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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부 설계로 부터 논증 : 제 13 장 Paley는 옳았다: 진화와 설계 논증
임 바울  2014-11-22 15:25:15, 조회 : 2,017, 추천 : 378

                                                      제 13 장
                                        Paley는 옳았다: 진화와 설계 논증


“ 고대의 언약은 산산조각이 났다. 결국 사람은 무정한 광대한 우주 속에 혼자임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곳에서 사람은 우연에 의해서만 나타났다. ”
                                                                   - Jacques Monod, Chance and Necessity"



        1802년에 출판된 “자연신학 ( Natural Theology)”에서, 성공회 신학자 William Paley는 하나님 존재를 위한 반박할 수 없는 논증을 제시한 사람으로서 한 세기 이상의 명성을 누렸다.  Paley는 쓰기를, “ 광야를 지날 때에, 큰 바위를 발견하였다고 해보자. 바위에 발을 놓고, 나는 이 돌맹이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는 어떤 것으로도, 즉 이것은 영원히 여기에 있었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광야에서 시계를 발견하였다고 해보자. 전에 내가 했던 방식으로는 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든지 인정할 것이다.” 시계가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시계 제작자”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요점이다. 그것을 누가 설계했는지 모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이 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Paley는 계속해서  “ 지구와 생명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들의 구조에서 의심할 수 없는 설계의 특징들을 어떻게 전시해주고 있는가를 누구든지 알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아름답게 수”를 놓았다. 이런 설계는 신적인 “ 시계 제조”를 고려할 수 있는 설계자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는 결론을 맺는다.


        약 20년 전에, 생물학자 Richard Dawkins는 “ The blind Watchemaker"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그 책에서 Paley는 ” 영광스럽게 그리고 전적으로 틀렸다“라고 주장하였다. 찰스 다윈은 자연이 창조주의 설계의 모습을- 정밀하고 복잡한 설계- 보이는 방식을 발견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도킨스는 자연 선택의 ” 맹목적이고,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과정이 모든 생명에 목적이 있는 것 같은 모습의 설명임을 선언하였다. 바로 이것이 맹목적인 시계제조인이다.


        도킨스의 논리는 - 생물학자에 의해서 널리 용인되고 있다- 설계 논증의 결정적인 반박으로서 환영받았다. 여러 명의 탁월한 생물학자들은 이제 정확하게 이런 용어로서 진화론을 이해하고 가르친다. 그들은 진화론을 하나님을 위한 논증을 손상시키는 것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지음받은 사람으로서의 기독교 관점을 신용하지 않는 것으로 사용한다. 이런 견해들은 이제 문화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의 책 “Revolution in science은 과학의 영향에 대한 역사적 설명으로서, Bernard Cohen은 ” 다윈의 혁명은 자연과 우주에서 설계에 대한 어떤 논증에 죽음의 경종을 울렸다라고 주석하였다. Harper 잡지의 최근 기사에서, David Quammen은 다윈에게 “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인류에 대한 경건한 신조의 모든 구조와 모순되는 무서운 사상이라고 하였다.” 무신론 잡지의 편집장인 Michael Shermer은 전에 기독교인이었지만 다윈의 진화론을 인정하고부터 종교적인 신앙을 잃어버렸다고 통상적으로 말한다.


        미국 대중들은 진화에 대해서 의심을 갖고 있다.  2001년 2월에 실시된 Gallup 조사는 “하나님이 현재의 상태로 인간을 창조하였다는 것에 동의를 한다고 45%가 응답을 하였다.  과거 20년 동안 유사한 설문조사가 있었지만, 사람들의 의견들이 바뀌지 않았다. 이런 숫자들은 많은 과학자들을 놀라게 하였고 좌절감을 주었다. H. L. Mencken이 말한 것처럼, “목축을 중심으로 하는 주정부의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진화론”을 반대해서 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국 인구의 반이 반대를 하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과 사람들은 현대 과학의 발견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창조론주의자들이 너무 많다고 당혹감을 표현하였다.

 
       창조론주의자들은 여러 형태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지구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6일 만에 창조하였다는 성경적인 주장들을 주저 없이 믿는다. 다소 특이한 창조주의자들은 -첫 번째 그룹들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도 항상 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구의 역사가 6천년이라고 한다. 이 숫자는 성경에 기록된 연대를 계산함으로서 나온 것이다. 많은 창조주의자들은 필사적인 힘을 기울여서 진화론자들과 싸우고 있다. 성경의 어떤 것 하나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그때에 성경에 있는 어떤 것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나는 창조주의자들의 헌신과 열심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성경 해석에 동의를 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문화에서 다윈주의에 대한 불안감을 오직 창조주의자들의 것만은 아니다.


        남자가 원숭이를 닮은 피조물에서 나왔다는 다윈의 주장에 대해서 들었던, 런던에 사는 한 부인이 “ 이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자. 만약에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널리 알려지지 않기를 기도하자”라고 대답을 하였다고 한다. 이 여자는 매우 흥미 있는 질문을 하였다. 남자가 짐승에 불과하다고 가르친다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남자는 짐승처럼 행동할 것이다. 이런 혐오스러운 생각을 상상해보라. 당신의 이웃의 당신의 집에 침범해서, 죽이고 때릴 것이고, 당신의 딸들을 억지로 데려다가 관계를 맺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법한 행위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행위들은 동물세계에서 일상적이고, 자연적이고 , 기대되는 일들이다. 반세기 전에 사회적 다윈주의자들은 인종차별, 우생학  그리고 반 이민법, 강제적 불임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자연 도태 그리고 적자생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William Jennings Bryan- 정치적 진보주의자였으며 종교적 보수주의자-은 이런 정치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Scopes Trial( 스콥스 재판(Scopes trial, - 裁判)은 1925년 7월 21일, 미국의 테네시 주에서 있었던 과학 교사 존 스콥스에 대한 재판이다. 존 스콥스는 공립학교 내에서 진화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한 테네시 주 법률[1]을 어기고 학교에서 진화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았다. 관용적으로 원숭이 재판이라 부르기도 한다)에서 창조주의자 투사로서 활동을 하였다. 오늘날 진화론의 투사들은 사회적 다윈주의자들을 다윈의 이론을 왜곡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나의 동료 교수 중에 한 사람이 말한 것처럼, “ 그들은 과학을 사상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생물학자 Francisco Ayala에 의하면, Darwin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완성하였다.....다윈은 살아있는 것이 자연적인 과정의 결과를- 자연도태- 창조주에 의지하지 않고 설명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고 하였다. 생물학자 E.O. Wilson은 쓰기를, “인류가 다윈의 자연과정에 의해서 진화되었다면, 하나님이 아니라, 유전학적인 우연과 환경적인 필연성이 종족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생물학자 Stephane Jay Gould는 “ 어떤 간섭하는 영이 자연사를 사랑스럽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의 존재는 자연의 산물속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Douglas Futuyma는 그의 책 “Evolutionary Biology”에서 “목표가 불분명하고, 목적이 없는 변수를 맹인들과 연결시키고, 자연 도태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음으로서, 다윈은 생명과정의 신학적 또는 영적인 설명들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하였다. 생물학자 William Provine은 “진화론은 무신론의 가장 위대한 엔진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다윈주의에는 반종교적인 동기가 있다. 바로 이것이 많은 미국인들이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주요 이유 중에 하나이다. 그들은 다윈주의를 과학으로서 가장한 무신론으로 본다. 다윈의 이론이 전통적인 종교와 윤리를 멸시하는 일에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가 착실한 기독교인으로서 학교와 대학을 가서 불신자로 그리고 도덕적 상대주의자로 나오는 것을 걱정한다. 우리가 위에서 인용한 글에서 본 것처럼, 동시대 다윈주의에 대한 이런 걱정들은 정당한 것이다. 오늘날 이런 식으로 조장되고 가르치는 진화론은 반종교적 그리고 반윤리적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화론은 성경의 주장을 반대하는가? 창세기의 책이 실제로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신중하게 보자. 창 2:7절은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즉각적으로 우리는 중요한 어떤 것을 발견한다.  우주는 무에서 창조되었지만, 사람은 무에서 창조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은 이미 존재했던 물질로부터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 ..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 성경은 사람이 분자와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생각과 일치하며 벌레, 고래, 원숭이에게 발견되는 DNA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DNA의 98%를 원숭이에게서 발견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발견하라고 준비시켜주는 책이 아니다. “사람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다윈은 “  사람은 여전히 그의 낮은 기원의 지울 수 없는 도장을 그의 몸에 담고 있다”라고 썼다. 이런 진술에 대한 우리들의 반대는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과 침팬지와의 중요한 차이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윈은 사람이 침팬지에게서 내려왔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과 침팬지가 똑같은 조상에게서 내려왔다고 말할 뿐이다. 이 이론의 장점이 무엇이든지간에, 성경적인 근거에서 이것을 거절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세 이후로 기독교인들은 사람이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술을 믿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동물이지만 여전히 동물이다.


        성경에 의하면, 사람을 다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영원한 생기를 그에게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적인 면을 다른 피조물에게서 유출했다고 보는 것에는 어떤 신학적인 문제가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결심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기독교인들은 항상 하나님을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로 보았다. 결과적으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면, 유사성은 분명하게 육체적인 것에 있지 않다. Jared Diamond는 그의 책 “ 제 세 번째 침팬지”에서, 인간을 “조금 더 영광스러운 침팬지”로서 언급한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기독교인의 관점을 주장한 것이다. 우리는 동물과 동일한 조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영광스러운 동물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다윈의 진화론의 주요 반대는 종교적인 사람, 즉 기독교인으로부터 나온 것인가? 실제적으로 아니다. 힌두인, 유대인, 모슬렘은 진화론에 전혀 문제를 삼지 않는다. 그들은 창조이야기를 비유로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Gertrude Himmelfarb는 다윈이 종의 기원을 편찬했을 때에, 이것이 기독교를  손상시키기 때문에 진화론을 반대했으며, 다른 종교그룹들은 똑같은 이유 때문에 이것을 받아들였다고 쓰고 있다. 다윈의 주요 변증가, 지적인 토마스 Huxley는  두 번째 그룹에 속한다. 가톨릭을 평생동안 미워했던, 그는 이것이 교회론을 손상시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이 새로운 이론이 매력적임을 그는 발견하였다. “내 안에 가장 위대한 것 중에 하나는 가톨릭에 대항하여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적개심을 보이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Himmefarb가 말한 것처럼, 이런 조정할 수 없는 적개심은 다른 단체에서 그 숫자가 더 많다. 다윈의 이론에 종교적이지 않는 반대를 일으키는 과학자들과 진화론과 기독교사이에 있는 어떤 갈등을 알지 못하는 종교적인 사람들이 있다. 영국의 박물학자 Richard Owen과 하버드 동물학자인 Louis Agassiz에 의해서 야기된 자연 도태에 대한 지성인들의 반대가 있다. 진화론의 선두주자인 Ernt Mayl는 다윈이 종의기원을 출판하였을 때에, 자연도태의 존재를 위한 단 하나의 분명한 증거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하였다. 다른 다윈 열성가인 Jonathan Weiner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책은 단하나의 종의 기원을 문서로 증명하지 않았음을 인정하였다.


        지구의 역사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유명한 물리학자 Lord Kelvin은 열역학 계산에 의하면, 다윈의 주장을 따라서 진화가 일어나기에는 지구가 너무 젊다고 하였다. Kevin은 그 당시의 물리학자들이 지구의 냉동 과정을 연장하는 에너지와 열을 방출하는 방사능과 핵과정을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틀린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오늘날 지구는 약 4.5 억년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자연도태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윈과 그 당시 과학자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 당시에 최고의 물리학자들은 다윈주의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다윈주의자들과 반 다윈주의자들 사이에, 법정에서 그리고 방송매체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격노하는 지적 전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지적 설계”라고 이름으로 불리는 학파가 있다. 주요 인물은 William Dembski, Jonathan Weels, Michael Behe, Phillip Johnson이다. 수학과, 생화화과 법률의 교육을 받은 이 비평가들은 자칭 “ 창조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매우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눈의 복잡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캄부리아기 시기( Cambrian era)동안에 화석의 기록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생명의 급증이 왜 있었는가?  오랜 역사동안 실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육자들이 다른 종들을 배양할 수 없었고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중하게 준비된 교종이 실패하였던 것을 어떻게 무작위 변종을 실현할 수 있었는가? 화석 기록이 피리새류의 한 형태가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소진화(microevolution)의 기록을 보이지만,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변화하는 대진화( macroevolution)의 증거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평가들은 진화론의 약점을 들추었다. 화석 기록은, 다윈 자신의 인정하는 것처럼, 불충분하다. 생물학자들은 “캄부기아 시기의 급증을 일으킨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열심히 토론을 한다. 많은 이론들이 제시되었지만, 아직도 발견되어져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 다른 한편으로 생물학자들은 복잡한 눈은 간단한 형태의 빛을 감지하는 세포로부터 진화될 수 있고 그리고 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한 종안에서 얼만큼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가를 알고 나면,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변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과정이 일어나는 것을 전혀 볼 수 없지만, 사자와 호랑이가 같은 조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믿는 것은 확대해석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생물학자가 아니다.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생물학자가 진화론을 믿는다는 점이다. 토론을 할 때에, 소그룹의 지적 창조의 옹호자들이 맞고, 전체 생물학자들이 틀렸다는 것이 불합리한 것처럼 보인다.  두 명의 유명한 생물학자가 진화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어보라. Kenneth Miller는 ” 진화는 우리가 과학에서 알고 있는 것만큼이나 사실이다“라고 하였다. Theodosius Dobzhansky의 말은 유명하다, ” 생물학에서 어떤 것도 진화의 빚으로 보지 않으면 비상식적이다.”


        과학적인 이론으로서 진화론의 위대한 강세는 인생에 대한 두가지 사실을 합리화시켰다. 한편으로, 나무, 고양이, 인간에 이르기까지 살아있는 모든 것은 똑같은 유전 물질로 이루어져있다. 이것을 넘어서, 많은 유기체들이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는 것을 증거 삼았다. 따라서 생명에 공통점이 있다. 동시에, 살아있는 피조물은 놀랄 만큼 다양성을 전시한다. 문자적으로 수억의 다양한 특징을 갖고 있는 수억의 살아있는 생물이 있다. 진화론은 유사성과 다양성을 설명한다. 이런 특징들을 갖게 된 것은 똑같은 조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각 종은 생존 압력을 받으면서 오랜 시간동안 피조물들이 진화를 함으로서 다양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진화를 위한 강한 증거 중에 하나는 불완전함 때문에, 지질학적 기록들은 단 하나의 불변하는 궤도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바위는 오직 하나의 세포를 가진 생물만을 담고 있다. 후에 지층들은 척추가 없는 동물을 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첫 번째로 물고기를 보고, 그리고 양서류, 그리고 파충류,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유류를 본다. 사람은 가장 나중에 등장한다. 화석은 다윈 이론이 옳다면 우리가 기대한 장소와 시간에 발견된다. 단 하나의 화석도 나타나지 말아야 하는 장소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물고기가 아직 나타나지 않는 매우 오래된 화석에서 단 하나의 파충류의 화석이 발견된다면, 또는 공룡이 살았던 곳에서 인간 화석이 발견된다면, 그때에 다윈의 진화론은 거짓으로 판명이 될 것이고 생물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을 가지고 나와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까지 - 나는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화론은 최상의 것으로 남아있을 것이며 기원(起源)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 될 것이다. 이론의 해석상의 힘을 부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 도태에 의한 진화는 우리로 하여금 살충제와 항생 물질학이 해충을 발생케했고 새롭게 발생한 박테리아는 그들을 없애려는 인간 노력에 대한 더 많은 저항을 일으킨 이유를 설명하는 일에 도움을 준다.  한마디로, 그들은 진화를 한 것이다. 진화가 없으면 형편없이 설계되었고 어떤 기능적인 목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생물의 특징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그들의 피부에 숨겨져 있는 조금만 다리를 뱀과 날개를 가졌지만 날 수 없는 딱정벌레를 본다. 우리 인간은 불필요한 부속물을 갖고 있다.  이런 퇴화한 기관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진화론은 뱀, 날 수 없는 딱정벌레, 그리고 인간이 모두 생존하기 위해서 이런 기관들을 필요로 하는 생물에게서 진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전히 진화론은 분명한 한계를 가진 이론이다. 도킨스가 그의 책중에 하나를 “ 진화론의 증거는 어떻게 설계없는 우주를 보여주는가?”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는 이런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Dennett이 천문학, 심리학, 문화, 윤리학, 정치학, 그리고 종교에서 진화론을 다목적 설명서로 제시하였을 때에, 그는 증거의 범위를 넘어갔다. 진화론의 경험적인 측면과 형이상학적인 측면을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 도킨스와 데넷은 형이상학적인 다윈주의자들이다. 생물학자 Jay Gould는 전에 그들을 “ 다윈 근본주의자”라고 명명하였다. 내가 하는 것처럼, 전적으로 생물학 영역 너머에 있는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강력하지만 제한적인 이론을 사용하였다고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진화론이 설명할 수 없는 세 가지 생명의 중요한 특징을 생각해보자.


        진화론은 생명의 시작을 설명할 수 없다. 사실 다윈은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첫 번째 생물을 가정하였고 그리고 나서 한 생명이 어떻게 다른 것으로 변화되는가를 보여주려고 하였다. 1953년에 Stanly Miller가 물, 수소, 메탄 그리고 암모니아의 합성에 전기 방출을 함으로서 아미노산을 만들었을 때에 상당한 동요가 있었다.  초기 지구의 환경이 대부분 탄소와 암모니아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정되었을 때에 이 흥분은 사라졌다. 따라서 Miller의 실험은 생명이 무작위 화학 작용을 통해서 비생물에서 어떻게 나왔는가를 전혀 보여주고 있지 않다. 게다가 , 생명은 아미노산의 생산보다 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미노산과 같은 간단한 화학요소를 취해서 단백질과 다른 본질적인 생명의 성분들을 생산하는 것이다. 생명의 기원은 과학에서 풀리지 않는 신비 중의 하나라고 생물학자 Franklin Harold는 고백한다.


        가장 단순한 살아있는 세포는 지구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수십 종의 브리티니 백과사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함유하고 있다. 리차드 도킨스는 “유전인자는 디지털로 되어 있으며, 컴퓨터 코드와 정확하게 같다”라고 하였다. 도킨스가 보여준 것처럼, 각 DNA 분자는 복사와 재생을 위하여 설치된 능력을 가지고 생화학 코드로 된 연산방식을 가진다.  Harold는 “심지어 박테리아 세포도 규칙성과 복잡성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세포는 어떤 의미에서 각자가 살아있으며, 하나의 생명이다. 고등 유기체의 다리나 잎처럼, 분자의 성분이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분자는 합성체제의 일부이며 전체에 대하여 세포 활동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다른 말로 하면, 세포는 특이한 설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 기본적인 생명체는 복잡한 RNA 와 DNA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첫 번째 생명의 출현과 함께 완전히 형성되었다. 진화는 이런 설치된 능력을 갖고 있는 세포를 전제한다. 과학자들은 생명의 첫 번째 출현이 약 3.5억년 에서 4억년 정도로 추정을 한다. 지구가 형성된 다음에 곧바로 생명이 나타났다. 화학의 무작위 합성이 살아있는 세포와 같은 복잡하고 기능적인 것을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일까? 이것은 마치 원자의 우연한 결합이 비행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했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그러나 생명의 기원은 있음직하지 않다. 우리가 여기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도킨스는 썼다.


         진화론은 자각 의식을 설명할 수 있다. 우리를 위해서 전체 세계를 해명하는 자각 의식이다. 우리가 의식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안다. 개와 같은 다른 피조물도 의식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방식은 아니다. 수소, 산소, 탄소 등과 같은 원자들이 우리 주위에 있는 세상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우리들의 능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의식에 대한 진화론의 설명은 무엇인가?  이것은 어떤 혜택을 전달하는가?  어떻게 의식할 수 없는 생물이 의식할 수 있는 생명으로 전환되었는가?  인식 과학자 Steven Pinker는 어떤 설명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어떻게 마음이 작동하는가?”라는 책에서, 그는 “뇌의 기능적인 집적 회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주관적인 개인 경험의 존재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다니엘 Dennett은 이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의식을 인식착란이라고 선포함으로서 해결하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진화론은 인간의 이성 또는 도덕성을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은 Alfred Russel Wallce가 한 요점이다. 그는 자연도태에 의한 진화론을 다윈과 함께 동시에 제안했던 사람이다. 나는 여기에서 독자들이 오해하지 않기를 원한다. 진화론은 뇌의 크기가 어떻게 커졌으며 큰 뇌를 가진 동물에게 어떤 생존의 혜택을 주었는가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합리성은 이것과 다른 것이다. 이성은 어떤 것을 진리로서 인식하는 능력이다. 우리는 이성 속에 언어를 위한 독특한 인간 능력을 포함시킨다. 이것은 우리 주위에 있는 세상을 이해한 사상을 공식화시키고 명확하게 하는 능력이다. 대부분 초기 원시 문화에서 사람들은 이성의 수단으로서 언어를 개발하였다. 반면에 고양이는 단 하나의 문장도 말할 수 없다. 진화론은 피조물이 그들의 생존에 유익한 특징들을 어떻게 개발했는가를 설명할 수 있다. Steven Pinker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의 두뇌는 진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우리의 유전인자가 다음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 있는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이런 능력들을 우리 인간은 어디에서 얻은 것일까? 다른 식으로 말하면, 진리 그 자체의 생존가치는 무엇인가? 유명한 다윈주의자인 철학자 Michael Ruse는 “어떤 사람도, 심지어 다윈주의자들도 이것에 대한 어떤 대답을 갖고 있지 않다”고 고백하였다.


        인간은 이성적일 뿐만 아니라 또한 도덕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인간의 후손이라는 책에서, 다윈은 “사람과 낮은 계열의 피조물 사이에 있는 차이점 중에 도덕적 감각 또는 인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다. 도덕성은 우리들에게 다른 목소리로 말을 한다: 우리가 하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것에 대해서 말한다. 종종 도덕성은 우리들을 우리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도록 요구한다. 우리에게 혜택을 주고 심지어 사람들을 도움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후에 말하겠지만, 진화론자들은 다윈의 용어로서 도덕성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 하는가를 보여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을 말하겠다: 이런 기본적인 인간 능력을 위한 획기적인 사고가 있었지만 어떤 것도 좋은 설명이 아니다.


        진화론이 설계를 위한 Paley의 논증을 반박했다는 도킨스와 다른 사람에 의한 주장으로 돌아가보자. 실제로 Paley의 논증은 결코 반박되어진 적이 없다. Paley가 인용한 자세한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설계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을 말한다. 이것은 2세기 전에 Paley가 주장했던 때보다 더 강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도킨스는 반종교적 편견에 사로잡혀 이것을 보지 못한다. “The Blind watchmaker”에서 그의 논증은 실제로 지적 논증을 지지한다. 왜 그런지를 보기 위해서, 컴퓨터의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도 컴퓨터가 자연 도태의 힘을 통해서 진화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만들었고 그것을 프로그램화하였다. 이것은 소프트웨어의 경우와는 같지 않다고 해보자. 이 소프트웨어는 “개방” 모드로서 작동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이 무작위 변화를 취하고 가장 유용하고 합리적인 프로그램이 살아남을 것이다. 이 과정을 진화론적이라고 해보자. 어떤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나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소프트웨어의 경우에 진화는, 컴퓨터의 경우에 있어서 설계사실을 공고하게 한다. 소프트웨어는 진화될 수 있지만 여전히 어떤 사람이 컴퓨터를 만들어야 하고 기본적인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이 유비를 우주에 적용해보자. 전 장에서 우주는 지적의 산물이라는 강한 증거들을 제시하였다. 우주는 자연도태에 의해서 진화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우주를 만들었고 그것에 적용하는 법을 만들었다. 이 우주 안에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있다. 이런 생명 형태는 진화의 산물이다. 다윈과 그의 계승자들은 이런 변화과정을 잘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진화론은 우주와 자연법의 기원에 무기력하다. 따라서 우주 그 자체에 적용이 되고 그것을 통제하는 법에 대한 지적 논증을 진화론이 어떻게 반박할 수 있는가? 분명히 그러지 못한다. 이런 경우에,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부분에 해당하는 진화론이 전체의 의도적인 설계를 반박할 수는 없다. 압도적인 증거들은 어떤 사람이 이 모든 것을 계획했음을 보여준다.


        자연법이 “인류발생학적 원리와 함께 그들의 정교한 특징들을 갖고 있지 않다면, 태양과 같은 별들이 생명을 주기 위해서 - 특히 사람들- 천천히 그리고 일정하게 타지 않을 것이다. 진화 그 자체도 정교하게 조정된 설계자의 우주를 필요로 한다.” John Barrow와 Frank Tipler는 “물리학은 Paley에 의해서 지시된 것과 유사한 새로운 설계 논증을 제공한다”고 하였다. 진화는 시간과 우연의 원리에 의해서 작동한다고 주장하는 생물학자들도 또한 그것이 우주의 법에 의존한다는 것을 종종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자연법을 하나님이 침범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누가 세포에 디지털 코드로 프로그램하였는가? 누가 스스로 복사하는 능력을 주었는가? 인류를 생산할 수 있는 법들을 누가 만들었는가? 실체가 이런 식으로 구성된 이유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은 무엇인가?


        물리학자 Stephen Barr는 쓰기를,

        “신중하게 조사해보면, 자연적 과정의 과학적 설명은 단순한 혼란에서의 질서 또는 형태가 없는 가운데서 형태를 갖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물질의 본질 속에 이미 있는 질서들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종종 이런 것들은 숨겨져 있다. 우리가 재앙으로 그리고 불규칙적인 것으로 보이는 물질을 볼 때에, 그리고 자동적으로 또는 즉각적으로 질서 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배열하는 것을 볼 때에,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질서를 잡기 위한 움직임임을 알 수 있다. 도킨스가 평가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의 ‘맹인 시계 제조자’가 Paley의 ‘시계 제조자’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이다. Paley는 시계를 발견하고 이런 것들이 어떻게 우연에 의해서 존재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어떻게 시계를 만드는 공장은 시계 그 자체보다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종류의 생명이 다른 종류로 진화한다는 것은 자연의 맹목적인 힘에 기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발생학적 원리는 이런 힘들이 의도적으로, 목적이 있게, 활동을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생물학자들이 우연에 의해서 여기에 있게 되었다고 피상적으로 가정했던 살아있는 생명을 생산하기 위한 힘들이다. 되새로의 부리와 나방의 색조 그리고 인간의 눈이 모두 우연에 의해서 진화되었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법에 따라서 되새로, 나방, 그리고 인간을 생산한 우주는 의도적이고 창조적인 계획의 산물이다. 따라서 Paley의 논증에 대한 도킨스 반대는 영광스럽게 그리고 온전하게 실패하였다. Paley는 여전히 옳다.”


        문제는 진화론에 있지 않다는 것이 이 모든 것에서 분명하게 되었다. 문제는 다윈주의에 있다. 진화는 과학적인 이론이고, 다윈주의는 형이상학적인 위치 그리고 정치적인 관념이다. 사실, 다윈주의는 진화론의 이론위에 부여한 무신론자들의 사상이다. 이론으로서, 진화론은 종교에 전혀 적대적이지 않다. 설계를 부인하기보다는, 진화는 실제적으로 설계가 실행했던 것의 양식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반복적으로 다윈주의를 사용하고 맹목적인 시계 제조자의 오류를 사용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런 무신론자들의 전술에 의해서 속고 있다. 거의 눈치채지 못하게, 진화론에서 다윈주의로 빠져들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무신론 의제의 부하가 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진화론 토의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의 입장은 하나님이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창조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진화론의 토의는 이런 변화들이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관한 것이다. 기독교인에 있어서, 진화론 토의는 하나님이 어떻게 그것을 했는가에 대해서 이론들을 말하는 것이다. 내 자신의 견해는 기독교인들과 다른 종교 신앙인들이 다윈주의를 반대하지만 진화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신론자들은 과학의 선봉자들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다윈의 생각이 사상적으로 교묘히 다루어지는 것을 노출시켜야 한다. 1세기 전에 사회적 다윈주의자들에 의해서 있었던 일들을 폭로한 것과 똑같은 일들을 해야 한다. 교실에서 싸워야 하는 것은 과학을 가장해서 사상적인 교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진화론은 가르쳐져야 한다. 그러나 다윈주의의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제시함이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창조주의와 지적 설계를 과학 교실에 투입하기 위해서 고소를 하는 대신에, 기독교인들은 무신론자들로 하여금 다윈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벗어나도록 촉구해야 한다. 진화론을 통해서, 바르게 이해한다면, 기독교인들은 자연의 책과 성경의 책이 절대로 모순되지 않다는 것을 확언할 수 있다. 사실, 이 책은 우주의 개념과 초자연적 설계와 신적 창조의 산물인 피조물들의 개념을 확증한다.



<<제 15 강 시험문제>>

1. Paley의 신적 “시계 제조인”과 도킨스의 “맹인 제조인”의 논증을 간략하게 요약하라

2. 현대 서구 사회에서 “사회 다윈주의”로 말미암아 나타난 결과들은 무엇인가?

3. 진화는 성경의 주장과 모순되는가?

4. 우리의 육체적인 형태는 진화의 산물이 될 수 있지만, 우리 영혼은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진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5. 진화론이 설명할 수 없는 세 가지 중요한 생명의 특징은 무엇인가?

6. “진화론 그 자체도 정밀하게 조정된 설계자의 우주”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무슨 의민가?

7. 물리학자 Stephen Barr의 논증은 다른 어떤 설계논증보다 강한 이유가 무엇인가?

8. 창조이론과 지적 설계 이론을 학교에서 가르치기 위해서 법원에 항소를 하는 것보다는 진화론에 대한 무신론자들의 해석을 항소해야 한다는 것은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하는가?



<<눅 14장의 조명을 가지고 눅 13장 연습하기>>질문의 범위 : 눅 13:31-35

a. 여기서 말하는 바리새인들은 눅 13, 14장에서 어떤 사람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까?

b. 왜 바리새인이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정보를 준 것입니까?

c. 예수님께서 갑자기 헤롯을 여우라고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d. 제 3일에 완전하여 지리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e.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법이 없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f.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갈 길을 가야 겠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g. 누가 예수님을 죽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h. 34절의 말씀은 알미니안의 구원관을 지지하는 구절입니까?

I. 그렇다면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라는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문맥에 맞습니까?

j. “나를 보지 못하리라”라는 35절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P.s. : What's so great about christianity?  Dinesh D'souza의 책 "제 13 장"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해와 문맥상의 흐름을 위해서 조금 수정, 보완을 하였습니다. 잘못된 해석이 있다고 한다면 전적으로 저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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