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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강 : 제 6장 악에서 구원받다 (1)
임 바울  2017-12-04 02:03:21, 조회 : 378, 추천 : 83


제 6장 악에서 구원받다 (1)


주 예수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의 은혜를 허락하셔서
사단의 간계로 악한 생각이 날 때,
오, 깨끗하게 없애 주소서.
날마다 저를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내 마음의 왕이시여.


        욥기는 사단의 계략을 너무도 잘 보여준다. 욥은 그 자신과 그의 가족을 향한 사단의 계략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다. 여러 가지 재난 후에 그의 친구들이 그를 찾아왔지만, 욥을 동정하는 그들의 마음은 점차적으로 비난으로 돌아섰다. 그들은 그의 혹독한 고난이 그가 특별히 크게 지은 죄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욥은 그들의 주장을 완강히 거부했고 그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욥의 고난에 대해 빌닷은 다음과 말하였다.

욥 8:20


        이에 대한 욥의 반론이 9장과 10장으로 이어진다. 이것에는 사단의 전략을 파악하고 그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1. ‘불화살’에서 ‘간계’로


        시보마나의 찬송가 중 ‘오, 나를 놀라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언급된 주제들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살펴보자.


        시보마나의 이 찬송가가 특이한 것은 기독교인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부딪치는 악과 어둠의 권세를 다루는 데에 일곱 절의 가사 중 두 절을 할애하였다는 점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가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다루고 있는 반면,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절은 사단의 인격과 사역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에베소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막아주는, 즉 신앙생활의 기쁨을 빼앗고 파괴하려는 사단의 공격을 막아주는 보호책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물론 사단은 성도를 완전히 파멸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확신과 기쁨, 복음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즐거움은 빼앗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단의 불화살로부터 우리를 지켜 줄 보호책을 찾아야 한다.


        시보마나의 찬송가는 다음과 같이 사단의 간계를 말하고 있다.

‘사단의 간계로 인해 악한 생각이 일어날 때’


        사단의 간계는 성도의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불어넣는 능력이다. 이것은 ‘육신의 생각(롬 8:6)’이나 ‘안목의 정욕(요일 2:16)'과는 다른 것이다. 사단이 우리들 마음에 불어넣는 생각 중 가장 악한 것은 죄의 유혹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롬 1:25


        이런 면에서 욥기서는 우리에게 참으로 유익하다. 발닷에 대한 욥의 답변은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말함과 동시에, 사단이 욥의 마음 속에 심어 놓은, 하나님에 대한 악한 생각이 싹트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성경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 안의 내용에는 사람들이 말한 거짓과 사람들의 오류와 반쪽 진리도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런 부분을 문맥과 상관없이 인용하여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이유로 온전한 진리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그것은 성경을 마치 독립된 격언들을 모아놓은 것처럼 취급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성경은 온통 왜곡되고 부패하고 변덕스러우며 반항적인 인간들의 잘못을 하나님의 사역과 생각 그리고 말씀이 어떻게 처리하시는가를 보여주는 기록된 책이다.


2. 욥의 드라마


        욥기서는 그의 고난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시작하고 있다. 욥이 혹독한 고난을 겪고 있을 때, 욥의 위로자로 알려진 세 친구가 먼저 찾아오고 나중에 한 명이 더 찾아온다. 그들은 일주일을 그와 함께 앉아 있기만 했고 슬픔도 함께 나누었고 그의 혹독한 고난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욥이 당하는 고난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이것을 한 편의 드라마로 생각해보자. 막이 오르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 사단이 이야기를 나눈다. 사단은 하나님이 하나님되신다는 그 한 가지 이유로만 사랑과 복종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반론을 제시한다. 그런 사단에게 하나님은 욥을 이야기하시면서 그의 몸을 손을 때는 것만 빼고는 나머지의 것으로 그에게 시험할 것을 허락하신다.

욥 1:6-12


        그리고 사단은 끔찍한 재난을 일으켜서 욥이 가진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빼앗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욥 1:13-22


        사단은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욥 2:4-5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답을 하셨다.

욥 2:6


        막이 오르기 전에 또 다른 장면은 사단이 욥의 건강을 해쳐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후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었다.

욥 2:7-10


        하늘의 법정에서 논의된 문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욥이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그분과 그분의 영광을 존중하고 그분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섬길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못할 것인가?”


        욥의 친구들은 욥이 가혹한 고난을 당하게 된 사실에만 관심을 두었을 뿐, 그들은 사단이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시기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한 그들은 욥이 겪는 불행한 이면에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에 대하여 사단과의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오직 욥이 당하는 고통에만 집중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가 고난당하는 이유만을 이해하도록 도울 뿐이었다.


        드라마는 욥과 세 친구들 간에 오가는 대화에 대부분을 할애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엘리후라는 청년이 등장하고 그 후에 하나님께서 친히 욥과 대화를 하신다.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은 욥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이전 보다 더 큰 복을 받은 욥은 다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3. 제한된 이해


        우리는 욥기를 읽으면서 한 가지의 질문을 가질 수 있다.

“욥이 우리처럼 자신이 고난 받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을까?”


        욥이 고난당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를 통해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고난은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였기 때문에 당한 것이었고 그런 그를 사단은 공격을 한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였던 욥은 그가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알 뿐, 그 이유는 알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욥은 대화를 나누고 독백을 하는 동안,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비밀을 한 순간이라도 알아챘을까? 그는 사단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쁨을 빼앗을 목적으로 자신에게 고난을 주는 것에 대항하여 하나님께서 능히 그런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신 것을 깨달았을까? 이것이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이다.


4. 욥의 비통함


        욥기서의 9장과 10장의 기록은 욥의 극심한 고난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그는 친구들의 논증에서 위로보다는 억울함을 느꼈다.

* 대전제 : 모든 고난은 죄와 그에 대한 심판의 결과이다.
* 소전제 : 너는 고난을 당하고 있다.
* 결  론 : 그러므로 너는 죄를 지었다.


        이것을 우리는 ‘삼단논법’이라고 부른다. 이에 대한 욥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 대전제 : 나는 고난을 당하고 있다.
* 소전제 : 나의 친구들이 주장하는 바와 달리 나는 특별하게 지은 죄가 없다.
* 결 론 : 그러므로 비록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당하는 고난의 원인은 나의 죄 때문이 아니다.


1) 욥기 9장


        욥은 9장에서 한 가지의 커다란 문제와 싸우고 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이유를 말할 수 있는가?
내가 어떻게 그분 앞에서 나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가?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신가?
나는 어떤 주장으로도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


        이어지는 각 단락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내가 법정에서처럼 나의 주장을 내세울 지라도 하나님이 심문하신다면
내가 어떻게 답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결코 하나님의 논리를 감당할 수 없다.”

내가 무슨 말을 한들 달라질 것이 있는가?
내가 무엇을 하든 달라질 것이 있는가?

내가 어떻게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과 논쟁할 수 있는가?
내가 당하는 이 고통의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어찌 요구할 수 있는가?
내게는 완전한 절망뿐이다.”


2) 욥기 10장


        욥은 처음에는 시도해 보았자 결국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미 9장에서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이유를 내세울 수 있을까?”라고 말해놓고, 나중에는 그분 앞에서 이유를 내세울 수만 있다면 그분께 하고 싶었던 맘 속에 있던 말을 결국 하나님께 말하기 시작한다.

욥 10:3-7


        하나님을 이해할 수도 없고 친구들마저도 그의 고난을 비난하며 그의 영혼을 괴롭힘으로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만들어가는 상황 속에서, 욥은 하나님께 충실하고자 애쓰고 있다.


        욥은 10장에서 하나님께 많은 질문들을 내어놓는다.

“지금 주님은 제게 무엇을 하시는지요?
무슨 이유로 이렇게 하시는지요?
주님은 이일이 기쁘신지요?
저를 학대하는 것이 즐거우신지요?

사람의 눈으로 보고 계신지요?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주님의 수명이 사람과 같기 때문에 제 생각 속에서 저의 죄를 찾으려고 하시는지요?

주는 제게 선하심과 친절 그리고 사랑을 보여주셨는데 왜 이제는 제게 그 참 뜻을 숨기시는지요?

이것이 바로 주님의 뜻이군요. 제 생각에서 저의 죄를 찾아 벌하시려고 계속 지켜보고 계셨군요?

왜 내가 세상에 태어났는가?
왜 주는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는가?
태에서 나오자마자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5. 두 가지의 실마리


        우리는 여기서 진실을 알 수 있는 두 가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욥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답답하였다. 도대체 출구도 찾을 수 없고 어떤 주장도 제기할 수 없었다. 세상에 도와줄 누구도 없이, 그저 자신이 모태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실마리는 관객으로서 우리는 욥의 서막을 통해 그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욥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깨닫지 못한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욥은 완전한 어둠속에 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짙었는지, 그는 자신이 여전히 볼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둠은 짙었지만, 그는 볼 수 있었다.

욥 10:8-12


        이것이 고뇌를 견디기 위해 애쓰는 그의 신앙이다. 그는 창조주의 솜씨의 놀라움을 역설한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친절 그리고 창조력과 상상력을 크고 아름답게 묘사한다. 욥의 표현은 그 누구보다도 더 장엄하고 깊은 것이었다. 욥은 이 한 가지만큼은 올바르게 볼 수 있었다.


1) 왜곡된 관점


        그러나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들은 달랐다.

욥 10:13


        이와 비슷한 표현은 시편에서도 볼 수 있다.

시 102:10


        여기에는 빛과 어둠이 함께 섞여 있다. 욥은 완전한 어둠만이 자신을 감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보면, 사실 그는 무엇인가를 볼 수 있었다.


        욥은 바로 앞에 손조차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욥을 인도하는 목회자이거나 그의 친구였다면, 우리의 임무는 자신이 완전한 어둠에 싸여 있다고 믿는 그에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욥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그의 곁에 앉아서 그가 하나님을 볼 수 있고, 그분의 은혜를 알고 있으며, 그분의 뜻을 드러내는 여러 가지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의 놀랍고 아름다운 솜씨를 알고 있으며 그 자신이 완전한 어둠에 싸여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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