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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강 참된 확신을 갖자
임 바울  2018-08-21 14:09:55, 조회 : 87, 추천 : 18


제 4 장 참된 확신을 갖자


                 내가 신학교에 있을 때에, 동료 학생중에 한 사람이 학생들과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다; “ 당신은 구원을 확신합니까?” 응답자의 90% 이상이 그들은 확신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어떤 사람이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들은 확신이 아름다운 덕이 아니라 악이라고 보았다. 구원의 확신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부정적인 의미였다. 그것은 교만의 상태로 인도하기 때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갖지 않은 것을 가진 것으로 확신하는 것보다 나쁜 확신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구원의 상태에 있지 않았을 때에 확신을 가지는 것은 교만이다. 마찬가지로, 확신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도 교만한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함을 중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확신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그것을 찾지 않는 것이 교만한 것이다.


        거짓된 확신의 근원을 살펴보았다. 가장 중요한 문제중에 하나는 구원의 요구사항에 대한 잘못된 이해임을 보았다. 다른 말로 하면, 나쁜 신학은 거짓된 확신을 산출한다. 동시에, 좋은 신학은 참된 확신으로 이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을 위한 참되고 건전한 기초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를 탐구하는 것은 선한 일이다. 우리가 찾아야 할 첫 번째 장소는 신학이다.



A. 확신을 찾으라는 명령

        확신을 추구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경구절중에 하나는 벧후 1:10-11절의 말씀이다. “ [벧후 1:10-11]   (10)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공동번역]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시고 뽑아주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더욱 확실히 깨닫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절대로 빗나가는 일이 없을 것이고).”  어떤 모호함도 없이, 사도의 명령은  우리가 선택의 확실성을 깨닫도록 명령을 하고 있다. 무관심하거나 또는 되는 대로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지런한 추구를 통해서 우리의 부르심과 선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사도는 말한다. 우리의 부르심과 선택하심을 굳게 하기 위해서 부지런해야 할 실제적인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베드로는 선택의 개념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그의 첫 번째 서신은 “ 선택된 나그네에게 보낸 것”이다( 벧전 1:1). 그는 선택된 자들에게 편지를 썼고,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선택받은 자들에게 가르쳤다. 선택이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무엇과 같은 지를 설명한다. 두 번재 편지에서, 그가 동일한 사람에게 편지를 썼을 때에, 그는 그들의 선택을 굳건히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들에게 상기시켜주었다.


“선택”이라는 단어를 베드로가 언급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신학의 입구에 들어가는 것이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선택을 믿지 않는다. 그것이 성경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다른 사람은 묻는다, “ 당신이 선택이 되었는지, 안된었는지를 어떻게 아느냐?” 선택의 개념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 우리가 선택받은 사람들 안에 있는가에 대한 질문보다 기독교인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가 선택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선택받은 자의 수에 있음을 안다면, 그 지식은 우리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빌 2:12)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면서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위로를 우리에게 준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삶에 놓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헤쳐나갈 힘을 준다( 딤후 3:12).


        딤후 1:12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딤후 1:12]   (12)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그가 자신의 믿음을 어디에 두었는가를 알기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위한 확신에 대해서 바울은 말한다. 경주를 끝까지 마출 것이라는 확신을 그 자신이 갖고 있는 힘에 두고 있지 않다. 그의 확신은 그가 믿어왔던 분에게 두고 있다. 그 분은 그를 지킬 것을 알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열심을 가지고 추구하라고 하는 확신ㅇ는 바로 선택의 확실성이다.


        우리가 우리 선택을 굳게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면,  우리는 우리 선택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우리가 선택받았는가를 아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을 때까지 확신을 찾는 일을 연기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지금 부지런히 그것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선택받은 자의 수에 들어가 있고,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 있다는 것을 해결해야 한다. 우리가 아버지의 집으로 입양이 되었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참으로 있고, 그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해결해야 g나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선택의 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는 것이 첫 번째 중요한 단계이다.



B. 선택의 예지 개념( 예지 예정)

        전에 언급한 것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은 신적 선택 개념에 적대적이다. 그 적대감은 선택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선택의 근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구원이 선택을 앞선다. 우리는 이것을 예지 예정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선택받았다는 것을 미리 아는 것이다.


        선택에 대해서 이런 개념을 가지는 사람은 구원의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구원으로 선택했다고 믿는 것이다. 그의 예지 능력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자신이 제공한 복음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응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미리 아신다. 사람들이 복음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미리 아시는 지식에 근거해서, 그는 선택을 하신다. 하나님이 구원얻는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보시고, 구원의 상태에 있는 것을 보시고, 이것에 기초해서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한다.


        이런 선택개념이 성경적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이런 개념이 선택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사실, 이런 주장은 선택에 대한 성경에서 가르치는 근본적인 개념을 철저하게 부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택에 대한 이런 예지 개념이 구원의 결정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나 긍휼함이 아니라 우리가 한 일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지개념을 취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그들의 확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확신은 궁극적으로 그들의 성과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내가 성경을 이해하는 바에 의하면, 선택이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당신이 선택되었다면, 당신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당신이 선택되었다면, 당신이 구원을 받았다면, 당신은 선택받은 자의 수에 들아가 있다는 것은 명확한 증거이다. 다른 방식으로 말해보자; 구원받은 사람중에 선택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선택받은 사람중에 어떤 사람도 구원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구원은 선택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구원의 확신을 갖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선택을 받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베드로의 가르침에서, 우리의 부르심과 선택하심을 굳게하는 일에 열심을 내라고 하는 것은 그 만큼 중요한 것이기 때문임을 이제 알 것이다. 우리가 선택받은 자임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구원에 있어서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뿐만 아니라 미래에 어느 날에 죽는다고 하여도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선택은 단순히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자의 구원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선택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선택받은 자를 구원하는 것이다. 이 목적은 좌절될 수 없고, 실패될 수 없다.


       비록 이런 개념에서 언급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나로 하여금 위로를 주는 성경 구절이 있다. 그의 제자들과 미래에 예수님을 믿을 사람들을 위한 대제사장의 기도인 요한복음에서 발견된다. 사실, 이것은 전 세대에 걸쳐서 교회에 많은 힘을 주는 구절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 [요 17:6-12]   (6)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이 기도에서, 아버지는 그에게 어떤 사람들을 주었다고 말한다. 이 사람들이 아들에 의해서 구속을 받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모든 사람은 아들에게 온다. 그리고 아버지에 의해서 보호를 받는다( 요 6:37, 39-40, 44). 예수님이 아버지에 의해서 그에게 주어진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에, 그는 선택받은 자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선택받은 자는 아들에 의해서 보존된다. 이것이 참된 확신의 기초이지, 끝까지 견딜것이라는 우리 자신의 능력이 확신의 기초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성도의 끝까지 인내함에 대해서 말한다( 성도의 견인). 그리고 그들이 끝까지 인내할 것을 나는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보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의 견인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는 성도의 보존에 대해서 말해야만 확신의 개념이 좀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예수님에게 주어진 사람들을 끝까지 지켜달라고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간구하는 기도소리를 우리는 듣는다.



C. 구원의 순서

        우리는 선택과 구원의 관계에 대해서 더 자세히 볼 때에, 신학자들이 말하는 구원의 순서( The order of salvation)이라고 부르는 것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구원의 순서는 우리의 구속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의 순서와 관계가 있다. 특별히 이것은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적인 순서라기 보다는 논리적인 순서이다.


        여기서 내가 구별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참된 구원얻는 믿음을 갖고 난 다음에 얼마나 지나서 의롭다함을 받는가? 오분, 오십분, 다섯날, 오년? 아니다. 칭의와 믿음은 시간으로 보면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우리가 참된 믿음을 갖자 마자, 하나님은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시 동시에 일어나는 이 두가지 사건을 생각해보면 믿음이 의롭다함을 받는 일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믿음이 칭의에 앞선다. 다른 말로 하면, 칭의는  믿음에 기초해서 선포되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칭의를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선결조건이다. 칭의가 일어나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선결조건이 믿음이다. 따라서 믿음은 논리적으로 칭의에 필수적이다. 그것은 칭의에 앞선다. 시간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필연성이다.


        롬 8장에서, 우리는 신약의 모든 말씀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랑스러운 구절을 만난다; “ [롬 8:28]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모든 것이 선을 위해서 합력한다는 이 약속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것임을 주목하라. 그의 목적에 따라서 부름을 받은 사람으로 언급된 사람들이다.


        이것을 우리는 특별한 종류의 부르심이라고 부른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는 복음의 부름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은 이것을 외적인 부르심이라고 말한다. 이 부르심을 받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내적인 부르심이 있다. 사람안에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부르심이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 부르심은 효력을 반드시 발생한다. 이런 부르심에 의해서, 성령은 신자의 마음을 연다. 하나님의 목적이 발생하도록 안에서 역사하신다. 롬 8:28절에서 바울이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이런 부르심이다. 모든 선택받은 자들은 이 내적인 부르심을 받는다. 이것은 다음 구절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롬 8:29절의 전반부를 읽어보자; “ [롬 8:29]  (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은 구원에 대해서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서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미리아심에 대해서 제일 먼저 언급을 한다. 하나님은 미리 아는 사람을 그가 택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이 선택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30절에서, 우리는 금사슬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만난다. “ [롬 8:30] (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것은 구원의 순서에 대한 단축된 형태이다. 여기에 언급된 것 외에 구원에 대한 다른 구절이 있다. 롬 8:30절은 말하자면, 가장 중요한 구절이다. 예를 들면, 성화는 이 목록에 없다. 오히려, 이 목록은 첫 번째로 예지, 두 번째로 선택, 세 번째로 부르심, 네 번째로 칭의, 그리고 다섯 번째로 영화를 담고 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위해서 구원의 순서에 있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말했던 것처럼,  바울은 논리적인 순서를 말한다. 이것은 예지로 시작을 한다. 전에 언급한 선택에 대한 예지개념은 유행하는 것은 바로 이 구절때문이라고 말한다. “ 보라. 첫 번째가 예지가 아닌가! 선택은 하나님이 미리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예지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이것을 말하지 않는다. 사실, 바울이 롬 9장에서 신중하게 설명한 것처럼, 그는 그 가능성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선택에 대한 개혁주의 이해에 의하면,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서 선택된 사람은 이름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선택할 때에, 그는 그가 선택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예지는 선택에 앞서야 한다. 하나님은 그가 사랑하고 선택하는 개인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일어나는 논리적인 사건은 예정이다. 하나님이 미리 아는 사람을 또한 그는 예정한다고 바울은 우리에게 말한다. 미리 아는 범주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선택을 받는다는 것이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분명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예지는 모든 사람을 포함하지, 선택받은 자들만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바울은 그의 선택받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예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바울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모든 사람을  예정하고, 예정된 모든 사람을 부르시고, 부르신 모든 사람을 의롭다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요한 요점이다. 부름을 받은 모든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는다면, 여기에서 외적인 부르심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내적인 부르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기 때문이다. 의롭다함을 받는 모든 사람이 영화롭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내가 영화롭게 될 것인가를 알기를 원한다면, 즉 내가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을 것인지를 알기를 원한다면, 내가 의롭다 함을 받을 것이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내가 의롭다함을 받는다면, 내가 영화롭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지금 의롭다함을 받는다면, 나는 걱정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내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반드시 완성을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빌 1:6).



D. 부르심은 확신과 관련이 있다.

        부르심은 우리의 확신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다음 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바울이 롬 8:29-30절에서 말하는 부르심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과 칭의를 위해서 우리를 준비시키는 성령 하나님의 임무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이런 부르심을 받았음을 안다면, 우리는 선택받은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것인가?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답을 제공하고 있다.


“ [엡 2:1-10]   (1)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이 짧은 요약에서, 바울은 살아나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학적으로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요 3:3,5). 그리고 거듭남은 내적인 부르심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확신을 연구하다보면, 우리가 선택받은 자의 수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선택이 없으면,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 우리들의 마음에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택받은 모든 사람은 , 이 생애에 어떤 시점에서,  성령에 의해서 거듭나는 사건이 일어난다. 거듭난 모든 사람은 선택받은 자들이다. 우리가 우리의 거듭남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선택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확신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거듭남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령의 사역의 본질에 대해서 기독교 진영에 많은 혼란이 있다. 그들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성령이 영적 죽음에서 영적 생명으로 일으킬 때에 그 사람이 무엇이 일어나는 지에 대해서 매우 다른 것들을 믿고 있다. 따라서 거듭남에 대한 건전한 교리를 갖는 것은 우리가 은혜의 상태에 있다는 확신을 갖는 일에 아주 중요하다. 다음 장에서, 구원의 참된 확신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러서 우리 삶에서 역사하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보게 될 것이다.



p.s. 이 책은 “ Can I be sure I'M Saved?"의 제 4 장 ” Gaining True Assurance"을 번역한 것입니다. 오류를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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