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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구원 그리고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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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강 네 종류의 사람들
임 바울  2018-08-20 16:41:11, 조회 : 46, 추천 : 8

                                                               제 2 장
                                                         네 종류의 사람들



             신시네티I( Cincinnti)에 살고 있는 사람과 복음을 나누었다. 나는 복음 전도를 위해서 두가지 질문을 던졌다. “ 당신이 오늘 밤에 죽는다면, 천국에 갈 것을 확신합니까?” “ 이 사람은 주춤하지 않았다. 나를 똑바로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 나는 구원받지 못할 것을 확실히 압니다. 내가 지옥을 갈 것을 확실히 압니다.“ 지옥이 자신의 운명임을 확신하는 사람을 생애에 만난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했다. 이 사람은 불경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불경한 삶을 살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불경한 삶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 그는 더욱 나쁜 것은 자신의 운명에 관심이 없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한 주제를 다룰 때에 ,  이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어떤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은 이 범주 중에 하나에 해당된다. 우리는 이렇게 구별할 수 있다; (1) 자신이 구원 받았으며,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 (2) 구원을 받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3) 내가 예를 들었던 사람처럼, 구원을 받지 않았으며, 또한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4) 구원을 받지 않았으며, 자신이 구원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이 네 종류의 사람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A. 구원을 받았고,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


        첫 번째 사람은 구원을 받았고, 그리고 그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들이 은혜의 상태에 있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이다. 이것을 확실한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물었을 때에,“ 확신하게 대답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에 우리는 “정말이야, 확신할 수 있어?”라고 다시 물을 것이다. 그리고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정말로 확신할 수 있다는 거지?”라고 한번 더 물어볼 것이다. 우리는 정확성 또는 확실성에 대해서 말할 때에, 철학 영역에 속한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질문이나 조사에 의해서, 어느 정도는 감정적인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확신을 가지고 주장하는 일들이 여러 영역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믿습니까?”라고 물어볼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여러 수준의 대답이 있을 수 있다. “아니다,” “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 아마도,” “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 물론,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위의 예에서 보여준 것처럼, 각각의 대답은 확신의 강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말할 때에, 수학적인 정확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2+2=4라는 명제와 같은 믿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확신의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그 확신의 강도는 매일 매일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이 구원받았음을 정말 확신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 절대적으로 확신하다”라고 대답하는 때가 있다. 그리고 다음날,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기독교인의 삶에는 우여곡절이 있다.


        그러나 참된 확신은 의심에서 살아남는다. 이것은 감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B. 구원을 받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


        두 번째 부류는 구원을 받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은혜의 상태에 있지만, 그런 상태에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이 가능하다.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없다고 가질 수 없다고, 첫 번째 부류에 속한 사람은 없다고 로마 카톨릭은 주장한다는 것을 전 장에서 말했다. 마찬가지로, 은혜의 상태에 있으면서,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구원얻는 신앙은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 구원자를 신뢰하는 것이다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래서 그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이 그를 구원할 것이라는 확신이 부족하다면, 그가 정말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인가?


        이런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극적인 회심을 주장하는 유행하는 기독교 관점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주님께 나아온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빌리 그래함은 그가 기독교인이 된 날과 때와 시간을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야구를 한 뒤에 복음주의 모임에 갔던 날을 지적한다. Mordecai Ham이라고 불리우는 순회전도자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래함은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삶을 전복하는 갑작스러운 회심을 가졌다. 나도 동일한 회심을 경험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날 때를 정확히 안다. 날자를 말할 수 있다. 시간을 말할 수 있다. 장소를 말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들이 기독교인이 된 년도도 알지 못한다. 예를 들면, 빌리 그래함의 부인인 룻 그래함은 그가 언제 회심을 했는가를 모른다고 하였다.


        교회에서, 우리 자신의 경험을 모든 사람의 표준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 갑작스럽고, 극적인 회심을 한 사람은 , 날자와 시간과 장소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을 가진 사람은 이런 종류의 경험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의심한다. 특정한 날자와 시간을 정확하게 꼬집을 수 없는 사람이 실제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 의문을 던진다. 동시에, 날자와 시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들이 처음 믿었을 때을 정확하게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해서 의심을 한다. 요점은 이것이다; 어떤 곳에서도 우리 회심의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문제를 일으키는 곳이다.  어떤 사람도 반쯤 거듭나지 않는다. 성령으로 거듭나거나 또는 거듭나지 않는다. 우리가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이전하는 하나님의 사역인 거듭남은 회심의 실제적인 일이다. 성령의 사역은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사람은 성령의 사역안에 있거나 또는 성령의 사역안에 있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중생의 과정이란 없다. 그것은 순간적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회심의 시간과 날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의심스러운 것이 아닌가?  아니다. 우리는 회심과 회심 경험을 구별해야 한다. 게다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들 안에서 사역을 할 때에 모든 사람이 순간적으로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한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만드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사실, 나는 나의 회심 경험을 말할 수 있다. 말했던 것처럼, 나는 날자와 시간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은 한 사람의 영혼속에 하나님의 사역과 실제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의 성령은 이미 일어난 회심이라는 사건을 어떤 사람이 인식하기까지 일주일, 한달, 또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특별한 날자와 시간을 말할 수 있는 나의 경험은 사실이지만, 오직 나의 회심에만 적용이 된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충분히 속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실제로,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일은 우리 경험에 의해서 우리의 신학을 한정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경험도 기독교 삶을 위한 규칙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 신학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느끼는 것을 통해서 만들으면 안된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겪는 경험의 의미와 중요성을 오해하거나 잘못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을 가지고 우리 경험을 점검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것에 근거해서 우리의 신앙을 설명해야지, 우리의 경험이나 우리의 느낌에 의해서 행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경험에 우리의 확신의 근거를 두고, 말씀에 두지 않는다면, 우리가 신앙의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닥치는 온갖 종류의 의심을 자초하게 된다. 구원의 참된 지식을 찾을 필요가 있다. 뜨겁고 보풀같이 일어나는 경험을 찾아서는 안된다. 베드로가 그들의 부르심과 선택하심을 굳게 하도록 열심을 내라고 말했을 때에 마음에 두고 있었던 사람들이 바로 이런 부류이다(벧후 1:3-11). 벌써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권면을 주는 것은 어리석인 것이다. 베드로의 가르침은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상태에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예시한다.



C. 구원을 받지 않았고, 그것을 아는 사람

        씬시네티에서 만난 사람은 이런 범주의 예가 될 수 있다. 구원을 받지 않았고 그리고 그것을 안다.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이상할 수 있다. 특히 모든 사람이 죽으면 천국을 간다고 말을 하는 오늘날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롬 1장에서 이런 종류의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타락한 인간이 행하는 여러 종류의 죄에 대해서 나열을 한 다음에, 타락한 사람은 이런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런 일을 하도록 조장한다고 결론을 맺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롬 1:32).


        바울은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 상태를 인식하기 위해서 복음의 가르침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자연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그리고 양심에 새겨놓은 그의 법과 말씀에 의해서, 그들의 행위가 죄가 있으며 창조주와 떨어져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표면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 악한 사람은 좇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다닌다”( 잠 28:1). 따라서 마음 깊숙한 곳에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심판받을 것을 인식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 참호 회심”이라는 현상들이 있는 이유이다. 그들이 죽을 때가 되어서, 사람들은 갑자기 냉정해진다. 그리고 목사를 요청한다. 그들의 영생을 보장받기 위한 시도이다.


        W.C Field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가 죽어갈 때에, 성경을 보는 그를 보고 평소에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한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 W.C.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거야?” 필드는 이렇게 응답을 하였다, “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는거야.” 그의 답은 매우 유머스러운 것이었지만, 필드는 그가 창조주를 만날 때에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것을 인식하였던 것이다.


        믿기 어렵지만, 구원받지 못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들이 은혜의 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그들이 하나님과 교제 밖에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구원에 반대되는 확신을 갖고 있는 셈이다.



D. 구원받지 않았고, 그러나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

        우리는 지금까지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말했다; 구원을 받았고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 구원을 받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구원을 받지 않았고 , 자신이 구원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 이런 범주에 있는 사람들은 이해하는 일이 매우 쉽다. 구원의 확신에 대한 교리를 실패로 만드는 네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구원을 받지 않았는데도,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범주는 은혜의 상태에 있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은혜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거짓된 확신을 갖고 있다.


        리기니아 단체가 종교 개혁 성지 순례를 모집하였다. 마틴 루터의 발자취를 찾아갔다. 루터가 사역을 하였던 그 당시에 동유럽과 동독이었던 여러 곳을 순방하였다. 우리는 에르푸르트(Erfurt), 비텐베르그( Wittenberg), 보름스( Worms), 뉘른베르그( Nuremberg), 그리고 다른 여러 곳을 다녔다. 어느날, 한 곳을 방문하였다. 우리는 자유롭게 점심을 먹을 시간이 주어졌다. 여러 관광객들이 그곳을 방문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모일 시간과 장소에 대하여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한 그룹이 약속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우리 또한 점심을 먹고 나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기억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 어디로 가야 버스를 타지?”라고 물었다. 바로 그때에, 한 여자가 나타나서, “ 그 길을 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녀는 선두에 서섰다. 우리들은 그녀를 따라갔다. 조금 지나서 우리는 맞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녀를 불러서 물었다, “ 확실히 우리가 지금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 정확하다”고 그녀는 대답을 하였다. 나는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몇 발자국을 가서 그녀는 돌아서서 우리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 물론 나는 내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항상 맞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천국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 여자와 같을 수 있다. 그들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그들은 안다. 그들은 그들의 구원을 확신한다.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점은 그들의 확신이 거짓된 확신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책에서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긴장과 걱정이 바로 이것이다. 특별히 첫 번째 부류의 사람과 네 번째 부류의 사람을 비교할 때에 더욱 그렇다. 첫 번째 그룹의 사람은 구원을 받았고 그리고 구원을 받았음을 확신하는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네 번째 부류의 사람은 구원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어떻게 참된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거짓된 확신이 생긴 근본적인 원인을 심도 있게 살펴보아야 한다.


p.s. 이 책은 “ Can I be sure I'M Saved?"의 제 2 장 ” Four Kinds of People"을 번역한 것입니다. 오류를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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