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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부 설계로 부터 논증 : 제 12 장 설계자의 혹성 : 창조에서 인간의 특별한 위치
임 바울  2014-11-13 15:53:58, 조회 : 2,067, 추천 : 354

                                                               제 12 장
                                         설계자의 혹성 : 창조에서 인간의 특별한 위치


“ 우주가 생물체가 살 수 있는 방식으로 건설된 이유를 알기까지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완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Lee Smolin, The Life of the Cosmos-


        코페르니쿠스는 죽었다. 유명한 천문학자가 1543년에 죽었다. 이것인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지구가 태양주위를 회전한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의 공전은 과학적인 혁명만이 아니다. 사람이 우주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졌다는 것을 부정하는 지적 혁명이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발견물들은 코페르니쿠스의 교훈을 반전하고 있다. 우리가 매우 중요한 지위를 가지고 우주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과학 연구는 우리는 특별하게 만들어진 세상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 무신론자들로부터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대한 전통적인 표현들에 우리들은 친숙해 있다. 그의 최근의 책 “ God : Failed Hypothesis”에서, 물리학자 Victor Stenger는 쓰기를, “우주가 인간을 위하여 특별하고도, 우주적인 목적을 가지고 창조되었다고 결론짓기는 어렵다”라고 썼다. 물리학자 Steven Weinberg도 쓰기를, “ 인간은 위대한 계획 속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에 직면하며 지난 500년 동안 성숙해야만 했다.” 천문학자 Carl Sagon은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은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다는 우리의 입장들, 우리의 근거 없는 자기 중요성, 그리고 환상에” 도전을 일으켰다.


        이것은 과학적인 진술은 아니지만, 그들은 전체 과학의 권위에 근거해서 호소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 갖고 있는 것은 많은 과학자들이 세상에 접근하는 방식과 과학이 제시하는 것을 우리 문화가 이해하는 방식을 구성하는 과학에 대한 철학적인 이야기이다.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은 평범한 원리를 세움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이 원리는 우리 인간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상할 수 없이 광대한 우주에서 멀리 떨어져있고, 상대적으로 왜소한 은하계에 있는 매주 적은 혹성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점이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에서부터 유출된 평범한 원리는 깊은 신학적 의미를 갖는다. 천동설 혁명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성경적 주장과 반대되기 때문에 혁명적인 것이 아니다.  성경은 이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어떤 중세기 신학자들도 지구는 창조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기독교인에 있어서 천국이만큼 중요한 곳은 없을 것이다. 지구는 위에 있는 천국과 아래에 있는 지옥과 비교해서 중간 지점에 불과하다. 이것은 단테의 신곡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우주에 대한 묘사이다. 이런 우주론은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에서 지구의 특별한 위치라는 기본적인 기독교 교리를 무시하였다는 잘못된 가정을 고치려고 언급을 한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은 의미에서 종교적 세계관이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에 의해서 위협을 받았다. 결국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 주요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모슬렘- 세계 주요 종교의 핵심 교리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주는 우리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전통적인 교리가 수없이 많은 혹성과 행성들을 갖고 있는 광대한 우주에서, 수없이 많은 은하계에서, 수억의 별들에서,  그들의 빛이 지구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타고 없어져 버릴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 중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우리가 망원경을 통해서 하늘을 보았을 때에, 무시무시한 빈 공간과 멀리 떨어진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자연에서 하나님의 목적에 중심이라면, 방대한 우주에 비해서 아주 적은 외곽에 살고 있는 것일까?


        최근에 물리학은 우주에서 평범한 원리를 버리고 인간의 특별한 위치를 확증하는 널리 알려진 답을 주었다. 방대한 우주의 크기와 오래된 역사는 우연이 아님이 증명되었다. 지구에 생명이 존재하기 위해서 필연적인 조건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주는 우리와 같은 살아있는 거주자를 포함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크기와 이와 같은 오래된 것이어만 한다. 온갖 종류의 법칙을 갖고 있는 전 우주는 생산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리학자들은 이런 놀랄만한 발견들을 인류의 발생 원리라고 부른다. 우리가 이해하는 우주는 그것을 이해하는 생물체로 하여금 거주가 가능하도록 지금과 같은 정확한 성격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이야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호하는 아들로서의 그가 가지고 있었던 위치를 회복하는 일에 도움을 주었다.


        물리학자들은 간단한 질문을 함으로서 인류발생 원리에 비틀거렸다.  왜 우주는 지금처럼 법칙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보라. 우주는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규칙을 따를 필요는 없다. 왜 이런 규칙을 따르고 다른 규칙들을 따르지 않는 것일까?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자연에는 중력과 같은 여러 가지 힘, 작동원리, 측정원리들이 있다. 왜 지금 지구에 있는 중력은 더 강해지거나 또는 더 약해지지 않는 것일까? 우주가 약 15억만년이고 크기에 있어서 15억 광년이 되는 지를 생각해보자. 우주가 더 오래되고 더 크다면 또는 더 젊고 작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진 물리학자들은 주목할 만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생명이 존재하기 위해서 , 중력은 정확하게 지금과 같아야 한다. 빅 뱅 이론은 과거에 일어났던 것과 똑같이 일어나야 한다. 자연의 기초적인 가치와 관계가 조금이라도 다르면, 우리 우주는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우리도 존재할 수가 없다. 환상적인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우주는 인간 거주를 위해서 정밀하게 조정되었다. 생명이 나타나고 번성하기에 가장 적합한 조건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말이다. 물리학자 Paul Davies가 설명하는 것처럼, “심오하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서 기록된 자연의 법에 우리가 들어가 있다.”

 
       인류발생학적 원리는 이제 물리학자들 중에서 널리 인정되었다. 포괄적으로 그것을 설명해주는 아주 좋은 책들이 있다. John Barrows와 Franh Tipler가 쓴 “The Anthropic Cosmological Principle”은 가장 완전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하였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물리학자 John Wheeler는 쓰기를, “생명을 주는 요소는 세상의  초자연적 사건과 계획 중심에 놓여있다.” 여러분들이 똑같은 주장을 하는 짧고 읽기에 쉬운 책을 원한다면, 천문학자 Marteen Ree의 “Just Six Numbers”라는 읽어보라. 6이라는 숫자는 우주를 이루는 물리적인 특성의 기초라고 Ree는 주장한다. 각 날은 생명이 존재하기 위하여 정확한 값을 갖고 있다. 6일 중에 어떤 하나가 조금이라도 다른 값을 갖는다면, 별, 생명 등이 존재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는 종교적인 의미를 부정하지만, 6이라는 숫자에 부착된 값들은 “섭리적”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천문학자 Lee Smolin는 하나님은 자기 앞에 있는 지침판에 앉아있는 일종의 수리공으로서 상상한다. 하나의 지침은 양자의 무게를 주고, 다른 지침은 전자에 충전을 하고, 다른 하나는 중력을 고정시키는 등등과 같다. 하나님은 지침을 마음대로 돌린다. 이 무작위의 회전에 의해서 우주에 별들과 생명을 발생케 되는 확률은 무엇인가라고 Lee Smolin는 묻는다. “가능성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라고 말한다. 얼마나 적을까? Lee의 견적은  (1/10) to the power of 229이라고 한다. Lee의 요점은 물리학자 스테판 호킹의 한 예로서 강화될 수 있다. “ 팽창률이 1/10000000000000000000보다 조금이라도 적다면, 우주는 지금의 크기에 도달하기 전에 붕괴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 비율은 천문학적임을 인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무엇 또는 누구 때문일까를 묻는 것은 자연스럽다.


        우리는 시 19:1절을 만난다, “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바울은 롬 1:20절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인류발생학적 원리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적이고 풍성한 창조주로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 분으로 제안한다. 결국 이 땅에 살게 된 피조물을 위한 분명한 배려를 갖고 않고 우주는 창조되지 않았으며, 추상적인 “제 1 동자”가 아니라 인격적인 창조주이다. 과학을 통해서 우리 인류의 운명이 신적 계획을 갖고 있음이 본질적인 요소임을 강하게 증명되었다. 광대한 우주 공간에 대해서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어떤 면에서 우리를 위해서 창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평범한 원리”에 반해서, 우리는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는 우주에 살고 있다. “인류 발생학적 원리”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서 피조된 존재임을 주장한다.

 
       탁월한 과학자들이 “인류발생학적 원리”의 막대한 영향력을 잘 알고 있다. “사실에 대한 상식적인 해석”이라는 책을 쓴 천문학자 Fred Hoyle은 “초자연적 지성인이 물리학을 만지작거렸다”라고 하였다. 물리학자가 Freeman Dyson은 “우주와 그 구조를 연구하면 할수록  우리가 반드시 존재할 것을 알고 만들어졌음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고 하였다. 천문학자 Owen Gingerich은 “인류발생학적 원리는 자연법이 다양성과 생명을 위할 뿐만 아니라, 마음의 존재까지도 생각하고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극적으로 말하면, 어떤 존재의 마음이 존재하는 모든 자연 법에 기본적으로 새겨져 있음‘을 의미한다. 천문학자 Robert Jastrow는 ”인류발생학적 원리“는 과학에서 지금까지 나온 가장 유신론적인 결과이다.


        기대한 것처럼, ‘인류 발생학적 원리’는 많은 토론과 강한 반응을 야기했다. 이 토론에는 세 가지 주장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 이 세 가지는 “운이 좋은 우리( Lucky Us), 많은 우주( Multiful Universe), 설계자의 우주( The Design Universe)”이다. 차례대로 이것들을 조사해보자. 첫 번째로 “운이 좋은 우리” 이론은 우주의 정밀함은 “놀랄만한 우연”이라는 것이다. “Not By Design”이라는 책에서 물리학자 Victor Stenger는 “우주는 우연”이라고 하였다.


        우연? 스티븐 와인버거와 리차드 도킨스는 이것이 말도 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스티븐 와인버거에 의하면, “생명이 가능한 우주에 우리가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자비로운 설계자에 호소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리차드 도킨스도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 “온도, 강우량 그리고 모든 생명들에게 알맞은 혹성에 우리와 같은 생명이 살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혹성이 인간을 제외한 생명에 적합하다면, 여기에서 진화된 생명이 있다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과학에서 이것을 “자연도태”라고 부른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한, 그 가능성이 얼마다 되던 지간에 상관없이, 우리의 무신론의 주장을 지원한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아니다.


        이런 논리에는 문제가 있다. 철학자 John Lesile의 예를 들면서 표현해보려고 한다. 사형선고 받은 사람을 상상해보자. 10명의 사형집행자 앞에 죄수가 서있다. 집행자들이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그들 모두가 죄수를 맞추지 못하였다. 다시 한 번 장전을 하였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계속해서 쏟았지만 여전히 맞추지 못하였다고 해보자. 후에 죄수에게 집행자가 다가왔다. 그는 말하기를, “ 표적을 맞추지 못한 것을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분명히 여기에는 어떤 음모가 있다.” 그러나 죄수는 이런 논평에 대해서 크게 웃었다. “도대체 어떤 음모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냐? 분명히 집행인들이 맞추지 못한 것이다. 그들이 실패를 하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너와 말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죄수는 즉각적으로 그리고 확실히 정신병동으로 호송되었을 것이다.


        이런 예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런 문제들을 숙고하기 위해서 현재 지구에 있는 우리를 지적하는 것으로서 불가능성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명되어져야 할 많은 불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인류발생학적 원리는 , 우주에 있는 수억의 별들을 보고, 생명이 지구에 나타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 있는 은하계와 별들을 가진 전체 우주는 그것이 생명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철학자 Anthony Flew에 의해서 내린 결론을 반발하기는 쉽지가 없다. 무신론자의 선두주자인 - 그는 가장 많이 무신론자들이 쓴 책을 인용한 사람이다- Flew는 최종적으로 우주의 정밀함은 우연의 결과이기에는 너무 완전하다고 결론을 맺었다. “증거가 인도하는 결론을 맺으려는 그의 전 생애의 헌신에 따라서, 자신은 이제 하나님을 믿는다”고 Flew는 말한다.


        Flew는 ‘인류발생학적 원리’는 “운이 좋은 우리”라는 원리보다 훨씬 더 좋은 설명임을 인정한다. Lee Smolin도 마찬가지이다. ‘운이 좋은 우리’라는 원리는 확실히 우리가 여기에 존재할 수 있게 만들지는 못한다고 하였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발생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좀 더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가 여기에 있게 된 확률은 황홀할 정도이기에, 어떤 진지한 설명이 요구된다. 와인버거와 리차드 도킨스는 이것을 알고 있다고 어떤 사람들은 의심을 한다.


        결과적으로 많은 무신론자들은 “인류발생 원리”의 두 번째 설명을 받아들였다. “다양한 우주”. 각 우주는 자신의 고유한 법에 의해서 작동된다. 한 우주는 “역 제곱 법칙( Inverse- square law)”를 갖고 있고, 다른 우주는 “역 세제곱 법칙( Inverse cube law)”를 갖고 있다. 무한성 아래에서는 모든 물리적 조건과 모든 물질과 힘의 가능한 배열이 실현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일어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들은 모든 일어난다. 이런 놀랄만한 상황에서 우리가 거주하는 특별한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한한 우주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와 같은 인간이 사는 방식으로 적어도 한 우주가 발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우주 이론에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무한한 반복을 통해서 회전하는 우주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시기에 빅뱅( The Big Bang)이 일어났다. 자연의 상태가 각 순화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특별한 결합이 우연에 의해서 실현될 것이다. 일종의 카지노 기계에서 돈이 나오는 것과 같다. 두 번째 견해는 빅뱅이 다양한 우주를 분산시켰고, 각 우주는 특별의 법을 갖고 있다. 이런 우주들은 서로 관련이 없는 각각 팽창된 풍선과 같다. 각 우주는 각각의 법을 갖고 있다. 세 번째 견해는 “평행 세계 이론”이라고 불리며 , 똑같은 양으로 세상이 분열된다는 것이다. 사실 우주는 솟아난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묻지 말아야 한다. 우주는 연결이 되어 있지 않고,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우주에만 접근 가능하다. Smolin에 의해서 제시된 , 다른 의견은 우리의 우주는 전에 있었던 우주의 “ Black Hole"에 의해서 출현하였다고 한다. 우리 우주에 있는 블랙홀은 다른 우주를 발생시켰다. Smolin은 우주에 적용한 ”다윈의 자연도태 “의 가능성을 적용하였다. 어떤 우주는 적응을 하였고, 어떤 우주는 적응을 하지 못하여 생존하지 못하였다. (놀랄 것 없이, 도킨스와 Dennett가 같은 다윈 열광주의자들은 이 이론을 찬양하였다). 이 모든 견해 속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우리의 우주가 순수한 우연에 의해서 나타날 수 있다는 망상을 준다.


        이런 모든 견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모든 과학 이론과 같이, 우리는 증거를 요구함으로서 시작해야 한다. 회전하는 그리고 평행하는 그리고 다중의 우주 이론을 위한 실험적인 증거는 무엇인가? 실제로 그들은 어떤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 웨인버거가 인정한 것처럼, “이런 것들은 사색적인 생각이다...어떤 실험적인 증거는 없다.” Smolin은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자신의 생각은 환상이라고 불렀다. 내가 여기에서 한 모든 것은 서로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이는 잘못된 견해들을 나열한 것뿐이다. 이런 생각들이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높다. 나는 그의 솔직함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문제가 많은 자료를 위한 프톨레미 방식의 처리 방법이 있다. “원을 그려 놓으라”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원을 그려놓는” 세대에 살고 있다.


        여기에서 하버드 대학의 천문학자 Owen Gingerich 이것을 인식한 첫 번째 사람이다: 다중 우주(Multiple universe)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천국과 지옥을 믿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을 다른 우주로서, 우리 우주에서 적용되지 않는 법에 따라서 공간과 시간 밖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생각만 하면 된다. 심지어 무신론자도 악과 고통이 전혀 없는 그리고 거주자들이 절대로 늙지 않는 영역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세상의 기초에 근거해서 비상식적인 것으로서 기각했던 이런 전통적인 개념들도 믿을 만하며, 모든 양자 이론의 가능성이 실현되는 무한한 숫자의 우주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의무가 되어야 한다.


        과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논리 , 소위 “Occam Razor( 오컴의 면도날, 절감의 법칙(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가장 단순한 가설로 시작해야 하며 가설을 필요 이상으로 정립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불리는 원리가 있다. 다른 말로 하면, Point A에서 Point로 나아갈 때에 Zigzag의 길을 택하지 말라는 것이다. 옥캄 면도날을 적용한, Carl Sagon은 “자료를 동등하게 설명하는 두 가정이 있을 때에, 더 단순한 이론을 택해야 한다”고 하였다. 생물학자 E.O. Wilson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원리는 새로운 세대을 위해서 허락해서는 안되며... 세상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내가 동전을 발견하고 그것을 던질 때마다 머리가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10000번을 시도했다고 해보자. 10000번 다 머리가 나왔다고 해보자. 첫 번째 그리고 분명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동전이 주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가 나올 수 있도록 주조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두 번째 가능성이 있다. 유통되고 있는 무한의 동전이 있다. 무한대로 동전을 던졌지만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보자. 이 두 가지 설명 중에서 이성적인 사람은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옥캄의 면도날은 첫 번째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옥캄의 면도날 원리를 범한 것 때문에 다중 우주의 이론은 반대를 해야 한다. 훨씬 더 간단하고 더 확실한 설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신론자들은 환상적으로 복잡한 이론들 만들어내었다.  인류발생학 이론에 대한 세 번째 가능한 대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우주가 어떤 분이 이런 식으로 설계를 하였기 때문에 생명이 있게 되었다는 것은 아주 간단한 설명이다. 설계자 우주는 이런 혜택을 우리들에게 준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서 어떤 것도 알지 못하는 수억의 우주 이론을 만들 필요가 없다. 세 번째 응답은 어떤 사람들에게 저주처럼 들릴 수 있다. 현대 무신론자들이 얼마나 “새로운 세대의 꿈”에 의존하고 있는가를 우리는 목격할 수가 있다.


        물리학자 스테판 호킹은 바로 이런 새로운 세대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전 장에서 본 것처럼, 호킹은 빅뱅과 인류발생 원리의 증거는 직접적으로 창조주를 지적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다른 설명을 하고 싶어한다. 최근에 무한한 우주 이론만큼이나 색다른 제안을 하였다. 호키의 해결책은 “상상적인 시간”에 대한 수학적 개념을 가지고 시작한다. 상상적인 시간의 특징은 과거가 없으며, 현재가 없고, 미래가 없다. 시간을 공간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다. 그의 책 “A brief History of Time”에서, 후킹은, 문자적으로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는 불안정한 양자를 가진 상상적인 시간을  다중 우주를 요구하는 것으로 사용한다. 여기에는 어떤 공간적인 또는 시간적인 제한이 없다. 다른 우주에 있는 구멍에서 출현한 어린 우주( Baby universe)로서 존재케 된 우주를 상상한다.  이런 어떤 것들도 증거될 수 없는 이유는, 지금까지 상상했던 것처럼, 상상적인 시간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주를 위한 시간 영역을 없애버렸기 때문에, 또한 시작의 개념을 없앨 수 있다고 호킹은 자랑스럽게 지적하고 있다. 시작이 없다고 한다면, 창조주는 필요하지 않다.


        다시 한 번, 이 이론을 위한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증거는 없음을 호칭은 솔직히 인정을 한다. 또한 어떤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가상적 시간”은 “가상적 공간”을 갖도록 한다. 자연적으로 많은 상상력이 동원이 된다면, 사실 창조주를 제거할 필요도 없고, 또한 상상할 필요성도 없어지게 된다. 이런 이론들을 과학적으로 불러야 할까? 종교적인 교리라고 붙여주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호킹, 웨인버거, 도킨스, 그리고 다른 많은 무신론자들은 모두가 “무한한 세상을 추구하는 교회 회원”이라고 불러야 한다. 새로운 법을 가진 새로운 세상은 하나의 불편한 진리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 고안되어져야 했다.


        무한한 우주의 교리와, 어린 우주( Baby Univere), 그리고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기 위한 욕망에 의해서 주로 동기화되어졌다. 물리학자 Stephan Barr가 말한 것처럼,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버리기 위해서 보이지 않은 무한한 대체물들을 취한 것처럼 보인다.”


        이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나는 우리들을 지구로 다시 데리고 와서 마지막 요점을 가지고 결론을 맺으려고 한다. 우리가 “가상적 시간” 그리고 다중 우주를 믿던지간에 , 이런 것들은 단지 하나의 개념이다. 그들이 우리의 우주를 설명한다고 할지라도, 왜 여기에 우리가 있는가는 절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호킹 그 자신이 전에 말했던 것처럼, “누가 이런 것을 만들었는가? 다시 말하면 어떻게 여기에 생명이 있게 되었는가?”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무신론의 견해는 자연 그 자체의 심오한 적합함을 설명할 수 없다. Paul Davis가 쓰기를, “ 자연법에 대한 신적 기초가 제거되면, 그들의 존재는 깊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어디에서 이런 것들이 왔는가? 누가 이런 유전정보와 코드를 고안했는가?


        참으로 문제는 더 깊어진다! 전자(電子(전자))와 같은 무생물이 왜 자연법을 따르는가? 인간으로서 우리의 경험은 오직 이성적이고 의식적인 행위자만이 교훈을 따를 수 있다. 수학적인 법칙을 따르는 것은 고사하고, 무생물이 이런 것들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신비이다. 과학 역사를 보면, “알려진 법칙에서의 이변은 자연의 피조물에 기초하고 있는 더 깊고 아름다운 법칙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물리법칙들은 어디서 온 것인가?” Victor Stenger는 묻는다. “이것은 무에서 나왔다.” 나는 이것이 답이라고 인정한다. 종교적이지 않는 과학자들도 생물학자 Ursula Goodenough가 “자연의 신비한 깊이”라고 불렀던 것에 경외감을 갖는다. 이런 것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신비라는 영역에 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이곳이 신자와 불신자가 함께 나누는 공동영역이라고 믿는다. 창조의 위대함에 대해서 공유하는 존경심이다. 자연의 뒤엉킨 질서에 대한 고찰은 이런 정밀한 질서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를 묻도록 강요한다. 왜 이런 식으로 구성된 것일까? 적법한 이런 질서는 어떤 궁극적인 설명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요구에 대답을 해야 한다면, 우주가 이렇게 질서있게 그리고 지적으로, 그리고 생명에 적합한 상태로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최상의 설명은 “지적인 존재”가 이런 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 14 강 시험문제>> ( 6 문제만 택하시기 바랍니다)

1.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이 어떤 식으로 과학에서 철학으로 스며들어갔는가?

2. 창조에서 인간의 위치를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3. “평범한 원리”가 어디에서 기원했는가?

4. “인간 발생 원리”가 어떻게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을 파기하고 “평범한 원리”를 무용화시켰는가?

5. 왜 과학자들은 이렇게 오랫동안 “정밀하게 조정된 우주의 개념”에 비틀거리는가?

6. 우주의 물질적인 가치에 놓여있는 수의 상수( numberical constant)를 설명하라.

7. “정밀하게 조정된 우주개념”은 창조주와 우리를 돌보는 창조주를 어떻게 보여주는가?

8. 인류발생 원리에 대한 세가지 원리를 설명하라

9. 우리가 우연하게 지구땅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무신론자들의 주장이 타당한가?

10. 옥캄의 면도날에 대해서 설명하라

11. 우주 기원과 우리의 위치에 대해서 신자와 불신자는 공통기반을 갖고 있는가?



<<눅 14장의 조명을 가지고 눅 13장 연습하기>>질문의 범위 : 눅 13:22-30

a. 왜 구원을 얻는 자가 적을 것이냐는 질문을 제자들이 했습니까?


b. 왜 예수님은 구원을 받는 자가 적다고 제자들에게 대답을 했습니까?


c. 여기서 좁은 문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d. 그에 반하여 넓은 문은 무엇이라고 자기의 견해를 밝혀보시기 바랍니다.


e. 왜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쓰는데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입니까?


f. 문 밖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합니까?


g. 누가 하나님 나라에 있다고 하였습니까?


h. 동서남북에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I. 30절이 어떤 뜻인지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j. 눅 14장과 눅 13:22-30절의 말씀은 내용이 다릅니까, 같습니까? 설명하시기 바랍니다.



P.s. : What's so great about christianity?  Dinesh D'souza의 책 "제 12 장"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해와 문맥상의 흐름을 위해서 조금 수정, 보완을 하였습니다. 잘못된 해석이 있다고 한다면 전적으로 저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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