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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강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임 바울  2018-07-13 13:19:37, 조회 : 166, 추천 : 43


                                  제 3 장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종종 나는 전세계로 부터 편지를 받는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어떤 것은 학문적이고, 어떤 것은 개인적이고 실제적인 것들이다. 자주, 적어도 한달에 한번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행한 것에 대해서 매우 염려하는 사람이 보낸 편지를 받는다. 이것이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문제이지만, 추상적인 것은 아니다. 이 사람들은 걱정과 염려로 심하게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떨어질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문제는 우리 믿음과 삶의 핵심을 다루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한 경고는 공관복음의 각 책에서 언급된다. 이 문제를 고려할 때에, 문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문맥없이 해석을 하게 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에 오해를 살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문맥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마태복음을 보아야 한다;


        [마 12:22-24]   (22)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한 문제는 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준 후에 일어난다. 병 고침을 목격한 사람들은 놀랐다. 즉각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겼다, “ 이 사람이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는가? ” 이것은 “ 이 사람이 메시야인가?”라고 질문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예수님을 강하게 반대하는 바리새인들은 이 사건에 대한 다른 해석을 제안하였다. 예수님이 메시야이기 때문에 이런 기적을 행한 것임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사단 에게서 권능을 받아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브엘세바 즉 파리의 주인, 즉 사단의 직함의 힘에 의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어떤 사람도 이 사건에서 나타난 권능의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하라. 문제는 이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가이다. 즉 권능을 행사한 사람의 신분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다음 구절들을 읽어보자;


        [마 12:25-30]   (25)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27)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28)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30)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 이것은 사단의 힘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이다. 특별히 성령 하나님의 권능이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을 토의의 대상으로 삼는 문제이다. 그때에 예수님은 매우 무서운 경고를 하였다;


        [마 12:31-32]   (31)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여기에 이 죄를 용서할 수 없는 죄라고 불리우게 된 요점이다.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용어의 엄격한 의미를 살펴보면, 용서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좀더 전문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하나님은 원하면 어떤 죄도 용서하실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고 불리울 때에, 하나님에 의해서 용서되지 않을 죄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사단의 힘에 의해서 이런 기적을 행했다고 비난하는 그들에게 이런 경고를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그리고 저 세상에서도 이런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 구절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러나 성령을 대항해서 짓는 죄는 결코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런 개념들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있다. 이런 세 분은 하나님이다. 인자의 아들은 삼위일체에서 제 2위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삼위일체의 제 2위를 거역해서 죄를 짓는 것은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왜 제 3위에 대항해서 짓는 죄는 용서를 받을 수 없는 것일까?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는 매우 간단한 설명이 있다. 성령에 대항하는 어떤 죄도 용서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매일 성령에 반대하는 죄를 짓는다. 사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짓는 모든 죄는 우리 안에서 성화를 위해서 역사하는 성령 하나님을 대항해서 짓는 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어떤 형태의 신성모독을 범하는 것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다시, 어떤 신성모독이 용서받을 수 없다면, 우리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헛되이 주님의 이름을 사용할 때마다, 신성모독의 행위가 된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신성모독자와 하나님을 화해시켰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신성모독적인 말에 대해서 모호한 진술을 하기 보다는, 예수님은 특별한 사건으로서, 특별히 좁은 의미에서 죄를 정의내리고 있다. 모든 신성모독이 용서를 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성령에 대한 모든 죄가 용서를 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인자를 대항해서 짓는 모든 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신성모독죄는 무엇인가?


        교회의 역사를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들이 주어졌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살인이라고 어떤 사람은 생각했다. 구약은 이런 죄에 대하여 사형을 선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답은 요점을 놓쳤다. 살인은 신성모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중대한 죄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신성모독으로서 알려진 것을 가지고 시작할 필요가 있다. 신성모독은 말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말하는 것과 관련이 되어 있다. 예수님이 사용한 동사에서 우리는 이것을 알 수가 있다; 그는 성령에 대항해서 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라고 상세히 말하고 있다. 따라서 신성모독은 일반적 죄있는 행동이 아니라, 또는 살인과 같은 죄있는 행위가 아니라, 혀의 움직임으로 보아야 한다.


        성경적 윤리에서, 인간 언어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주기도문의 첫 번째 간구에서, 주님의 이름이 거룩하다고, 그래서 이 이름을 두려운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사용하지 않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모든 신성모독은 하나님에게 심각한 죄를 짓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이런 식으로 행해지는 죄들이 자주 일어난다고 해서, 이런 사악한 행동의 중대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경우에, 우리는 어떤 특별한 종류의 신성모독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일반적인 신성모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응답을 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을 계속해서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법, 구약 신학에 대해서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서 인식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어야 한다. 대신에, 그들은 가장 심하게 예수님을 반대했던 사람들이었다.


        동시에, 바리새인들의 눈에 가리워진 심각한 무지에 대해서 신약은 예리한 인식을 하고 있다. 이런 무지를 우리는 십자가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고린도 전서에서 이것을 언급하고 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그를 죽이기 위해서 넘겨주었던 사람을 용서해달라는 간구를 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눅 23:34]   (34)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리고 고린도 전서 2장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썼다, “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예수님의 응답은 바리새인들에게 하나의 경고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 어떤 소망도 있지 않을 경계선을 범하는 위험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 선을 넘기 전에, 예수님은 그들의 무지에 근거해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선을 넘어가게 되면, 어떤 용서도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있는 동안에, 그리스도의 영광은 가리워졌다. 그러나 성령에 의해서 부활하시고 성령을 통해서 그 자신을 다윗의 자손으로 알리신 다음에, 그가 행하는 것이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 사단의 능력으로 행하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확실히 알려졌을 때에, 그리스도가 사단적이라고 결론을 맺고 말로 진술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우리를 위해서 이 문제를 요약하고 있다;


        “[히 10:26-29]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그러므로, 성령을 모독하는 것과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것의  차이점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난 다음에 성립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삶에서 성령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사역은 죄에 대하여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 우리를 가르치는 성령 사역의 목적은 우리가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려는 목적으로 회개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죄를 범했다고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만약에 그런 죄를 실제적으로 지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그거에 의해서 신경질적인 증세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종종 말한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완강하게 되었고 강팍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거나 싸우지 않는다. 이런 죄를 지은 사람은 그것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하나님에게 죄를 지었다고 하면서 두려워한다는 바로 그 사실은 그들이 그런 상태에 있지 않다는 아주 중요한 증거를 주고 있는 것이다.



P.S. 이 글은 R.C. Sproul의 " Can I Lose My Salvation?  " 제 3 장  " The Unforgiven Sin" Kindle edition을 번역한 것입니다. 오류나 수정사항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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