그것에 대한 증거가 약함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런 학자들은 지지되지 않는 결론이 의심을 받았을 때에 화를 낼 것이다. 그들은 이런 비평들을 과학의 적들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때때로, 과학자들은 많은 증거들이 이런 결론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그들은 합리적인 입장을부인하고 분명히 덜 가능성이 있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기를 원한다.


        몇 년 전에 훌륭한 과학 작가 John Maddox는 “Down With the Big Bang”이라 불리우는 “Nature”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과학자들이 이런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러나 실제로 Big Bang은 일어났다. 그러나 Maddox는 그것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었다. Maddox만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제 11 장에서, Bib Bang에 대한 천문학자 Arthur  Eddington의 설명도 모순된 것임을 나는 말하였다.  Eddington은 진화가 무한한 시간 속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허락하기 위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를 원했다고 고백하였다. Big Bang을 거절한 단 하나의 이유는 진화론을 위한 여유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물리학자 Stephen Hawking은 많은 과학자들이 우주의 기원에서 “안정된 상태 이론”에 끌리는 이유를 설명한다: “Big Bang이 있었다는 결론을 피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어왔다...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시작이 있었다는 결론을 싫어한다. 이것은 신적 간섭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특징이 Steven Weinberg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어떤 우주론 학자는 그들이 창세기의 문제를 부드럽게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이론을 인정한다.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인가?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인 Lee Smolin은 우주가 시작이 있다면 이것은 종교로의 환원을 위한 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예상은 Smolin을 두려워하게 한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인 이해의 모든 것은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화적인 이야기까지 내려간다....“이것은 어떤 모습이 보이지 않는 지적인 존재를 구하기 위함이다. 그는 세상을 시작하기를 원했고, 처음의 조건을 만들었으며, 물질로 하여금 존재하기를 원했던 분이다.” Smolin은 덧붙여 말하기를, “이런 관찰자를 위한 가능한 이름은 하나님인 것처럼 보인다... 이 이론은 이런 근거에 의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비평받아야 한다.”


        과학자처럼 행동하지 않는 과학자들이 있다. 왜 진화론을 지지하기 위해서 현대 물리학이 발견물들을 거절해야 하는가? 창세기의 문제를 피하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한가? 우주에서 신적 존재를 제안하는 어떤 이론도 왜 피해야 하는가?  증거가 창조주를 지시한다면, 왜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가?


        Douglas Erwin은 Smithsoniel 연구소의 생물학자로서 이 질문에 대한 부분적인 답을 주었다: 그는 “과학법칙 중에 하나는 기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New York Times에 글을 썼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기본적인 것은 가정이다.” 생물학자 Barry Palevitz도 똑같은 말을 하였다. “초자연적인 것은 자동적으로 자연적인 세계를 설명하는 것에 들어오지 못한다.”


        Erwin 과 Palevitz의 우주에 대한 현대 과학적 설명 속에는 기적과 초자연성의 금지가 절대적으로 옳다. 그러나 그들의 진술은 더 깊은 문제를 야기한다: 왜 기적과 초자연성이 처음부터 배제되어야 하는가? 우주선이 “하나님이 이것을 만들었다”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전에는 본 적이 없는 태양계의 사진을 보였다면, 과학계는 초자연적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하기를 여전히 거절할 것인가?


        그들은 그럴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현대 과학은 설계자를 배제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증거는 이미 과학에 의해서 거절되었다는 선험적인 방법을 취할 정도로 현대과학은 교리적이다. 과학에서 보통 용인될 수 있는 종류의 실험적인 증거들도 듣기를 거절한다. 이 증거가 얼마나 강하고 믿을만한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문 직종에서 일을 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 의무이다. 현대과학의 입장은 어떤 기적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적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과학이 어떻게 기독교의 신학적 전제와 단체로부터 발전했는가를 볼 때에 놀라운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보일 그리고 다른 모든 과학자들은 과학과 종교 사이에 깊은 양립성이 있음을 보았다. 과거 1세기 동안에, 우주는 하나님의 이성(理性)을 반영한다는 초기 전제를 버린 것처럼 보인다. 이제 과학자들은 자연의 질서를 인정하지만 그 질서의 원천을 생각하기를 거절한다. 변천의 한 가지 이유는, 중세기 이후로 “The Secular Revolution”에서 Christian Smith에 의해서 기술된 과정, 즉 지식인들이 점차적인 세속화에 있다고 하였다.


        다른 이유는 우주의 설명할 수 없는 신비들이 전에는 하나님에게 돌려졌지만, 이제는 과학적인 설명이 있을 수 있다는 발견이다. Ernst Mary 은 쓰기를, “과학적 이론을 다른 것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성이 정상적이고 적절한 해석적인 원리로서 받아들여졌던 세계관이 초자연적인 힘을 위한 어떤 여지도 없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대처되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과학은 전적으로서 세속적인 사업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과학의 문제점이 되었다. 그들의 시야를 좁힘으로서, 현대과학은 스스로 진리에서 자신을 격리시켰다.


        창조주를 고려하지 않기 위해서 우주 기원에 대한 강한 증거들을 인정하기를 주요 물리학자들이 어떻게 거절했는가를 우리는 보아왔다.  매우 탁월한 생물학자들이 진화론을 옹호하고 전 과정을 감독한 신적 존재를 위한 필요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얼마나 약한 증거들을 받아들였는가를 생각해보도록 하자. 생물학자 Franklin Harold는 아주 간단한 세포의 활동이 얼마나 복잡한가를 알고 있다. 그는 이것에 관한 책을 쓴 사람이다. 자신을 복사할 능력을 가진 완전하게 형성된 세포의 존재를 진화론은 가정한다는 것을 그는 또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세포의 기원은 무엇인가?  “생명은, 어떤 진화론적인 과정을 통해서, 비생명적인 물질로부터 나왔다”고 하였다. 어떻게 Harold는 이것을 알게 되었는가?  “이것은 사실의 진술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가정 또는 전제임”을 그는 인정한다. 이 가정은 무엇에 의해서 지원을 받는가?  Harold는 이 질문에 답하기를 꺼려한다. “이것은 어떤 직접적인 증거에 의해서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증거들과 일치를 한다.”


        실제로, Harold의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 많은 다른 사람들을 알고 있다: Francis Crick은 Harold와 같이 DNA의 공동 발견자이다. 생명의 기원은 거의 기적적임을 인정한다. 세포의 본질적인 조직이,  혹성이 형성된 후로 지구에 생명이 얼마나 빠르게 나타났는가를 고려해보면, 기적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하였다. Crick은 어떤 화학적인 합성이 생명을 나타나게 했다고 생각하는 Harold, Dawkins, 다른 생물학자들과 동의하지 않는다. 따라서 Crick은 다른 이론을 갖고 있다: 우주의 외계인이 다른 혹성으로부터 생명을 지구로 가지고 왔다! 이 이론은 매우 진지하게 그의 책 “Book Life Itself"에서 설명한다.


         John Maddox은 과학은 두뇌 회로와 인간 의식의 관계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주장하기를, “두뇌에 대한 설명처럼, 마음의 설명은 궁극적으로 신경세포가 작동하는 방식으로서 설명되어져야만 한다. 결국 어떤 설명에 근거해서 설명할 것이 하나도 없다.” Nicholas Humphrey는 좀 더 설명을 한다: “과학자로서 우리가 시작하는 가정은 어떤 수준에서 의식은 하나의 환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대단한 결론으로 인정할 것이지만, 그러나 Humphrey는 그렇지 않다; “이것은 출발을 위한 전제이다.”


        “맹인 시계 제조인”을 썼던, 리차드 도킨스는 화석에는 중요한 간격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의 논증은 매우 이상한 길을 택했다.  우리가 다윈주의자들의 진화론을 진지하게 취한다면, “불완전함 또는 어색한 당황함에 곤란함을 받기보다는, 이 간격은 정확하게 우리가 기대했던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증거의 부족이 이 이론이 옳다는 증거 자체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얼마나 기묘한 것인가! 그렇다면 증거를 제시하는 것은,  이 이론을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의아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간격이 없는 온전한 화석이 다윈주의의 진화론에 대항하는 증거가 된다면, 이런 증거가 제시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도킨스와 그의 동료자들은 기대하였다는 것인가?


        도킨스는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점증적인 자연도태로서 진화론은 원리적으로 잘 조직된 복잡한 생명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다. 증거가 그것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허용된 가장 좋은 이론이다.” 이것은 뜻이 깊은 인정이다. Steven Pinker도 똑같은 진술을 한다: “어떤 대안책이 없기 때문에, 증거가 없다고 할지라도 이 지구에 생명의 존재를 위한 설명서로서 자연도태를 받아들여야 한다.” 요점은 진화를 위한 좋은 증거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있다. 그러나 다윈주의의 선봉자들에 의한 믿음은 아니다. 다윈주의 선봉자들은 이론에 있는 약점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유신론자들을 당혹하게 하는 일종의 독단론이다. 심지어 강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이성의 선봉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옹졸한 접근법을 택할 수 있었을까? 인식하지도 못한 채로 그들 자신이 철학적인 확신을 갖고 있는 산물이다.  도킨스와 다른 사람들은 단지 증거만을 따르는 순순한 이성주의자라고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들 자신의 철학적인 헌신에 현혹을 당하는 이유는 과학적 접근법 그 자체 안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은 자연주의와 물질주의에 대하여 확고한 확신에 기초를 한다. 자연주의는 자연이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이라는 사상이다. 자연주의에 의하면, 기적이나 초자연적 힘은 없다. 그러므로 초자연적 기사를 자연주의적으로 해석을 한다. 물질주의는 물질적인 실체만이 참 실체라는 사상이다. 존재하는 정신이나 또는 영적 실체란 없다. 물론, 사람들은 의식을 하고 생각을 가지며 영적 경험조차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두뇌 속에 있는 뇌세포의 활동에 불과하다. 이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은 물질에 대한 부수현상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철학적인 교리들은- 물질주의와 자연주의- 증명된 적이 없다. 사실, 비물질적인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논증할 수 없기 때문에 증명될 수가 없다. 자연주의와 물질주의는 과학적인 결론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적인 전제(premise)이다. 이런 것들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부과하는 것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그들은 일종의 믿음의 항목이다.


        하버드 대학의 생물학자인 Richard Lewontin의 말을 들어보자 :

        “ 과학의 명백한 어리석음이 있지만, 건강과 생명의 터무니없는 약속들을 성취하는 일에 실패했지만, 입증되지 않는 이야기를 위한 과학적인 공동체의 관용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입장을 취하도록 해보자. 우리가 전에 확신을 가졌고, 물질주의에 헌신을 했기 때문이다. 과학의 방법과 단체들이 우리로 하여금 현상계의 물질적인 설명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전에 물질주의에 대한 헌신이 물질적인 설명을 해주는 장치와 세계관을 창조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물질주의는 절대적이다. 우리는 집안에 하나님의 발을 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가 만든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가!

        실제적으로 과학은 무신론적인가?  우리는 두 종류의 무신론이 있다. 첫 번째는 절차상 또는 방법론적인 무신론이다.  우리가 자연적이고, 물질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가정함으로서 과학자들은 그들의 작업을 시작한다. 이런 범위 속에서, 기적은 금지된다. 그것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은 자연적인 설명을 추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과 마음은 물질적으로 연구되어져야 한다. 그들이 순전히 물질적인 현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비물질적인 것의 물질적인 효력만을 검사하는 것이 과학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절차상 또는 좁은 의미에서 무신론이다.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 과학자들이 “나는 이것을 더 이상 연구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기적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빠져나가는 것을 우리는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는 자연현상의 연구가 놀라운 결과들을 산출하였음을 보여준다. 물리학자  Paul Davis는 “어떤 특별한 사건이 놀랍고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자연 현상들이 결코 설명되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물론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미래 과학이 설명할 수 없을 것임을 믿을 이유는 전혀 없다. 과학으로 하여금 그들의 일을 하게 하고 자연적이고 물질적인 방법으로서 세상을 검사하는 일들을 계속하도록 하는 것은 많은 혜택을 우리들에게 줄 것이다.


          방법상 무신론의 영역 안에서 동시에 그들의 종교적인 신념을 유지하면서 일하는 데에 어려움을 갖지 않는 종교적인 과학자들이 많이 있다. 생물학자 Francis Collins는 생물학자로서 생명의 기원을 위한 자연적 설명을 상세히 연구하면서도 기독교인으로서 초자연적 힘이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과학은 지식의 모든 것이 아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과학은 자연의 멋진 그림을 설명할 때에, 정해진 틀 안에서 일을 해야 한다.... 우주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틀 안에서 과학은 일을 하는 길이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Gingerich는 “실체는 과학의 설명보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일을 할 수 있는 우주에 대한 유신론자들의 견해는 과학에 의해서 인식되지 않는 타당한 시각이 존재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 과학적인 주장과 종교적인 주장이 본래가 반대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두 번째 종류의 무신론, 소위 철학적 무신론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질적, 자연적 실체가 전부라는 사상이다. 모든 다른 것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생물학자 Francis Crick은 물질주의에 대한 자신의 헌신과 종교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이 분야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과학을 연구하게 되었고, 그것에 대해서 의심할 바가 없다. 설명할 수 없기에 종교적 신념을 지지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때에 Crick은 이런 것들이 순전히 물질적인 기반위에 있음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물리학자 Steven Weinberg는 “과학이 사람을 종교에서 해방시킬 것이다”라는 소망이 사실 자기로 하여금 이 길을 가도록 독촉했다“고 하였다.


        Crick, weinger, Dawkind, Dennette등과 같은 종교의 반대자들은 종종 방법론적 무신론과 철학적 무신론을 하나로 만들었다. 하나님이 과학을 통해서 발견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발견될 수 없다고 가장한다. 생물학자 Will Province의 유명한 말이 있다; “ 현대과학은 직접적으로 세상이 결정론의 원리, 또는 우연에 의해서 엄격히 구성되었음을 암시한다. 자연에는 어떤 목적적인 원리는 없다. 하나님은 없으며 이성적으로 탐지할 수 있는 어떤 설계 요인도 없다.” 바로 이것이 과학의 위대한 발견 중에 하나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바로 이것이 과학의 운영원리이다. Province는 과학적인 지식이 유일한 지식이고 우리에게 진리에 참다운 그리고 온전한 접근을 해주는 것임을 증거없이 가정한다.


        이런 가정이 옳은 것인가? 다음 장에서 두 번째 논증을 검사할 것이다. 첫 번째 전제를 생각해보자. 과연 과학적 지식이 유일한 지식인가? 물리학자 John Polkinghorne은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어떤 과학자에게 “이 물이 왜 끓습니까?”라고 물어본다면, 그는 분자와 온도를 가지고 대답을 할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대답이 있다. “나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물을 끓였습니다.”


        이 두 번째 대답은 실체에 대한 완전히 타당한 설명이다. 그러나 과학적인 설명에 의해서 무시되거나 거절된다. 이런 이유는, 과학이 실체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서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학자 Roger Penrose는 말한다, “과학은 이것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한다. 그래서 과학은 실체의 전체적인 것을 설명한다고 주장하지 못한다. 오직 한 면만을 보여준다.”


        철학적 무신론은 물질주의와 자연주의에 맞지 않는 지식을 멀리하기 때문에 협의의 교리를 주장한다. 이론에 맞는 자료만 받아들인다. 대조적으로, 유신론은 훨씬 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생각한다. 유신론자들은 과학적인 추론의 타당성을 전혀 부인하지 않는다. 반대로, 유신론자들은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직장과 생활에서 생각을 한다. 유신론자들은 전적으로 사건에 대한 물질적 그리고 자연적 원인들을 기꺼이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다른 종류의 지식도 인정한다. 과학이 Big Bang의 증거가 창조주를 인정하기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타당한 추론 방식이 아니다. 다른 생물에는 존재하지 않은 영적인 면을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과학이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경험에 의해서 나오는 이런 결론은 합리적이지 않으며 또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과학적인 진리는 전체 진리가 아니다. 진리가 자연주의와 물질주의 안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자연주의와 물질주의가 옳은 것이 아니다. 이것을 안다면, 철학적 무신론은 훨씬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때에 방법론적 무신론은 일반적으로 무신론을 위해서 어떤 지원을 한다는 걱정을 벗어버리고, 과학으로 하여금 경탄할 만한 일을 하도록 우리는 배려할 수 있다.



<<제 16 강 시험문제>>

1. 당신은 새로운 사상에 대해서 얼마나 개방적인가?

2. 현대과학의 이해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가?

3.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부절적하고 비합리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4. 생물학자 Douglas의 “모든 과학의 전제는 기적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합리적인 입장인가?

5. 과학이 기독교 토대위에 세워졌는데, 오늘날 과학자들이 초자연적 설명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6. 지구에서 생명의 기원에 대한 Francis Crick의 이론은 무엇인가?

7. 화석의 간격에 대해서 도킨스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논리적인가?

8.  자연주의와 물질주의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라.

9. 방법론적 무신론과 철학적 무신론을 각각 설명하라.

10. 방법론적 무신론은 현대과학의 원리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11. 과학적 진리에 종교적 진리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눅 13, 장14장의 조명을 가지고 눅 15장 연습하기>>질문의 범위 : 눅 15:1-10


a.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에게 무엇 때문에 나아왔습니까?


b. 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을 하였습니까?


c. 여기서 말하는 어느 한 사람, 여자는 누구입니까? (눅 15:4).


d. 잃은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누구인지 자세히 설명하시기 바랍니다.


e. 누가 양을, 드라크마를 잃어버렸습니까?


f. 왜 하늘에서 기뻐합니까?


                                                                                  
P.s. : What's so great about christianity?  Dinesh D'souza의 책 "제 14 장"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해와 문맥상의 흐름을 위해서 조금 수정, 보완을 하였습니다. 잘못된 해석이 있다고 한다면 전적으로 저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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