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

믿음, 구원 그리고 확신

Home About Us Academic Program Admissions News &
Event
Gallery Contact Us
LOGIN

 



제 9 강 다시 회복하기가 불가능하다
임 바울  2018-07-30 22:35:35, 조회 : 140, 추천 : 45

                                    제 4 장 다시 회복하기가 불가능하다



                      기독교인들은 타락을 하고 그들의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곧 히 6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로 나아가게 한다. 이 구절은 견인 교리에 대한 토의의 중심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은 면밀하게 보아야 한다. 히 6:1-6절은 다음과 같다;


“ [히 6:1-6] (1)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4)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


        이 구절은 타락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타락하기 전에 상태에 대해서 생생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이런 사람들은 다시 회복되어 회개할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해서 말하는 성경구절이 있다면, 히 6장은 이 구절만큼 강한 것은 없을 것이다.


        또한 해석하기에 매우 어려운 구절이기도 한다. 어려움을 갖는 이유는 배경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히브리서를 쓴 저자가 미상이기 때문이다. 저자를 알게 되면 이 구절을 해석하는 일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때때로 어떤 일에 대해서 저자의 성향을 알게 되면 그들의 글에 나타나는 어려운 구절들을 이해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이런 경고가 나오게 된 원인을 아는 것이다. 저자는 그들의 독자들을 유혹하는 매우 심각한 오류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이 오류가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지를 못한다. 성경 주석가들에 의해서 제시되는 여러 가지 제안들이 있어왔다.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제안중에 하나는 저자는 심각한 핍박을 직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으며, 이런 핍박으로 인해서 예수를 부인하는 지점까지 이르게 된 사람들이다. 죄에 대한 그들의 싸움에서, 독자들은 아직 피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았다라는 말을 저자가 한다( 히 12:4).


        초대교회에서, 가장 혹독한 논쟁중에 하나는 노비티안 논쟁이라고 불리운다. AD 250년에 황제 디시우스 통치하에 일어난 핍박이었다. 핍박이 끝난 후에, 교회 지도자들은 감금을 당한 상태에서 믿음을 부인했지만, 다시 교회로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노비티안 추종자들이 포함되었다. 그들은 로마에서 감독의 직분을 노리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가지는 열정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당신의 아버지가 신앙을 지켰다. 그리고 나무에 달려 화형을 받았다. 그러나 옆집에 있는 사람은 신앙을 부인하고 고난을 피했다. 핍박이 끝난 다음에 그들은 다시 교회에 돌아오기를 원했을 때에, 순교자 가족이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어려움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교회는 이런 사람들에게 관대했고, 용서를 했고, 교회로 받아들였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할 수 있다 ; 핍박중에 보이는 교회에서 타락을 하였다. 그러나 평온한 때가 오자 다시 가시적인 교회로 돌아오려고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히브리서의 이런 말씀에 대해서 또 다른 제안은 제 1 세기 교회를 공격하였던 가장 악의에 찬  이단들중에 하나에 관한 것이다. 즉 유대교 이단들이다. 이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은 새로운 언약 공동체가 구약 전통을 지키는 행위를 계속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특별히 할례를 말한다. 이 이단은 신약에서 여러번 언급이 되었다. 특별히 갈라디아서에서 다루었다. 이 구절은 기독교인들이 유대교의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죽음의 가치를 거절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회복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 구절에서 말하는 것을 다시 살펴보자. 그들은 이런 식으로 설명하였다; "[히 6:4-5]   (4)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본“ 사람을 말한다. 이런 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겉으로보면, 저자는 기독교인, 중생한 사람,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을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런 경우라고 한다면, 그때에 저자는 참된 회심을 한 사람이 여기에서 말하는 죄를 범하게 되면 다시 구원으로 회복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반드시 진심으로 회심한 사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교회 생활에 깊이 관여를 했지만, 처음부터 회심을 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신약교회에도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있는( 마 13:24-30) , 어거스틴이 말하는 혼합된 교회이다. 즉 신자와 불신자가 섞여져 있다. 가라지는 언약 공동체의 회원으로 있지만, 회심하지 않은 사람이다.


        성경은  교회, 가시적인 교회에 대해서 세 그룹이 있다고 말한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은 불신자이다. 교회안에 있는 사람은 신자이다( 참으로 회개한 사람들).또한 불신자들도 있다. 세 번째 그룹에 있는 사람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느냐? 교회안에 있는 불신자이다.그들에게는 비췸이 있었다. 맞다. 어느 정도 그들은 복음을 들었다. 그들은 말씀의 설교를 들었다. 그들은 특별 계시가 결코 전파되지 않는 지역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에 빛의 혜택을 가졌다. 어떤 사람이 비췸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꼭 회심을 하였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다음 설명은 무엇인가?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다.” 여기에서 말하는 은사는 회심한 사람들에게 유효한 것일뿐만 아니라, 또한 불신자들에게도 유효한 은사를 말한다. 예를 들면, 은사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제공했던 만나와 같은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의 은사를 맛보았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회심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마찬가지로, 신약을 보면, 교회안에 있는 불신자들이 여전히 주님의 식탁에 간다. 그들은 문자적으로 하늘의 은사를 맛본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회심하지 않았다. 하늘의 은사는 신자들과 불신자들에게 함께 주어질 수 있다.


        “ 성령에 참예하는 것”은 어떤가? 이것은 조금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성령에 참예하는 것을 성령에 의해서 중생이 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사람에게 오는 경험으로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은 그 구절에 대한 자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넓은 관점에서, 교회생활를 했던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과 임재에 참여한 사람이 된다. 성령은 교회에 임재하고 교회에서 사역을 하시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중생과 같은 성령의 특별한 사역을 받았다고 해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경험한 것이다.


        이 구절의 전체적인 의미로 돌아가보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참된 회심을 하였지만 배도를 하고, 핍박을 받았을 때에 복음을 부인한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를 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회복이 될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유대교 이단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를 한다. 유대교로 다시 전향을 시키려는 이단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 구절을 이해하는 해석은 약간의 문제가 있다. 첫 번째 보이는 문제는 베드로이다.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충분성을 그는 부인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편을 들음으로서 그는 복음을 거절하였다( 갈 2;11-14). 그러나 그는 회복이 되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를 부인하였지만, 예수님 그 자신에 의해서 회복이 되었다. 따라서 피로는 복음을 거절한 뒤에도 회복한 예중에 하나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두 번째로, 히브리서 저자는 말하기를, “ 다시 회개하여 새롭게 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다시”라는 단어는 전에도 한번은 회개를 하였던 것을 강하게 암시해준다. 밖에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성령의 사역으로 인해서 신약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개혁신학을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중생의 원인이 아니라 중생의 열매로서 회개를 본다면, 그때에 우리는 가장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개혁주의 신학을 갖고 있는 사람은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은 중생을 한 사람이고, 참된 신자라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거짓된 회개도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에서를 예로서 언급하고 있다. 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다고 하였다( 히 12:16-17). 거짓된 회개를 한 사람은 다시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서, 저자는 다시 회개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첫번째 회심은 거짓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참된 회심을 언급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참되게 회심을 한 사람, 참되게 중생한 사람이 타락을 하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타락을 하게 되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을 박는 것이고, 예수님을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런 일을 한다면, 당신이 끝난 것이다라고 히브리서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까지 떨어지면, 다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전개되는 논증은 신약 서신서 전체에서 보여지고 있는 종류의 논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상대방의 전제를 취하고, 그들이 말하는 전제가 옳다고 한다면, 그들은 결코 어리석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말하는 전제는 거절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고전 15장에서도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주장을 할 때에 이런 논증을 전개하였다.


        유대화를 하려는 이단에 대해서 말해보자. 문제는 율법을 지키는 문제이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복음을 받아들인 기독교인이 율법의 행위- 할례, 절기를 지키는 것, 음식법등-를 통해서 의롭게 되는 것으로 돌아간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 그는 그리스도를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박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다시 못박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리스도는 분명히 한번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그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에, 그리스도는 구약의 저주를 친히 짊어지었다. 어떤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돌아설 때에, 그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저주를 받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거절한 것이다. 대속적인 희생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거절한다면,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합당하게 죽은 것이고, 그리스도가 죽은 것은 그 자신이 잘못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함으로서 그리스도를 저주하는 것이 된다. 그런 사람은 구약에서 말하는 저주를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 그리고 구원을 받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것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논증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이 지금도 지켜져야 한다는 유대인들의 논증은 그리스도 사역의 거절을 의미하는 것이고 구원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논증은 거절되어야 한다.


        저자는 이런 논증을 가정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때에 어떤 결과가 일어날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참되게 회심을 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저자는 9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히 6:9절은 이런 해석을 지지해준다. “ [히 6:9]   (9)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NIV]히 6:9 Even though we speak like this, dear friends, we are confident of better things in your case--things that accompany salvation). ”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라고 저자가 말했을 때에, 구어법을 사용해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즉 “ 말을 하자면‘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와 대립하는 사람의 가르침이 구원을 위한 어떤 근거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참된 회심자의 경우에는, 그들은 견고하게 설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그러므로, 견인교리에 대한 우리들의 확신을 의심하기 보다는, 이 구절은 성도의 견인 교리를 더 강화한다고 말할 수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문단을 다음과 같은 권면으로 요약을 한다;  “ [히 6:11-12]   (11)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부지런하라고 요청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안식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이 그들의 구원에 대한 확실성을 주는 소망은 믿음의 생활에서 게으름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안전의 교리는 우리로 하여금 쉬운 길로 가게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나라로 가기 위한 침노를 멈추어서는 안된다. 큰 확신과 열심을 가지고 믿음의 삶을 영위해야 한다.


P.S. 이 글은 R.C. Sproul의 " Can I Lose My Salvation?  " 제 4 장  "  Impossible to be restored again" Kindle edition을 번역한 것입니다. 오류나 수정사항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5  제 13 강 참된 확신을 갖자    임 바울 2018/08/21 22 110
14  제 12 강 거짓된 확신    임 바울 2018/08/20 14 103
13  제 11 강 네 종류의 사람들    임 바울 2018/08/20 27 120
12  제 10 강 확신을 위한 안간힘    임 바울 2018/08/01 40 154
11  제 3 부 내가 구원받았음을 확신할 수 있는가? 책 표지    임 바울 2018/08/01 35 148
 제 9 강 다시 회복하기가 불가능하다    임 바울 2018/07/30 45 140
9  제 8 강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임 바울 2018/07/13 43 167
8  제 7 강 떨어진 사람들    임 바울 2018/06/29 53 200
7  제 6 강 기념석    임 바울 2018/06/29 49 152
6  제 2 부 : 한번 얻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 - Cover    임 바울 2018/06/07 56 211
5  제 5 강 말씀으로 강해진다    임 바울 2018/05/25 60 226
4  제 4 강 하나님으로 부터 온 선물    임 바울 2018/05/18 49 208
3  제 3 강 믿음의 예    임 바울 2018/05/07 56 242
2  제 2 강 소망이 넘치는 미래    임 바울 2018/05/04 62 286
1  제 1 강 : 강의 계획, 교제 소개 및 강의 목적    임 바울 2018/05/04 52 214

    목록보기 1
       

 
www.hendersonny.org // email: info@hendersonny.org

Copyright © 2018 Henderson Christian Seminary in New York
NY : 40-36/38 78th Street, Elmhurst, NY 11373
General and Admission Office of NY & NJ 718.810.3248 or 646.338.7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