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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 3 부 : 제 10 장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자
임 바울  2014-07-08 21:25:16, 조회 : 1,690, 추천 : 300

                                                         제 10 장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자


눅 14:26-27


        우리는 분열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분열가운데서 가족이 주는 감정만큼 사람을 연합시키는 것은 없다. 독재자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독재자들은 모든 사람이 정부에 충성심을 높이도록 하기 위해 남편과 아내 사이를 틀어지게 하고 아내와 남편, 특별히 자식과 부모의 사이를 틀어지게 하는 가능한 모든 일을 한다. 나는 꽤나 자주 결혼식을 집행하는데, 그때마다 인간의 모든 제도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가족이라는 제도라고 말을 한다. 가정은 최초의 학교로, 그곳에서 교육이 시작되어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직업학교로까지 교육이 발전된다. 가정은 최초의 병원으로, 그곳에서 양육이 시작되고 간호가 시작된다. 가정은 최초의 정부로, 그곳에서부터 가장의 지도력을 통해 인간 통치에 있어서 족장제도, 군주제도, 그리고는 마침내 민주 제도 형태가 생겨나게 되었다. 만일 가정이 확고하면 사회도 확고하다. 만일 가정이 쓰러지면, 사회의 질서는 같이 쓰러지게 된다.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이것에 대해 상당한 책을 출판하였다. Kenneth Chafin의 “ 집에 가족이 존재하는가?”,  Roy W. Fairchild의 “ 기독교의 가정”, 그리고 Howard G. Hendricks의 “하늘은 가정을 도와준다”와 같은 책들이다. 이들 저자들은 가족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 보였으며 가정이 강화되기를 원하였다. 헨드릭슨은 “기독교의 가정은 잡초더미속에서 꽃을 피워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이 소망에 반향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맞는가? 아니면 비그리스도인이 그 소망에 반향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맞는 것인가?


        제자됨에 관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연구하는 자들은 그 분이 표면상 아주 반대되는 말씀을 하시는 것처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놀라워 하게 된다.


눅 14:26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정을 강화시킨다기 보다는 오히려 가정을 분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1. 예수님의 어려운 말씀을 이해하기


        이 성경구절은 분명 예수님의 “어려운 말씀들” 중의 하나이며, 여러 가지 의미에서 어려운 말씀이다. 영국의 F. F. Bruce는 에수님의 어려운 말씀들이라고 제목을 붙인 책을 썼는데, 그 속에서 그는 이 구절에 대해 논의하면서 그 말씀이 두가지 이유로 인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1) 그 말씀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우며, (2) 그 말씀은 예ㅜ님의 다른 교훈과 조화를 이루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 이 말씀이 권고하고 있는 태도는 자연의 순리에 거스리는 것이며, 또한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이유에 대한 사랑의 법에 거스리는 것이다. 만일 ”이웃“의 의미가 원수를 포함하도록 확장되어진다면, 가까운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제시키도록 제한되어져서는 안된다.”


        이 문제를 다루는 한가지 방법은 이들 단어들을 단순히 셈어의 과정법의 본보기로서 간주하는 것이다. 과장법이란 어떤 점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만일 이 경우가 맞다면, 마 10:37-38절에 나타난 예수님의 냉정한 말씀이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분은 단지 하나님의 왕국에 참여하는 것이 그를 좇는 자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란느 것을 의미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본문을 너무 가볍게 다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 한가지는 아마도 마 10장에 나온 “합당한”이라는 단어가 올바르게 해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단어를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합당한 자는 아무도 없다라는 말을 대강 받아들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으셨다. 그분께서 “ 어떤 일을 하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아마도 그 분께서는 눅 14:26절에서 다시 그 말씀을 분명하게 하시려 했음에 틀림이 없다. 다시 말하면, “ 그는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은 “그는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라는 의미이다.


        두 번째로, 문맥상 마태복음의 진술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3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단지 그 자신보다 아비나 어미,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바로 그 앞구절에서 그는 두가지 중요한 것을 말하였다. 첫째는, 그 분께서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눅 14:32-33

그것은 구원과 또는 구원의 상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분께서는 이 세상에 불화를 가져오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눅 14:34-36

        이 후에 예수님께서는 그 자신보다, 아비나 어미,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런 문맥속에서 볼 때, 마태복음에 있는 단어들은 누가복음에 있는 단어들과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그 둘은 사람이 그리스도와 다른 사람들(자기의 가족들 조차)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말씀들은 그 분께 반대하는 자들과 제자들의 삶에 있어 높은 영향력과 권위를 행사하는 자들을 거절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눅 14:25-33절의 세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문장은"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하는 말로 끝난다. 첫문장은 우리가 가족을 미워하지 않으면,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우리가 그리스도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두 번째 문장은 우리가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으면, 그 분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세 번째 문장은 만일 우리가 우리의 가진 모든 소유를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씀들은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언제 어디서든지 그 댓가를 치러야만 하는 일에 대해 세가지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대가 이상의 보상

앞장에서 나는 일부러 26-27절을 다루지 않았다. 눅 14:28-33절에 기록된 댓가를 치르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였다. 이유는 제자가 되기 위한 댓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근본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돌아가서 우리는 단순히 댓가에 대한 생각을 넘어서서 우리가 구원의 상을 얻기 위해서 가장 고통스러운 댓가를 기꺼이 치를 것인지, 않을 것인지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네가지 충격적인 진리들은 우리를 공격한다.

        ⓐ 그리스도의 왕국의 기본적인 요구들 :      내가 기독교 사역에 종사한 몇해 동안, 기독교 단체 위원회에서 일아도록 요청을 받았으며, 그 일을 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8년 동안 Stony Brook 학교 평의원 위원회에서 일했으며, 4년간 필라델피아 국제 전도국 위원회에서 일했다. 현재 국제 성경 무오 협의회와 성경 강해 위원회, 성경연구회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이런 책임을 기꺼이 그리고 열정적으로 지고 있다. 이 단체들을 위해서 부모님을, 아내와 자식을 떠나지 않았다. 사실상, 나는 이런 위원회의 일을 위해서 다른 법률적인 책임들을 양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분의 왕국의 요구사항에 대한 그리스도의 말씀들은 그와 같지 않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에 대해서 , 우리는 언제든지 그 일을 떠 맡을 수 있고, 또 큰 문제없이 그만둘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분의 왕국의 요구사항을 제시할 때, 그분께서는 항상 그의 제자들로부터 가장 기본적인 헌신을 요구하고 계신다. 그런데 그것은 쉽게 떠맡을 수 있고 그만 둘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며, 시간제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왕국의 도래와 그에 상응하는 제자됨의 요구들은 이 세상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다. 이전에 이런한 요구를 다른 사람들에게 시도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요구들은 불합리한 것이었다. 그들의 요구는 단지 인간 제도를 반영하는 것으로써, 인간의 제도에서 비롯된 요구는 상대적인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바에 따르면, 우리는 국가에 복종과 충성을 다할 의무를 지고 있다. 우리는 세금을 응당 치러야 할 자에게 세금을 주어야 하며, 존경을 받아 마땅한 자에게 존경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국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봉사 단체와 정당, 그리고 기업체의 주장은 모두 상대적인 것이다. 그것들은 그리스도 왕국과는 다른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왕국의 도래는 이 세상의 역사상 새로운 것이며, 그 요구사항은 어떤 단체나 운동이 정당화시킬 수 있는 어떤 것을 넘어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분의 요구를 가족과 같은 고귀하고 영예스러운 제도의 요구와 대조시킴으로서 이 점에 대해 말씀하셨다.


        ⓑ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권세 :                 사람이 자기 부보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또한 예수님의 특별한 권세에 대해 가르치려는 것이다. 실제로 권세를 가지지 않은 자가 감히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 이외에 누가 이런 요구들을 할 수 있는가?


        이것은 예수님이 사역하던 시기에 그 분을 따르는 자들이 직면했던 가장 큰 문제였다. 예수님께서 가르치기 시작하실 때, 그들은 그 분이 권세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음을 알고는 놀랬다.

마 7:29
마 8:27
눅 5:21

예수님이 인간의 능력과 권세를 넘어서 말하였다는 것은 이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한 일이었다. 그가 하나님일 수 있는가? 그 점이 그들의 큰 문제거리였다. 우리가 알다시피, 어떤 이들은 그 결론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마침내는 예수님을 참람한 자로, 사기꾼으로 몰았다. 그러나 그의 권세을 깨달은 자들은 필연의 귀결로 이끌리게 되었으며 예배하게 되었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그의 왕국에 이르는 요구사항은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해 왔던 것 이상의 것이다. 우리가 그 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부모와 처자들을 미워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극도의 놀라움을 표시하게 된다. 그러나 만일 그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것은 전혀 극단적인 요구라고 할 수 없다. 만일 그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 분이 하시는 어떤 요구이든 그것이 터무니없다고는 볼 수 없다. 만일 그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그분께 완전한 복종과 함께 자신을 굴복시킬 의무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분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우리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자신을 굴복시키는 일을 정당화시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 관심이 없으신 전제적인 신이 아니시며, 그 자신의 권력을 확대시키는데만 관심을 갖고 있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에게 생명과 가족과 가정과 이 세상의 유익을 위해 우리에게 적당한 일을 주셨다. 이런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선하다. 따라서 만일 하나님께서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이들 중 한 두가지를 포기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셨을 때에 , 예를 들어 멀고 위험한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선교사가 필요할 때에, 하나님의 그런 요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명령하고 계신다면, 그 명령이 무엇이든지 간에 다른 사람과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 진정한 제자가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것들 :        우리가 모든 상황속에서 “선한 것”과 “특별한 상황속에서”의 개인적 희생에 대해 이야기하자마자, 우리는 마음의 긴장을 풀고, 자제심을 잃어버리며, 진정한 그리스도인 제자들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별로 감동을 주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내려진 결론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 분을 위해 우리의 가족을 불화케 만들고, 젊은 부자 청년의 경우처럼 우리가 가진 소유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리고 와서 그 분을 따르라고 요구하지 않으시는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일을 요구하지는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는 만일 예수님께서 요구하신다면 이런 일에 있어서나 다른 일에 있어서 그분께 기꺼이 복종해야만 한다. 만일 그 분이 요구하시면 우리는 그것을 해야만 한다.


        이 말은 우리가 우선권을 틀림없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심지어 우리의 생명보다는 더욱 중요한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런 헌신을 방해하는 일이 행해져서는 안된다. 모든 일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을 강화시켜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George E, Ladd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포기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인간의 생명 그 자체가 포함된다. 즉 사람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능히 제자가 될 수 없다(눅 14:26). 이것은 분명 모든 제자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죽을 준비를 해야만 한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사는 자이다. 그에게 더 이상의 중요한 일은 없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왕국의 운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말씀은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이것은 자기 부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삶의 즐거움과 쾌락에 대해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부정은 이기적인 목적을 가질 수 있다. 자기 부정을 실천함으로서 인간들은 이기적인 이익을 추구해 왔다. 자아에 대한 부정은 그와는 반대이다. 그것은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왕국이 전적으로 중요한 관심사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주제넘은 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짐이 아니라 죽음의 도구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아에 대한 죽음, 개인적인 야망은 자아 중심적인 목적에 대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목표의 달성 대신에 설사 그 이기적인 목표가 한편으로는 이타적인 것이며 고귀한 것이라 하더라도 진정한 제자는 단지 하나님의 방식만을 원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하나의 짐으로서 생각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이것이 자유롭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세상에는 우유부단한 만큼 우리가 금해야 할 일도 없다. 헌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앞을 향해 단호하게 나아갈 수 있는 자이다.


        ⓓ 이세상의 위험들 :      자기 부모와 처자, 형제와 자매를 미워하는 일에 대한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 나타난 네 번째 놀랄만한 진리는 이 세상의, 심지어 정상적인 인간 관계와 사랑속에서도 생겨날 수 있는, 방심하기 어려운 위험들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야만 한다. “ 만일 내가 부모아 배우자, 자식들과 형제, 자매들에게 보여주는 사랑으로 인해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져가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때에는 이 세상의 유혹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 될 것인가!


        우리는 세상과 또한 그 세상의 위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물론 지구의 땅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또한 그 땅에 필수적으로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성경에서 “세상”이란 말은 우리가 소위 “세상의 방식”이라고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즉 세상에서 행해지는 방식이다. 그 방식은 세상의 가치와 우선권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에 열중하기 보다는 자기를 즐겁게 하기 위해 세상에 몰두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지양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진정한 신앙의 원수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라일 주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사실상 ‘ 세상’ 만큼이나 신앙의 대의를 손상시키는 것은 어디서든 찾오볼 수 없다. 그리스도께 신앙을 고백하는 제자들에게서 그리스도를 빼앗아가는 것은 그들의 죄와 불신앙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사랑이며, 세상의 두려움, 세상의 근심, 세상의 사업, 세상의 돈, 세상의 기쁨, 세상과 사이좋게 지내려는 욕구이다. 이것은 수 많은 젊은이들이 계속적으로 난파당하는 커다란 암추이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의 어떤 조항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부러 악을 선택하지 않으며 공공연히 하나님께 대적하지 않는다. 어쨌든 그들은 마지막에 천국에 들기를 소망하며 어떤 신앙을 가지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우상을 버리지 않으며, 세상에 속해 있다. 그들이 소년 소녀시절에는 세상일에 속해있지 않음으로 천국을 얻을 가능성이 있었으나, 성인이 되어서는 세상일에 자신을 속하게 함으로서 파멸로 이르는 넓은 길을 걷는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이 시작하나 결국은 데마와 롯의 아내와 같이 끝나게 된다.”


        세상은 복잡하고 완고하며 그러기에 그 유혹에 대해서 우리는 방심할 수가 없다. 만일 이런 유혹이 우리가 가족들에게 느끼는 바람직한 충성과 적절한 애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올 수 있다면, 우리는 이런 유혹들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데 담대해지는 것이다.


        제 1 차 세계대전중에, 제 10 장로교회의 선임자였던 도날드 그레이 반하우스는 저명한 미국 가정의 한 아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였다. 그는 군대 복무중에 있었는데, 그의 연대의 군인들 앞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함으로서 그의 회심을 입증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그가 전쟁이 일어나기 전, 미국 대도시 교외의 부촌에서의 삶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왔다. 그는 반하우스에게 자신의 가족의 삶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왔을 때에 , 자신의 가족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그가 곧 다시 돌아가야 할 이전 삶의 습관들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였다.그는 부모와 형제, 자매에 대한 사랑이 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반하우스는 만일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조심성있게 공개적으로 고백한다면 아무 것도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반하우스와 대화를 끝내고 젊음이는 그가 만나게 될 처음 열 명의 사람에게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음을 말하기로 작정하였다.


        그 젊은 군인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에 올랐다. 그가 마지막 기차 여행을 하려고 교외선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그는 이전에 알고 지냈던 한 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그를 보고 매우 반가와 했으며 그가 어떻게 지냈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그녀에게 ‘내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 내게 일어났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당신은 결혼을 할려고 하는군요”라고 하였다. 그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 그보다 더 좋은 일입니다.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때 그 소녀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리고 몇마디 말을 정중하게 하더니 자기의 갈 길을 갔다.


        잠시후에 이 새로운 그리스도인은 전에 군복무할 때 알게 되었던 한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다시 보게 되니 무척 반갑습니다. 당신이 돌아온 걸 축하하는 파티를 열어야 하겠는데요”하고 말했다.


        그때 그 군인은 “나는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두 명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그러자 또 다시 그 청년의 얼굴은 굳어졌고 재빨리 다른 화제로 바꾸었다.


        이후에  두명의 오랜 친구와 젊은 부부를 만났을 때,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더 이상 찾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더욱 두드러지게 신앙심이 굳어졌다. 어느 누가 그를 알 수 있겠는가? 그를 아는 사람들은 심지어 그가 미쳤다고 말했다. 그가 무슨 해로운 일을 했는가? 그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일 이외에는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원하지 않으며, 심지어 그 분에 대해 듣고 싶어하지 않는 자들로부터 그를 분리시켰다. 이런 일이 여러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솔직한 신앙고백만큼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는 일은 없다. 그러나 이 길만이 그 분의 제자가 되려는 자들이 걸어야 하는 길이다.


3. 옛가족, 새로운 가족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지도 모른다.  “옛날의 사회적 신분이 있던 자들이나 소원한 친구들과 관계를 끊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모두 잘하는 일이며 좋은 일이다. 그러나 부모와의 관계, 더욱이 나쁜 것은 남편이나 아내와의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좀 다른 문제이다. 이런 관계는 쉽게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말은 옳다. 그래서 나는 다음의 위로이 말을 덧붙이고자 한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가족 안에 역사하셔서 그 가족중 그리스도인 된 자를 그분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다른 가족들을 그분에게로 종종 이끄신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신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가? 처음엔느 큰 오해가 생겨나고 심지어 적개심까지도 일어난다. 특별히 부모는 자녀의 새로운 믿음을 그들을 거역하고 그들의 가치관을 거스리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변화가 생겨난다. 적개심은 호기심으로 바뀌고, 그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존경하게 된다. 따라서 대화가 이루어지고, 오래지 않아 부모와 형제, 자매, rmlfrh 다른 이들은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목사로 일하면서 흥미있는 일들을 많이 보았다. 한 세대 전에, 교회는 길을 잘못든 아들, 딸을 몹시 슬퍼해 하는 부모들로 꽉 채워졌다. 부모들은 믿는 자들이었으나, 그들의 자녀들은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고 세속적인 삶을 살았다. 오늘날은 반대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학에 다니는 자녀들이나 일찍 직업 전선에 나간 자녀들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들의 부모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는 자녀들의 증거를 통하여 예수께로 나아가는 많은 부모들을 보아왔다.

        만일 당신이 예수를 따르는 일로 해서 당신의 가족에 관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절망하지 말라. 그것은 단지 일시적일 뿐이다. 당신의 가족이 어떻게 하건, 무슨 말을 하건간에 당신은 에수님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신 이유는 그분께서 당신의 가족들까지도 부르시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분께서 당신의 가족들까지도 부르시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야만 한다. 스펄젼이 말했던 대로, 당신은 그들을 “복음의 그물”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영적 유인장치”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당신에 주신 놀라운 새 가족을 잊지말라. 당신은 본래의 당신 가족들과 비숫한 성격과 또한 그들과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또한 당신의 새로운 가족인, 믿는 자들의 가족과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막 10:29-30에서 그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막 10:29-30

        이 얼마나 훌륭한 가족인가! 모든 지체들이 한 아버지를 가지게 됨으로서 한가족을 이루게 되었다. 그들은 한 어머니를 가지게 된다. 그것은 곧 눈에 보이는 교회이다. 그리고 그들의 형제는 예수님이시다. 이 가족은 행복한 가족이다. 왜냐하면 그 지체들은 죄로부터 돌아서서 예수님께서 복종하기 위해 세상과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만은 이 가족들이 모두 싫어하는 것이다. 그들의 구원에 대한 소망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일에 달려 있으며 그러기에 그들은 자기에게 집착하지 않으며 ,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같은 성경을 읽는다. 그들은 기도를 통하여 은혜의 같은 보좌에 다다른다. 그들은 은혜의 같은 선물, 즉 사랑과 기쁨, 평화, 인내, 온유함, 선함, 신실함, 관대함과 절제를 위해 힘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하나가 되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그들의 미래에 대해 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즉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와 그분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부활때, 그분의 보좌를 둘러서 연합될 것을 기대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의 교제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일은 큰 보상을 가져다 준다. 그것은 현세의 축복과 내세에서의 축복된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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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제 4 부 제자가 되었을 때에 받는 상들 : 제 13 장 핍박과 함께 오는 현재의 행복    임 바울 2014/07/28 330 2181
14  14. 제 4 부 제자가 되었을 때에 받는 상들 : 제 12 장 행복한 그리스도인    임 바울 2014/07/21 303 1965
13  13. 제 3 부 : 제 11 장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    임 바울 2014/07/20 327 1867
 12. 제 3 부 : 제 10 장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자    임 바울 2014/07/08 300 1690
11  11. 제 3 부 제 9 장 비용을 먼저 계산함    임 바울 2014/07/02 294 1394
10  10. 제 2 부 제자가 가는 길 : 제 8 장 따르지 않는 사람도 제자가 될 수 있는가?    임 바울 2014/06/23 278 1428
9  9. 제 2 부 제자가 가는 길 : 제 7 장 빈 손의 길    임 바울 2014/06/18 263 1681
8  8. 제 2 부 제자가 가는 길 : 제 6 장 겸손의 길    임 바울 2014/06/12 265 1701
7  7. 제 2 부 제자가 가는 길 : 제 5 장 섬김의 길    임 바울 2014/06/05 260 1492
6  6. 제 2 부 제자가 가는 길 :제 4 장 복종의 길    임 바울 2014/05/26 275 1600
5  5. 제 1 부 제자의 의미 :제 3 장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    임 바울 2014/05/16 311 1972
4  4. 제 1 부 제자의 의미 : 2 장 그리스도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임 바울 2014/05/05 276 1849
3  3 . 제 1 부 제자의 의미 : 제 1 장 제자로 부르셨다.    임 바울 2014/04/30 224 1730
2  2. 서론    임 바울 2014/04/30 271 1122
1  1. 강의 계획표    임 바울 2014/04/30 26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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