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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제 4 부 제자가 되었을 때에 받는 상들 : 제 14 장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임 바울  2014-08-10 19:47:33, 조회 : 1,740, 추천 : 284

                                                             제 14  장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마 28:18-20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그의 제자들을 향한 대 사명에서 그들에게 다른 이들을 가르치라고 명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은 복음의 설교를 통하여 다른 이들을 믿음으로 이끌고, 세례를 통하여 그들을 교회의 친교에로 부르고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계속 가르쳤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할 때 항상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 얼마나 위대한 약속인가! 제자들은 적대적인 환경 가운데서 예수님을 위하여 죽으셨다. 그들은 그 분의 증인으로서 그 분을 섬겼으며, 다른 이들에게 믿음을 가져다 주기 위해 애쓰며, 그들이 그 믿음 안에서도 성장하도록 도왔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일을 혼자서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 곳곳으로 나아갔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를 가든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1. 모든 권세


        이것은 결코 무력한 확신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그것을 말하신 분은 결코 무력한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이 육의 모습으로 계셨을 때도, 그분은 능력이 있으신 분이었다.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다리를 저는 사람을 고치셨으며, 사나운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셨다. 그러나 이 큰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능력이 한계가 있었다. 즉 예수님께서는 단지 한 곳에서만 능력을 행하셨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예수님께서는 영광중에 부활하신 주이시다. 그

마 28:18

        예수님께서 흠정역본이 흔히 능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권세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능력이라는 뜻을 포함하지만, 덧붙여서 그 능력을 행사하는데 있어서의 법적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찬탈자의 권력과는 다른 것으로 오직 합법적인 주권자만이 권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 분은 모든 창조물의 주권자이시며 창조주이시다. 모든 것은 그분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도 요한의 말을 들어보자.

요 1:3

바울의 말을 들어보자.

골 1:16-17

예수님께서는 또한 그 분의 제자들에 대한 특별한 권세를 가지셨으며, 그 안에서 그 분은 그들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을 구속하셨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전 6:20

        그 분의 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의 공언은 대사명의 근거가 된다.


        ⓐ 하늘에서의 권세 : 예수님께서 그가 하늘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고 말씀하셨을 때에, 그분께서는 놀라운 주장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의 권세는 완전히 하나님의 권세이다. 그러므로 그 주장은 하나님이 되려는 주장이다. 예수님은 여호와께서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시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권세와 아들의 권세는 같은 권세이기 때문이다.

        스펄젼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만일 다른 우리가 세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그의 말씀을 이해하려 한다면 우리는 오늘밤 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보라! 비바람이 걷히고 저쪽의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오그라들고 있다. 묘성을 꼼짝 못하게 하는 능력과 오리온 성단을 풀어헤치는 나사렛 사람을 보라! 십자가에 못 박혔던 이가 네 번째 대각성을 이끌고 있다. 천사들의 무리는 나사렛 예수님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 날개짓을 하며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룹들과 다른 천사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복종을 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경멸을 당하고 거절당했던 그가 ”영원히 찬송을 받으실 만유의 하나님으로써“ 천국의 모든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모든 것의 하나님이시며 영광의 주이신 그분께서는 “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다.


              ⓑ영적 군대에 대한 권세 : 하늘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는 예수의 주장은, 다른 모든 영적인 군대들, 그중에는 마귀의 능력까지도 포함되는데, 그 군대들에 대해서까지 확장되는 권세이다. 바울은 엡 6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전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엡 6:12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한 투쟁에서, 그리고 이 세상에서 그분을 증거하기 위한 투쟁에서, 영적인 것과 또 우리가 만나는 원수들과 싸움을 벌여야 할 때, 에베소서를 상기시키도록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때문에 당황해 할 필요는 없으며, 신경을 세울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것들 위에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에 바울은 하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엡 1:20-21


        ⓒ 땅에서의 권세 : 권세를 받았다는 예수님의 주장에 있어서 두 번째는 땅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 하늘의 권세의 경우처럼 땅의 권세 역시 몇 가지 국면을 가지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신학자들이 소위 말하는 섭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 땅의 ( 그리고 하늘의) 사건은 단순히 우연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명하고 완전한 목적에 부응하도록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시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많은 반대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질 수가 있다.

롬 8:38-39


        ⓓ 그분의 제자들에 대한 권세 :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으니”라는 말씀 속에는 땅위에 있는 자들을 포함하는데 그중에는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 분의 권세는 분명히 그 분의 제자들에게 확장되는데, 그 이유는 그분이 그를 따르도록 그들을 부르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분의 명령에 복종하면서 그분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요 15:14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서 복종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분의 친구가 아니다. 또한 사실상 그 분의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권세는 그 분의 제자들의 사역에까지 확장된다. 대사명은 이 사역을 주로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권세 아래 있기 때문에 그분의 복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 28:19-20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섬김의 유형을 결정하지 않았으며 그들 혼자서 일정을 계획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웰링톤 공작의 말대로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에서 행군하였다.


        ⓔ 모든 족속에 대한 권세 : 주님의 권세가 확장되어지는 다섯 번째 영역은 그분을 보내신 자 이외에는 그분의 권세에 대해 아직 알지 못하는 족속들에 대해서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을 세계의 신앙으로 만드는 것이다. 고대 세계에는 하나의 신이나 또는 여러 신을 사람들의 조물주로서 이해하는 이교신앙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그 신들의 권세는 그 백성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 신들과는 다르다. 그분은 고대 유대 땅에서 태어났으며 이 땅에서의 그분의 전 사역은 유대땅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분의 신앙은 유대인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 신앙은 그리스와 로마, 서유럽, 미국에 전파되었다. 다시 말하면 그 신앙은 전 세계를 포괄할 수 있는 신앙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대해 권세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신앙은 모든 인종과 문화, 언어, 성 그리고 모든 지위의 장벽을 없애는 것이다.


John Stott는 다음과 같이 요약을 하였다:

        “ 기독교 선교 사업의 근본적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과 땅의 전우주적인 권세이다. 만일 예수님의 권세가 이 땅에 제한되며, 만일 그 분이 많은 선생들 중의 하나이며, 많은 유대 선지자들 중의 하나이며, 많은 성육신들 중의 하나라면, 우리는 그분을 세상의 주이시며 구세주로서 많은 족속들에게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예수님의 권세가 하늘에 제한된다면, 만일 그분의 정사와 권세들을 전복시키지 않았다면, 우리가 여전히 많은 족속들에게 그분에 대해 주장한다고 해도, 우리는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할 수 없을 것이다(행 26:18).  이 땅의 권세가 오직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감히 모든 족속에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권세가 오직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또한 성공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2. 모든 족속


        대 사명은 네 가지 보편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모든”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곳이다. 즉 “모든 권세, 모든 족속, 모든 것, 모든 날(항상)”이라는 말이다. 그 두 번째 모든 족속은 내가 이미 지적한 대로 예수님의 우주적인 권세와 기독교 신앙의 범세계적인 특징을 언급하는 것이다.

        모든 복음서 중에서도 마태복음이 이 말씀을 끝나고 있는 것은 의미가 있다. 각 복음서들은 오래 전에 주석가들이 이미 주지한대로, 각기 독특성을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 요한복음서는 가장 보편적이다. 그곳에서는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요 4:42)”로 제시한다. 누가복음서는 이방인들과 헬라인들에게 보내는 책이다. 그래서 누가복음서에서는 헬라인들에게 예수님을 완전하고 이상적인 사람( 성육신하신 하나님으로 ) 제시하고 있다. 마가복음서는 로마인들에게 쓴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기적을 행하는 자로 강조하고 있으며 다른 기자들보다는 그 분의 교훈에 대해 별다른 주의를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보건데, 마태복음은 유대인의 복음이다. 그 복음서는 예수님의 다윗의 아들이며, 메시아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을 성취하는 자로서 보여주기 위해 기록되었다. 어떤 다른 복음서도 그렇게 제한적으로 예수님의 출생과 그분의 사역에 대해 직접적으로 역사적, 종족적 풍토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마태복음이  가장 우주적인 생각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대사명에서 우리는 그 분의 사역을 통해서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유대인 제자들이 별로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데, 이제 그들은 그분을 섬기게 되어 유대사상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그의 복음으로 모든 족속들에게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이 일을 행할 때마다 축복을 받았다. 이 일을 교회가 하지 않았을 때에 교회에 복이 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제자됨은 대사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보여야 할 복종의 측면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복종을 축복하셨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려 한다면, 우리는 그분이 대신하여 죽은 자들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3.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


        대사명에서 가장 중요한  일반적인 개념은 특별히 우리의 시대에  우리가 분부 받은 것을 가르치라는 명령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명령하신 모든 것에 복종하기를 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오늘날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세상이 그 반대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가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치려고 하기 보다는 많은 이들은 가능한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별문제가 되지 않는 가르침만을 주기 위해 그 분의 가르침 중에서 많은 부분을 무시해버리는 일이 있다. 그것들은 심판이 없는 은혜 정의가 없는 사랑, 복종이 없는 구원 고통이 없는 승리에 관한 내용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동기가 가능한 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얻기 위한 동기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세상의 것이므로 그것의 결과도 세상의 결과이다. 제자됨은 불완전한 가르침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반쪽의 복음만으로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교회는 하나님의 온전한 권고를 되찾을 필요가 있다. 언뜻보기에, 많은 성도들이 있는 교회에서는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가장 어리석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만일 우리가 소위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열어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그리스도의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의 보급과 매스미디아의 사용, 성직자들의 증가 기금조성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 중 어느 것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 분께서는 그분이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치는 일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 말씀 속에는 그렇게 하려는 노력 중에 그분의 축복이 있게 될 것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복음의 일부분만을 가르치는 일에는 축복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전도에 축복을 내리실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의미하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오로지 완벽한 가르침만을 축복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피상적인 가르침은 피상적인 결과만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가르침 속에는 어떤 내용들이 마땅히 포함되어야 하는가? 분명히 말하건데 교리에 대해 피상적으로 말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성경 전체를 가르쳐야 한다. 그중에서도 그리스도께 충실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 성경에 대한 높은 평가 : 우리 시대의 자유주의자인 선생들은 성경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높은 평가를 깎아내리려 하며 성경은 단지 실수가 담긴 인간의 책이므로 상대적으로 가치가 있고 권위를 가지는 책이라고 말하였다. 이 생각은 무력하고 우유부단한 교회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성경을 비방했던 이들이 예수님께서 친히 성경을 전적으로 권위가 있는 것으로 깨닫게 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Kirsopp Lake는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근본주의자들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전통에서 분리된 것은 우리들이지 그들이 아니다. 나는 권위의 근거에 대해 근본주의자들과 논쟁하려고 하는 자들이 처한 운명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성경과 교회의 정통적 견해는 근본주의자들의 편에 서 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든 가르침에 신실하려면, 우리는 우리들 신학의 근본으로서 성경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고 그분의 말씀을 가르쳐야만 한다.


        ⓑ 하나님의 주권 : 영국의 성서 번역가는 J.B. 필립스는 “ 당신의 하나님은 너무나 작으신 분이시다”라는 제목이 붙을 책을 썼다. 그 제목은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들은 성경을 무시함으로서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자신들의 제한적이고 편협한 시각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에 대해서 새롭고도 고양된 의미로 볼 필요가 있다. 특별히 그분의 주권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주권이란 의로운 통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듯 하나님이 주권자라고 말하는 것은 그분이 그의 전 우주를 통치하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 인간의 부패 : 성도들은 특히 모든 이들이 “하나님보다 못한 자”들이라는 의미에서 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을 한다. 이말은 누구에게나 모욕적인 말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 가르침이 아니다. 성경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였다고 가르친다.

시 2:1-3

성경은 그들이 죄로 말미암아 손상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죄안에서 죽었다고 말한다.

엡 2:1-3

성경은 그들이 죄로 말미암아 악 영향을 받아 심지어 그들의 생각까지도 부패되었다고 말한다.

창 6:5

그러기에 그들의 부패가 너무 심각한 것이어서 사람은 하나님께서 먼저 그의 영혼을 깨끗이 하시고 그에게로 이끌지 않으면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나아올 수조차 없는 것이다(요 6:24).


        ⓓ 은혜 : 비록 우리들 자신이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없으며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어야 한다고는 해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멸망받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구원은 오로지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요 3:7
요 6:37
요 17:9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말미암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타락한 인류중 얼마를 맡기셨다는 것 이상으로는 구원의 근원에 대해 알 수가 없다. 어떤 이들은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그분을 믿게 될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인간들을 구원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을 타당치 않다. 또한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구원받을 만 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들을 선택하셨다”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이 말 역시 맞지 않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은 구원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하나님 그 분께 놓여있다는 것으로, 구원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하나님 그 분께 놓여있다는 것으로 구원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첫째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그분께서는 어떤 사람의 공적과 상관없이 구원받을 자로 선택하신다. 둘째, 속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특별한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는 인간들의 죄에 대한 형벌을 당하셨다. 세 번째 , 성령의 특별하시고 선택적인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분께서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에 눈을 뜨게 하고 그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서 믿고 받아들일 때까지 그들을 설득하신다.


        ⓔ선을 행하는 것 : 하나님께서 비록 인간들에게 구원의 사역을 베푸시고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시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그분께서는 어느 지점에서 그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이 그분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지도하시고 또한 힘을 주신다. 제자됨에 관한 대부분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이 영역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엡 2:10절을 보라.

엡 2:10

        우리에게는 이들 선행을 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의 제자인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행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정의로운 편에 서서 병든 자를 돌보아주고 소외당한 자를 구하며, 압제받은 자를 보호해주며 죄 없는 자를 구원하는데 그들의 힘을 다해 일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불의를 행하며, 불의를 묵인하는 자들에 반대해야만 한다.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안전 :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또한 그 가르침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강력히 경고하신다. 그분께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분을 따르는 일에 있어 신실하게 복종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어쨌든 그가 우리의 가장하는 태도에 경고하시고는 있다고 해도 그분께서는 또한 그분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 대해 확신과 신뢰의 말씀을 주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결코 잃어버린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상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에 책임이 있으시다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요 10:28

“그러나”하고 어떤 사람은 말한다.
“ 만일 그들이 스스로 제 갈 길을 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은 겨로 멸망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결코 그들이 멸망받지 않는가?”
“그들은 멸망받지 않을 것이다”하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은 그 일이 겨로 위험스럽지 않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사실상 그 일에는 위험이 따른다. 만일 예수님께서 아무도 그분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가 없다고 약속하셨다면 그 이유는 그분께서는 누군가가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위험에 부딪힌다. 그것은 내적으로, 외적으로 오는 위험이며 , 또한 원수로부터 오는 위험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약속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겨로 잃어버린 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것들을 박탈당할는지 모른다. 그는 직업을 잃어버릴 수 있으며 친구들과 자신의 명성까지도 잃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대부분 신실한 자들에게 일어났으며 특별히 박해받던 시기에는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믿는 자들은 여전히 잃어버려질 염려가 없다. 그 약속은 배가 난파당할 염려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 배에 탄 사람들이 안전하게 해안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약속은 집이 불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 아니라 사람들이 안전하게 모두 탈출할 수 있다는 약속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시대의 신학을 무작정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위대한 이들 성경적 교리들을 새롭게 조명해서 분명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인간들의 비행에 대해서 말할 필요가 있으며 또한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진 자들에게는 어떤 소망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적인 사랑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들의 삶에 들어오셔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그분께 복종하도록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인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인도하시는 자들을 지켜주신다는 것을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들은 이 모든 교리들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세상의 신학을 채택하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자유주의 교회의 신학도 채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이 예수님의 신실하고 복종적인 제자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분을 따를 수도 없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교회들은 번성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설교와 가르침은 온전히 축복받지 못할 것이다.



4. 세상 끝 날까지


        마 28:18-20의 마지막 명제는 “언제나” 또는 헬라어의 문자적인 의미로 “세상 끝 날까지”이다. 이것은 커다란 약속이다. 마 1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임마누엘”로 소개되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 1:23)”이다. 그런데 마지막 구절에서 그 약속은 다시 반복되고 확신을 심어주고 있다.


        John Stott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그의 부활의 임재를 약속하신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마태복음서 중반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 있는 곳에 그분도 있겠다고 하셨다( 마 18:20). 그런데 이제 그는 그의 임재의 약속을 반복하여 말하면서 그들이 예배할 때라기보다 그들이 증거할 때 있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만날 때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 그는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의 임재를 확약하는 나의 강조는 그가 보편적인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며 그의 백성들을 보내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문제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고 모든 족속의 요구에 무관심함을 보이면서 그리스도의 약속된 임재만을 주장하고 있는 우리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세상에 오실 때처럼 세상으로 나아가는 자들과 자신의 평안함과 안락함을 희생하는 자들 그리고 제자가 되기 위해서 그들의 삶을 모험하는 자들에게는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임재가 약속된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나 그들과 함께 동행하신다. 그분께서는 ‘가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네 안에 있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너를 제지하고 지도할 것이다. 너를 격려하고 너에게 힘을 주리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그분께서는 평화로운 때와 위험이 따를 때 실패할 때와 성공할 때, 전도할 때와 핍박을 받을 때에  평화와 갈등의 시기에, 전쟁 중에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었을 때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시어 , 이제는 그의 영광의 재림을 눈앞에 두고 계신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시는 그분은 그의 백성들과 처음부터 끝까지 심지어 세상 끝날 까지(마 28:20) 같이 계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분께서는 결코 그 길이 쉬울 것이라고 시사하신 적이 없다. 그러나 그분을 따르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음을 넘어서서 천국에서 보상받을 수 있는 확실한 소망의 약속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그분을 섬길 때,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주님의 임재에 대한 약속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임재는 그 어떤 보화보다도 우리가 더 열망하는 것이다. 그분을 알게 된다는 것은 황금보다도 더욱 더 가치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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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제 4 부 제자가 되었을 때에 받는 상들 : 제 13 장 핍박과 함께 오는 현재의 행복    임 바울 2014/07/28 330 2181
14  14. 제 4 부 제자가 되었을 때에 받는 상들 : 제 12 장 행복한 그리스도인    임 바울 2014/07/21 303 1965
13  13. 제 3 부 : 제 11 장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    임 바울 2014/07/20 327 1867
12  12. 제 3 부 : 제 10 장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자    임 바울 2014/07/08 300 1691
11  11. 제 3 부 제 9 장 비용을 먼저 계산함    임 바울 2014/07/02 294 1394
10  10. 제 2 부 제자가 가는 길 : 제 8 장 따르지 않는 사람도 제자가 될 수 있는가?    임 바울 2014/06/23 278 1428
9  9. 제 2 부 제자가 가는 길 : 제 7 장 빈 손의 길    임 바울 2014/06/18 263 1681
8  8. 제 2 부 제자가 가는 길 : 제 6 장 겸손의 길    임 바울 2014/06/12 265 1701
7  7. 제 2 부 제자가 가는 길 : 제 5 장 섬김의 길    임 바울 2014/06/05 260 1492
6  6. 제 2 부 제자가 가는 길 :제 4 장 복종의 길    임 바울 2014/05/26 275 1600
5  5. 제 1 부 제자의 의미 :제 3 장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    임 바울 2014/05/16 311 1972
4  4. 제 1 부 제자의 의미 : 2 장 그리스도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임 바울 2014/05/05 276 1849
3  3 . 제 1 부 제자의 의미 : 제 1 장 제자로 부르셨다.    임 바울 2014/04/30 224 1730
2  2. 서론    임 바울 2014/04/30 271 1122
1  1. 강의 계획표    임 바울 2014/04/30 26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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